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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별의 다큐이야기] 유성기업 이야기 7 - 추모의 꽃과 해고자 11명

posted Sep 2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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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별의 다큐이야기 ] 유성기업 이야기 7 - 추모의 꽃과 해고자 11명
 


2018년 6월 9일 토요일 오후 1시, 청와대 앞에서는 <최저임금 삭감법 폐기! 문재인 정부 규탄! 민주노총 수도권 결의대회>가 있었다.
무대로 쓰는 트럭 앞에는 ‘최저임금 삭감법,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말로만 노동존중, 노동 적폐’라고 쓰인 파란 천과 빨간 글씨가 박힌 얼음 네 덩이가 있었다. 땡볕 아래 모여 있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최저임금 삭감법을 폐기하라고 주장했고, 적폐를 부수듯 얼음을 깨며 결의대회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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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앞 민주노총 수도권 결의대회

 

 

같은 날 오후 3시, 서울시청광장에서는 제27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 추모제가 열렸다.
민족민주열사 및 희생자들 중 맨 아랫단 오른쪽에서 22번째 한광호 열사 사진이 있었다.
‘2016. 3. 17. 한광호, 유성기업 영동공장 노동자. 회사의 노조파괴에 대항하여 싸우다 자결 후 사망.’ 
1959년부터 2018년까지 역사 속 열사와 희생자들 중 그를 설명하는 한 줄이었다. 직업과 사망 원인으로 정리되는 한 사람의 인생 앞에서 내 묘비명을 생각해 보았다. 내 죽음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무슨 정의를 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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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 추모제

 


7월 27일 11시 30분 대검찰청 앞, <유성기업 노조파괴사건 검찰은폐규탄 기자회견>이 있었다.
웬일로 지상파 방송사 카메라가 왔다. 9시뉴스에 현대자동차가 유성기업을 압박하고 노조파괴를 지시했음이 보도되었다. 여타 매체에서도 보도가 이어졌다. 세상이 변하고 있었다.

같은 날, 지난 5월에 오체투지하며 청와대비서실에 보내서 국민신문고로 이첩된 민원에 대한 답변이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으로 왔다. 
‘“유성기업 노조파괴(부당노동행위)를 지시한 현대자동차 임원을 처벌하고, 유성기업 유시영 대표이사는 위 사건과 관련하여 징역 1년2월의 실형을 선고받아 복역하고도 이후 개별 민사소송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노조원들을 괴롭히고 있으므로, 기업의 노동자 괴롭힘이 근절되도록 유성사건을 통해 엄정한 기준을 마련하고, 기업의 손해배상, 고소고발 남발에 대하여 근로자를 보호하는 정책이 수립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에 대하여 ‘담당검사(정재신)는 진정내용을 검토 후 “노조파괴(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하고 있는 유성기업과 현대자동차 관계자들을 엄벌해 달라는 내용인바 그 취지가 수사에 충분히 반영될 수 있도록 본 진정서를 관련사전 기록에 편철하고 종결함”이라고 결정하였’다는 통지가 왔다. 글자 그대로 진정 사건의 접수 및 처리상황에 대한 안내이며, 진정사건 종결에 대한 결과는 아니었다. 변화의 속도가 빠르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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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기업 노조파괴사건 검찰은폐규탄 기자회견

 


8월 8일 수 11시 30분 양재동 현대 본사 앞, <유성기업 노조파괴사건 현대차 개입규탄 기자회견>이 있었다. 땡볕 아래 15분간 몸싸움이 있었고, 노조 측이 발언 후 항의 서한을 전달하려는데 용역들이 길을 막고 터주지 않았다. 한참 만에 항의서한을 주차장 줄 너머 땅바닥에 던져놓고서야 실랑이는 끝이 났다. 사람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고 잠시 후 나는 항의서한이 어떻게 돼 있나 걱정스러워 다시 그 자리에 가보았다. 주차장 출구에 떨어진 항의서한을 자동차들이 밟고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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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기업 노조파괴사건 현대차 개입규탄 기자회견

 

 

8월 13일 월 오전11시 서울남부지방법원 앞 <노조파괴범 심종두 엄정처벌촉구 피해자 기자회견>은 23일에 있을 창조컨설팅 1심 선고를 앞두고 피해자들과 변호인이 6천 장의 탄원서와 함께 목소리를 내는 자리였다. 대신증권, 보건의료노조 영남대의료원지부와 경주지부 발레오만도, 유성기업 등이 참여했다. 경기지부 에스제이엠 김용기 수석부지부장이 낭독한 기자회견문엔 명문장이 많았다.
‘로펌 김앤장은 식칼을 법전으로 바꿨을 뿐이다. 그들의 화려한 사옥은 노동조합의 무덤 위에 쌓아올린 학살의 기념탑이다. 그리고 21세기의 대한민국에는 창조컨설팅이 있다. 이들이 창조한 것은 노동3권이 발붙이지는 못하는 현장과 노동자가 노예로 전락한 일터였다. 이런 범죄를 저지르고도 이들은 부를 축적했다. 왜냐하면 이 나라의 자본주의는 그래도 되는 자본주의이기 때문이다. 창조컨설팅이 파괴한 노조뿐만 아니라 그 올가미 안에서 고통 받은 노조가 전국에 160여 개다. 이건 단지 160개의 노동조합이 아니다. 그 하나하나의 노동조합에는 또 수많은 조합원의 삶이 있다.’
우리는 모두 열흘 뒤, 파괴된 노동조합과 조합원들의 삶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길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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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파괴범 심종두 엄정처벌촉구 피해자 기자회견

 

 

그 날 밤, 모 인터넷 신문에서 내 탈핵 르포를 이름까지 바꿔 도용 및 무단전재, 배포한 것을 발견했다. 지난 일 년 간 선의라는 명목으로 인터넷 매체에 무료 배포했던 내 모든 수고가 시궁창에 빠지는 순간이었다. 내 땀과 눈물은 아주 쉽게 도둑질 당했으며 나는 내 노동의 소산이 그렇게 비참하게 소모되는 것을 목격하고는 더는 한 줄도 쓰기 싫었다.   

8월 20일 월, 용인에서 수원까지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를 하고 서울에 올라와 광화문 앞에서였다.  평소에도 찾는 이 별로 없는 전화기가 무음으로 울렸다. 낯선 번호였다. 내 본명을 묻기에 맞다고 했다. ‘전태일 문학상’ 생활기록문 부문에 <유성기업 이야기>가 당선됐다는 소식이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몇 사람이 떠올랐다. 순서를 정해야했다. 그 기쁨에 벅찬 소식을 전해 줄 사람으로 가족보다 먼저 엄기한 아산지회 부지회장을 택했다. 그는 지난 일 년 간 내게 유성의 소식을 알려주고 노동운동의 ‘노’자도 모르는 내가 이것저것 물어보던 사람이었다. 유성기업이 없었다면 내게 그러한 영광도 없었다. 그 상은 마땅히 유성기업 노동자들과 함께 받는 것이었다. 그 상은 운동권도 아닌 내가 체계적인 학습도 없이 무턱대고 뛰어든 세상의 밑바닥에서 비정규직 작가로 당할 수 있는 온갖 부조리의 끝에 다다라 절망하고 있을 때, 그래도 힘을 내서 더 쓰라고 내려준 희망의 선물이었다.  
 
8월 21일 화,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를 하다 말고 경기도청에서 서울 고용노동청 앞으로 갔다. <노동부 특별조사촉구 민주노총집회>가 있었다. 그 날 갑작스런 몸싸움이 있었다. 가설무대 앞에서 고개 숙인 몸 옆으로 경찰방패가 휙 날아갔다. 경찰들을 잡아 뜯으며 절규하는 노동자들과 서로의 팔을 끼고 땀을 비 오듯 흘리는 경찰들 사이에서 나는 황망했다. 그들은 서로 싸울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폭력은 슬픔으로 다가온다. 분노의 밑바닥에 존재하는 슬픔으로. 나중에야 그 날 몸부림치던 이들이 나와 같은 비정규직이란 걸 알았다. 나는 제 발로 조직 구조를 벗어났지만 그들은 그 구조 속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울부짖고 있었다. 세상의 노동자들은 고용 측면에서 보면 단순하게 하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각 사업장과 개인의 사정으로 세분돼 있다. 종종 느끼지만 지난 8년간 유성기업이 지금처럼 단단히 버텨올 수 있었던 힘은 노동조합이라는 집단적 단결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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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청 앞 민주노총 결의대회

 

 

8월 23일 목,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가 경기도 과천에서 서울로 들어 온지 얼마 안 돼, 유성기업에 압수수색이 들어왔다는 연락을 받았다. 갑작스런 사태에 아산으로 가야하나 망설이다가 서울남부지방법원으로 향했다. 오후 2시에 노무법인 창조컨설팅 심종두 대표와 김주목 전무의 1심 선고가 있었다. 창조컨설팅은 지난 7년간 14개 노동조합을 무너뜨렸고 총 168개 기업을 컨설팅 해 9개 노조를 완전히 파괴했다. 부당노동행위와 불법노조파괴 컨설팅으로 2012년 10월 3년의 등록정지 처분을 받았으나 2016년 7월 다시 다른 이름(글로벌원)으로 노무사 등록을 했다.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노조파괴를 지속하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둘은 두 시 직전까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정각에 법정에 들어왔다. 판사는 판결문을 읽어 내려갔고 마침내 징역 1년 2월 벌금 1천만 원 형을 선고했다. 그들이 유성기업 노조를 파괴하고 받은 돈 13억 원에 비하면 턱없는 액수였지만……. 모처럼 아산지회장의 웃는 모습을 보았다. 나도 흐뭇했다.
다음 날,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에서 전주인보성체수도원 수녀님께서 전 날 순례 중간에 급하게 사라진 나와 그 이유였던 유성기업을 위해 기도하셨다는 고백을 들었다. 생면부지 나를 위해, 알지도 못하실 유성기업을 위해 기도하신 수녀님, 그렇게 수많은 약자를 위해 이름 없이 빛도 없이 하늘에 상달되는 기도 덕에 세상이 이만큼 유지되고 있다는 생각을 들자, 한없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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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들에게 기쁜 소식을 알리는 도성대 아산지회장

 

 

9월 11일 화요일에 전태일 문학상 수상자 인터뷰 신문기사가 났다. 한광호 열사가 떠올랐다. 그의  어머니를 찾아뵙고 싶었다. 9월 19일 수요일, 무궁화호를 타고 영동으로 갔다. 한광호 열사 어머님은 개량한복을 곱게 입고 계셨다. 사진을 다 찍은 후, 영산홍이 피면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여전히 고맙다시며 내 손을 잡고 놓지 않으시는 어머님께 나는 ‘아드님 덕분에 상을 타게 됐어요.’라는 말을 못하고 삼키고만 있었다. 어머니는 내 마음을 읽으셨는지,
“지금도 조용히 있으면 ‘엄마, 나 왔어.’ 그러고 들어올 것 같아요.”라고 하셨다.   
어머님은 큰 아들 국석호 씨가 해고자라는 사실을 모르신다. 작은 아들의 죽음만으로도 충격이 크신데 큰 아들의 해고 소식까지 알면 감당이 안 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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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광호 열사의 어머니와 형

 

 

2011년 5월 18일, 유성기업은 노조탄압을 시작하며 27명을 해고했다. 2013년 노동부가 구속수사를 건의하던 시기에 기업 측은 해고자를 복직시켰지만 3개월 후 11명을 재해고하고 나머지 13명을 중징계했다.(그 사이 두 명은 퇴사, 한 명은 병가를 냈다.) 국석호 씨는 재 해고된 11명 중 한 명이었다.
나는 그와 함께 동생 한광호 열사가 마지막 숨을 거둔 정자를 찾았다. 그리고 작년에 못 가져온 막걸리 한 병을 정자 밑에 뿌려주었다. 우리는 정자 위에 올라가서 광호 씨와 광호 씨 아버지와 유성기업의 복수 노조, 50년 만에 생긴 포스코 노조, 그리고 해고와 복직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나 역시 해고와 복직과 퇴사를 간접 경험한 이로서, 허우대만 멀쩡한 작가라는 직함 이면의 고단한 일상을 말하자, 그도 본인 해고 직후 아내가 식당에 가서 처음 번 돈이 월 60만 원이라고 했다. 지난 8년간 해고자들은 그런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본인은 부당노동행위와 손해배상청구소송과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가족들 역시 고달픈 심신으로 고통 받은 세월이었을 것이다. 이제 그 끝을 볼 날이 다가왔다.
2018년 10월 4일 오전 10시, 유성기업 1차 해고자 11명의 대법원 판결이 있다.

지난 일 년 간 유성기업 사람들을 찍은 사진 중 그들 열한 명을 찾아보았다. 그들은 누구보다 열심히 투쟁하고 있었다. 그들이 어서 노조파괴 없는 회사에서 자신들의 기계 앞으로 돌아가 밤을 새지 않고도 공들여 제품을 생산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그리고 남은 8명도 함께 희망의 길을 걸었으면 좋겠다. 
 


2018년 10월 4일 최종심 선고를 앞두고 있는 해고자 11명 (지회별 입사순)
 

아산지회 /
도성대 지회장 (1987년 입사 · 생산5과)
정일선 (1987년 입사 · 생산3과)
김성태 (1992년 입사 · 생산1과)
엄기한 부지회장 (1994년 입사 · 표면처리)
김순석 (2000년 입사 · 생산1과)
이태영 (2000년 입사 · 연마과)
홍종인 (2004년 입사 · 검사과)

 

영동지회 /
이정훈 지회장 (1987년 입사 · 관리부)
국석호 (1994년 입사 · 주조부)
김선혁 (2001년 입사 · 주조부)
김수종 (2004년 입사 · 생산부)

그리고 남은 8명
아산지회 / 조재상 김수환 박정성 김완규 김일겸
영동지회 / 홍완규 최상철 최희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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