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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별의 다큐 이야기] 혁명을 수행하는 기타 - 콜텍 이야기 3

posted Jun 2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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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별의 다큐 이야기] 혁명을 수행하는 기타 - 콜텍 이야기 3


 

다음은 콜텍과 함께한 숨 가빴던 일주일의 기록이다. 이것으로 콜텍 이야기를 마친다.

4월 15일 월요일 투쟁 4457일 단식 35일 - 9차 교섭 시작
오전 10시 반, 콜텍 본사 앞 농성장을 지날 때 세 분의 수녀님과 한 분의 남자가 기도를 올리고 계셨다. 그 기도가 어디까지 어떻게 상달될까? 염원과 긴장 속에서 콜텍 9차 교섭이 시작되었다.
오전 11시, 한국가스공사 서울지역본부 제2면회실에서 이승열 금속노조부위원장, 정성훈 금속노조 조직부장, 이인근 콜텍 지회장 대 박영호 사장, 이희용 상무, 강환 차장이 만났다. 지상파 방송 기자들이 사뭇 많이 왔다. 그만큼 관심의 대상이 된다는 표증이니 좋은 징조였다. 그런데 11시 30분쯤 덩치 좋은 남자들 여남은 명이 마스크를 쓰고 주차장에 진을 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콜텍 직원들이었다. 로비를 어슬렁거리며 분위기를 파악하듯 채증을 해가는 그들의 태도는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점심시간이 되고 박영호 사장이 더는 교섭에 나오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하고 자리를 뜨자, 그들은 우르르 몰려나와 차에 타는 사장을 호위했다. 현관에서 주차장의 거리는 불과 10~20미터, 교섭장에는 일부러 최소한의 인원만이 와 있었고, 그 시각 농성장에선 피켓과 기도로 평화시위를 하고 있었다. 사측은 대체 뭐가 두려워서 직원들을 배치시킨 걸까?
오후 2시 교섭 재개를 하기 전 점심시간에 다시 들른 농성장에서 선전전을 하고 있는 단식 35일째 임재춘 조합원에게 몸은 좀 어떠시냐고 물었다.
“죽기 살기로 버텨야죠.”
오후 6~7시 저녁식사 시간 후 7시에 교섭 재개를 한지 불과 십여 분만에 교섭은 끝났다. 그나마 다행인 건 결렬이 아닌 다음 날 오전 10시에 다시 교섭을 이어간다는 점이었다.

 

 

교섭을-위한-묵주기도-1_resize.jpg

콜텍 노사교섭을 위한 묵주기도

 

 

4월 16일 화요일 투쟁 4458일 단식 36일
교섭장 가는 길에 농성장에 먼저 들렀다. 임재춘 조합원 몸 상태를 살피기 위해서였다. 전날 두통을 호소했기에 몸은 좀 어떠시냐고 물었다.
“컨디션 좋아요.”
다행이었다.
오전 10시, 교섭장에 전날 복도를 가득 메웠던 기자들은 온 데 간 데 없었다. 제1면회실에는 기자 한 명, 복도에는 통신사 기자가 떠난 후 나 혼자 남아 있었다. 관심이 없어졌다는 건 교섭이 길어짐을 예고했다. 아니나 다를까 교섭 십여 분 후 정회를 하고 각자 오랜 회의가 이어졌다. 그리곤 12시가 지나자 재개를 하고 5분 만에 교섭은 또 정회를 했다. 사측은 당일 복직 당일 퇴사안을 내놓았다고 했다. 노조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집행부는 식사를 하러 가고 동조단식중인 나는 농성장으로 향했다. 수녀님들과 시민들이 피켓시위를 하고 있었다. 임재춘 조합원은 서있을 기력이 없는지 의자에 앉은 채로 피켓을 잡고 있었다.
“벌써 끝났어요?”
“내일 11시에 다시 한대요.”
아는 것이 없으니 전할 말도 딱히 없었다. 안쓰러움에 그의 손을 슬며시 스치고 돌아섰는데 난데없이 눈이 뜨뜻해졌다. 김득중 쌍용차 지부장이 들고 있다가 오춘상 한의원장에게 진맥을 받느라 놓고 간 피켓을 들고 서 있는데 자꾸만 뭐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임재춘 조합원은 하루하루 피가 마르고 뼈가 삭는데 교섭은 자꾸만 연장되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나는 눈물만 주룩주룩 흘리고 있었다.

아는 사람이 별로 없는 농성장에서 가장 반가운 얼굴은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에서 만난 수녀님들이다. 지난여름엔 페르페투아 수녀님을, 지난겨울엔 살루스 수녀님을 만났다. 나는 살루스 수녀님에게 내가 왜 탈핵과 노동운동 현장에 가는지, 둘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자 수녀님은 ‘생명과 평화 연대’라는 명쾌한 답을 주셨다. 정리가 안 되던 내 마음 연동의 원인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4·16참사 5주기인 이날, 살루스 수녀님과 함께 안산으로 갔다.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도착한 안산 화랑유원지엔 노란 바람개비들이 바람에 팽글팽글 돌고 있었다. 책 <우리에겐 내일이 있다>에는 임재춘 조합원이 어려운 경제 사정 때문에 자녀들을 수학여행에  한 번도 못 보내준 이야기가 있다. 그러면서 단원고 학생 부모들도 어렵게 수학여행을 보내줬을 텐데 그런 참사가 난 걸 안타까워했다는 내용이었다. 생존학생이 별이 된 친구들에게 편지를 읽는데 또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옆자리 살루스 수녀님의 손수건도 젖고 있었다. 매일 눈물을 쏟는다고 세상이 씻길 수 있을까? 가난과 사고와 죽음과 이별 없는 세상은 이 지구상에 영영 없겠지.  

 

 

기도와-시위2-1_resize.jpg

기도와 시위

 

 

4월 17일 수요일 투쟁 4459일 단식 37일
오전 11시, 교섭 시작부터 고성이 오갔다. 잠시 후 정회, 11시 50분 재개, 아마 정오가 되면 또 정회될 것이었다. 역시 그랬다. 매일 정오부터 한 시까지 선전전이 이어진다. 농성장에는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유엄 스님이 독경 중이셨다. 파인텍 사람들도 함께 있었고 사진가들도 보였다. 임재춘 조합원은 컨디션이 좋다고 했다. 48.5kg이라고 한다. 그동안 세 끼 꼬박 챙긴 건강 덕을 보고 있는 듯하다. 버텨주는 게 고마울 따름이다.  
오후 1시 반 재개. 그러나 다음 날 오전 11시를 기약하고 2시 5분에 교섭은 정회됐다. 정리하고 돌아가려다 3시 산책에 동행을 했다. 임재춘 조합원과 살루스 수녀님과 류금신 민중가수와 함께였다. 발걸음에 지친 기색이 전혀 없는 임재춘 조합원의 정신력이 놀라웠다. 식품점 앞을 지나며 수녀님이 그에게 뭐가 제일 먹고 싶으냐고 물었다. 그는 큰 멸치에 고추를 넣어 푹 조린 얼큰한 멸치조림이라고 했다. 왕년의 요리사답게 먹고 싶은 요리도 손맛을 요구하는 수준이었다. 내가 책에서 읽은, 라면스프가 비결이었냐고 짓궂게 물었더니 누군가가 라면 두 개 끓이면서 남긴 스프가 아까워서 넣은 걸 영화감독이 찍으면서 그렇게 됐다며 (소문이 나버렸다며) 자못 억울해했다. 37일 굶은 그와 음식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머리 위로 담장의 꽃송이들이 향기를 날리고 있었다.       
단식농성텐트에는 파란 창이 네 개 붙어있다. 그 창에는 작업복이 그려져 있고, ‘아빠는 언제부터 돈 벌어올 거예요?’, ‘우리에게도 명예가 있어’, ‘가만히 있으면 변하지 않아’라고 쓰여 있다. 창문 없는 공장에서 쫓겨난 임재춘 조합원이 무늬만 창문인 농성텐트를 벗어나 창문 있을 그의 집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그곳에서 배를 갈라 내장을 제거한 칼칼한 멸치조림을 밥상에 올려놓고 딸들과 따뜻한 식사를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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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길에서 민중가수 류금신과 임재춘 조합원

 

 

4월 18일 목요일 투쟁 4460일 단식 38일
며칠째 같은 장소에 가다보니 이제는 버스를 요리조리 갈아타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교섭은  요령부득 정회 시간이 더 길었다. 오전 11시에 시작하면 곧 12시, 점심시간 선전전에 전날처럼 파인텍 사람들이 있었다. 진료차 온 오춘상 한의원장은 피케팅부터 동참했다.
오후 1시, 사람들이 식사하러 간 사이 인권운동공간 활(活)의 랑 인권활동가와 천막에 남았다. 그이는 콜텍 투쟁 처음부터 지금까지 13년을 함께해 온 사람이다. 나는 그동안 궁금했던 다른 사업장과 콜텍의 차이점에 대해 물었다. 기타 노동자와 음악, 미술, 연극 등 예술가들의 연대는 노동과 문화의 만남이었다. 인천의 빈 공장을 점거해서 예술 공간으로 만들고 함께했을 때 그이는 이런 생각을 했다 한다.
“공장의 법적소유주는 박영호이지만 그 공장이란 공간에서 가장 오래 있었고 애정과 애착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노동자들이거든요. 기계를 반출하고 사람들을 내쫓고 공장을 매각했을 때 법적소유권이 없다고 해서 노동자들의 권리는 전혀 없는 것인가. 공간에 대한 애정과 권리를 이 사회에서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
기타를 만들 때 노동자들은 기타를 칠 줄 몰랐다. 그러나 해고 후 기타를 칠 수 있게 되었고 밴드도 만들었다. 심지어 연극도 하고 영화도 찍었고 글도 쓰게 되었다. 그들의 삶은 질적으로 매우 큰 변화를 맞았다.
“그것은 노동자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인디음악문화계의 문제이기도 하지요. 뮤지션들도 기타 노동자들을 만나면서 노동에 대한 인식이 변했어요. 어떻게 보면 뮤지션이나 기타 노동자들이나 불안한 삶을 살고 있는 건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다르면서도 닮은 삶인 거죠.”
2차 산업과 3차 산업의 차이가 있을 뿐, 우리는 모두 노동자이다.
오후 2시로 약속했던 교섭은 사측에 의해서 2시 반으로 미뤄졌고 2시 55분 또다시 정회했다. 나는 다른 일정이 있어 더 이상 함께 있을 수 없었다. 저녁 뉴스를 보니 여전히 별다른 진전 없이 다음 날로 교섭이 연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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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섭장으로 들어가는 노측 대표들 / 근로기준법 제24조

 

 

4월 19일 금요일 투쟁 4461일 단식 39일
닷새째 출근, 이제는 한국가스공사 경비실에서 내 이름을 안다.
오전 11시, 교섭을 시작하자마자 지회장의 언성이 높아지고 11시 16분에 정회. 사과와 복직, 그리고 위로금 세 가지 중 어느 것 하나라도 합의를 보는 게 없는 것일까? 임재춘 조합원 단식 39일째, 그는 버틸 만큼 버텨주었다. 나는 주말 전에 타결되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오후 3시 산책길에 임재춘 조합원에게 물었다.
“만약에 오늘 타결이 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50일은 버텨야지요.”
누가 더 오래 버티나 싸움 같다. 사측은 아쉬울 게 없고 노측은 굶고 있는 사람이 있다.
오후 5시 15분 교섭은 30분에 정회했다. 확실한 건 교섭이 결렬되지 않았고 다음 주 월요일에 재개한다는 것뿐이었다. 닷새 동안 나는 무엇을 했나? 소속도 조직도 없는 주제에 카메라와 펜 하나로, 매일  교섭장 빈 복도에 있었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행위는 일종의 압박과 감시였고 함께하고 있다는 응원이었다. 그러나 부활절에도 달걀은 부화하지 않았다.

 

 

매일-정오_한-시-선전전-1_resize.jpg

매일 정오부터 한 시까지 선전전

 


2019년 4월 22일 월요일 투쟁 4464일 단식 42일 월 오전 10시 마지막 교섭
이날은 교섭장으로 가는 대신 농성장으로 향했다. 지난 일주일간 나는 흠씬 지쳐있었다. 그런데 점심시간 선전전 후 살루스 수녀님으로부터 집행부에서 기자들을 부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수녀님 두 분과 신자 한 분과 함께 교섭장으로 향했다. 길을 걸으면서 그들의 기도는 이미 시작되었다. 교섭장 밖에서 세 분과 함께 기도를 했다. 나는 그들의 기도문을 잘 모른다. 그저 마음을 모을 뿐이었다. 
오후 2시 30분 교섭을 재개하고 3시 15분 정회, 그런데 이번에는 끝이 있었다.
오후 4시 30분, 잠정 합의가 생방송으로 보도됐다.
농성장에 다시 오자 임재춘 조합원 앞에 작은 상이 펴있고 그 위 보온병 뚜껑에 미음이 담겨있었다. 꿀잠에서 유기농 쌀로 쑨 미음을 김소연 꿀잠 운영위원장이 가져온 것이었다. 미음은 집행부가 올 때까지 숟가락을 얹고 상 위에 오롯이 있었다. 마침내 콜텍 셋이 모이고 잠정 합의서가 임재춘 조합원의 손에 들려졌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1. 회사는 2007년 정리해고로 인하여 해고노동자들이 힘들었던 시간에 대하여 깊은 유감을 표한다.
2. 회사는 2019년 5월 2일부터 김경봉, 임재춘, 이인근 조합원을 복직시키되, 소급해서 근로관계를 부활시키거나 해고기간의 임금 등을 지급하지는 아니한다. 위 복직자들은 5월 30일부로 퇴직한다. 복직 기간의 임금은 4항에 포함시킨다. 처우는 부속합의서에 따른다.
3. 회사는 국내 공장을 재가동할 시 희망자에 한해 우선 채용한다.
4. 회사는 전국금속노동조합 대전충북지부 콜텍지회 조합원 25명에 합의금을 지급한다. 세부적인 내용은 부속합의서에 따른다.
(이하 생략)

 

“이게 뭐 종이때기 하나밖에 아니잖아요. 이거 받으려고 13년을 기다렸어요. 진짜 왜 노동자들이 이렇게 투쟁하면서 밥 굶어가며 해야 하는지 아무래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마지막으로 노동자 단식하기를 바라면서 앞으로 젊은 사람들이 굶고 고공에 안 올라가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임재춘 조합원의 소감에 기자들의 타다닥타다닥 연발 셔터 소리를 들으며 나도 같이 찍고 있는데 어느 순간 뷰파인더에 ‘배터리가 소모되었습니다’란 글씨가 뜸과 동시에 카메라 전원이 사악 꺼졌다. 결정적인 순간에 찾아온 무력이었다. 그러나 덕분에 나는 카메라에서 눈을 떼고 그 장면을 맨 눈으로 볼 수 있었다. 드디어 모두가 바라던 순간이었다.
“먹겠습니다.”
임재춘 조합원은 미음 한 술을 입에 넣자마자 울음을 함께 삼켰고 양옆의 김경봉 조합원과 이인근 지회장도 눈물을 보였다. 13년 투쟁에 종지부를 찍게 한 결정적 투신이었던 42일간의 단식은 미음 한 숟갈로 끝났다. 단식 소식을 알고부터 함께해 온 내 간헐적 단식도 끝이었다. 메마른 단식자의 혈관과 세포 구석구석에 곡기가 퍼지듯 그 날 밤 이 땅위에 평화가 점점이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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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장을 받으려고 13년을 기다렸다

 

 

2019년 4월 23일 화요일 투쟁 4465일 
오전 10시, 한국가스공사에서 콜텍 노사 조인식이 있었다.
남은 콜트에 관한 모 기자의 질문에 박영호 사장은 대답을 회피했다.
이어서 11시, 농성장 앞에서 기자회견이 있었다.
교섭 첫 날보다 더 많은 기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동안 콜텍과 함께 해 온 이들이 ‘정리해고 없는 세상을 위해 싸우겠습니다!’ 플랜카드 뒤에 서있었다.
그간 교섭을 이끌어온 이승열 금속노조 부위원장이 맨 먼저 발언을 했다.
“4464일 단식42일, 이 숫자가 주는 무거운 짐을 오늘로써 온전하게 내려진 것 같아서…… (울먹임) 그런데 그 짐은 콜텍 조합원들이 열심히 싸웠고 공대위에 함께한 동지들도 정말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속해있지는 않지만 함께 연대해 주시고 응원해 주신 수없이 많은 양심 있는 시민들, 진보단체, 종교인들 이분들의 도움이 없었으면 오늘 이 짐은 내려놓을 수 없었을 거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먼저 드려야 될 것 같습니다.”
콜텍 조합원들이 지금까지 연대해 준 분들에게 장미꽃을 전달했다. 그런데 사회를 보던 정진우 비정규없는세상만들기(비없세) 집행위원을 제외하고는 내내 교섭장을 지킨 신유아 문화연대 활동가, 박점규 비없세 집행위원, 농성장에서 늘 숙박하던 송경동 시인과 전날까지 매일 오던 얼굴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일부는 그날 밤 백기완 선생님의 <버선발 이야기> 출판기념회 준비를 하러 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기도를 쌓던 수녀님들과 시민들은 장미꽃이 나눠지고 카메라 세례가 쏟아지는 날엔 또 다른 낮고 어두운 곳을 향해 가셨을 것이다.  
농성장마다 침과 약을 들고 달려가는 오춘상 한의원장이 마치 다 알고 있는 듯 세조의 의약론(醫藥論) 중 팔의론(八醫論)을 거론했다.
“한학에서는 최고의 의사를 심의(心醫)라고 합니다. 치료를 하지 않고 마음으로 치료하는 의사가 최고라고 하는데요. 여기에 함께 연대하고 계신 분들께서 심의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요. 끝까지 42일 동안 몇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꿋꿋하게 단식을 이겨낸 임재춘 형 고생 많으셨고 그 옆에서 끝까지 13년을 같이 했던 두 분과 이 자리의 영광을 함께하고 싶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이어 임재춘 조합원은 고생한 딸들 이야기를 하며 고공농성과 단식이 마지막이 되길 바랐고, 김경봉 조합원은 식구(아내)에게 고맙다고 했고, 이인근 지회장은 대법원의 잘못된 판결과 정리해고제 폐지를 외쳤다.
올 초 파인텍에 이어 두 번째로 목격하는 승리의 현장이었다. 이제 내게 남은 건 유성기업이었다. 

 

 

정리해고-없는-세상을-위해-1_resize.jpg

정리해고 없는 세상을 위하여

 

 

콜텍 친구들
몇 시간 후, 모든 관심이 사라진 자리에는 집기와 쓰레기를 치우는 사람들이 있었다. 처음 농성장에 방문했을 때, 어두운 천막 안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누가 보든 보지 않든 묵묵히 콜텍 세 사람들과 함께 했으며 그들이 떠난 후에도 그 자리를 끝까지 정리했다. 금속노조에서는 그동안 화장실 사용을 허락해준 맞은 편 교회에 감사인사를 표시했다. 예수님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셨다. 이제 겨우 몇 년 현장에 나가본 햇병아리인 나는 진정한 오른손들을 조금씩 알아가는 중이다. 다시 또 다른 현장에 나가면 그 때도 나는 아마 외로울 것이다. 그 때, 그 이름도 모르는 오른손들을 만나면 조금은 안심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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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를 아는 사람들

 

 

사흘 후, 콜텍 소송을 담당했던 법률사무소 새날의 김차곤 변호사를 찾아갔다.
그는 2007년부터 콜텍 지회장과 핵심 간부 4명 징계해고 사건, 태업과 임금 삭감 사건, 조합원 24명 정리해고 사건을 진행했다. 정리해고 건은 노동위원회 구제 절차를 거쳤다. 지방노동위원회에서는 해고 무효 판정이 났으나 중앙 노동위원회에서는 정당 판정이 나서 민사 소송으로 진행했다. 2009년 4월 3일 1심 패소 판결이 2009년 11월 27일 2심 서울고등법원에서 승소했다. 
“2008년 노동위원회나 소송에서 이길 것을 확신했어요. 왜냐하면 법리적으로 회사 경영 사정이 너무 좋았거든요. 엄청나게 이익이 발생하고 있었고 재무 위험성도 없었고 부채 비율도 적어서 양호했고 성장도 계속하고 있었고 자본도 늘고 있었어요. 콜텍 사업장 정리해고가 정당화된다면 대한민국에 정리해고가 부당하다고 인정되는 사업장은 아마 없을 거예요. 그 정도로 경영사정이 좋았어요.”  
콜텍은 2001년~2007년 511억~690억 사이 매출액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었다. 경영상황 감정보고서에도 ‘대전공장의 손실원인이 단기적으로 개선되어 이익으로 전환될 수는 없을 것으로 사료되나, 피고회사의 재무구조와 수익성이 양호하므로 대전공장 영업손실의 수준은 향후 피고회사 전체의 경영악화로 전이되어 위기상황을 초래할 만한 재무적 요인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로 결론지어져 있다.
나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매우 기초적인 질문을 했다.
“만약 제가 어느 날 공장을 차렸어요. 경영도 괜찮아요. 그런데 어느 날 문을 닫고 싶어도 못 닫나요?”
“닫을 수 있어요. 국내 공장을 가동하는 게 경영 위기가 와서 정리 해고해야 한다면 우리 법제 하에서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를 들어서 정리해고 가능하죠. 그러나 더 많이 벌기 위해서, 노조가 싫어서, 해고가 동반된다면 노동법 규제를 받아야 된다는 거죠. 콜텍은 사례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양호했어요. 제일 먼저 봐야 할 게 경영이 진짜 어려운지, 그렇지 않다면 해고할 수 없는 거죠. 대법원도 ‘장래에 올 수도 있는 위기에 미리 대처하기 위하여~’, 이런 판결은 그 전에 없었어요. 심하게 얘기하면 언제든지 정리해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사법심사 안 하겠다는 거죠. 이 판결은 정리해고 판결에서 자본가 편을 든 최악의 수치스런 판결로 남을 거예요. 법전을 휴지 조각으로 만든 거예요.”
이 사건은 2012년 경향신문과 주간경향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과 함께 선정한 ‘최악의 걸림돌 판결’로 꼽혔다.
“일단은 정리해고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정리해고는 노동자들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경영상의 문제가 있는 건데 그 책임을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전가하는 게 부당하다. 정리해고 요건을 강화하는 게 필요하다.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를 훨씬 더 구체적이고 엄격하게 정할 필요가 있죠. 근본적으로 법 개정이 필요하고 법원에서 정리해고 법 규정을 엄격하게 해석하는 게 필요합니다.”

“걸핏하면 사람들이 말하는 귀족노조 등 사회에 만연한 노조 혐오증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자본가의 의식이 이식되는 거죠. 언론은 그 논리를 부추기고요. 왜 그러잖아요. ‘한 시기의 한 사회에서의 지배적 이데올로기는 지배 계급의 이데올로기다.’”
“누구 말이에요?”
“맑스 말입니다.”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그 멋진 말이 그의 말이 아닐 줄은 알았지만 그렇게 유명한 어록인 줄 몰랐던 내 무지에 대한 일종의 유쾌함 때문이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나는 질문을 이어갔다.  
“그럼 노동자들이 이런 사회에서 어떻게 해 나가야 되나요?”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노동3권인 단결권 행사해서 노동조합을 만들어 민주적으로 잘 운영하고, 간부들은 노조원들의 의사를 잘 반영하고, 단체교섭을 통해서 근로조건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사용자들과 싸워서 쟁취해야 하는 거죠. 더 나아가서는 산별노조, 민주노총을 통해서 법률을 개정한다든지 해서 대등한 지위를 가질 수 있게 해나가야겠죠.” (참고 : 대한민국헌법 제33조 ①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저는 잘 몰라서 하는 생각인데요. 내가 고용한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해 주고 좋은 제도를 보장해줘서 행복하게 해주면 생산량도 늘고 나도 부자가 될 텐데, 상생을 위해서 자본가들의 마인드를 바꿔주면 되지 않을까요?”
나의 순진무구한 질문은 실은 역사적으로 존재했다. 1816년, 사회주의 운동과 협동조합의 선구자인 로버트 오언이 영국 맨체스터에서 만든 뉴래너크 공장이 그 실례였다. 
“이 체제 또는 사회에 따른 생각들이기 때문에 자본가들의 생각을 바꾸는 건 가능할 것 같지 않아요. 기업에서 이윤을 남기고 경쟁에서 이기려면 근로자들을 쥐어짜려고 하지, 선량한 자본가를 기대할 순 없을 것 같아요. 노동법 제정이 실제로는 상생을 위한 장치거든요. 이게 없다면 극한 대립으로 갈 수밖에 없을 거예요. 그것조차도 탄압하고 법률을 무시하고 있죠. 자본가가 아니라 노동권이 보장되는 게 사회 발전을 위해 긍정적인데 그걸 인정해 주기 싫은 거죠. 자기 자식들이 노동자가 되고 노동조합을 통해 정당한 대우를 받는 게 당연한 건데 아직까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김차곤 변호사는 콜텍 투쟁을 이렇게 평가했다. 
“장기간 싸워 오신 분들로, 단지 이 사업장 문제뿐만 아니라 전체 노동자들을 위해 정리해고제도 자체를 위해 문제 제기를 해 온 것에 대해 높이 평가하고 훌륭한 투쟁, 본받아야 할 노동자들의 모습이라고 봅니다. 사용자뿐만 아니라 법원의 편파성과 부당함 때문에 피해를 보신 분들인데 법원의 책임을 묻지 못하고 마무리한다는 것이 아쉬운 부분입니다. 이 사업장에서의 싸움은 끝이지만 앞으로 정리해고제도 철폐를 위해 계속 싸운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응원해 주고 싶습니다. 그분들 개인의 삶이 희생된 건 안타깝지만 이분들이 이런 싸움을 하지 않았다면 문제 제기도 없었을 테고 그나마 경각심을 준 분들이고 그래서 더 훌륭한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체 노동자들은 이 세 분의 정신을 이어받아야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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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차곤 변호사

 

 

3주 후인 5월 17일, 천안지법 앞 유성기업 5·18 직장폐쇄 8년 집회에서 콜텍 세 사람을 보았다. 복식 중인 임재춘 조합원은 합의금을 받았지만 아직도 빚이 남아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성기업에 투쟁 기금을 전달하러 온 것이었다. 전달식 사진을 찍는데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희생과 투쟁은 빈주먹에서 피어나고 연대와 나눔은 강처럼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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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기업에 투쟁기금 전달하는 콜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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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보는 콜텍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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