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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목연재] 저물녘 하늘을 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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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이 사막을 건너는 법 28

posted Dec 10, 2025

늑대.jpg

 

 

 

*

 

우덜이 아그레라고 알고 있는 한처암에 말입지, 해필 그 엄청난 빛의 폭발이 있었는지, 그렇게 생겨난 빛이 왜 그곳에 머물러 있질 않고설라므네 천지사방으로 뻗쳐나감서 광활하기 짝이 없는 흑암의 공간에 빛의 씨앗을 흩뿌리고 해허구 달을 맹글고 별을 맹글었는지, 그라고 우덜이 거처허는 땅을 맹글었는지 그 기원을 알게 되면, 창조주라고 허는 절대자를 만낼 수 있을 게라고 여기게 된 것은 순전히 인간의 호기심에서 시작된 게라. 그 호기심은 인간에게서 비롯된 게지만 사실은 본원의 힘이 인간을 자극 허먼서 구심력을 작동하여 끌어댕기는 게지. 그 강력한 인력에 모든 감각과 사유의 창끝을 아그레에게로 겨누는 사램이 있는디 그를 가리켜 수행자라 하게 되는바, 창조주께서는 그들에게 무삼 뜻을 두었간대 당신의 비밀을 전수하려 하시는 겐가?

 

아베스라의 스승은 수행자의 운명을 말하고 있었다. 평생을 보이지 않는 것을 마주하고 견뎌내야 하는 그래서 모두에게서 잊혀간 시원의 발원지를 찾아가야 하는 운명을 말하고 있었다.

 

지도는 있지만서두 볼 수는 없겠습지? 백지마냥 생겨먹은 지도를 한 장씩 받아 든 게라. 목적지는 표시가 되어 있지만 도대처 어띃게 가야 허는지는 보이덜 않는단 말입지. 지형도 알 수 없고 지세도 알 수 없지 말입지. 무턱대고 앞으로 나가다간 문득 백척간두 끝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허게 되기두 허고 말입지, 사방이 험준헌 절벽으로 둘러싸인 곳에 이르러 죽기를 작정허고 사투를 벌여야 허기도 헙지. 그때 지도를 펠쳐보먼 지나온 길만 오롯허니 글켜져 있는 게라. 그러니께 우리가 받아든 지도라는 것은 겔국 스스로 그려가야 허는 물건인디, 한 발짝을 내딛고 고맹큼을 그려넣슬라치먼 꼭 마구니 새깽이가 나타나 단박에 내지를 수 있는 그런 길이 있다며 온갖 요사로 유혹을 헌다 이게라. 그 꾐에 빠져 몸과 맘을 그르치고 환속헌 수행자가 얼말런고?

 

그는 수행자라면 모름지기 활시위를 한껏 당겨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는 찰라의 상태를 무시로 소환할 수 있어야 하며, 육신이 어떤 처지에 놓이더라도 정신이 지향하는 목적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였다. 시도 때도 없이 엄습해오는 무기력과 좌절의 늪에서 평상심을 유지하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마음 근력을 단단히 해두어야 하며, 종국에는 의식의 안팎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경지에 이르렀을 때라야 ‘아그레’의 환희를 맛볼 수 있다고 언명하였다.

아베스라는 함정에 빠져 탈진한 짐승의 비명 같은 신음을 내뱉으며 회한에 젖어 들고 있었다. 수행자로 살아온 날이 스무 해를 지나고 있는데도 스승이 말한 경지에 다가서기는커녕 시도 때도 없이 모습을 바꾸며 허약한 심지를 희롱하는 진리의 허상에 헛발질을 해대고 있으니 말이다.

-무상하구나, 아베스라여! 손바닥에 움켜쥐고 있는 그것이 진리의 꼬랑지 정도는 되는 줄 알았더니 손을 펼쳐보면, 아하! 한낱 다른 사람의 밟고 지나간 발자국에 지나지 않는구나. 오호라, 아베스라여! 네게 주어진 시간은 짧고 길은 멀도다. 지금 도를 맛보지 않으면 또 언제 만날 것인가. 홀연 죽음이 찾아오면 때는 늦으리니 탄식하고 후회해도 소용없으리라.

그는 자신을 향해 돌을 던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만행하고 고행한다고 도가 얻어질 것 같으면 세상엔 도인으로 넘쳐날 것이다. 진리를 찾아가는 방편으로 유행(流行)을 선택하는 것은 수많은 길을 보고 걸으며 내 길을 찾자는 것이지, 남이 간 길을 허겁지겁 쫓으려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었다. 문득 발아래로 펼쳐진 산 아래의 풍광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그곳까지의 실제 거리가 달라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고 느끼는 내 마음이 어제의 그곳에서 움직여 옮겨 간 것일 뿐이다.

-그래서 어쩌자는 것인가. 유동하는 마음을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모든 것을 포월(包越)하는 존재를 어떻게 만난단 말인가.

그렇게 자책하면서 끊기는 한숨을 갑갑하게 이으며 뱉어내고 있었다.

···어리석도다, 아베스라여! 너는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산에 대해 들어 알 것이다.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설산의 가장 높은 곳에 우뚝한 산정은 그 산이 품은 마을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다. 그 마을들은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교통함도 없으나 홀로 빛나는 산정을 함께 보고 있다. 제각기 다른 모습을 한 사람들이 끝내는 서로를 알지 못할지라도 거룩한 산정의 모습을 함께 보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작 그 산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드문 것은 올라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리는 그와 같다. 모두가 그것의 존재는 알고 있으나 그것을 본 자는 드물다. 만나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베스라는 알 수 없는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낮게 드리워지는 목소리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았고 서늘한 기운이 음험하게 느껴졌다. 그 목소리는 마치 아베스라의 마음을 읽고 있는 듯했다.

···산정에 오르려면 많은 것을 버려야 한다. 어떤 각자는 자신조차 버리라고 하지만 죽지 않고서야 자신을 버릴 수 있겠는가. 컥컥컥!

검은 목소리는 아베스라에게 너는 이것에 목숨을 걸었더냐고 조롱하는 듯했다. 아직 살아있는 것은 끝까지 가보지 못한 게 아니냐는 비아냥이었다.

···그저 낮은 구릉의 숲을 찾아 소풍을 즐기려는 사람과 설산 꼭대기에 오르려는 사람은 같은 사람이 아니다. 존재 이유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소풍 나온 사람은 그렇게 살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설산 꼭대기에 올라야 하는 소명을 가진 사람은 자신을 버려서라도 거기에 올라야만 한다. 설령 절벽을 기어오르다 중도에 미끄러져 목숨을 잃을지라도 그 길을 가야만 한다. 왜?

검은 목소리는 제풀에 흥분하고 있었다. 아베스라는 눈을 떠서 검은 목소리의 몸뚱아리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감긴 꺼풀은 밖에서 단단히 잠긴 문처럼 열 수 없었다.

-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고작 개론 따위를 떠벌여 누구를 시험하려 드는 게냐? 너는 누구냐?

아베스라는 그의 목소리와 함께 풍겨 나오는 서늘함을 견딜 수 없었다. 세상에서 감지해 본 적이 없는 냉기였다. 차가워서 찬 것이 아니라 대기의 온도와는 무관한 서늘함이어서 세상의 감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분 나쁜 불쾌감이 잔뜩 묻어있는 냉기였다.

···크어허허, 그대가 가는 길 끝에, 저 높은 설산의 정상에 무엇이 있는지 본 존재에게 무례하구나! 세상의 비밀, 세상의 권세를 움켜쥘 지름길을 나는 알고 있다. 네가 원하기만 한다면 그 길을 알려줄 수 있다. 나를 따르겠느냐?

-어리석구나, 무지자(無知者)여! 나는 세상 따위에 관심하는 사람이 아니거늘 고작 그것을 가지고 시험하려 들다니, 한낱 늑대가 설표(雪豹) 앞에서 발톱을 자랑하는도다!

아베스라가 고함을 질러 검은 목소리를 꾸짖자 굳게 닫혔던 자신의 눈꺼풀이 열렸다. 아직은 푸른 기운이 남아 있는 하늘과 주황으로 물들어가고 있는 낮은 구름과 거기에 걸쳐 있는 산 그림자의 검푸른 어둠이 한껏 벌려진 눈꺼풀 사이로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눈앞에 있어야 할 검은 목소리의 몸뚱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다만 낮게 웅얼거리는 소리가 꼬리를 질질 끌면서 사라지고 있었다.

···우허허허, 과연 명불허전이로구나. 네 스승을 두고 하는 말이다. 40년도 더 되었었지. 그때 네 스승도 오늘의 너처럼 그랬더니. 으허허허, 다시 보자꾸나. 으허허허.

-제기랄 놈의 마구니 새끼!

아베스라는 흐려지는 검은 목소리를 향해 욕지거리를 한 덩이 내던졌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때 내 나이가 서른 셋이었습지. 용맹정진으로두 도무지 성이 차지 않아서 무신 방법이라도 챚어야 했습지. 어느 날인가 가심이 답답해서 앉아있을 수가 없었습지. 견딜 수 없어진 나는 무잭정 달리기 시작 했습지. 한 마리 짐생이 되어 달리고 달렸습지. 그라고 나서 도량으로 돌아와 앉으먼 머리가 맑은 게 참 좋더라는. 도량에 앉아서는 무념무상의 경계에 들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써야 했는디, 뜀박질을 헐 때는 그게 저절로 되더라는 게거든. 바늘 구멍 같이 좁은 곳에 마음을 오롯허게 얹어 놓을라먼 마챈가지루다 마음이라는 것두 깍고 깍아내서 고갱이만 냄겨야 허는 게라. 헌디 고것을 자재로 헐 수 있는 겡지까지 다다르지 못허믄 언제든 무너지고 너저분허게 흐트러져 버립지. 그 길을 챚어야 했습지. 하루난 다른 날과 마챈가지루 달리고 있넌 디, 뒷통수에 불촉이 날아와 꼿히닷기 뜨거운 기운이 느껴지는 게라. 얼핏 뒤돌아보구는 기겁을 했제. 등줄기를 따라 시커먼 줄이 진허게 그려진 늑대1) 한 눔이 따라오는디, 내가 뛰는 속도에 맞춰 일정한 거리를 유지 허먼서 오는 겝지. 갑재기 소변이 매려워졌습지. 그 절박한 요의는 내 공포의 표지이기도 허먼서 명료하게 떠오르는 의식의 첨단이기도 허였지만, 놈이 내 눈빛을 읽고 공격해올까 봐 의식의 본질을 쫓아가 멱살을 잡을 수는 없었겠습지. 한참 그렇게 달려가다 더는 견딜 수가 없어 돌아섰습지. 더는 그 애타는 긴장을 유지헐 수 없었던 것이었는데······, 내가 돌아서자 그 놈두 주춤 멈춰서는 게라. 아, 나는 보고 말았습지. 놈은 두 눈을 잃은 상태였던 겝지. 눈먼 늑대. 그 놈두 나만큼이나 두려움에 사로잽혀 내 리듬에 맞춰 뛰고 있었던 것 뿐이었습지. 그러니께 나의 공포는 순전히 내가 맹근 것일 뿐, 실체는 아니었던 겝지. 순간 나는 머릿속이 환해 지면서 노래 하나가 떠올랐습지!

 

있다고도 없다고도 말하지 말라

그 둘이 함께 있음은

육신을 입고 있는 혼백은 이미 알고 있느니

세상의 도가 하나인 것을

있고 없다 말하는 것은

눈 감은 이가 밤을 찾고

눈 뜬 이가 빛을 찾는 것과 같도다

눈 감은 늑대가 백주(白晝)에도 별을 보고

눈 뜬 나는 오밤중에 해를 본다네

오호라!

경계를 짓지 않으니

천하가 내 손바닥 위에 있는 것을.

 

노래를 부르면서 나는 극한의 환희에 몸을 떨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지. 그런데 눈 잃은 그 눔두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게 아닌갑? 결국 같은 곳을 보는 것은 하나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았습지. 무불통지(無不通知). 그게 나였습지. 나는 그 눈먼 늑대를 도량으로 데리고 왔습지.

내가 도를 얻었다는 소문이 초원의 바람을 타고 퍼져 나갔습지. 권력자들과 재력가들이 그들이 가진 것으로 나를 사겠다고 달려들었고, 그렇지 않은 사램들은 아모것도 허질 않으먼서 자신들을 구렁에서 건져 내라 아우성을 쳐댔습지. 그 모냥덜을 보고 있으니께 갑재기 나의 깨달음이 무화(無化)되는 것 같은 혼란이 챚어들었습지. 깨달음이라는 것도 경계였던가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습지. 나는 변복을 하고 몰래 도량을 나와 길을 떠났습지. 카스피 바다 연안 어느 곳에서 선정에 들었습지. 세상 속에서 세상을 떠난 존재로 살아가는 것과 깨달음은 유용해야 하는가는 깨달음 자체와는 또 다른 문제였습지. 세상 사람들에게 깨달은 자는 필요에 의해 재단되고 있었으므로 기실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었습지. 깨달은 나와 세상과는 여전히 화해가 불가한 모습이 아닌갑? 아, 에려운 문제였습지. 식음을 폐하고 세상 너머의 세계로 들어갔습지. 나는 그대로 미이라가 되어도 좋다고 생각했습지. 그렇게 보름쯤 지낸 어느 날, 문득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가며 똥을 싸댔는데 내 머리 위로 떨어졌습네. 하, 순간 깨달았습지. 까마귀는 내 머리 위에 똥뎅이를 내던지려고 의도하지 않았는데두 말입지, 내 의식은 말입지, 그걸 통해서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고 있었습지. 그것은 내 말로 세상의 어떤 것을 규정하려는 것 역시 욕망이고, 그렇게 규정지은 것을 통해 세상이 어떤 유익을 가져야 한다는 것도 그러하지 않은가 하는 것이었습지. 내가 도를 깨쳤다고 해서 세상이 변할 리 만무한 것은 세상에 내재한 수많은 인연이 저마다의 리듬을 가지고 작동하고 있는바, 내 깨달음이라는 게 필연의 원리 가운데 하나일 뿐이지 천지 만물 그 모두를 품는 대기(大器 혹은 大己)는 아니기 때문이라는 겝지. 그게 비록 세상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논변이라도 그렇다 이겝지. 먼젓번은 눈먼 늑대가 다음번은 까마귀가 나를 가둔 견고한 얼음을 깨는 도끼가 되어주었으니, 내 스승은 금수라! 그래서 어떤 이들은 내 말을 일러 까마귀 똥이 묻었다고 분설(糞說)이라 일컫지 않는갑? 어쨌거나 나는 거리낄 게 없었습지. 나는 존재하되 없는 사램이 되어 자재로운 상태로 도량과 초원의 풍유객(風遊客)이 되어 갔습지.

그렇게 유유자적허고 지내고 있던 어느 날, 초원의 풀들이 스스로 수관을 닫아 푸른 빛을 거두어 누렇게 말라가고 있던 무렵이었습지. 바람은 습기를 빼앗기고 아직 냉기는 품지 못한 채로 초원을 어지럽게 떠돌고 있었습지. 얇은 옷 속으로 파고드는 가을바람의 청량함을 느긋하게 즐기고 있을 때였습지. 습기를 잃은 채 피어나는 우유 곰팡이의 쿰쿰한 냄새 같은 목소리가 바람 속에서 들려왔댑지.

‘바스나2)여! 너는 홀로 껍데기를 깨고 스스로 하늘을 나는 수리와 같구나. 네 사유가 비록 우주 만물의 리듬을 볼 수 있으나 여전히 초원의 이름 없는 수행자로다. 내 발에 입을 맞춘다면 세상 끝까지 네 이름을 떨치고 세상 모든 권세가 네 발아래 무릎을 꿇도록 해 주겠다.’

아, 스승이 말했던 마구니였댑지. 세상 너머를 사는 각자(覺者)에게 나타나 세상을 미끼로 파멸을 유도한다는 마구니가 나태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온 것이었습지. 정신이 바짝 들었습네. 그눔이 내뿜는 마초(麻草)를 태운 연기에 정신을 놓아버리면 그걸로 끝장인 겝지. 나는 설산을 홀로 가는 설표의 꼬리를 단단히 붙잡았댑지.

‘우습도다, 마구니 새끼야! 세상을 떠나온 수행자에게 세상의 것을 주겠다고 악취 나는 발에 입을 맞추라는 게냐? 가서 향유로 발이나 씻어라. 내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말지어다.’

나는 설표의 꼬랑지를 놓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댑지. 의지는 거듭 물을 뿌려주고 다지지 않으면 쉽게 부스러지는 사주(沙柱)와 같지 않던갑? 깨달음도 그런 겁지. 깨달음이라는 것도 사유를 멈추는 순간부터 녹스는 게라. 마구니는 그 틈을 노립지. 특히나 깨달음을 영원의 사건으로 이해하려 들면 마구니의 유혹을 스스로 불러들이는 겝지.

그러니 공부허는 사램들이여! 설표의 꼬랑지를 잡은 심정으로, 눈을 감고 백척간두에 선 감수성으로 매진헐 일인 게라!

 

아베스라의 스승은 그러고도 두 번이나 더 마구니의 감언을 들었다고 했다.

처음 세상이 지어질 때, 그곳은 무념무상에다 무엇을 짓고 허무는 일이 없었으므로 그 자체로 완전하였다. 그러나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무리가 생겨나자 분별과 그것의 기준이 상이한 모습으로 드러나게 되었고, 그로부터 비롯한 불편을 참지 못한 사람들은 다투기 시작하였다. 욕망이 유혹을 불러왔으며 유혹은 더 큰 욕망을 부추겼다. 마구니는 인간의 욕망을 먹이로 그 힘이 더욱 강력해졌으므로 종국에는 인간은 그에게 복속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세상의 한켠에서 그것을 거부하고 처음 세상을 자신의 안에 담으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드높은 설산의 정상에 오르려 자신을 버린 사람들이었다. 세상에선 그들을 수행자라 불렸다. 마구니와 싸우는 사람들이었다.

아베스라는 자신이 마구니의 목표물이었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었다. 자신의 수행에 얼마나 많은 헛것이 똬리를 틀고 있었으면 악마조차 그걸 보았겠는가 하는 자책이 들었던 것이었다. 스승은 공부하는 사람에게 마귀가 꾀이는 것은 예삿일이라며 적당한 거리 밖에 그것을 두고 경계 삼으라고 하셨지만, 그럴 수 있는 경지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아베스라는 모르지 않았다.

갈증을 느낀 아베스라가 물주머니 주둥이를 옭아 맨 끈을 풀어 쳐들고 입에 대다가 그만 그것을 놓치고 말았다. 산비탈에 거꾸로 내동댕이쳐진 물주머니가 얼마 남지 않은 물을 쏟아내었다. 당황한 아베스라가 서둘러 그것을 집어 들려다 몸이 균형을 잃고 비탈로 고꾸라져 굴렀다.

-빌어먹을 마구니 새끼······

아베스라는 몸을 말아 두 번을 구르고는 겨우 발꿈치를 땅에 박고 일어서며 마구니를 저주했다. 그나마 무도로 수련을 한 덕이었다.

-물이 다 쏟아져버렸으니 낭패로군. 샘이 어디 있지 싶은데······

그는 넘어져 구르면서 거친 암면에 쓸린 오른팔 전완부 바깥쪽을 문지르며 물주머니를 집어 들었다. 가까운 곳에서 샘을 찾지 못하면 아래 계곡까지 내려가거나 마을을 찾아가야 할 판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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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카스피 늑대 혹은 대초원 늑대(Canis lupus campestris)라 불린다.

2) 바스나(Vasna) : ‘어디에나 존재하는’이라는 뜻으로 아그레 교단 다섯 번째 스승(五祖)의 이름.

오낙영 사진.jpg

오낙영(글쓴이, 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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