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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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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kespeare in the Park - 볼까 말까 그것이 문제로다

posted Sep 0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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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호수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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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e Cho, "Tempest from Shakespeare play", 2023, August. Digital Painting

 

올여름은 센트럴 파크의 셰익스피어 공연도 심드렁하다. 65세 어르신 문턱에 들어서기 전 응급실을 두 번이나 가는 신고식을 톡톡히 치렀다. 시카고 여행 중 벽에 걸린 그림이 멋있어 쳐다보다 마지막 계단에서 그만 발을 접질러서. 또 한번은 늦은 저녁 연어를 먹다 가시에 걸려서, 아수라장 같은 응급실에서 밤을 꼬빡 새웠다. 그 뒤론 걷는 것도 바닥을 보며 살금살금, 먹는 것도 혀로 느끼면서 조심조심. 자신이 없어지고 내 마음까지도 파삭 늙어 버린 것만 같다. 딱 50세에 신기하게 오십견이 왔었는데, 65세에 정확하게 노인임을 느끼는 것은 나 스스로가 그렇게 만든 건가?(self-fulfilling prophe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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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도 이렇게 슬그머니 가버리고, 센트럴 파크에서 "햄릿"을 볼 수 있는 날이 딱 하루 남았다. 마침 금요일이고 날이 선선했다. 용기와 기운을 끌어모아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의 Public Theater(425 Lafayette St)에 갔다. 셰익스피어 무료 티켓을 받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는데 여기가 내 경험으론 확률100%이다. 오전 11시에서 12시 사이에 추첨 번호를 받고, 12시부터 추첨이 시작된다. 둥근 통 속에 든 티켓을 돌리며 당첨된 번호를 부른다. 각기 개성 있는 환성을 지르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한 20명 정도 번호를 불렀을까. 드디어 "380 !" 손에 가지고 있던 내 번호를 부른다. Public Theater에서 Shakespeare in the Park 공연을 주관하는 곳이어서 그런지 후하게 티켓을 나누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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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럴 파크 셰익스피어 공연은 티켓을 판매하지는 않고, 누구나 경험할 수 있도록 무료로 나누어주는데, 전에는 이 티켓을 얻기가 쉽지 않았다. 2013년 여름 뉴욕으로 이사 와서 제일 해 보고 싶었던 것이 바로 델라코테극장(Delacorte in Central Park)에서 연극을 보는 것이었다. 그 당시, "Love's Labor's Lost"(사랑의 헛수고)처럼 인기 있는 희극은 당일날 새벽 6시부터 공원에서 진을 치고, 바우쳐를 나누어주는 정오까지 기다린다고 들었다. 10년이 지난 지금은 온라인으로도 당첨될 기회가 있고 보고 싶은 의지만 있으면 비교적 수월하게 표를 얻을 수 있다.

 

올해로 61번째 시즌을 맞는 Shakespeare in the park는 그간 150편의 프로덕션이 있어 육백만이 넘는 사람들이 무료로 연극을 관람했다고 한다. 올해 햄릿 공연 이후, 극장이 보수 공사에 들어가, 2025년에 다시 열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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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시원한 여름 저녁, 센트럴 파크는 낮과는 또 다른 분위기이다. 여유있게 가서 앞자리로 좌석을 받고, 벤치에 앉아 "이모김밥"을 먹었다. 산책하다보니, 벨베디어 캐슬(Belvedere Castle)을 배경으로, 터틀 폰드(Turtle Pond) 앞 잔디밭에서 사람들이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다. "나도 여기서 먹을걸, 다음엔 담요를 가져와야지." 어설픈 사람은 감히 끼기 어렵게 일사불란하게 요가를 하는 젊은이들, 터틀 폰드가에서 손에 먹이를 들고 쭈그리고 앉아 있는 아저씨, 한 떼의 거북이들이 와서 먹이를 물고간다. 한적한 곳에서 노래를 부르는 아티스트… 그러다 보니 어둑어둑 연극이 시작할 시간이다.

 

2023 Hamlet(햄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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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햄릿 공연 자체는 몰입되어 관람하지 못했다. 나에겐 비극이 무겁기도 하고 현대적 해석의 햄릿이 그리 다가오질 않았다. 야외무대론 비극보다는 희극이 신나고 재미있는 것 같다. 그래도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 Frailty, thy name is woman" 대사는 귀에 들어왔다.

 

2018 Twelfth Night(십이야)

 

센트럴 파크 공연 중 "십이야" 공연이 나에게는 특별하고 멋진 공연으로 기억에 남는다. 지금 보니 우연히도 이번 햄릿 역의 Ato Blankson-Wood가 그 당시에 오르시노(Orsino) 역으로 나왔다.(사진 앞줄에 흰 셔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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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공연은 연극이 시작하기 전에 무대에 팝콘도 나누어 주고 게임도 하고 축제처럼 시작하였다. 등장하는 배우들도 다양했다. 흔히 생각하는 셰익스피어 연극의 주인공, 백인의 날씬하고 외모가 멋진 주인공이 아니라, 유색인종에 키도 작고 똥똥하고, 스테레오타입과 다른 배우의 설정이 흥미로웠다. 뉴욕시 5개 보로의 사람들을 그 무대에 골고루 참여시켰다고 들었다. 5살 쯤 되었을까, 한국 아이 같은데 신나게 무대 위에서 춤추는 꼬마를 보고 시선을 떼지 못하고 흐뭇하게 보았던 기억이 난다. 메릴 스트립(Meryl Streep)이나 덴젤 워싱턴(Denzel Washington)처럼, 그 아이가 이 곳에서 미래의 배우로 탄생하는 것이 아닐까?

 

2009 As You like it(뜻대로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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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셰익스피어의 열정을 심어준 경험은 거슬러 2009년 런던 여행에서인 것 같다. 그때의 감동이 엉치가 무너지는 몸의 기억과 함께 고스란히 남아있다. 셰익스피어 당시 극장을 재현해 놓은 Globe theater에 표를 사러 일찌감치 갔었다. 마침 내가 좋아하는 희극 "As you like it"을 공연하고 있었다. Pit 자리를 사기 위해 사람들이 티켓판매소에 줄을 서 있었다. Pit는 마당에서 서서 보는 자리로 무대 바로 앞에 둘러싸여 있는 쑥 들어간 자리이다. 5유로 정도 했던 값싼 자리이지만 또한 제일 가까이에서 연극을 본다는 매력이 있다. 셰익스피어 당시도 마당에서 서서 보는 자리는 1페니, 아래 회랑은 2페니, 위의 회랑은 3페니를 받았다고 한다. 그 표를 얻기 위해서는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했다. 거기 앉아서 점심도 먹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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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e Cho, "While wating for the play", 2023, August. Digital Painting

 

 

 

줄을 기다리느라고, 바로 옆에 있는 Tate Modern 뮤지움도 못가고. 덕분에 환상적인 셰익스피어 연극을 경험한 것 같다. 바로 코 앞에서 최고 배우들의 공연을 보면서 비가 오는 것도 모르고 3시간 거기에 푹 빠져서 연극을 보았다. 끝나고 나오는데 엉덩이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 이 나이에 이런 걸 서서 보는 것이 아닌데 후회막심했다.

 

그때의 Playbill을 뉴욕으로 이사 올 때까지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가, 몇 년 전 이 동네로 이사 오면서 버렸다. 아쉬워서 인터넷에 찾아보니 2009년 그 공연이 DVD로 제작되었다. 그 당시 공연 clip을 보니 배우들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페이스북 링크 ▶]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셰익스피어를 특별히 좋아한다기보다는, 어둑어둑할 무렵 센트럴파크의 야외극장에서 보는 연극이 나에겐 낭만과 청춘의 시금석 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이것을 놓아버리면 몸도 마음도 어르신이 되는 것 같아서. 그러니 버거워도 아직까지 가느냐 마느냐 고민하는 것 같다. 세 시간이나 되는 햄릿 공연이 밤 11시가 되어 끝나, 게슴츠레 지하철에 몸을 실었는데, 젊은이들이 서서 삼삼오오 큰소리로 수다를 떠는 밤 지하철의 장면이 낯설다. 자정이 돼서야 집에 돌아온 나에게 "이 나이에 이런 걸 하는 것이 아닌데"라고 되뇌인다. 14년 전에도 런던 공연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마 이게 "나"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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