2023년 10월 7일 이후 2025년 3월 말까지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사망한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주민은 5만 명이 넘습니다. 또한 1만 1천 명 이상이 건물 잔해에 깔리는 등 실종 상태이며, 이들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따라서 실종자까지 포함하면 230만 명가량이 살던 가자 지구에서 지난 18개월 동안 6만 명 넘게 희생된 것입니다.

 

1만 8천 명에 이르는 어린이와 청소년이 살해되었고, 이 가운데는 0~1살 사이의 아기 1천7백 명 이상도 포함됩니다. 그들은 모두 누군가의 딸이거나 아들이고, 누군가의 형제이자 자매였습니다. 가자 지구 어린이와 청소년 100명 가운데 5명이 고아가 되거나 부모와 분리되었습니다. 나머지 어린이와 청소년도 전쟁으로 인한 각종 트라우마와 심리적 상처를 겪고 있습니다.

 

2024년 1월 29일 팔레스타인 적신월사(적십자사에 해당)에 힌드 라잡(5살)이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스라엘 탱크가 힌드와 가족이 타고 있던 차량을 공격해 힌드를 제외한 다른 사람은 모두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너무 무서워요, 제발 와 주세요. 제발 사람을 보내 저를 데려가 주세요.

 

힌드 라잡

 

 

구급대원이 가까스로 힌드에게 접근했지만, 이스라엘은 이들 모두를 공격하였습니다. 12일이 지나고 나서야 힌드와 그녀의 가족, 그리고 두 명의 구급대원 시신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이 살 수 없도록

 

남녀노소, 종교와 직업 등 가리지 않고 팔레스타인인 전체를 대상으로 한 전쟁과 폭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역사적 팔레스타인 전체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이스라엘이 유대인은 제외하고 팔레스타인인(아랍인)만을 표적으로 삼고 있어, 이번 전쟁을 '인종 청소'라고도 부릅니다.

 

피해자 수가 많음은 물론입니다. 그리고 주민들이 기본적인 생활 조건을 누리기 어려울 정도로 가자 지구를 체계적으로 파괴하는 것 또한 이스라엘의 공격을 인종 청소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예를 들어 주택의 92%, 학교의 88%, 도로의 68%가량이 부분 또는 전부 파괴되어 오늘 당장 전쟁이 멈춘다고 해도 생존자들은 일상을 회복하기 어렵습니다. 68%가량의 농경지가 파괴되어 가뜩이나 부족한 농산물의 생산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가자에서 특정 직업을 가진 사람을 지속적으로 표적 살해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1천3백 명 이상 살해된 의료인입니다. 많은 의사가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살해되거나 이스라엘군에 납치되어 감옥에 갇혔습니다. 한 명의 의사가 희생된다는 것은 한 개인의 죽음을 넘어, 수많은 환자가 치료받을 기회를 잃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새롭게 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걸릴 뿐만 아니라 다양한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미 많은 병원과 대학이 파괴되어 의료인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기도 어렵습니다. 의료인을 살해하는 것은 지금 당장 환자를 치료할 수 없음은 물론이고, 장기적으로 가자의 의료 체계를 복구하기 힘들게 만듭니다.

 

팔레스타인이라는 공동체 자체가 붕괴하고, 가자 주민들은 스스로 살아가기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고 있습니다.

 

호쌈 샤바트

 

의사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기자도 이스라엘의 주요 표적이 되고 있습니다. 가자의 기자들이 이스라엘이 감추고 싶어 하는 것을 영상과 사진으로, 말과 글로 세상에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2023년 10월 7일 이후 가자에서 200명이 넘는 언론인 및 관계자가 살해되었습니다. 특히 이번 전쟁이 시작된 2023년 10월 44명, 11월 32명, 12월 37명의 언론인 및 관계자가 사망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기자를 살해하는 한편 외국 기자가 가자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았습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군은 국제 언론 기자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자신이 보여주는 장소에서 취재하도록 했습니다. 이스라엘군과 함께 움직였던 기자들은 이스라엘군 대변인이 발표하는 내용을 그대로 세계에 전하기도 했습니다.

 

호쌈 샤바트

 

 

 

2025년 3월 24일, 이스라엘이 호쌈 샤바트(23세)라는 알자지라 소속 기자가 타고 있던 차량을 폭격해 그를 살해했습니다. 2023년 이스라엘의 가자에 대한 공격이 시작된 후, 호쌈은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 열심히 활동했습니다. 호쌈이 유언처럼 남긴 마지막 글을 친구들이 X(옛 트위터)에 올렸습니다.

 

여러분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제가 이스라엘 점령군에 살해당했다는 뜻입니다. 이 모든 것이 시작되었을 때 저는 남들처럼 꿈을 가진 21살짜리 대학생이었습니다. 지난 18개월 동안 저는 제 삶의 모든 순간을 팔레스타인인에게 바쳤습니다. 저는 가자 북부의 참상을 시시각각 기록하며 저들이 감추려 했던 진실을 세상에 보여주기로 결심했습니다.

 

알자지라는 성명을 발표하고 호쌈을 살해한 이스라엘을 비난했습니다.

 

호쌈의 가족에게 깊은 애도를 표하며, 모든 인권 및 언론 단체가 이스라엘 점령군의 조직적인 언론인 살해와 국제 인도법상 책임 회피를 규탄하고, 이번 끔찍한 범죄의 가해자들을 정의의 심판대에 세울 것을 촉구합니다.

 

이스라엘은 문자 메시지를 보내거나 주변인을 살해하는 방식으로 가자의 기자들에게 경고를 보내왔습니다.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호쌈의 형인 마흐무드는 호쌈도 그런 경고를 받아왔다고 했습니다.

 

가자에서 언론인으로 진실을 전한다는 것은 곧 살해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걸 호쌈도 알고 있었습니다.

 

호쌈의 어머니 아말은 눈물을 흘리며 "내 아들은 영웅이에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죽기 전 호쌈의 모습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누군가 호쌈에게 전화를 걸 때마다, 아니면 누군가 무슨 일이 벌어졌다고 할 때마다 호쌈은 새처럼 날아갔어요. 파괴와 죽음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호쌈은 달려갔습니다. 저는 무서워서 호쌈에게 위험한 곳으로부터 물러서라고, 떨어지라고 말했습니다.

 

호쌈은 유서의 마지막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여러분께 부탁드립니다. 가자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멈추지 마세요. 세상이 외면하도록 놔두지 마세요. 투쟁을 멈추지 말고, 우리의 이야기를 계속 전해주세요. 팔레스타인이 해방될 때까지.

 

호쌈은 자신이 희생될 줄 알면서도 고통받는 가자 주민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세상에 알렸습니다. 억울하게 사라져 간 이들의 숨결이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한 채 잊히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