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공감마당]

9bdbc4

[포토에세이] 말

posted May 28, 2019
Extra Form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김중백-말_resize.jpg

 

[포토에세이] 말
 


나는 달리는 말입니다. 다리가 셋인 말입니다. 이렇게 태어났는지 나를 채찍질하는 사람이 잘라 먹었는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그저 언제부터인지, 언제까지라도 나는 뒤뚱거리며 달립니다. 나에게 먹이를 주고 나를 때리는 주인은 나에게 달리라고 소리칩니다. 다리가 셋인 까닭이 내가 열심히 달리지 않아서라고. 땀 흘려 달리면 없는 다리도 자라고 어쩌면 날개도 돋을지 모른다고 사람은 하늘을 가리킵니다. 나는 부끄러워 땅바닥에 돋은 풀 한 포기를 뜯습니다.

나는 수레를 끄는 말입니다. 다리가 셋인 말입니다. 예전에는 다리가 넷인 말과 함께 마차를 끌었습니다. 다리가 셋인 나는 다리가 넷인 말들이 달리고 싶은 것을 알았지만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내가 나태하기 때문입니다. 모두에게 짐이 되어서 주인이 먹이를 주지 않아도 불평할 수 없습니다. 안일하게 살면 굶는 것이 이 세상의 법이라고 합니다. 나는 민망해서 개천물을 마시며 배를 채웁니다.

나는 사람을 태우는 말입니다. 다리가 셋인 말입니다. 다리가 넷이 되고 싶은 말입니다. 날개를 달고 날아가고 싶은 말입니다. 옛날에는 말도 하늘을 날았다고 합니다. 그때는 모두 정말 열심히들 달렸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두가 내가 태만하기 때문에 진구렁에 빠져도 사람을 더럽히지 않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달리지 못합니다. 날개가 없어서 다리가 셋이라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나는 얼굴을 붉히고 하늘을 바라봅니다.

 나는 언젠가 다리가 넷이 되고 어쩌면 날개까지 돋아 모두가 우러러보는 하늘을 나는 말이 되고 싶은 아직은 노력이 부족해서 다리가 셋인 말입니다. 내가 태어났을 때 나를 내려다보던 어미도 다리가 셋이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이 잘라 먹었는지 늑대가 물어갔는지 물어보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열심히 살지 않아서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어미는 어느 날 어디론가 가버렸습니다. 내가 게으르게 자는 동안 날개가 돋아 날아가 버렸는지도 모릅니다. 나도 언젠가는 어미처럼 날개가 돋아 하늘 저 멀리 날아가고 싶습니다. 나는 남부끄러워 솟을 기색 없는 다리가 있어야 할 자리를 물어뜯습니다.


김중백-프로필이미지.gif

 


  1. [포토에세이] 깨진 그릇

    [포토에세이] 깨진 그릇 이가 나간 그릇을 보면 왠지 께름칙하게 생각했었지만, 중국에서 몇 개월 생활하면서 그런 생각은 없어졌다. 중국에서는 이가 나간 그릇이 많다는 것은 손님이 많다는 뜻이고 맛집의 상징이라 여긴다는 글을 읽은 적도 있다.(인터넷에...
    Date2021.12.04 Views288
    Read More
  2. ‘신(新)황제의 딸’과 중국 소수민족 문제. 그리고 양안관계

    ‘신(新)황제의 딸’과 중국 소수민족 문제. 그리고 양안관계 서론 : 박사논문을 쓰던 와중에 올해 9월에 신장위구르자치구 민족문제를 주제로 박사논문을 쓰다가 기분 전환을 할 겸, 2011년에 제작된 드라마 ‘신(新)황제의 딸(원제 ’...
    Date2021.11.04 Views361
    Read More
  3. [포토에세이] 하늘의 로드킬

    [포토에세이] 하늘의 로드킬 그냥 발자국인줄 알았습니다. 이삿짐 옮기다가, 보수공사하다, 물청소하다 남긴 발자국인 줄 알았습니다. 몇 일 전 퍽! 소리와 함께 새 한 마리가 창문에 부딪쳤습니다. 놀란 마음에 새를 쫓아가니 기절한 듯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Date2021.11.01 Views175
    Read More
  4. [포토에세이] SNS와 오래된 가게(老鋪)

    [포토에세이] SNS와 오래된 가게(老鋪) 시간은 많아지고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적어지게 되면 맛과 가격을 동시에 만족할 수 있는 가게를 찾게 된다. 이런 가게들은 보통 재래시장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지만 늘 손님이 끊기지 않는다. 손님들은 보통 ...
    Date2021.10.05 Views150
    Read More
  5. [포토에세이] 항해

    [포토에세이] 항해 일주일간 처연했던 몸부림은 사라졌다.한강을 까맣게 때지으며 요란했던 번식은 종적을 감췄다.태양이 뜨겁게 저항하고 있지만 이들도 곧 사라질 것이다.누군가는 일주일간 요란했고, 누군가는 하루동안 불태웠다.또 다른 누군가는 마지막...
    Date2021.08.28 Views157
    Read More
  6. [포토에세이] 바보

    [포토에세이] 바보 어릴적 자주 듣고 놀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특히 담벼락에 쓰인 바보를 보면, 벌겋게 달아올라 탐정이 되어 동네 구석구석을 누비기도 했습니다. 왕방울 영민이는 억울하다며 닭똥같은 눈물을 흘렸고 대두 상훈이는 까만 손을 감추고 시치...
    Date2021.07.30 Views214
    Read More
  7. [포토에세이] 말달리자

    [포토에세이] 말달리자 좀 짧아 둥그스런 모양이 이쁜 소주잔 하얀 거품에 시원한 기포가 매력적인 맥주잔 소시적 법인카드로 겁없이 달렸던 날씬한 위스키잔 오랜 친구마냥 정겨운 막걸리잔 요즘 맛 붙인 얼큰이 와인잔 소주는 쓴맛이 싫고 맥주는 배불러 싫...
    Date2021.06.29 Views221
    Read More
  8.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군 이후에도 중국과의 군사 긴장은 계속될 것이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군 이후에도 중국과의 군사 긴장은 계속될 것이다 2001년 9.11 테러 후에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미국은 최근까지 탈레반 등 급진 이슬람주의자 세력 제거 명목하에 미군을 주둔시켜왔다. 또한, 신장에서 영어 강사로 위장했던 전직 CI...
    Date2021.05.30 Views222
    Read More
  9. [포토에세이] 파란 등대

    [포토에세이] 파란 등대 가는 길 곳곳이 막혀 있을 때가 있습니다. 돌아가자니 힘들고 넘어가자니 두렵고 멈춰있자니 눈물이 납니다. 파란 수채화를 배경으로 멋진 풍경이 들어왔습니다. 홀린 듯 다가갔지만 이마저 보호 펜스 철조망 모래 바다가 버티고 있습...
    Date2021.05.01 Views173
    Read More
  10. 반중 정서에 대해 - 평범한 중국인 민중과 중국 정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반중 정서에 대해 - 평범한 중국인 민중과 중국 정부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와 2019년부터 계속된 홍콩 항쟁 참가자들에 대한 탄압, 신장위구르자치구의 강제수용소(소위 "재교육 시설"), 2021년 2월 군부 쿠데타에 맞선 미얀마 민중들의...
    Date2021.03.31 Views180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Next
/ 11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