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평등은 어떻게 몸을 갉아먹는가』
알린 T. 제로니머스
2025, 돌베개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하층 사람들은 일찍 병들어 죽는다. 왜 그럴까? 생활습관이 나빠서? 불량식품을 많이 먹어서? 건강을 관리할 줄 몰라서? 병원에 가거나 약을 살 돈이 없어서? 아니다.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렇다. 강한 스트레스를 오래도록 받아서 그렇다. 이것이 저자의 답이다.
이 책의 원제목은 『Weathering: The Extraordinary Stress of Ordinary Life in an Unjust Society』(풍화작용: 불공정한 사회의 특별한 일상생활 스트레스)이다. 이 책은 불공정한 사회에서 차별받으며 살아가는 밑바닥 사람들이 왜 일찍 죽는지 그 원인을 밝힌다. 책은 두껍지만 답은 간단하다. 그들이 일상생활에서 심한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아서 그렇다.
이런 현상을 포착하기 위해 저자가 만든 단어가 '웨더링(weathering)', 즉 풍화작용이다. 웨더링은 인종, 민족, 종교, 계급 차별에 의해 공격당하는 사람들이 겪는 생리학적 작용을 포괄하는 과정이다. 웨더링은 한 인간이 인종차별주의적이고 계급주의적인 사회에서 자라고, 성장하고, 노화하는 동안 세포 단위에 이르기까지 온몸을 구석구석 괴롭힌다. 웨더링은 그 사람이 걸은 걸음 수, 흡연한 담배의 양, 복용한 마약성 진통제의 양, 마신 술의 양, 섭취한 칼로리로는 측정할 수 없다. 학력 수준, 소득 수준이나 은행 잔고를 주된 척도로 삼아 측정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정서적 절망감과 관련이 있지도 않다.
웨더링은 낙관적이고,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고, 기술이 뛰어나고, 회복력이 좋은 사람들이 자신의 몸에 가해지는 지속적인 신체적 부담을 견디다 못해 죽어가는 것과 관련이 있다. 조작된, 착취적이고 모멸적인 시스템 하에서 산다는 이유로 그들의 건강이 희생되고 있다.
웨더링을 이해하려면, 다문화 사회인 미국에서 지배집단의 문화와 소외집단의 문화 간 권력 차이와 심리사회적 역학관계를 이해해야 한다. 다문화 사회에서는 지배집단의 관행, 가치관, 언어, 상식이 그 사회에서 권위를 인정받는 지식이 된다. 인종화는 지배문화가 그 사회의 집단들을 자원, 명예, 권력을 누릴 자격 내지 권리가 있는 집단과 없는 집단으로 나누는 수단이다. 경멸, 처벌, 박탈, 낙인, 탄압, 착취를 받아 마땅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으로 나누는 강력한 수단이다. 그런 문화에서 지배집단은 인종화된 집단이 탄압, 착취, 배제를 당하는 것을 당연시할 수 있다.
저자는 미국에서 공공보건학자로 평생을 살아오면서 사회 불평등이 하층 사람들의 건강을 지속적으로 무너뜨린다는 사실을 다양한 증거들을 통해 입증했다. 예를 들어, 뉴욕의 센트럴할렘, 로스앤젤레스 왓츠 지구, 시카고의 사우스사이드, 디트로이트의 이스트사이드 같은 극빈층 동네 흑인 청년의 건강 기대수명을 동일한 대도시 권역 부유한 동네의 동일 연령대 청년의 건강 기대수명과 비교하면 몇십 년이나 차이가 난다.
저자가 소개한 한 연구에서는, 극빈곤 지역의 흑인 청년(혹은 애팔래치아의 그와 유사한 극빈곤 지역의 백인 청년)이 장애가 없는 채로 살아서 50세 생일을 맞이할 확률은 50%에 불과했다. 대다수의 백인 청년들은 장애 없이 50세 생일을 맞이할 거라고 기대할 뿐만 아니라, 그 이후로도 수십 년간 건강하게 살 것이다.
저자는 구조적인 인종차별주의가 야기하는 물질적, 교육적, 법적, 정치적, 환경적 불의에 대한 기존의 공적 담론 위에, 자신이 학자 경력을 바쳐서 찾아낸 진실을 추가하고자 이 글을 썼다고 한다. 그 진실이란, 인종화를 비롯한 문화적 탄압의 양식들을 지탱하는 이데올로기—예를 들면 인종차별주의, 계급주의, 성차별주의, 연령주의, 외국인 혐오, 동성애 혐오—는 단순히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지역과 빈곤한 지역으로 사람들의 거주지를 분리시키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건강에 실질적이고 측정 가능한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저자는 웨더링의 여러 사례들을 매우 생생하게 묘사한다. 웨더링에 관련된 각종 통계 자료, 보건 의료적 조사 자료, 문화기술지 등을 글의 맥락에 맞추어 풍부하게 제시한다. 저자 자신의 가족력을 사례로 소개할 정도로 진심을 담아 이 책을 썼다. 그래서 독자들이 웨더링 현상을 이해하고 그 현상의 문화·사회·심리·생리적 맥락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나아가 웨더링을 극복하기 위한 대책도 5가지로 제시한다. 그 중 하나가 '우리 모두의 운명이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기'이다.
알라딘 인터넷서점과 교보문고 인터넷서점에서 이 책을 검색하면, 책 소개는 물론 재미있는 동영상도 나온다. 세계적인 히트 작품인 '오징어 게임'도 오래 보거나 집중해서 보면 스트레스로 몸이 망가진단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사회가 불공정하면 건강도 불평등하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