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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맥주를 탐하는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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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맥주를 탐하는 지식 5 - 그런데 왜 맥주와 수도원을 함께 말할까?

posted Jun 2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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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덕목사의도원 주를 하는

 

다섯, 그런데 왜 맥주와 수도원을 함께 말할까?
      - 수도원의 맥주양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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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날이 엄청 더워졌다. 2018년 전반기가 지나간다. 그동안 ‘길목인’을 통해 네 번의 수도원맥주 이야기를 연재했다. 아마 조합원 중 절대다수는 이런 글이 있었는지도 모르실 가능성이 크겠다. 바쁘고 고된 삶 속에서 이렇게 거칠고, 재미없으며, 정보적 가치도 미미한 글에까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두 달 전인가 길목인에 함께 올라있는 글들을 처음으로 꼼꼼하게 읽어보았다. 정말이지 인터뷰 내용에서 사회현상에 대한 단상, 그리고 삶의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재미나고 감동적인 글들로 가득하더라. 이것만 빼고..... 이 하자 많은 글을 연재해 주시는 편집위원 여러분과 간혹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주실 조합원 여러분께 심심한 존경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  
본 연재의 많지 않은 독자 중엔 아마도 지금 쯤 다음과 같은 질문이 생긴 분들이 계시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왜 수도원과 맥주를 같이 얘기해야 하는 거야?’

아무리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이 유행이라지만, 크게 상관도 없어 보이는 수도원과 맥주를 계속해서 함께 다룰 가치가 있는 것일까에 대한 궁금함 말이다. 굳이 역사네, 인문학이네를 따지지 않아도 될 만큼 맥주는 맛있는 녀석인 때문이기도 하겠다. 물론 이에 대해 첫 번째 연재 글에서 짧게 다루기는 했었다. 이에 한 해 연재의 중간 즈음에서 이 관계 적어 보이는 둘의 연관성에 대해 잠시 짚고 넘어가려한다.

 


2

 

기원 후 1세기 경 시작된 그리스도교. 초기 그리스도교는 유대교내에서 예수를 신앙의 대상으로 하는 소수종파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예루살렘을 포함한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등을 중심으로 소규모 공동체를 이루었다가 점차 지중해권역의 여러 지역으로 포교활동범위를 넓혔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라이벌 관계였던 유대교와의 경쟁에서 이긴 후, 로마제국 국가종교의 지위에까지 오르게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476년 서로마제국의 멸망에 따라 서유럽과 유럽 서남부 일대의 그리스도교는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든든한 지지자였던 국가가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주공산이 된 서로마 제국의 영토를 점령해 들어온 게르만과 노르만, 그리고 북 아프리카계 지배자들 앞에서 교인들의 신변 역시 위태로울 수밖에 없었다.

이와 같은 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 옛 서로마 지역의 교회들은 강력한 수직적 조직을 형성하며 결집하기 시작했다. 이 교회조직은 사라진 국가를 대신해 교인들을 보호함과 동시에 새로운 지배자들과의 협상 파트너로 위상을 높여나갔다. 유입된 권력들의 입장에서 볼 때, 비록 자신들에게 물리적 힘은 있지만, 새로운 영토와 환경, 문화와 사람들에 대한 이해 없이 효과적 통치는 불가능했던 바, 단일조직인 교회와의 협상은 효과적 통치를 위한 여러 과정을 ‘한 큐!’에 해결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리하여 서유럽 일대에 수립된 신생국가들은 대부분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공인했고, 교회는 신자들에게 ‘새로운 지배자를 향해 순종하는 백성이 되어야 함’을 가르쳤다. 교회가 로마제국 말기에 가졌던 국가 종교적 권위에 더해 정치적 위세와 조직적 지배력까지 가지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는 물론 ‘안정적 선교활동 보장’이라는 긍정성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리스도교가 지배 권력의 편에 서게 되는, 아니 더 나아가 ‘또 다른 지배자의 권좌에 오르는 불행’의 시작이기도 했다. 교회의 수장들은 지역 권력인 영주들과 함께 영토 내 백성들을 지배했다. 교회는 정치 권력화 되어갔고, 절대 권력의 향유 속에서 부패하기 시작했다. 교회에게 ‘안정 속의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적지 않은 신앙인들에게 청빈, 그리고 세속권력과의 거리두기 없이 교회개혁은 불가능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녀)들은 그리스도교 초기, 이집트와 시리아 일대의 예수신앙공동체에서 행했던 수도활동을 기억했고, 곧 자신들의 삶에서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중세유럽의 교회개혁, 수도원 운동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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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유럽 각지에 수립된 수도원은 권력과 정치에서 벗어난 공동체를 꿈꿨다. 이를 위해 수도원을 세우거나 모여든 이들은 기꺼이 노동했고, 스스로 고행과 구도의 길에 나섰으며, 지혜를 향한 사랑으로 성서를 읽고 연구했다. 초기에는 수도원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가졌던 교회에 의해 이단의 굴레가 씌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비온 뒤 자라나는 풀들처럼 도처에서 시작된 수도원에 대중적 지지까지 더해지는 상황에서 더 이상의 통제는 불가능했다. 곧 대부분의 수도원들은 바티칸으로부터 적법성을 인정받았다. 수도원의 안정적 활동이 가능해진 것이다.

수사들은 미사와 영성수련, 성서연구 이외에 다양한 노동을 수행했다. 이는 영성수련의 과정인 동시에 생필품 확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노동은 먹고, 마시며, 입고, 사용하는 삶 전반의 쓸 것을 생산해내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얻게 된 지식들은 후배들에게 전수할 목적으로 기록되기 시작했다. 성서와 신학 이외의 학문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유럽 전체의 역사 가운데 ‘대학’이라는 고등교육기관이 출현하기 전, 수도원이 학문과 지식의 학습과  연구에 있어 거의 유일한 기관이 되도록 했다.

술을 만드는 일, 양조술 역시 수도원의 중요한 기술항목 중 하나였다. 고대 로마의 상수도 체계를 전수받지 못한 중세 유럽에서 양질의 식수 확보는 대부분의 경우, 저도수의 술을 통해 가능했다. 고행을 밥 먹듯 하는 수도사들일지언정, 물을 마시지 않고 살 수는 없었을 터! 술 빚는 기술은 수도원 유지를 위해 반드시 담보되어야 할 사항이었다. 여기에 수도생활의 팍팍함 속에서 유일한 낙, 맛난 술을 시원하게 한 잔하고 싶은 것은 수도사들이 거의 유일하게 끊지 못한 속세의 욕망이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수도원의 양조기술은 일취월장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맥주 첨가물로써의 홉에 대한 체계적 연구가 진행된 곳도 수도원이었고, 그 효능을 밝혀낸 것도 수도원이었다. 또 독특한 맛을 좌우할 효모의 안정적 관리처도 역시 지역별 수도원이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지역에서 가장 좋은 술은 수도원에서 만든 것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지역으로 볼 때 프랑스 중부와 알프스 산맥 이북의 수도원에서는 특히 다양한 종류의 맥주를 빚었다. 이는 미사 혹은 교회의 절기행사와 종교적 축제에서 요긴하게 사용되었다. 또 수도원의 생계를 위해 판매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티칸에서 보낸 편지에 하도 답이 없어 찾아가 봤더니 부활절기 식사 중 음주로 수도원장 이하 모든 수도사들이 비틀거리고 있었더라는 이야기가 전해질 만큼, 수도사 자신들이 ‘엄청’ 마셨다. 맥주와 수도원의 ‘깊은 관계’는 보헤미안과 지금의 오스트리아 및 독일 전역, 그리고 플랑드르와 영국에 이르는 지역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이어져갔다.

 


4

 

수도원과 맥주의 관계가 이처럼 아름답기 만한 것은 아니었다. 생계를 위해 시작된 맥주판매는 수도원의 중심 사업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는 시민들이 운영하는 양조장과의 경쟁을 촉발시켰는데, 많은 경우, 수도원은 품질을 통한 경쟁보다는 권력을 이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예를 들어 수도원 계통의 양조장들은 지역 권력의 비호 속에 말도 안 되게 저렴한 원료와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맥주순수령’이 선언된 바이에른의 경우, 수도원 양조장은 치외법권을 누렸다. 1292년 남부 바이에른에 살인적인 기근이 몰아닥쳤을 때, 영주는 맥주양조의 전면중지를 선언했으나, 해당 지역의 수도원만은 예외를 보장받을 수 있었다. 이처럼 다수의 수도원 양조장들은 바티칸과 지역 정치권력의 힘을 이용하여 맥주생산의 독점권을 부여받았고, 그 결과, 시민들의 양조장을 도산시켰다. 이를 통해 더욱 거대해진 자금력을 이용해 수도원은 교회와 세속정치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수도원 계통의 교황 중에는 가톨릭 영성과 예전의 시조라 할 수 있는 그레고리우스 1세 같은 위인도 배출되었으나,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무릎 꿇릴 정도의 위세로 전 유럽을 지배했던 그레고리우스 7세나 전 유럽을 전쟁의 광기로 몰아넣은 십자군 전쟁을 선언한 우르바누스 2세 같은 이도 있었다. 많은 수도원들이 교회정치의 핵심세력으로 부상했고, 교회와 함께 타락했다. 중세교회개혁의 중심이었던 수도원들 중 상당수가 도리어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오늘 날, 우리에게 전해지는 수도원 계통의 맥주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맛과 품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해 온 수도사들의 열정과 땀방울의 결과인 동시에 막강한 힘을 바탕으로 얻어낸 독과점과 경쟁우위의 산물이기도 하다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 올 8월부터는 한-EU FTA의 합의에 따라 맥주가 관세 없이 수입된다. 그렇게 되면 지금보다 더욱 다양한 종류의 유럽맥주들이, 좀 더 저렴한 가격으로 마트와 편의점 진열대를 채우게 될 것이다. 그 가운데는 분명 수도원 계통의 명품 맥주들도 한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우리를 유혹할 것이다.

더위와 이런 저런 스트레스로 쌓인 갈증을 풀기위해서라도....... 마시자! 그 향긋하고 쌉싸름하며 구수하기까지 한 음료는 우리들을 당장에 낙원으로 안내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환상적인 액체가 우리에게 전해지기까지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 떠올려보았으면 한다. 새로 발견한 맥주 제조술로 환희에 차올랐을 이들과 도산한 양조장 문을 닫으며 피눈물을 흘렸을 이들, 그리고 자유로운 무역이라는 명분 아래 자본의 무한팽창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 가는 노동자의 삶이 마음아파 자신의 몸을 살랐던 허세욱 열사 같은 이들을 말이다. 그렇다면 꼴깍꼴깍 잘도 넘어가는 맥주 한 모금 한 모금의 소중함이 더욱 크게 와 닿게 되지는 않을까? 결론적으로! 수도원과 맥주는 엄청! 관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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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높은 가격 때문에 선뜻 가기가 주저되긴 하지만, 플랑드르 지방의 수도원 맥주를 접하고 싶을 때 나는 용산의 ‘레아’와 홍대입구 ‘누바’펍을 떠올린다. 레아는 다양한 종류의 수도원 병맥주들을 구비하고 있으며, 카부루나 세븐브로이 등 국내의 실력파 크래프트 비어를 생맥으로 맛볼 수 있다. 이 소중한 공간을 운영하고 계신 분들은 2009년 용산에서 공권력이 자행했던 폭력으로 희생되셨던 분의 유가족들이시기도 하다. 누바는 트라피스트 계열 맥주에 대한 열정과 전문가적 소양을 겸비한 사장님이 운영하는 펍이다. 다른 곳에서 맛보기 어려운 수도원 맥주를 생맥과 병맥으로 만날 수 있다. 바이에른의 대표적 수도원 전통 맥주인 바이헨슈테판을 생맥주로 접하고 싶은 분들에게는 ‘Thirsty monk’를 추천한다. 이태원과 서판교 점을 가봤는데 나쁘지 않았다.


8월 여섯 번째 이야기: 클러스터 수도원 양조장, 그리고 얀 후스/체코 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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