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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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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해??

posted Nov 0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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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지원
발행호수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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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려 가만히 앉으니 올라오는 생각 2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내가 내담자로서 상담실 문을 처음 노크하였던 때였는데, 그때는 나를 어르고 달래는 힘이 너무 부족해서 현실이 늘 힘들었던. 그때가 떠올랐다. 그리고 두 번째로 떠오른 것은 [상처 입은 치유자]라는 책 이름의 문장이었다. 책 제목부터가 종교적 냄새가 물씬 나는 책이다. 그러나 그 책은 목회자나 상담자로서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한 인간으로 우리 앞에 펼쳐진 곤경과 고통과 상처들이 한편으로는 다른 이들을 치유하는 원천이 된다는 내용 정도로 기억된다.

 

어쩌면 내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모두, 우리가 제대로 현실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고통과 상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며, 동시에 자신의 보고 싶지 않은 모습들을 외면하기보다 적극적으로 끌어안아야 한다는 이야기들에 대해 나누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다. 이것 자체가 바로 상담자에게 필요한 기본태도이기도 할 텐데, 과연 목회자로서 혹은 상담자로서, 무엇보다 한 개인으로서 나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치매996206.jpg

 

3년째 투병 중인 나의 친정어머니는 시간이 갈수록 치매가 점점 깊어지신다. 초반에는 가끔씩만 보이던 '중얼거림'의 증상은 요즘 들어 더 자주 목격된다. 하나의 짧은 문장은 단번에 매우 빠르게, 그리고 한번 시작되면 끝날 것 같지 않을 듯이 반복된다; 바로 그 문장은 '미치겠다'이다. 어머니 본인의 처지가 그만큼 고통스럽고 미칠 것 같으신 걸까. 치매는 모든 것을 다 잊어버려도 감정만은 남는다던데 정말 그러신 걸까. 다른 무엇보다 나는 이걸 듣다 보면 마치 내가 미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데 나는 왜 이 말이 그렇게 듣기 힘들까. 나 또한 마음 한구석에 채 들춰보지 아니한 '미칠' 것 같은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도 나는 그동안 그런 나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다독이려 하기보다, '마치 그런 마음이 내게 없는 듯' 회피하려고만 하던 습관을, 이제는 나의 어머니를 통해 반복적으로 보게 되고 듣게 되어 크게 자극이 되는 걸까? 그 '미치겠다'는 읊조림에 매번 나는 마음이 복잡하다.

 

[정신증의 핵] (마이클 아이건 저)은 인간의 깊은 내면의 정신증의 세계를 소개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정신증의 세계가 있다고 하면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겠다. 우리의 정신 발달에서 자아는 광적인 상태에서 출발한다고 들었다. 다만 자아는 살아가면서 그 광증을 조절해야 한다고 말과 함께 말이다. 내가 얼마 전에 꾼 꿈이 있다: 나는 방에 누워서 늦여름 모기로 밤 잠을 설친다. 도무지 잠을 잘 수 없던 나는 일어나서 두 손으로 손뼉 치듯 모기를 잡기 시작한다. 곧 전능적으로 (꿈에서는 그럴 수 있겠다) 몇 마리의 모기가 한 번에 내 손에 잡히고 나는 두 손바닥으로 그것들을 때려잡는다..... 대충 이런 내용인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정신증의 세계'는 '벌레'로 상징된다고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나의 정신증의 세계를 어떻게 처리하고 있다는 메시지일까? 곰곰이 생각해 볼 꿈이라는 생각이 든다. 다시금 말하지만,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이 '정신증'이라는 것이 어떻게 느껴지실지 궁금하다. 내가 이해하는 정신증의 세계란 그야말로 '미칠 것 같은 정서'. 예를 들어 우리는 너무 큰 스트레스 앞에서 종종 '미치겠네'라고 말한다. 또는 반대로 너무 좋을 때에도 '좋아서 미칠 지경이다'라고 말한다. 그뿐인가? 요즘 젊은이들은 감정적으로 차오를 때 “미쳤다!”라고 유행처럼 외쳐댄다. 이렇게 보면 이 정신증의 세계란 인간의 깊은 정서의 세계를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대부분 우리의 정서를 관심 있게 들여다보고, 또 어떤지 느껴보기도 하는 것에는 익숙지 않다. 그저 의식적으로 대처한다: '뭐 그렇게까지 깊이 생각해!'

 

나는 다만, 앞으로의 내 삶의 여정에서 나의 상처들에게 보다 더 친절한 태도로 대화하고 싶다. 그래서 그때 내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그렇다면 왜 그렇게 느꼈던 건지... 진정 어린 마음을 가지고 대화하는 일관성을 가졌으면 좋겠다. 이것이 바로 나의 깊은 마음속 정신증적 내용들을 잘 조절하고,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의 삶을 충실하게 사는 인간적인 태도일 것이다.

김지원_프로필.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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