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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선이 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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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들의 죽음

posted Jan 3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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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들의 죽음 

 

 

2021년 9월 9일, 76세의 남동생이 폐암으로 6개월 동안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2022년 새해를 맞은 1월 2일에 나와 두 살 터울인 여동생이 또 떠났다. 5개월 동안에 두 명의 동생이 거짓말처럼 훌쩍 가버리니 이것이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었고, 슬프기보다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다. 

 

동생은 일생을 부산 기장에서 살았다. 동생이 살았던 기장 집은 나의 별장이기도 했다. 나는 고향인 부산에 내려가면 ‘기장 별장’에 머물렀다. 그곳은 내 집처럼 안락했다. 동생과 나의 밥상은 싱싱한 갈치와 특산물인 기장 미역으로 늘 풍성했다. 동생은 나보다 키도 크고 체격도 당당했으며 건강했다. 이웃과도 잘 지내며 운동에도 열심이었다. 동생은 운동에는 별로 열의가 없는 나를 이끌고 공원으로, 낮은 산으로 데리고 다니며 “언니야, 이렇게 해라, 이렇게. 그러면 안 된다. 힘을 좀 더 줘야지 운동이 된다.”며 무던히 애를 썼다.   

 

2020년 1월 말, 코로나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무렵, 우리 집이 이사를 하면서 리모델링을 하게 되었다. 한 달 동안 나는 동생이 사는 기장 별장으로 갔다. 그 한 달 동안이 없었다면 나의 마음은 지금 어땠을까? 우리들 일생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동생과 함께 보냈다. 동생이 이끄는 대로 산책도 하고, 체조도 하고, 시장도 보고, 맛집 등을 돌아다니며 어렸을 때 이야기를 하다가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다. 그렇게 한 달을 보내고 나는 서울로 올라왔다. 

 

지난해 여름 동생이 몸에 이상을 느껴 기장병원에서 진찰을 받았더니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말을 듣고 아들과 딸이 사는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에 있는 종합병원 두 곳에서 똑같은 결과가 나왔는데 뜻밖에도 ‘혈액암’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3개월밖에 살 수 없다는 것이었다. 동생의 아이들은 그 사실을 동생에게 숨기지 않고 가감 없이 알렸다. 평소에 항상 긍정적이며 씩씩했던 동생이 그 사실을 알고는 나에게 전화로 조언을 청했다. 

 

“언니야, 난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고 싶다. 이제 내 나이 여든이 넘었으니 살만큼 살았다. 무서운 항암치료는 받지 않을 거야. 언니는 어떻게 생각하노?” 나는 동생의 말에 조금도 서슴지 않고 대답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내가 그런 입장에 처했다면 너와 똑같은 생각을 할 테니까….” 동생과의 전화를 끊고 난 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내 동생이 또 가는구나, 아까운 내 동생이 또 가는구나.” 

동생의 아들과 딸은 가만히 앉아서 어머니를 죽게 할 수 없다고 아우성쳤다. 결국 동생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항암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속수무책이었다. 6차까지 예정되어 있던 항암치료가 시작되었다. 우려와는 달리 동생은 1,2차까지는 잘 이겨냈다. 3차를 맞고 난 다음 출혈로 인해 수술을 하고 중환자실에서 다행히 입원실로 병실을 옮겼다. ‘이제 됐구나.’하는 생각도 잠시 몸속에서 시작된 출혈이 멈추지 않아 동생은 다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그리고 다시는 눈을 뜨지 못했다. 중환자실에서 홀로 고통을 참으며 동생은 많이 또 많이 아팠을 것이다. 

 

2021년 9월 1일에 서울로 올라와서 앞으로 남은 시간이 3개월 정도라고 했는데, 동생은 2022년 1월 2일 4개월 만에 떠났다. 결국 한 달은 더 산 셈이다. 그것도 병원에 입원한 시간이 한 달 반 정도 되었다. 무엇이 정답일까? 수술이나 항암치료를 버텨 내기에 동생은 너무 나이가 많았고, 아이들이 혹시나 하고 바랐던 기적 역시 일어나지 않았다. 

 

동생의 남편이 국가유공자였기 때문에 동생은 경상북도 영천에 있는 국군묘지로 갔다. 남편 곁으로. 그곳 영천에는 5개월 전 세상을 떠난 남동생과 3년 전 돌아가신 오빠의 유골도 안장되어 있다. 남동생과 오빠 모두 국가유공자였다. 넓고 넓은 영천 국군묘지. 그곳에 나의 두 동생과 오빠가 같이 잠들어 있다. 그리고 나의 기장 별장도 영원히 사라졌다. 

 

최영선-프로필.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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