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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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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쇼 머스트 고 온 - The show must go on.

posted Oct 04,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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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권태훈
발행호수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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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0월 마지막 일요일 이른 아침, 지난 새벽에 열린 해외축구 승부를 확인하기 위하여 스마트폰을 켜고 유튜브를 열었습니다. 잠이 덜 깬 눈에 들어온 유튜브 속보문구는 너무도 비현실적인 것이었습니다.

 

'이태원 핼러윈데이 축제 중 압사 사고 발생, 50명 이상 사망'

 

핼러윈데이는 주로 공포영화로만 접하던 다소 생소한 미국의 문화였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영어학원에 다니게 되면서 학원이 상업적 목적으로 이벤트를 진행하는 날이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붕대를 칭칭 감은 분장을 하고 지하철에 올라탄 외국인을 마주쳤을 특이한 취미의 소수 집단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대학 입학 후 첫 교양영어 수업시간에 Harry Golden의 수필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수필의 마지막 부분에 인도의 시인 타고르의 일화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느 날 하인이 출근하지 않자 하인 없이 아침식사 조차 하지 못하는 타고르는 화가 치밀게 됩니다. 시간이 한 시간 한 시간 지날 때마다 분노가 커지고 하인을 혼낼 궁리만 하게 됩니다. 오후가 돼서야 출근한 하인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할 일을 하고 있고 이 모습에 더욱 화가 난 타고르는 하인에게 하던 일을 멈추고 나가라고 해고통보를 하게 됩니다. 해고통보를 들었음에도 묵묵히 할 일을 계속하던 하인은 잠시 후 조용한 말투로 "제 어린 딸년이 지난밤에 죽었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수필에서 우리는 모두 각자의 슬픔을 마음에 품고 할 일을 묵묵히 하고 있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말 한마디에 상대방의 슬픔에 공감할 수 있고 위로의 눈길을 나눌 수 있는 연대의식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이후에는 죽음이 전과 다르게 다가옵니다만 어린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을 이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했으며 슬픔의 말들을 들으면서 한을 풀어주었어야 합니다. 머뭇거리다가 할 일을 제대로 못하고 결국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가해자인 듯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이태원에 분향소가 있었을 때 방문하여 혼자 약속을 한 것이 있습니다. 다시 핼러윈데이 시즌이 오면 가능한 많이 이태원을 방문해서 술을 마시고 노래를 듣고 슬픔을 기억하겠다고.

 

그리고 핼러윈데이가 있는 10월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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