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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헌의 인문의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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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헌 인문(人紋)의 종교 27 - 코로나 사태 이후의 한국교회

posted May 02,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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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무늬인 종교성에 대한 성찰 27 : 코로나 사태 이후의 한국교회

 


생활방역으로 바뀌며 사회 활동이 재개되고 있다. 두 달간 예배당을 폐쇄한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은 교회의 손길은 분주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불안하다. 왜일까? 어떤 이는 ‘주일성수’를 비롯하여 교회를 지탱해온 종교적 관습이 허물어진 상태에서 이전으로 돌아가기 어렵게 되었다 한다. 하지만 한국교회가 느끼는 불안은 단지 해체된 관습 때문만은 아니다. 거기에는 보다 오래된 두려움이 있다. 이를테면, 31번째 확진자를 통해 알려진 대구 신천지 교회의 무책임한 모습은 사실 오래전부터 한국교회를 통해 본 ‘데자뷰’ 같은 느낌이랄까.
사회에 비친 대부분의 교회 모습은 이단으로 불린 신천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신천지 직전에는 태극기 부대가 있었고, 그 이전에는 뉴라이트와 한기총이 있었다. 코로나 사태 훨씬 전부터 한국교회는 신천지 못지않은 비판을 받아왔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교회의 일차적 사명은 환골탈태였으나, 그것을 계속 유보한 채 종교적 관습에 기대왔다. 대부분의 교회 강단은 근본주의 신학의 무대였고, 낡은 정신에 묶인 교리는 성공과 축복을 향한 기복 심리를 경건하게 꾸미는 도구였다. 코로나 사태 이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교회의 불안은 거기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몇 년 전 종교학자 길희성의 '아직도 교회 다니십니까'라는 책이 출판되었다. 그 제목이 마치 외부자의 조롱처럼 들리지만, 실은 니체가 ‘가장 젊은 덕성’이라고 말한 ‘정직’에서 비롯된 비판이었다. 그는 한국교회가 맞은 위기의 본질을 비난받을 만한 행동에서가 아니라 그 메시지에서 찾았다. 신학이 문제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교회에 시급한 것은 ‘철학적 영성’이라고 말하면서, 세 가지 과제를 주문했다. 첫째, 반지성주의를 유포하는 근본주의 신학의 극복. 둘째, 과학과의 대화를 통해 초자연주의적 기적 신앙의 극복. 셋째, 동양종교와의 만남을 통한 배타적인 정신의 극복. 코로나 사태 이후를 살아갈 교회의 과제이기도 하다.
종교적 실패의 근원에는 세계관의 취약성이 있다. 종교가 과학에 의해 고통을 당하는 이유도, 지성의 의무를 다하기보다는 자족적인 현학에 머물며 자신을 과도하게 두둔하는 이유도, 열성분자들의 맹신을 방관하는 이유도 모두 자기 시대의 지성에서 이탈한 종교 정신의 무기력에서 비롯된다. 기독교 신학은 주로 신의 초월성을 강조한 ‘초자연주의 신관’에 의존함으로써 목소리를 높였으나, 바로 그것으로 말미암아 항상 위기를 맞았다. 빈약한 종교적 세계관이 기독교의 영성을 편협한 방식으로 이끌면서, 과학과의 대화에서는 무신론적 회의를 빚어냈고, 자연의 신성을 부정하는 정신습관을 태동시켜 생태계를 파괴하는 문명의 폐해로 나타났다.
기독교의 위기가 단지 길을 잃은 신앙과 신학의 문제만은 아닌 것은, 그 배후에 목적과 의미를 상실한 현대문명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자신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세계의 영적 빈곤을 함께 해결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배타적인 종교성과 공격적인 정신을 떨쳐내고, 포용적 영성에 기초한 기독교 신앙이 필요하다. 그것이 교회의 존재 이유와 복음의 의미여야 한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교회는 자신을 성찰할 기회를 반강제적으로 갖게 되었다. 축복의 배분에 관심하는 부르주아적 사교로 인해 삶의 모험을 상실한 교회, 현세적 기복주의와 내세적 타계주의를 오가며 추구해야 할 뜻의 모험을 저버린 신앙, 온 세계를 성례전으로 삼아 끊임없이 창조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교리에 유폐시킴으로써 앎의 모험을 상실한 신학, 그것으로는 내일을 지어낼 수 없다는 것이 확연해졌다. 교회가 이제 가보지 않은 길을 가야 한다면, 필요한 것은 모험이다. 근본주의 신학의 포로가 된 한국교회에 맞서 싸우다 파문되었지만, 자신이 바로 새로운 길이 되었던 김재준 목사의 ‘동경(憧憬)’이라는 글을 나누고 싶다.

잔잔히 흐르는 골 물의 마음, 그 마음속에는 온 계곡을 뒤흔들 일만 길 폭포의 꿈도 있을 것이며 아득한 바다 만 갈래 물결에 어울려 춤출 포부도 있을 것이다. 돌 틈에 싹튼 애송이 풀잎에도 전 우주의 정기가 풍겨있고 진흙 속에 뒹구는 도토리 속에도 대 상수리나무의 가능성이 감추어 있다. 꿈꾸는 자, 위대한 동경과 약속에 사는 자! 그의 이름은 젊은이다. 티끌 속에 묻히면서도 ‘새 하늘 새 땅’의 약속에 기뻐하며 병과 죽음에 시달리면서도 영광의 몸을 덧입는 환상(vision)에 사는 자, 그 불굴의 젊은 꿈이 이 강산에 타올라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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