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한 제목: 국악의 본질을 찾아서
본질적 제목: 서울우리소리박물관 소개
2018년, 추석을 즈음하여 회자된 글 한편이 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김영민 교수가 쓴 <‘추석이란 무엇인가’ 되물어라>라는 경향신문의 칼럼이다. 그는 “사람들은 평상시 근본적인 질문에는 관심이 없지만 자신의 존재 규정을 위협할 만한 특이한 사태가 발생하면 새삼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라고 이야기한다. 명절에 친인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개인의 신상에 대한 지나친 관심에 두려움을 느끼는 이들에게 이 글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가 제시한 해결책은 간단하다. 누군가가 “너 대체 결혼은 언제 할 거니?”라고 물으면 “결혼이란 무엇인가?”라고 되물으라는 것이다.
‘본질’이란 ‘그것을 가장 그것답게 하는 성질’이라는 말이 있다. ‘친구’의 본질은 ‘친구를 가장 친구답게 하는 성질’이라는 것이다. 네이버 사전을 통해 찾아본 친구의 사전적 의미는 ‘가깝게 오래 사귄 사람’이다. 어찌 보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정의지만, 친구의 본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국악을 가장 국악답게 하는 성질’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국악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그 ‘방향성’보다는 ‘대중화’에 방점을 찍고 승승장구 해왔다. 정부 차원의 국가 이미지 홍보에서부터 국제적 스포츠 이벤트였던 ‘88서울 올림픽’과 ‘2002월드컵’을 통해 더욱 그 빛을 발했다. 또한 헌법 9조에 “국가는 전통문화의 계승·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여야 한다”라는 명분에 힘입어 지금까지 국가적으로 시행하는 예술 정책이나 지원에서 적어도 피해를 보지는 않았다. 이렇듯 대중적 관심은 차치하고라도 대의적 명분이 뚜렷한 국악은 그 본질에 대한 질문보다는 ‘대중화’에서 더 나아가 ‘세계화’를 통해 그 이름을 “알리기”에 급급한 실정이다. 국악이 처한 이러한 상황은 누군가에게는 ‘기회’이고 누군가에게는 ‘위협’이었을 것이다. ‘기회’로 여긴 이들은 국악의 대중화, 세계화를 꿈꾸며 국악을 ‘활용’한 다양한 시도들을 해왔고, 국악을 ‘통한’ 목적 달성에 앞장섰다. 반면, ‘위협’으로 느낀 이들은 국악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며 그 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였으리라...
어린 시절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흘러나오던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라는 프로그램이 말하고 있듯이 본질을 알기 위해서는 “찾아 나서야” 한다. 김영민 교수의 말대로 ‘존재 위협’이 있기 전까지는 선뜻 나서기 어려운 작업이다. 또한 어찌어찌 본질을 찾아 나선다 하더라도 그 답을 찾는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친구의 본질을 쉽게 단정 지어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만큼 말이다. 개인마다 생각하는 친구의 본질이 다를 수 있다. ‘눈빛만 봐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을 친구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배우자’를 친구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하거나 해를 입으면 진짜 그가 나의 친구였는지 생각하며 친구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다시 회귀하게 된다. 그러면서 친구의 본질은 또 바뀐다. 이렇듯 본질은 가변적이며 주관적이다. 하나의 정답이 있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잠정적 결론”만 있을 뿐.
음악의 본질을 ‘소리’라고 한다면, 우리 음악인 ‘국악’의 본질을 ‘우리소리’로 생각하는 것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다행히도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나서야만 했던 그들의 작업은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었고, 그 작업이 시작되고 오랜 세월이 흐른 2019년 11월 창덕궁 돈화문 앞에 소박한 규모의 공간(서울우리소리박물관)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서울우리소리박물관 전경(출처: 네이버 지도, 업체등록사진)
우리소리박물관은 한국 최초의 민요 전문 박물관으로 MBC 라디오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에서 사용한 900여 점의 향토민요와 139개 시·군 904개 마을 곳곳을 찾아, 2만여 명을 만나 담아낸 전국의 소리를 보관하고 있고 실제 들어볼 수 있는 곳이다. 홈페이지(gomuseum.seoul.go.kr)에서도 “우리소리 감상”메뉴를 통해서 편안하게 향토민요를 감상할 수 있다.
민요는 크게 향토민요와 통속민요로 구분할 수 있는데, 서울우리소리박물관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우리소리’는 향토민요이다. 향토민요는 토속민요라고도 불리며 전문 예능인들이 부르던 통속민요와는 달리 일을 하거나, 놀거나, 의식을 치르거나, 신세타령을 할 때 부르던 노래이다. 그래서 노래의 제목도 ‘집 터다지는 소리’, 통나무 베는 소리‘, ’노 젓는 소리‘, ‘신세타령’, ‘상여소리’, ‘시집살이노래’와 같이 우리의 삶의 모습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반면 통속민요는 국악한마당이나 교과서 등에 나오는 ‘창부타령’, ‘경복궁타령’, ‘진도아리랑’, ‘육자배기’와 같은 민요로 기교와 창법에 있어서 탁월한 기량을 요구한다.
서울우리소리박물관에서 들을 수 있는 향토민요들은 ‘국악’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많은 ‘소리’들 가운데 하나이다. 그 가운데 가장 투박하고 솔직하고 꾸밈이 없는 향토민요는 이제 ‘박물관’이라는 이름의 공간에 ‘보존’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우리의 삶 속에서 불리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우리의 ‘삶의 형식’이 바뀌고, 전문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대체할 다른 ‘소리’들이 많이 생긴 것이다. 본질은 가변적이며 주관적이다. 서울우리소리박물관이 보관하고 있는 ‘우리소리’가 지금의 나에게 국악의 본질로 다가오고 있지만 나를 배신할 순간도 있으리라... 제도권으로 들어온 ‘우리소리’가 부디 그 본질적 모습을 오래 지켜나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