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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맥주를 탐하는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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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맥주를 탐하는 지식 4 - 유럽의 우금치, 잘츠부르크

posted May 28,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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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덕목사의도원 주를 하는

 

넷, 유럽의 우금치, 잘츠부르크
    - 잘츠부르크 농민전쟁, 그리고 아우구스티너 수도원 양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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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5월엔 노는 날이 많다. ‘노는 것도 체력과 재력이 있을 때 가능하다’는 옛 성현의 가르침 앞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요즘이긴 하지만....... 그래도 노는 날은 ‘초큼’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나 샤방샤방한 느낌을 만끽하기엔....... 5월은 기억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 광주, 강남역 부근 상가 화장실, 구의역 등에서 5월의 어느 날 있었던 일들 앞에 나는 숙연해진다. 5월의 여러 시간, 여러 장소에서는 폭력 앞에 연약할 밖에 없는 이들의 생명이 스러졌다. 그이들을 기억하는 사람들 속에서 그 소중한 존재들은 친구이자 딸과 아들이었고, 엄마와 아빠 혹은 누이와 형, 동생이었다. 누구에게라도, 어느 상황에서라도, 또 언제라도 다시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평범하고 절친했던 이들의 죽음은 안타깝게 기억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숙연해지는 5월의 기억 중엔 1894년의 한반도를 뜨겁게 달구었던 갑오농민전쟁도 있다. 그 해 1월부터 시작된 농민들의 산발적 저항은 3월을 넘어서며 조직적 군사행동으로 발전했고, 급기야 전면전에서 정부군을 궤멸시키기에 이른다. 이에 자력진압이 불가능하다 판단한 조선정부는 청에게 출병을 요청했다. 톈진조약(1885)에 따라 청의 출병통보를 받은 일본군은 발 빠르게 움직여 먼저 조선에 도착했고, 무능한 조선정부를 장악했다. 이 같은 상황 앞에서 외세침략의 빌미를 제공할 수 없다 판단한 농민군은 1차 농민전쟁 자진종료를 결정하게 된다. 그 해 5월은 갑오농민전쟁 중 농민군이 가장 강성했던 시기로, 5월 31일에는 전주성을 함락시키기도 했다. 이후 농민군은 여세를 몰아 점령지역 전역에서 소작 및 파산한 농민중심의 집강소를 운영했다. 자발적 해산에도 불구하고 일본군의 주둔이 장기화되고, 중앙권력이 이에 편승하자, 농민군은 2차 농민전쟁을 시작했다. 하지만 충청도를 점령한 뒤 한성으로 진공하겠다는 그들의 의지는 공주성 인근 우금치에서 꺾이고 만다. 오합지졸이었던 조선군과 달리 체계적으로 훈련된 일본군의 압도적 화력은 죽창과 화승총으로 극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농민전쟁’, ‘봉건질서와의 대결’, 또 ‘5월’이라는 단어와 만나는 사건은 1524년의 유럽에도 있었다. 그 곳엔 또한 맥주도 있다.

 

 

2

 

1500년 초엽, 중부유럽 일대는 농업생산성의 향상과 상공업의 발전을 통한 사회적 변화가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는 한편, 중세 봉건질서 가운데 그저 영주들의 '농노'에 지나지 않았던 민중들의 자각을 견인하기도 했다. 여기에 '인간은 모두 신 앞에 평등하다. 교황도 예외가 아니다!'는 루터의 일성은 하층민들에게 해방의 메시지로 받아들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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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1524년, 마침내 튀링겐을 시작으로 지금의 독일 중부, 남서부 일대의 농민들이 들불처럼 일어서기 시작했다. 산발적이었던 봉기는 차츰 연대조직으로 발전했고, 지도부는 부역경감과 폐지 등의 12개 요구사항으로 영주들을 압박한 끝에 협상테이블로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자신들의 사상적 동기가 되어 준 루터의 지지선언도 받을 수 있었다. 가톨릭과의 대립에 있어 지지기반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루터가 마다할 리 없었기 때문이다. 혁명은 성공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영주들이 혁명초기에 수세적이었던 것은 진압군 편성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농민군의 예봉을 피하기 위한 협상과 회유를 이어가던 영주들은 비밀리에 연합군을 슈바벤에 집결시켰다. 어처구니없는 일은 기독교개혁정국에서 대립했던 영주들과 교회, 수도원권력이 슈바벤동맹에는 함께 참여했다는 것이다. 뭐 사실 생각해보면 어느 시대나 기득권에게 있어 그 권력을 유지하는 것 이외의 생존목적이 또 있겠나싶기도 하다. 아무튼 그 사이 농민군도 내부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영주들의 회유책에 상당수가 포섭된 결과였다. 내부동요와 지배세력의 움직임 앞에서 전쟁을 계속할 것을 결의한 이들은 토마스 뮌처 등을 중심으로 조직을 정비하는 한편, 영주들과의 일전을 준비했다. 이 과정에서 농민군은 점차 계급의식으로 각성되기 시작했고, 도시빈민들이 결합하게 되면서 농민전쟁은 계급투쟁의 성격을 분명히 드러냈다. 최초, 부역 경감 등 단순한 주장에 그쳤던 농민전쟁은 이제 ‘봉건제 폐지’. ‘토지 공유’ 등, 기존질서 해체를 구체적으로 요구하기에 이른 것이었다.

1525년, 전열을 정비한 권력은 협상을 접고, 막강한 군사력을 동원해 농민군을 진압하기 시작했다. 개혁운동의 성공과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영주들이 필요했던 루터 역시 농민군을 '악마'로 규정하고 지지를 철회했다. 농민군은 관련지역의 모든 권력과 정치세력으로부터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혔다.

분노한 혁명군은 민중들을 소금광산에 몰아넣은 대가로 획득한 부를 쌓아올린 도시, 잘츠부르크에 집결했다. 그 추악한 금권의 정점에 마테우스 대주교의 성, 사방 깎아지른 절벽위의 호엔잘츠부르크가 도사리고 있었다. 호엔잘츠부르크는 당시의 유럽을 지배하고 있던 교회와 정치권력의 상징과도 같은 성이었다. 농민군은 노동하는 자매, 형제들의 해방을 위해 이곳을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 난공불락의 요새에서 끊임없이 발사하는 포탄을 뚫고 농민군은 장장 3개월에 걸쳐 절벽을 기어올랐다. 하지만 화력과 지형의 절대적 열세는 결기만으로 넘어설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잘츠부르크에서 고착되는 사이, 사방을 포위하며 조여드는 슈바벤 동맹군의 파상공세 앞에서 제대로 된 포병대 하나 없는 농민군은 끝내 궤멸적 타격을 입고 말았다.

 


3

 

1525년의 5월 15일 호엔잘츠부르크전쟁 패배이후 약화된 혁명군의 숨통을 끊기 위해 동맹군은 농민혁명군의 최후거점, 프랑켄하우젠을 포위했다. 학살에 대한 명분을 만들기 위해 진압군은 다음과 같은 내용의 항복요구서를 낭독했다.

‘투항하라! 그럼 고통스럽지 않게 죽여주겠다!’

농기구를 들고 운집한 최후의 농민군 앞에 그(녀)들의 지도자가 나섰다. 분노와 두려움 가득한 눈길들을 느끼며, 토마스 뮌처는 천천히 입을 뗐다.

‘이 순간....... 오직 하느님이 우리의 편에 서실 것입니다’

2년여에 걸쳐 전개되었던 농민혁명의 마지막 전쟁은 순식간에 마무리되었다. 8천명 대부분이 전사한 농민군이 비해 진압군 측 사상자는 고작 6명에 지나지 않았다. 이 전투에서 중상을 입은 채 체포된 토마스 뮌처는 온 몸이 찢겨나가는 고문에도 끝내 항복을 거부한 끝에, 그의 첫 목회지역이었던 뮐하우젠으로 끌려가 죽임을 당했다. 사후 그의 시신은 네 토막으로 훼손된 후, 도시 이곳저곳의 구경거리가 되었다. 간절히 염원하던 농민해방의 하느님나라를 보지 못한 채, 토마스 뮌처가 끝내 눈을 감은 날은 그 해 5월 27일이었다. 유럽 농민전쟁이 끝난 날, 마지막 농민군이 스러진 날이었다.

 


4

 

잘츠부르크에서는 ‘무지한 폭도’들로부터 도시를 지켜주신 ‘자신들의 하느님’에게 감사의 예배가 드려졌다. 이를 기념하며 거대한 성당이 세워졌고, 교회와 수도원의 입지는 더욱 공고해졌다. 마테우스의 뒤를 이은 디트리히 폰 라이데나우 대주교는 잘츠부르크를 ‘알프스 북쪽의 바티칸’으로 만들겠노라 선언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임 중 개신교 성시화운동집회에서 ‘서울을 신에게 바치겠다’ 선언했다던가? 민중들의 핏물위에 신의 도성을 세우겠다던 디트리히 대주교의 일성은 ‘중세 가톨릭판 성시화운동’에 다름 아니었다. 잘츠부르크 구시가지 끝에 위치한 아우구스티너 수도원 역시 이와 같은 분위기 속에서 성장할 수 있었다. 이를 기반으로 1621년부터 시작된 맥주판매는 수도원 운영에 필요한 안정적 재원확보를 가능케 했다. ‘독일보다 더 독일풍의 수도원 비어 가-텐’ 문화를 완벽하게 간직하고 있는 아우구스티너 수도원은 잘츠부르크를 찾는 맥덕들에게 있어 반드시 순례해야 하는 성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곳은 드넓은 맥주정원과 함께 전통음악에 온 몸을 맡기는 방, 심각한 표정으로 담배피우며 맥주마시는 방 등을 가지고 있다. 또 겉은 엄청 바삭바삭한데 속은 완전 야들야들한 슈바인학센을 저렴한 가격에 사서 맥주에 곁들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엄청난 자부심을 자랑하며 따라주는 맥주는....... 그야말로 기가 막히다! 하지만 이 사랑스런 맥주들이 지나온 그 도시의 역사는 때론 어떤 이들에게 냉혹했고, 어떤 자들만을 편애했던 결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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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너 수도원은 잘츠부르크 도시 여행에서 대부분의 관광객이 놓치고 싶지 않아하는 미라벨 궁에서 그리 멀지 않다. 신시가지에 위치한 미라벨 궁은 앞서 북쪽의 바티칸을 운운했던 디트리히 대주교의 명령에 의해 세워졌다. 대주교는 자신이 만들겠다 선언했던 성스러운 도시의 영광을 도시민 모두와 나눌 생각이 없었던 듯하다. 그는 우선 호엔잘츠부르크 성을 더욱 거대하게 증축했다. 또 가톨릭교회의 권고를 무시한 채 결혼을 강행했고, 무려 15명이나 되는 자녀를 두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지로 더욱 유명한 미라벨 궁은 디트리히 대주교가 자기 가족만을 위해 건설한 것이다. 건물 이름에 ‘궁전’이 붙은 것은 교권을 기반으로 황제가 되고 싶었던 대주교의 욕망이 반명된 것은 아닐까?

하지만 불의한 권력이 영원할 수는 없었다. 그에게 절대 권력을 안겼던 소금광산은 지역 영주들에게 역시 소유하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켰고, 곧 끝없는 경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했다. 긴 싸움 끝에 패배한 대주교는 가족들을 포함해 외부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공간에 유폐된 채, 쓸쓸히 죽어갔다. 벗어날 수 없었던 그의 감옥은 자신이 평생에 걸쳐 이룩한 권력의 상징, 호엔잘츠부르크 성이었다.

유럽의 농민전쟁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실패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권력은 스스로 드러낸 모순 앞에서 분열하기 시작했다. 또 ‘지엄한 나리’들과 싸워나가는 과정에서 각성된 계급의식은 새로운 세상을 열어젖힐 이데올로기로 자라나게 되었다. 서구사회주의는 그렇게 농민과 도시빈민들의 핏값으로 대가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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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잘츠부르크를 방문하는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뮌헨이나 빈에서 가는 것이 용이하고, 기차나 버스 등을 이용할 수 있다. 호엔잘츠부르크 성은 밑에서 바라볼 때, 위에서 도시를 바라볼 때 정말 좋다. 성 내 노천카페에서 절경을 안주삼아 마시는 슈티겔 맥주는 무척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는 성 내를 둘러보는 것보다 카페에서 맥주마시는 것이 더 좋았다. 미라벨 궁을 둘러본 후, 천천히 걸어서 아우구스티너 수도원 비어가-텐을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수도원 입구가 매우 조용하기 때문에 잘못 온건 아닌가 하는 의구심에 빠질 수도 있으나. 믿음을 가지고 들어가 보자! 오른쪽 건물로 들어가 계단을 내려가면 점점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커지며 마음의 위안을 얻을 것이다.


7월 다섯 번째 이야기: 그런데 왜 맥주와 수도원을 함께 말할까?
 (수도원의 맥주양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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