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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저 - 그래도 되는 차별은 없다

posted Mar 12,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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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되는 차별은 없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지음, 창비, 2025

 

 

최근 방영된 드라마 중에 '프로보노'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전직 판사인 문유석 작가가 시나리오를 쓴 것으로, 출세 가도를 달리던 판사가 의도치 않은 상황에 처해 공익변호사가 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 법정물이었다. 여기서 '프로보노'란 라틴어 'pro bono publico'의 약어로 의미는 '공익을 위하여'다. 변호사를 선임할 여유가 없는 개인 혹은 단체에 대해 보수를 받지 않고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장애인, 외국인 며느리, 근로자 등 사회로부터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는 약자들 편에 서서 성심을 다해 일하고 결국 정의를 쟁취하는 극 중의 변호사들을 보면서 통쾌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씁쓸하기도 했다.

 

이런 승리는 결국 드라마 속 판타지에 불과하지 않을까. 현실에서는 도대체 이런 변호사가 얼마나 되겠으며 있다 한들 속 시원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얼마나 될까라는 생각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어쩌면 작가가 실제 법조계에 근무하면서 꿈꾸었으나 이루지 못한 일들을 허구의 드라마에서나마 마음껏 펼쳐보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

 

그러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국내 최초의 비영리 전업 공익변호사 단체, '공감'. 진정한 '프로보노'가 우리나라에도 버젓이 존재하고 무려 20년 넘게 버텨왔음을 알았을 때의 놀라움이란. 공감은 인권의 경계를 확장하고 한 명이라도 제도 밖의 예외적인 존재로 남지 않도록 울타리를 넓히는 과정을 거쳐왔다고, 여는글에서 밝히고 있다. 역시 쉽지 않은 이 길, 길게는 5년까지 걸리기도 하고 때론 이기지만 자주 벽에 부딪히는 길을 걸으면서도 늘 같은 질문을 던진다는 이야기도 한다. '이 차별은 과연 괜찮은 것인가'. 그리고 책의 제목으로 답한다. '그래도 되는 차별은 없다'. 이 책은 그 믿음으로 달려온 시간의 기록이자 그 믿음을 '함께' 지켜온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한국을 떠나라는 명령을 받은 외국인들이 출국하기 전 머무는 외국인보호소. 하지만 여러 사유로 떠날 수 없어 기약 없이 갇혀 있는 외국인들. 월급을 받지 못한 이주노동자들, 본국의 상황이 안 좋아 여권 발급이 안 되거나 갔을 경우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 있는 난민 신청자들. 이런 사람들이 머무는 외국인보호소는 모순적이게도 법무부가 관리하는, 인권의 사각지대였다. 아무 죄 없는 사람을 손과 발을 같이 묶어 몸을 새우처럼 뒤로 꺾인 상태로 두거나 (새우꺾기) 박스테이프로 물건 다루듯 칭칭 감아 방치해두는 등,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긴 시간 노력하여 소송을 의뢰했던 무라드의 재판은 승소하였으나 이 상황을 적극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은 일부 결실을 거두기도 하고 아직도 진행 중진행 중이기도 하다. 그 누구도 이런 대우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믿음으로 뭉친 사람들이 '연대'하여 이 끝나지 않은 싸움을 계속하고계속 하고 있다.

 

이주민들에 대한 차별은 여기서 그치는 게 아니었다. '미등록 이주아동'의 문제는 충격에 가까웠다. 이주민 부모를 따라 한국으로 왔거나 한국에서 출생한 아동 중 부모의 체류 자격 상실로 인해 체류 자격을 부여받지 못한 아이들은, 법망에 걸리면 미성년자임에도 강제로 추방을 당할 수 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이 한국에 살면서 그 어떤 법으로도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존재로 취급을 받는 것이다. 민호라는 학생의 사례를 통해 '아동 최선의 이익' 원칙에 따라 불법체류 학생의 학습권 보장이 고등학생까지 확대되고 부득이한 경우 한시적 체류도 허용하는 방침을 얻기는 했지만 제대로 된 권리를 찾기까지는 요원해 보인다.

 

이주아동을 대하는 의식의 변화가 절실한 때입니다. 지금 한국 사회는 기로에 서 있습니다. '우리'의 범주를 넓혀가며 인권, 즉 '사람'의 권리를 제대로 바라보면서 진정한 포용 국가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혐오와 증오, 차별과 침해가 만연한 혐오 국가로 나아갈 것인가. 그 중심에 미등록 이주아동이 있습니다. (p112)

 

동성 부부의 권리를 되찾기 위한 노력은 눈물겹다. 사실 법적으로 동성 간 혼인이 안 된다는 규정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음에도 그들의 존재와 관계를 증명해야만 하는 현실에서 '폭력'은 존재한다. 단번에 뒤집을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하고 우선 배우자로서의 권리, 가장 먼저는 건강보험 피부양자피부양자로서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험난한 과정이 있었다. 그리고 결국 대법원에서 동성 동반자의 건강보험 피부양자 자격을 인정받았을 때의 판결문은 감동적이다. 더불어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 어느 누군가에게는 투쟁을 해야만 얻을 수 있는 현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했다.

 

국가가 건강보험제도를 통해 일정 범위의 가정 공동체나 가족 관계에 있는 사람에 대하여 보호와 혜택을 주는 것은 단지 경제적 수혜의 제공을 넘어 그 대상인 공동체나 가족 관계에 대하여 사회 내에서의 존재 가치를 공인하는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된다. 이 사건 쟁점의 중요성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배제에서 오는 소외감은 사회 구성원으로 한 개인이 가지는 존재 가치를 잠식한다. (p55)

 

성소수자의 문제는 난민 문제로까지 확대된다. 성적 지향이나 성별 정체성 때문에 태어난 나라에서 차별과 폭력, 심지어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성소수자 난민'은 난민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이유로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 또한 이번에 처음 안 사실이다. 성소수자로 사는 것에 대해 본국에서 박해를 받을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있는 공포'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는 이유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나라 난민 인정률은 2% 미만으로 낮은데 난민에 더해 성소수자라는 정체성까지 가진 사람들은 더 내밀한 사적 영역을 내보여야 하고 더 엄격한 심사를 거쳐야만 하는 불평등을 겪고 있는 것이다. 사실 수용된다고 해도 한국이라는 사회가 이런 부분에 그다지 관대하지 않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들의 선택에 응원만을 보내기는 쉽지 않으나 그럼에도 한국에 기대를 품고 선택하여 들어오고자 하는 사람들을 내치지 않고 포용함으로써 좀 더 나은 사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도 크다.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사례도 있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 '다니엘 블레이크'의 주인공과 같은 일을 겪는 사람들이 이 나라에도 있다는 것이 놀라운 일은 아니다. 기초생활수급자였는데 8년 만에 근로 능력이 있다는 황당한 판정을 받아 구직을 하지 않으면 급여가 끊길 위기였기 때문에 미화원으로 근무하다가 돌아가신 분의 이야기는 씁쓸함을 금치 못하게 한다. 형평성의 원칙이나 부정 수급의 우려로 까다로운 과정을 만들어둔 것까지는 이해한다 해도 중한 질병이 있음에도 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엉터리로 평가를 해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경우라니 할 말이 없다. 빈곤을 증명해야 하는 구조적 압박이라는 한계에 대해 누구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 현실 속에서 그래도 승소를 한 데에는 빈곤사회연대와 켄 로치 감독 및 폴 래버티 각본가 등과의 국제적 연대의 힘도 컸던 것 같다. 여기에서도 연대의 힘을 확인한다. 하지만 아무리 승소를 한다 한들 돌아가신 분을 살리지는 못하는 것이고 이렇게 사람 한 명 한 명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회는 희망이 없다.

 

그럼에도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만 유독 겹겹의 편견 사이에서 자신의 빈곤을 증명해야 하는 과제를 수행합니다. 가장 취약한 사람 앞에서 멈춰선 연대를 진정한 연대라고 할 수 있을까요? 빈곤은 다각도의 사회적 위험이 겹치고 모여 발현되는 증상 중 하나입니다. 지금 빈곤하지 않다고 해서 나와 무관한 문제일 수는 없습니다. 사회보장을 받는 사람 따로 있고 제공하는 사람 따로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는 것이야말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권리'로서 인정받는 첫걸음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p198)

 

이외에도 디지털 성폭력, 성소수자의 성별 정정, 캄보디아 진출 은행들의 빈민 약탈 대출, 사회복무요원의 노동조합 설립, 그리고 10.29 이태원 참사까지 우리가 알게 모르게 지나치고 있는 인권 관련 사건들에 대한 여러 사례들이 책 속에 담겨 있다. 세상이 나날이 발전만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 증오와 폭력은 여전히 남아 있고 심지어는 심해져 가는 듯하여 우려스러운 요즘의 사회에서 이렇게 이들을 대변하고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찾거나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책이었다.

 

2017년 발의된 이래로 아직까지도 제정되지 않고 있는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에 대해 생각해본다. 특히 성소수자 문제에 대한 보수 종교단체의 반대가 극심하고 그밖에 표현의 자유나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등의 반대 근거가 있기는 하지만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되다시피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차별금지법 도입에 대해 찬성하고 있고 우리나라뿐 아니라 많은 나라에서 이미 입법화된 내용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인권은 모두가 누려야 할 보편적인 사회규범이고 이를 해칠 수 있는 어떠한 시도도 용인되지 않는 사회가 진정으로 성숙한 사회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 책은 여러 사례를 통해 이러한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 무엇보다 이 책의 저자들을 비롯, 세상의 차별과 혐오를 없애기 위해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열심을 다하는 많은 활동가들에게 마음으로나마 뜨거운 응원을 보내며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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