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심심엔]

ddaeed

거꾸로 가는 인생시계

posted Aug 25, 2021
Extra Form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MaxPixel_resize.jpg

 

 

거꾸로 가는 인생시계 

 

 

아픈 지구의 열이 펄펄 끓었던 한 여름. 열사병과 전염병 경고로 대부분의 대외활동이 필수적이지 않은 난 훨씬 이전부터의 봉쇄생활에 돌파구가 필요했다. 취소요구가 높았던 도쿄올림픽이 강행됐기에 망정이지.. 온종일 TV 앞에서, ‘파이팅, 대한민국!’ 집중 에너지로 응원하고, 감탄하고, 아쉬워하며 감히 상상할 수 없을 그들의 지난한 노력에 대한 감동으로 위안받았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그 단순한 생활 - 생산적이지 못해 죄책감이 들지도, 화면에 몰두하는 내 모습에 유치함도 느끼지 않았다. 무게 없이 그 속에 내가 있는 게 감사할 뿐이다. 얼마 전 갱년기의 위기상황에서 빠져나온 덕일 것이다. 

 

평소 안 좋았던 오른손목은 의식적으로 며칠간 반대 손을 사용해 쉬면 늘 회복되었는데, 이번엔 달랐다. 회복의 기미 없이 코 닦기는커녕 휴지를 뽑으려는 두 손가락의 모임조차 극심한 통증에 끝내 ‘악’하는 의식 못한 비명을 몇 번 터뜨리고선 의사를 찾아 근육 내 염증해소를 위한 주사를 맞았다. 통증이 사라지면서 손목에서, 팔로, 그리고 온몸으로 무력증이 퍼졌다. 몸을 움직여야 하는 내 의도는 뇌에만 머무른 채 도대체 실행에 옮길 수 없었다.

아침에 몸을 일으키지만, 그저 껍데기일 뿐, 늘 소리 없이 함께한 찰랑찰랑 에너지는 어딘가 뚫린 배수구로 모두 빠져나간 느낌. 이 분리감을 통해 과연 생명/삶이란 것이 둘의 오묘한 합체였음을 본다. 무력증이 주사의 부작용도 아니라는데.. 특별한 신체적 병이 아닌 듯 우울증과 연관된 내용만 보여주는 인터넷정보. 한 달을 훌쩍 넘어도 변화의 기미도 없고, 도대체 내 기력을 되찾을 수는 있을까 하는 회의에 진짜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았다. 

 

이전의 내 보폭이 확 줄어든, 휘청휘청 조심스런 발디딤으로 걷다가 내 마음을 보았다. ‘아, 예전엔 내 맘이 저만치 앞서 갔구나! 조금이라도 빨리 목적지에 도달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 앞서가는 맘을 쫓아가느라 내 발걸음이 늘 허둥대고, 더 지쳤던 이유가 그 간격 때문이었구나!’ 몸이 그렇게 솔직히 내게 가르쳐주고 있었다. ‘~해야 한다’는 수많은 삶의 명령으로 버텨왔던 모습을 이젠 벗을 때가 되었다고. 예전의 기준이라면 하찮은 속도로 느려진 지금의 걸음걸이지만 괜찮다고 했다. 천천하지만 이제 몸과 마음이 나란하지 않느냐고. 

 

새로 적응하는 내 인생 새로운 단계, 앞섰던 마음을 늦추기 위해 겸허히 옹알이를 시작했다. 냉장고 앞에서 까마득한 날 책망하지 않도록, 냉장고로 향할 때면 곧바로 혼잣말을 시작한다. ‘우유, 우유!’ 거침없이 운전했던 나, 신호등 없는 건널목에선 ‘귀한 사람, 귀한 사람!’을 읊조리며 차를 우선하는 사람들에게 양보를 선사한다. 또한 늘 대립각을 세웠던 남편에게조차 배운다. 결혼 후 갈등의 최고요인인 감정을. 더 구체적으론 공감능력. 남편이 뒤돌아서면 표 안 나게 연습해 오긴 했지만. 

 

선물 받은 고들빼기를 맛나게 먹다가 “근데 좀 짜다”는 말에 내 본연의 대꾸가 튀어나온다. “(기본이 소금인데) 짜지 않은 김치가 있을까?!” 농담에 정색하고, 감정에 사실증명으로 엇박자 놓은 내 소통장애의 순간, 그 껄끄러운 긴장감… “그럴 땐 ‘그렇게 짜?!’하는 거야” 의리 있게 남편이 친절한 가르침을 준다. “그렇군. 맞아” 적극적 긍정 후 난 세 번 옹알이를 한다. 언젠가 그의 감정선에 함께 머물 수 있는 말꼬를 틀 수 있으리란 희망을 가지고.

‘아, 그렇게 짜!?’

‘오, 그렇게나 짜?!’

‘어, 그렇게나 짜구나!!!’

 

또다시 기력이 사라지면, 얼마간의 위기 후 어디선가 스멀스멀 다시 채워지겠지? 지금의 반쯤으로. 그 때 새 조정기간이 약간 걱정된다. 옹알이 보다 더 원초적인 학습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

 

김애자-프로필이미지.gif

 


  1. 지난밤 어떤 꿈을 꾸셨나요?

    지난밤 어떤 꿈을 꾸셨나요? 지난밤 꿈을 꾸고, 이게 무슨 꿈이지?, 왜 이런 꿈을 꾸었지? 라고 궁금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꿈이 나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도통 의미를 알 수 없어 답답한 적도 있을 것이다. 특히 비슷한 꿈을 반복...
    Date2022.04.05 Views236
    Read More
  2. 자살을 생각하고 있나요?

    자살을 생각하고 있나요? 심리부검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부검이 시신을 해부하여 사망의 원인을 검사하는 것이라면, 심리부검은 자살 사망자의 가족, 친지 등 주변인들의 진술을 토대로 고인의 사망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되는 요인들을 살펴보는 ...
    Date2022.03.02 Views231
    Read More
  3. 혼자 남겨짐과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

    혼자 남겨짐과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 지금은 이사했지만 예전 살던 동네에서 다니던 스포츠센터가 있습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커다란 스포츠센터였는데, 그 동네에 오래 살다보니 그 스포츠 센터도 꽤 오래 왔다갔다 다녔습니다. 이 종목도 등록했다가, ...
    Date2022.01.31 Views262
    Read More
  4. 삶이 변화를 요구할 때

    삶이 변화를 요구할 때 자살 계획을 세우고 친구를 찾아갑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떨어져 죽을 것인지 세세하게 설명을 합니다. 그 계획을 바꿀 생각은 없는데 자신이 왜 그런 결론을 냈는지, 자신의 결론이 맞는지 누군가에게 얘기는 해봐야겠다 싶어서 ...
    Date2022.01.03 Views225
    Read More
  5.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 올해 초부터 상담실에 찾아오는 4명의 여자아이들이 있었다. 한 반의 여자아이들로 반에서 친하게 지내는 그룹이었는데, 한꺼번에 다 오는 것이 아니라 2~3주 간격으로 한 명씩 돌아가면서 왔다. 처음에는 A라는 아이가 울면서 자신이 ...
    Date2021.12.05 Views168
    Read More
  6. “오징어 게임”과 “D.P 개의 날”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오징어 게임”과 “D.P 개의 날”이라는 드라마를 보고 그 유명한 “오징어 게임”과 “D.P 개의 날”이라는 드라마를 보기 위해 하루 날을 잡고 넷플릭스에 접속해서 한꺼번에 전편을 보았다. 두편의 드라마 모두...
    Date2021.11.01 Views166
    Read More
  7. 고통의 곁을 지키는 사람들, 그 곁의 이야기

    고통의 곁을 지키는 사람들, 그 곁의 이야기 올해는 마을 친구들과 인권 감수성을 높이기 위한 공부를 매월 하고 있어요. 십 수 년 전 아이를 키우면서 시작한 독서모임인데 요즘은 마을에서 어떻게 같이 나이 들어 갈 수 있을 지 고민합니다. 인권과 관련된 ...
    Date2021.09.29 Views234
    Read More
  8. 거꾸로 가는 인생시계

    거꾸로 가는 인생시계 아픈 지구의 열이 펄펄 끓었던 한 여름. 열사병과 전염병 경고로 대부분의 대외활동이 필수적이지 않은 난 훨씬 이전부터의 봉쇄생활에 돌파구가 필요했다. 취소요구가 높았던 도쿄올림픽이 강행됐기에 망정이지.. 온종일 TV 앞에서, &l...
    Date2021.08.25 Views199
    Read More
  9. 정신을 차려보니 망망대해(茫茫大海)

    정신을 차려보니 망망대해(茫茫大海) 올해도 어김없이 심심엔 기고할 시간이 돌아왔다. 길목인에 벌써 세 번째 기고하는데, 어쩌다 보니 여기에 기고할 원고의 내용을 생각하면서 지난 1년을 돌아보고 정리하는 루틴이 생긴 것 같다. 내가 쓴 지난 글들을 읽...
    Date2021.07.29 Views254
    Read More
  10. 원예와 돌봄

    원예와 돌봄 심심에 이름을 걸어 놓은 지는 오래되었지만 실제 심심에 기여한 바가 없어 파리에서 돌아온 후에는 심심 집단팀 중 그래도 가장 한가한 내가 달마다 있는 통통톡 집단 프로그램팀 회의에 참여하기로 했다. 통통톡 집단 프로그램 회의는 여러 가...
    Date2021.06.29 Views205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Next
/ 8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