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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헌의 인문의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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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헌 인문(人紋)의 종교 3 - 제 풀에 죽은 힘의 신(神)

posted Mar 26,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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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무늬인 종교성에 대한 성찰

 

제 풀에 죽은 힘의 신(神)

미국 성공회 감독으로 재직한 존 쉘비 스퐁이 신랄한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머리로 이해되지 않는 것을 가슴이 경배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무신론자들에게 던져진 것이 아니라, 마치 남의 땅에서 사는 ‘유배자’처럼 종교생활을 하는 유신론자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스퐁을 비롯한 몇몇 신학자들은 기독교가 종교적 위기에 빠진 이유를 지성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신의 존재에서 찾는다. 어떤 신이 믿기지 않는다는 말인가? 전지전능한 힘을 가진 신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신을 전지전능한 존재로 간주한다. 무신론과 유신론이 서로 다른 입장을 취하지만, 실은 동일한 전제를 두고 다툰다. 전지전능한 힘의 신이라는 전제이다. 그런데 이 싸움의 결론은 이미 무신론의 승리로 난 바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전지전능한 힘을 가졌다고 간주되는 신을 떠받드는 종교적 삶이 제대로일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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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근대사상은 전지전능한 신을 정점으로 하는 유신론적 세계관을 걷어치우는데 삼백 년을 할애했다. 그 경위를 살펴보는 것이 여러모로 유익하다. 전지전능한 힘의 신이 왜 제 풀에 죽고 말았는지를 알 때, 종교가 가진 두 가지의 질병에서 헤어날 단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근본주의적 우상숭배와 자유주의의 미적지근함이라는 현대종교의 대표적인 질병을 치료하는 길은 근대 기독교사상의 실패가 주는 교훈에 있다.

이미 무신론의 시대를 150년 이상 맛 봐온 오늘날의 지성은 근대를 무신론의 시대로 추정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근대사상은 대단한 유신론적 신념에서 출발했다. 르네상스의 통합정신이 무르익어가던 무렵에 동튼 종교개혁사상은 절대적인 힘을 가진 신에 믿음에 기초하고 있었다. 대표적인 종교개혁 사상가 장 칼뱅은 ‘신이 전지전능하기 때문에 역사의 시종(始終)이 신의 섭리 가운데 예정돼 있다’고 봤다. 이 칼뱅(칼빈)의 신학을 기계론적 철학/과학으로 완성시켜 근대의 세계관으로 정착시킨 사람은 뉴턴이었다. 그는 이 세계가 기계처럼 피동적으로 움직이는 이유를 신의 절대적인 주권에서 찾는 유신론자였다. 이렇게 17세기의 사상은 신의 절대 주권(sovereignty) 신념과 기계론적 세계관이 결합되어 구성되었다.

문제는 그 다음 세기에 정착된 정신습관에 있다. 17세기의 유신론의 시대가 19세기의 무신론의 시대로 이행하게 된 까닭은 18세기의 사상훈련에 담긴 아이러니에 있다. 그것은 절대적인 주권을 가진 힘의 신이 바로 그 전지전능한 힘 때문에 이 세계에서 사라져줘야만 하는 운명에 처하게 된 경위에 관한 것이다.

논리적으로 간추려 말하면 이렇다.

 

[] 17세기의 세계관 : 전지전능한 신은 자신의 뜻대로 이 세계에 자연법칙을 부여하고, 이 세계가 그 법칙을 따라 움직이도록 한다. 

[] 18세기의 이신론적 세계관 : 이 세계는 자연법칙을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더 이상 신의 간섭(섭리)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 18세기의 정신습관 : 만일 신의 섭리가 없다면 이 세계에서는 신을 경험할 수 없을 것이다. 

[] 19세기의 결론 : 경험할 수 없는 신을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거나 꾸며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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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가 전지전능한 신에 대한 충직한 믿음이 오히려 그런 힘의 신을 더 이상 필요치 않게 생각하게 된 정신습관을 기른 시기라면, 19세기는 그 힘의 신이 죽고 무신론이 사상을 주도하기 시작한 시기이다. 그 시대의 대표적인 무신론자들(마르크스, 다윈, 프로이트, 니체)은 오늘날까지 자유와 진리를 대변하는 사상가들로 추앙받는다.

하지만 그것이 신에 관한 마지막 이야기는 아니다. 전지전능한 힘의 신이 죽자 무신론도 유신론도 훨씬 정교해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것은 로고스(이성)로 지워진 신을 뮈토스(신비)로 살려내려는 인간의 본원적인 갈망에 무언가 답을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정신의 지체를 겪고 있는 종교가 있다. 이미 죽은 ‘힘의 신’을 붙잡고 있는 종교이다. 그런 종교는 양자택일의 운명에 처해있다. 우상숭배의 종교가 되거나, 정열을 잃은 종교가 되거나. 하나는 근대의 사상적 모험이 준 성취를 고려치 않는 자폐종교의 모습이요, 다른 하나는 근대 사상의 로고스 중심적 편협성에서 풀려나지 못한 회의종교의 모습이다.
 
이와는 달리 제3의 길을 걷는 종교도 있다. 그것은 ‘힘의 신’에게 붙들리기보다, ‘신의 힘’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그것은 전지전능의 참된 의미 즉, 무엇이 신의 지식이라 할 만한 것이요 신의 힘이라 할 만한 것인지를 새롭게 묻는 종교이다. 이 종교는 그 동안 무신론의 지표로 여겨지던 곳에서 다시 신의 흔적을 발견해낸다. 민중의 눈물에서, 역사의 혁명에서...
분명히 앞으로는 전지전능의 참된 의미에 대한 상상력에 달려있다. 신의 운명도 인류의 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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