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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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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겨운 노랫소리를 따라

posted Feb 06,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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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주간의 짧은 기간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작년에 취득한 조리사 자격증을 드디어 활용해 보았습니다. 어린이 집에서 3주간 대체 조리사로 실무를 해보니 조리사 일도 쉽지는 않습니다. 회사를 그만둔 후 꽤 오랜만에 다시 첫 출근을 하는 날에는 여전히 북새통인 버스 안에서는 많은 사람들 틈에서 어디선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상스런 소리도 있었습니다. 참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구나. 이런 생각도 해보고. 높은 오르막에 끝에 위치해 있는 일터에 다다르면 낮은 기온에 잔뜩 움츠려 들었던 몸마저도 어느새 거친 숨소리와 함께 이마에는 땀이 고이기도 합니다. 모자며 목도리며 장갑을 끼고 추위를 피해 차려입은 방한용 겨울 장비들은 오르막에서 이미 하나씩 가방으로 자리를 옮겨갑니다. 출근을 하면 제일 먼저 오전 간식을 준비한 후 바로 점심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매일 아침은 육수를 내리는 것으로 시작이 됩니다. 멸치와 다시마로 오랜 시간 국물을 우려내서 그날그날 맞은 채소를 내어 국을 끓여냅니다. 배추, 무, 콩나물, 양배추, 등등의 많은 채소를 씻고 다듬고, 썰어서 뜨거운 국물에 부어 오랫동안 푸욱 끓여내면 겨울의 추위를 잊을 수 있는 따뜻한 국이 만들어집니다. 매일매일 음식을 만들어 아이들의 식사를 준비하던 날 중에 어느 날부터 참 재미있는 경험이 시작되었습니다. 주방에서 한참 음식을 만드는데 유쾌한 노랫소리가 쩌렁쩌렁 들려옵니다.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주방의 풍경과는 사뭇 다르게 노랫소리는 맑고 청량하며 동심이 가득 차있습니다. 마치 동화에서 개미들이 내내 허리를 펴지 못하고 일을 하고, 베짱이는 푸른 나무 그늘에 기대어 노래를 불러 주는 모습처럼 말이죠. 한참 요리에 파묻힌 제 모습은 개미가 되어 열심히 도마에서 칼질을 하고, 흥겨운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은 베짱이가 되어 있습니다. 귀엽게 지저귀는 아이들의 노랫소리가 힘이 되어 줍니다. 더 열심히 요리를 해나가니까요. 한 번은 고향의 봄이라는 동요를 힘차게 불러주는 아이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조금 신기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흠… 이 아이들에게 고향이 있을까? 꽃피는 산골의 풍경을 본 적은 있을까? 아기 진달래를 어디서 보았지? 분명 어느 병원 산부인과에서 태어나 높은 아파트 단지에서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이 이 노래를 어떻게 알고 부르는지. 나중에 들어보니 동네 어르신들이 계신 경로당에서 합창을 하려고 연습을 했다고 하는데 이젠 아이들의 명곡이 된 것 같습니다. 이렇게 어른들의 세계와 자연스러운 만남을 갖는 것도 아이들에겐 새로운 경험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음식을 다 만들고 나면 노랫소리도 서서히 멈춰갑니다. 노래를 부르느라 빠져나간 에너지를 보충해야 할 시간임을 알고 아이들은 밥을 먹는 준비를 합니다. 어떤 음식을 먹을까 기대할지 아니면 매일 먹는 밥이라는 평범한 생각을 할지 모르겠지만 준비를 해 둔 제 마음은 맛있게 음식을 먹을 모습을 상상합니다. 한 달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의 경험이 돌아보니 값진 기억이 되었습니다. 전혀 새로운 일을 인생의 절반을 살고 나서야 경험하는 것도 좋았으며 묵혀 둘 뻔한 자격증을 한 번은 제대로 활용을 해보는 경험도 해보았습니다. 이미 묵혀 둔 다른 자격증도 한번 사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앞으로도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온다면 두려운 마음이지만 기꺼이 받아들이고 일을 해나가면 더 재미있는 인생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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