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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별의 다큐 이야기] 눈꽃 2 - 김진숙 복직을 위한 단식 48일

posted Mar 01,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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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별의 다큐 이야기] 눈꽃 2 - 김진숙 복직을 위한 단식 48일  

 

 

단식 33일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김진숙 복직을 위한 단식 33일 차인 2021년 1월 23일 다시 서울로 갔다.

전날 세월호 유족들 삭발에 이은 집회로 경찰이 효자동 사거리에서 통행을 제한했다. 단식장에 9인 초과면 안 된다는 규정이었다. 쓸데없는 실랑이를 하기 싫어 단식장 가까이 숙소에 있는 성미선 녹색당 운영위원장에게로 갔다. 야윈 몸에 맑은 눈빛이 흡사 고야의 그림을 보는 듯했다. 특별한 이야기를 주고받지는 않았지만 뭔가 강인한 기운이 한 주 전보다 단단하게 전해졌다. 그게 성미선을 본 마지막이 될 줄은 몰랐다. 한 시간여 후 통제가 풀린 후 단식장에 갔는데 송경동 시인과 간발의 차이로 엇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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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33일째 성미선 녹색당 운영위원장

 

 

34일 차인 일요일 오후, 청와대 분수대 앞은 봄날처럼 햇살이 가득했다. 전날 못 만난 송경동 시인을 만났다. 수염이 자라 있었다. 박문진 위원은 절을 하고 있었다. 그 앞에서 김우 권리찾기유니온 활동가와 정홍형 금속노조 부산양산지부 수석부지부장이 타로점성가와 춤추는 한선주로부터 두피 마사지와 안마를 받고 있었다. 단식을 오래 하니 혈액 순환이 안 돼 머리가 무거워진 지 꽤 되었다. 단식 한 달이 넘어도 한진중공업이나 청와대 측에선 아무 반응이 없었다. 다음 주를 기약하고 기차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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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34일째 송경동 시인(좌), 단식 34일째 풍경(우)

 

 

단식 35일 차인 1월 25일 월요일, 전국에서 1일 단식을 했다. 나 역시 하루를 굶으며 청와대 앞에서 단식 중인 다섯 명을 돕는 마음으로 김진숙의 복직을 기원했다. 단 하루를 굶어도 그리 힘이 드는데 자그마치 35일이었다. 

 

단식 40일

2021년 1월 30일은 단식 40일 차였다. 40일은 기독교에서 상징적인 숫자이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간 금식하셨기 때문이었다. 개신교 목사 중에는 현수막에 ‘40일 금식’을 프로필처럼 자랑스레 홍보하는 이도 있다. 그렇듯 인간의 한계처럼 여겨지는 단식 40일이면 뭔가 바뀔 거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청와대 앞에 도착했을 때 성미선 위원장은 막 구급차로 실려 간 후였다.

오춘상 한의원장이 남은 단식자들을 진료했다. 단식자들은 혈압과 혈당수치가 낮았고 복부가 단단하게 뭉쳐 있었다. 자칫 분위기가 심각하게 가라앉을까 오춘상 한의원장은 연신 단식자들에게 침과 함께 유머를 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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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춘상 한의원장 단식자들 진료

 

 

이윽고 어둠이 내리자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서기 시작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하여 50미터 간격으로 ‘해고 없는 세상 김진숙 복직’ 불빛이 피어올랐다. 나는 단식장으로 발길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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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고 없는 세상 김진숙 복직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노순택 사진가(그는 본인을 ‘사진사’라고 하지만)가 앉아서 단식장을 지키고 있었다. 얼마 전 회자한 그의 신문칼럼처럼 시인이 시를 쓰지 않고 사진작가가 사진을 찍지 않는 세상이 온 것인가.

잠시 후 숙소로 가라는 오춘상 원장의 명을 어기고 송경동 시인이 단식장에 나타났다. 낮에 만났을 때부터 그의 동공은 힘을 잃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든 그를 숙소로 데려가려고 팔을 잡았다. 그런데 그가 우체통을 보러 가겠다고 효자사거리에서 발길을 돌렸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드리는 엽서를 담은 빨간 우체통이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경찰들과 대치 중이었다. 위험 물질도 아닌 종이로 만든 우체통이 대체 왜 반입 금지 물품일까? 경찰 측의 답변은 상징물이라 안 된다고 했다. 

아~ 그렇구나. 세월호를 상징하는 노란리본, 스텔라데이지 호를 상징하는 주황리본, 故(고) 김용균처럼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들을 추모하는 보라리본, 제주 4.3항쟁을 상징하는 빨간 동백, 기독교를 상징하는 십자가, 불교를 상징하는 만자, 사랑을 상징하는 하트모양……. 뭔가를 상징하는 건 청와대 앞에 갈 수 없다는 논리가 대한민국에는 있구나. 새삼 의아해하는데 갑자기 송경동 시인이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단식 40일인 그의 몸뚱이가 허물어지듯 차디찬 보도블록에 닿자, 순간 나는 이성을 잃었다. 경찰 대신 그에게 소리쳤다. 일어나라고. 빨간 우체통이 아무리 시민 목소리의 상징이라도 시인의 건강, 아니 목숨보다 소중할 순 없었다. 간신히 시인을 부축해 숙소에 보내놓고 다시 우체통 자리로 왔다. 많은 이들이 그대로 서 있었다. 밤 9시 반쯤 되어서 시민활동가들은 우체통을 그 자리에 둘 것을 요청하고 철수했다. 다음 날 기자회견 준비가 급했기 때문이었다. 날이 밝고 우체통은 길가에 밀쳐져 그대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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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우체통 상징

 

 

단식 41일 차인 1월 31일, 의료진-인권단체 긴급 회견이 단식농성장 앞에서 있었다. 

뒤에는 김우 활동가와 송경동 시인이 접이식 의자에 앉아 있었다. 리멤버희망버스 기획단 황철우가 경과보고를 하고, 임상혁 녹색병원장이 발언을 했다. 단식을 오래 하면 체내에서 생성되지 않는 전해질이 불균형해져 그 수치가 정상범위를 넘어가면 뇌손상을 일으켜 회복 불가하다고 했다. 

이어서 청년한의사회·길벗한의사 모임 오춘상 원장이 발언을 했다. 단식 36일 차에 호흡 곤란으로 실려 간 서영섭 신부가 그 상태로 무의탁 노인을 돌본다고 말을 꺼냈다. 일순 그의 안경알이 뿌예지더니 눈물이 흘러내렸다. 파인텍 고공농성장에서부터 그를 보았다. 콜텍 현장에도 왔었다. 그는 단식 중인 해고노동자들을 정기적으로 진료해 주고 한약을 놓고 가기 일쑤였다. 아마 그 외에도 내가 가지 못한 수많은 현장에 그는 갔을 것이다. 그 현장에서마다 만나 징그럽게도 온갖 정이 다 들었을 송경동 시인이 뒤에 앉아 있는데 그는 서영섭 신부 이야기를 하며 울고 있었다. 서영섭 신부처럼 이 땅의 약자들을 위해 희생을 감내하며 함께하는 많은 사람, 누군가를 조건 없이 돕는 수많은 사람, 그들이 바로 사랑의 상징 아니더냐. 상징물은 반입 금지라는 청와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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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춘상 한의원장 (위), 단식 41일째 김우와 송경동 (아래)

 

 

잠시 후 인권활동가 명숙이 그간 단식농성장에서 일어난 인권침해 유형을 조목조목 짚어나갔다. 혹한에 침낭, 피켓, 비닐 한 장, 접이식 의자를 반입 제한했고 기상시간과 화장실 이용마저 통제했던 경찰. 그런데 갑자기 종로경찰서에서 확성기로 집회해산 요청을 했다. 구호를 외쳤다는 이유였다. 청와대 앞 기자회견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었다. 구호를 외치지 않는 기자회견이 있었던가? 참으로 생경한 경찰의 반응에 의아해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뛰었다. 

 

송경동 시인이 분수대 풀밭으로 뛰어든 것이었다. 청와대로 돌진하려고 했던 걸까? 동료들과 의료진들이 터질 듯한 그를 얼싸안고 경찰들은 제지했다. 단식자들의 인권을 지키지 않던 경찰이 이젠 조롱까지 서슴지 않는 것에 송경동은 격분했다. 그는 마치 눈 가린 야생마처럼 길길이 날뛰었다. 그런데 평소 같으면 울고불고했을 내가 그 순간 이상하게 냉정하고 차분했다. 그건 본능적으로 현장을 기록해야겠다는 의무감 때문이었다. 송경동이 목숨을 내걸고 기고 구를 때 그의 뜻을 받들어야 한다는 일종의 책임감이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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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가린 야생마 같은 송경동 시인

 

 

잠시 후 기진맥진한 송경동은 종로경찰서 경비대장의 사과를 요구하며 풀밭에 드러누웠다. 탈진이 이은 실신에 가까웠다. 혈압 159. 41일째 단식하는 사람의 혈압이 그렇게 높을 수는 없다. 이미 장기가 제 기능을 못하고 몸에 남아있는 모든 기운들을 빡빡 긁어다 쓰고 있는 지경인데 이러다 뇌손상을 입으면 어쩌나 두려웠다. 효소를 희석한 물 몇 모금이라도 먹여야 했다. 내 배낭에 숟가락이 있었다. 얼른 단식장으로 뛰어가 배낭을 가지고 달려왔다. 그런 나를 경찰이 막았다. 그들을 뿌리치며 고함을 쳤다. 사람이 쓰러졌는데, 숟가락 하나 가져가겠다는데 제지하는 경찰들. 인내심이 한계를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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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소물 한 숟가락

 

 

의료진인 박문진 위원이 송경동 시인에게 효소물 몇 숟가락을 떠넘겼다. 혈당수치가 순간적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이미 그의 몸속은 그 당을 분해할 수 있는 기능이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의식을 잃어가고 있는 송경동 시인은 춥다고 했다. 한기가 올라오는 동토에 매트를 깔고 담요를 얹고 핫팩을 깔았다. 침낭을 덮어 바람을 막아주자 시인은 잠이 들었다. 나는 그의 팔을 주물러주다 그가 깨어날 때까지 옆에 앉아 지켰다. 잠시 잠에 빠져 세상을 잊은 시인은 고대 그리스의 거지 철학자 디오게네스처럼 모처럼 편안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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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임경빈 엄마와 송경동 시인과 박문진 위원(위), 잠시 평화(아래) 

 

 

그사이 기자회견은 중단된 채 끝이 났고 기자회견을 진행하던 사람들은 청와대와 경찰과 조율하느라 분주했다. 송경동 시인이 요구하던 종로경찰서 경비과장 사과는 끝내 받지 못했다. 경찰은 사과 대신 의자 몇 개 반입을 허가해 준다고 했다. 혈관이 터질지도 모르고 뇌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데 41일 굶은 몸을 땅바닥에 굴려 의자 몇 개를 받아냈다고? 송경동이 알면 영영 분수대에 몸을 파묻어 버릴까봐 사람들은 쉬쉬하며 그를 부축해서 옮겼다. 이동 차량 안에 김우가 앉아 있었다. 시종일관 평정을 유지하는 김우는 당시 어땠을까? 허물어져 가는 육신을 간신히 정신력으로 지탱해 가고 있는 그이의 마음은 어떤 상태였을까? 그의 종교가 뭔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 얼굴에서 마리아의 옅은 미소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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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축

 

 

우리는 제정일치 시대가 아닌 민주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하늘의 뜻이 정부와 통하지 않는다고 해도 민심이 천심인 것은 단군 이래 어느 정권이라도 알 것이다. 사람들이 사람을 위해 죽어가고 있었다. 대단한 걸 요구하는 것도 아니었다. 복직. 사랑하던 회사에서 억울하게 쫓겨났으니 명예롭게 퇴사하고 싶다는데 그거 하나 들어주는 게 그리 어려운가. 

 

단식 47일

심상치 않았다. 전날 단식 46일째인 송경동 시인은 국회의장 면담 뒤에도 교섭이 재개되지 않자 국회의장실에서 소금과 효소와 감잎차마저 끊겠다고 하다 경찰들에게 들려 나와 병원으로 이송됐다. 

청와대 앞에 들렀다 숙소로 갔다. 

마침 오춘상 한의원장이 진료를 하고 있었다. 앙상한 김우가 누워있었다. 주책도 바가지지, 나는 그 기운 없는 사람 앞에서 오열을 했다. 반면 김우는 신비하리만치 잔잔하고 그윽했다.

“약속을 지키려구요.”

묻지도 않았는데 김우가 말했다. 무슨 약속일까? 궁금했지만 되묻지 않았다. 긴말을 시키면 겨우 남은 기운이 모조리 빠질까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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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47일째인 김우(위)와 정홍형(아래)

 

 

단식 48일

2020년 12월 30일 부산에서부터 걸어온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김진숙이 흑석동에서부터 청와대까지 걷는 날인 2021년 2월 7일, 나는 잠시 희망뚜벅이 행렬에서 걸었다. 서울역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느라 두 시간 만에 걸음을 멈춘 김진숙 지도위원을 사람들 건너에서 보았다. 순간 우리는 눈이 마주쳤고 나는 나를 알지 못할 그를 향해 마스크 위로 눈웃음을 보냈다. 2019년 12월 영남대 의료원으로 걸었던 김진숙은 이젠 나에게 다른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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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뚜벅이 김진숙을 보고 웃었을 때

 

 

부리나케 청와대 근처로 왔다. 김우 활동가가 숙소에서 짐을 챙겨 청와대 앞으로 이동 중이었다. 마지막 날이니만큼 물어보았다. 무슨 약속을 했었느냐고. 

“국회토론회 날, 김진숙 지도위원님과 몸과 몸을 맞대고 안으면서 청와대 앞에 오실 때까지 버티겠다고 했거든요.”

다섯 명 중 가장 먼저 쓰러질 줄 알았던 작고 여린 김우는 끝까지 버텨 약속을 지켜냈다. 소감을 물었다. 

“기쁘다. 우리의 싸움이 진 싸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희망뚜벅이들이 뿌린 희망의 씨앗이 자라날 것을 믿기 때문이다.”

그토록 천진한 목소리로 따박따박 말하는 김우의 소감에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성경말씀이 떠올랐다. 그토록 천국은 자신을 낮추지 아니하고는 들어가기 어려운 곳이니까. 마찬가지로 낮고 낮은 노동자들이 존중받는 세상이 오기는 어려우니까.

 

몸무게가 20kg이나 줄어든 정홍형 수석부지부장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소감을 물었다.

“김 (민주노총 부산지부) 지도위원이 무사히 도착할 수 있어서 안도의 마음이 들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산업은행과 한진중공업 자본이 김 지도(위원)의 복직을 완강하게 반대하고 거부한 것에 대해서 문재인 정부가 실질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 것, 아니 안 한 것에 대해서 뭐라고 표현하지 못할 정도의 분노를 가지게 되고, 그래서 그런지 더 할 말이 없는 것 같습니다.” 

나는 여간해선 보이지 않는 희망보다 실망스럽기 그지없는 현실을 말하는 그에게 공감했다. 

 

잠시 후 문정현 신부님이 ‘복직-노동자존엄’ 누비저고리를 입고 오셨다. 문규현 신부님도 오셨다. 누구보다 오고 싶으셨을 백기완 선생님은 끝끝내 오지 못하셨다. 얼굴 비추기 좋아하는 정치인 누구 하나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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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직-노동자존엄 문정현 신부님과 단식자들

 

 

오후 세 시, 마침내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김진숙이 남은 두 단식자를 향해 걸어왔다. 포옹 그리고 몇 마디 말. 그들의 쓰디쓴 회한을 어찌 말로 다 풀 수 있으랴. 400km를 걸어왔건만 48일을 굶었건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 뒤에 으리으리한 푸른 기와지붕 집이 있었다. 36년간 주인이 8번 바뀐 집이었다. 사람보다 풍수지리가 더 강력한가? 누가 살아도 그다지 변함없는 청와대는 36년 전 국가폭력에 의해 부당 해고되어 암세포와 백발만 남은 노동자 김진숙과 이 나라의 불의한 노동탄압에 맞서기 위한 상징인 그의 복직을 위해 목숨을 건 단식자들 뒤에서 비정하게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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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

 

 

청운효자동 사거리에 김진숙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섰다. 

김진숙이 무슨 말을 할지 몹시 궁금했다. 첫 문장부터 끝 문장까지 다 듣자, 러시아와 북미와 유럽에 내 오랜 흠모의 대상이던 엠마 골드만이 있었다면 한국에는 김진숙이 있구나라는 자부심이 생겼다.

아둔한 내 글 대신 훨씬 심장에 사무치는 김진숙의 연설문을 여기에 남긴다. 

 

“민주주의는 어디로 갔는가?

전태일이 풀빵을 사주었던 여공들은 어디서 굳은살 박인 손으로 침침한 눈을 비비며 아직도 미싱을 돌리고 있는가?

아니면 LG트윈타워 똥물 튄 변기를 빛나게 닦다가 잘렸는가?

아니면 인천공항의 대걸레만도 못한 하청에 하청노동자로 살다가 잘린 김계월(아시아나KO 부지부장)이 됐는가?

그도 아니면 20년째 최저임금 코레일 네트웍스의 해고자가 되어 서울역 찬바닥에 앉아 김밥을 먹는가?

노동존중사회에서 차헌호(아사히 비정규직지회장)는, 김수억(기아차 비정규직지회장)은, 변주현(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은 왜 아직도 비정규직인가?

왜 청년들은 비정규직으로 차별과 멸시부터 배워야 하며 페미니스트 정권에서 왜 여성들은 가정 먼저 잘리고 가장 많이 죽는가?

일자리를 최우선으로 지키겠다는 정권에서 대우버스, 한국게이츠, 이스타 노동자들은 왜 무더기로 잘렸으며, 쌍(용자동)차와 한진노동자들은 왜 여전히 고용불안에 시달리는가?

박창수, 김주익을 변호했던 노동인권 변호사가 대통령인 나라에서 왜 아직도 노동자들은 굶고 해고되고 싸워야 하는가?

최강서의 빈소를 찾아와 미안하다고 말한 분이 대통령이 된 나라에서 왜 노동자들은 여전히 죽어 가는가?

김용균, 김태규, 정순규, 이한빛, 김동준, 홍수연은 왜 오늘도 죽어 가는가?

세월호, 스텔라데이지호는 왜 아직도 가라앉아 있으며 유가족들은 언제까지 싸워야 하는가?

이주노동자들은 왜 비닐하우스에서 얼어 죽어야 하는가?

왜 문정현 신부님은, 백기완 선생님은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에서 시작한 싸움을 왜 아직도 멈추지 못하는가?

 

그 대답을 듣고 싶어 34일을 걸어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 약속들이 왜 지켜지지 않는지 묻고 싶어 천리 길을 걸어 여기에 왔습니다. 

 

36년간 나는 유령이었습니다. 

자본에게 권력에게만 보이지 않는 나는 유령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님, 내가 보이십니까?

함께 싸워왔던 당신이 촛불의 힘으로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여전히 해고자인 이 김진숙이 보이십니까? 

검은 보자기 덮어쓴 채 대공분실로 끌려가 온몸이 피떡이 되도록 맞고 그 상처를 사슬처럼 지닌 채 36년을 살아온 내가 보이십니까?

최저임금에 멸시의 대명사인 청소 일자리를 지키겠다고 울며 싸우는 이 노동자들이 보이십니까?

“아빠 왜 안 와?” 묻는 아이에게 “아빠는 농성장에 있어.” 이 말을 어떻게 설명할지 모르겠다는 이 노동자들이 보이십니까? 

 

동지 여러분, 민주주의는 싸우는 사람들이 만들어 왔습니다. 

과거를 배반한 자들이 아니라, 입술로만 민주주의를 말하는 자들이 아니라, 저 혼자 강을 건너고 뗏목을 태워버린 자들이 아니라, 싸우는 우리가 피 흘리며 여기까지 온 게 민주주의입니다. 

먼 길 함께 걸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살을 깎고 

뼈를 태우며 

단식하신 동지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앞으로 얼마나 더 먼 길을 가야할지 모를 우리들,

포기하지 맙시다. 쓰러지지도 맙시다. 저도 그러겠습니다.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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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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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곱째별의 다큐 이야기] 유성기업 이야기 16 - 이제는 안녕, 유성기업 2020년 12월 21일은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동지였다. 그날은 목성과 토성이 만나는 그레이트 컨정션(great conjunction)이 일어난 날이었고 우주의 먼지에 불과한 내 인생에도 매우 중...
    Date2021.01.03 Views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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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일곱째별의 다큐 이야기] 탈핵 이야기 14 - 깊고 우아한 북파랑길

    [일곱째별의 다큐 이야기] 탈핵 이야기 14 - 깊고 우아한 북파랑길 월포~화진 7km + 송라까지 3.5km 기다림에는 기한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있다면 보통 하루, 일주일, 한 달, 일 년 단위로 넘어간다. 해를 넘길 수 없는 기다림은 연말에 더욱 반갑고 고...
    Date2020.11.30 Views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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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일곱째별의 다큐 이야기] 유성기업 이야기 15 - 가을의 상봉

    [일곱째별의 다큐 이야기] 유성기업 이야기 15 - 가을의 상봉 설익은 가을이 서성이는 9월 29일 화요일 오전 9시 40분. 안양 교도소 앞에는 여러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중 과반수 이상이 조재상 사무장을 기다리는 유성지회 사람들과 관계자들이었다. ...
    Date2020.10.04 Views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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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일곱째별의 다큐 이야기] 탈핵 이야기 13 - 경주 나아리 · 울산 북구 주민들과 보낸 한여름

    [일곱째별의 다큐 이야기] 탈핵 이야기 13 - 경주 나아리 · 울산 북구 주민들과 보낸 한여름 6월 울산시 북구 주민투표 망설이다 울산 북구 주민투표소에 간 건 순전히 청주에서 울산까지 내려가 선거관리관으로 수고하는 청명 때문이었다. 이런 나를 ...
    Date2020.08.26 Views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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