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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헌의 인문의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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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헌 인문(人紋)의 종교 20 -진리의 시간

posted Sep 3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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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mongu.net youtube 캡처)

 

인간의 무늬인 종교성에 대한 성찰 20 : 진리의 시간

검찰청 앞 촛불

두 달 가까이 검찰의 무도함에 치를 떨던 국민들이 마침내 촛불을 들었다. 들자마자 횃불이다. 수구세력의 준동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분노의 횃불이요, 위기에 처한 촛불정권을 보호함과 동시에 위임받은 역사적 과제를 미루는 데 대한 질책의 횃불이다. 3년 전과는 달리 이번 촛불은 출발부터 목소리가 단호하다. 적폐청산의 과제에 눈 뜬 깨어난 심장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윤석렬을 비롯한 안하무인의 세력들에게 시간은 얼마나 남았을까? 독재정권의 충견으로서 국민들을 물어뜯던 과거에 취해 자신들에게 부여된 권한을 개인적 영달을 위한 무기로 사용하는 자들은 얼마나 더 파멸의 시간을 미룰 수 있을까? 아직은 안심하고 터이다. 공안검사 출신의 야당 대표가 삭발을 하고 길거리에서 민주주의를 부르짖고 있는 시간이니.

지친 역사의 어깨너머로 익히 봐 왔듯이 거짓의 수명은 생각보다 길다. 그것은 단지 거짓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거짓을 거짓이라고 말하는 논거가 생각보다 자의적이기 때문이다. 참과 거짓을 분별하고 가르는 인식의 문제를 깊이 들여다 본 사람은 임마누엘 칸트이다. 그는 근대지성이 최고조에 이른 시기에 ‘이성’의 한계를 지적함으로써 진리에 관한 생각의 물줄기를 돌려놓았다.

일반적으로 진리란 실재에 대한 바른 인식을 가리킨다. 하나의 명제를 ‘참’(true)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명제와 그 명제가 가리키는 실재 사이에 올바른 상관관계가 있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하나의 명제를 진리로 규정할 기준을 ‘실재와의 상관성’에서 찾는 진리론을 가리켜 ‘상응이론’ (correspondence theory of truth)이라고 한다.

그러나 칸트는 실재와 상응하여 진리로 여길 수 있는 형이상학적 지식은 형성될 수 없다고 봤다. 왜냐하면, 경험의 대상이 되는 사물이나 사태는 실재의 ‘현상’(phenomena)일 뿐, 그 실재의 ‘본질’(noumena)과는 다르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것이 하나의 사태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칸트는 현상과 본질 사이에 가로놓인 ‘궁극적인 인식론적 간격’(ultimate epistemic gap)에 주목했고, 따라서 사물의 본질 자체에 대한 형이상학적 진리를 도출하는 작업은 불가능하다고 결론지었다.

 

 

Kant_resize.jpg

 


그렇다면 무엇을 참/진리라고 할 수 있을까? 칸트 이후의 사람들은 진리를 명제와 실재 사이의 상응성이 아닌, 담론구조의 일관성(consistency)에서 찾았다. 이른바, 진리란 경험하는 주체가 축조해가는 명제들 사이의 일관된 체계로써 판단돼야 한다는 ‘정합성 이론’(coherence theory of truth)이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인식론의 주류를 이루며 각 방향으로 흘러들어갔으니, 소위 칸트의 시대가 도래 했다고 하겠다.

계몽주의 이후의 신학은 칸트의 이성비판을 흔쾌히 수용하여 전통을 구성해갔다. 기독교 신학은 진리가 실재(사건, 역사, 세계)와 어떤 관계를 맺으며 형성되는지를 탐구하기보다, 진리로 여겨진 명제들이 서로 모순되지 않고 일관된 교리(dogma) 체계를 세우는 방안에 관심했다. 그럴수록 신학적 도그마티즘이 강화되었으며, 그 도그마가 뒷받침하고 있는 기득권의 논리는 보강되어갔다.

이와 비슷한 현상이 도처에서 인식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예를 들어, 경제학에서 ‘낙수효과’(trickle-down economics)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노동자들의 고통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GDP 등의 경제지표로써 현실을 진단하는 가공할만한 무지와 기만을 반복했다. 자본주의 정치학은 주권재민의 근대적 헌법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힘 있는 자들이 기득권을 갖기 마련이라는 현실인식에 압도되어 민주 정치를 불능에 빠뜨렸다. 그것은 지식 체계 자체를 우상화한 도그마티즘의 폐해라고 할 수 있다.

철학이 실제 세계에 대한 고찰을 통해서 인식의 한계를 교정하기보다는, 이론체계의 일관성에 의존하여 진리여부를 판단하는 정신습관을 갖게 된 데에는 특정 세계관의 영향이 크다. 즉, 칸트식의 ‘정합성 이론’은 세계가 반복적 질서를 지닌 비창조적 사물들로 구성되어있다는 뉴턴식의 정태적 존재/우주론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 이 세계관은 진리를 구성하는 내용이란 이미 주어져 있으니, 새롭게 첨가되면서 이전의 진리관념을 변경시킬 요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진리는 정태적 세계의 질서를 대변한 명제들의 일관적 체계를 통해서 표현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이 세계가 끊임없이 새로움을 태동시키는 창조적 사건들로 구성되어 있다면, 진리란 새롭게 변해가는 세계와의 조우를 통해 획득된 것들로써 표현돼야한다는 요청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때 최대의 적은 도그마티즘이다. 그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세계가 끊임없이 새롭게 거듭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진리란 도그마의 선물이 아니라, 역사 창조의 시간에 참여한 정신이 스스로를 발양하여 길러낸 지혜를 통해서만 표현된다고 하겠다.

종교적 진리 역시 어떤 교리체계를 통달한다고 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우주적 생명이 불붙는 지점을 응시하는 정신에게 부여된 특권이다. 역사와 우주의 창조적인 과정 속에 참여하며, 그 창조의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신의 뒷모습을 좇는 것 외에 진리의 길은 없다. 왜냐하면 진리를 이해하는 고유한 감각기관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진리를 향한 행진은 언제나 자명한 교리를 뛰어넘을 때 이루어진다. 거짓의 수명은 새로운 사태가 시작될 때까지 연장된다. 역사 속에 진리가 솟구치는 지점은 땅의 사람들, 대지에 씨를 뿌리고 미래의 열매를 자기 손으로 수확하는 이들이 일어설 때이다. 그들만이 거짓의 시간을 멈출 수 있다. 횃불이 다시 올랐으니, 이제 진리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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