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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별의 다큐 이야기] 유성기업 이야기 16 - 이제는 안녕, 유성기업

posted Jan 0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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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별의 다큐 이야기] 유성기업 이야기 16 - 이제는 안녕, 유성기업  

 

 

2020년 12월 21일은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동지였다. 그날은 목성과 토성이 만나는 그레이트 컨정션(great conjunction)이 일어난 날이었고 우주의 먼지에 불과한 내 인생에도 매우 중요한 일들이 생긴 하루였다. 

 

9월 29일 조재상 유성기업 아산지회 사무장 가석방 이후 10월 20일 대전 고등법원 앞에서는 현대자동차의 하청업체 유성기업에 대한 노조파괴 지시를 한 임직원 구속 촉구 기자회견이 있었다. 그 날 이후 유성기업 사람들을 만날 수는 없었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유행병으로 인해 국내 다른 모든 길들도 막혔다. 기다림은 다시 시작되었고 교섭은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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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6일, 유성기업 노사교섭은 승자도 패자도 없는 지리한 싸움을 끝내자는 공감대로 대승적 의미에서의 합의를 보았다고 한다.   

11월 11일 수요일 교섭은 한 주 연기됐고, 18일 교섭은 결렬되었다.  

11월 30일은 이만희 조합원이 대전교도소에서 가석방으로 나오는 날이었다. 9월보다 훨씬 흉흉한  확진자 현황으로 나는 집밖에 나갈 수가 없었다. 이 날 29차 교섭에는 사측 대표로 유현석, 이종범, 최종일 노측 대표로 도성대, 이정훈, 김현재가 나왔고, 109조(쟁의중신분보장)가 주요 안건이었다고 한다. 유현석 사장이 직접 나왔다니 약간의 희망을 가져보았다. 

 

2020년의 마지막 한 달인 12월이 되었다. 바이러스가 창궐한 세상은 시시각각 몰라보게 달라지고 있었다. 달라지지 않은 건 기약 없는 기다림의 시간 속에 웅크리고 앉은 자세뿐이었다. 하루하루가 길었고 한 주 한 주가  더뎠다.         

12월 8일 30차 교섭은 다음 주로 미뤄졌다. 

12월 15일 31차 교섭은 하루 종일 기다려 물어봤더니 정년 퇴임식으로 인해 다음 날인 16일 수요일로 미뤄졌다고 했다. 일주일 간격으로 교섭날짜만 타진하고 있던 나는 바싹바싹 애가 탔다. 

노사는 12월 18일 32차 교섭에서 최종결정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막상 당일이 되자 결론을 못 짓고 또 다음 주 월요일로 연기했다. 

마침내 12월 21일 자정을 3분 남기고 들은 소식은 33차 교섭은 마무리, 다음 날 보고대회와 찬반투표였다. 10년 노사 갈등이 마침내 끝난 것인가? 얼떨떨했다. 그러나 다음 날 확인을 해 봤더니 어용노조와의 조율 문제로 아직 깔끔한 마무리를 못 하고 있었다.  

그날 이후 열흘을 하루하루 바짝바짝 마르는 기다림으로 지났다. 매일 저녁에 확인을 했고 돌아오는 대답은 모르겠다, 변화 없다 였다. 교섭을 했다는데도 왜 그렇게 애가 탔냐면 2019년 10월 마지막 날에도 노사가 잠정합의를 했으나 수감 중인 유시영 회장의 번복으로 무효가 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싸움은 그래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2020년을 하루 남겨둔 12월 30일 밤, 유성기업주식회사와 전국금속노동조합 유성기업 아산·영동지회는 드디어 단체협약에 합의 했다. 아산 공장장 상무 이종범과 아산지회장 도성대의 서명이 된 합의서를 보자 감격의 눈물이 터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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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의 마지막 날 아침, 아산으로 향했다. 기억해보니 2018년 마지막 날에도 천안에서 유성과 함께했었다. 전과 다르게 (주)유성기업 경비원의 태도가 매우 친절했다. 그들에게 압력을 가하던 한 사람이 산재로 회사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식당에 들어섰다. 회색 작업복을 입은 노조원들이 한 줄로 서서 투표를 하고 있었다. 2011년~2020년 임금단체협약, 현안문제 잠정합의안 찬반투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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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0시에 개표를 했다. 

 

아산지회 136명 중 투표자 122명, 기권 14표, 찬성 111표, 반대 11표

영동지회 124명 중 투표자 118명, 기권 6표, 찬성 99표, 반대 19표 

 

92.3% 투표율에 찬성 80.7%, 반대 11.5%, 기권 7.6%로 가결! 

그것으로 유성지회 노동조합은 10년의 투쟁을 마무리했다. 

경영진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노동조합의 유감 표명, 부당노동행위 재발방지 약속 및 CCTV 철거, 2011년도부터 2020년까지  임금 인상과 특별 생산 기여금 및 위로금 등이 합의 내용이었다. 그렇다면 이 지난한 싸움의 시발점이었던 주야간 근무를 주간 연속 2교대 근무로 바꿔달라는 조항은? 그것은 어용 노조와의 합의가 필요하기에 다음 단체협약에서 결정하기로 하고 그때까지 실행준비 팀을 운영하기로 했다. 

투표가 끝나자 조합원들은 다소 편안해진 얼굴로 조용히 근무지로 돌아갔다. 그 날도 야간근무는 계속됐다. 이미 현대자동차 등 다른 회사에서는 중지된 근무형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역깡패를 동원한 노무법인과 대기업의 노조파괴 획책에도 유성기업의 민주노조는 유지되었다. 

  

바이러스가 장악한 세상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늘 했던 우스갯말처럼 아산에서 소 잡고 영동에서 떡 해서 모두 모여 잔치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연말 분위기는 얼어붙은 강바닥처럼 고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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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5월 18일부터 시작된 10년 투쟁의 유성기업. 그들을 만난 지 만 4년이 되었다. 

2016년 3월에 한광호 열사가 목숨을 버리고 그해 12월 10일 제 7차 촛불집회에서 그의 모형을 보았다. 도대체 왜 죽었을까, 로 시작된 물음은 <길목인> 창간과 더불어 2017년 8월 9일 향린교회 <도시락 싸들고> 윤선주 조합원을 만나면서 유성기업 노조원들과 이어졌다. 

양재동 현대본사 앞 천막 농성장, 대법원, 대검찰청, 천안지원, 대전지원, 동부지검, 유성기업 아산 공장과 영동 공장, 한광호 열사가 숨진 현장과 공원묘지 그리고 어머니가 계신 집, 유성기업 서울 본사, 고용노동청, 국회 앞과 시청 앞, 광화문과 청와대 앞……. 나는 유성기업 노조원들이 걸을 때 함께 걸었고 엎드릴 때 같이 엎드렸고 땅바닥에서 밥을 먹을 때 옆에 앉아 먹었다. 비를 맞을 때나 직사광선을 쏘일 때 곁에 있었다. 

그 일 년의 기록으로 2018년 11월 전태일 문학상을 수상했다. 영화로는 <사수>가, 문학으로는 내가 그렇게 세상의 인정을 받을 때 노조원들의 삶은 달라진 게 없었다. 이후로 나는 더욱 그들 가까이에 있었다. 그들로 인해 받은 은혜를 갚아야 했고, 한결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나는 노동운동 같은 거룩한 뜻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거의 없다. 내게는 그저 약간의 의리가 있었을 뿐이다. 내가 아는 사람들이 고생을 하니까 그 자리에 같이 있어주었다. 딱히 해 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서 그저 외롭지 말라고 함께했다. 얼마나 많은 기자회견에 기자가 한 명도 오지 않은 적이 많았는지 뻘쭘히 서있던 내가 오히려 민망한 적이 많았다. 더 잘 찍지 못해 더 잘 쓰지 못해 아쉬운 날들이었다. 들어도 모르겠는 소리를 기자회견문을 읽고 또 읽어야 이해를 했고 그래서 묻고 또 물었다. 그렇게 알게 된 사람들……. 

 

도성대 아산지회장은 매사에 솔선수범했고, 이정훈 영동지회장은 아무리 힘들어도 늘 싱글싱글 웃어주는 여유가 있었다. 김성민은 다정다감했고 홍종인은 당당했다. 양희열은 감정이 풍부한 만큼 고초도 많았다. 김성태와 정일선에게서는 유성노조의 연륜이 보였다. 국석호는 먼 친척처럼 느껴졌고, 김수종은 늘 수줍어해서 더 마음이 쓰였다. 순한 김순석, 눈물 많은 이태영과 엄기준, 용역 폭력 현장을 보여준 김일겸, 묵묵한 최상철과 말수 적은 김선혁, 엄동설한 천막에서 비디오 촬영했던 진기석, 이석오, 이상헌, 김달곤, 김태형 등과 장례식장에서 만난 박문열, 부드러운 성한식, 박식한 신동철, 푸근한 윤영호, 오체투지 때 북치던 조근주와 얼음세수 하던 엄주인, 마지막 해고 위기를 넘긴 김수환, 단단한 조재상과 든든한 안원영……. 이름을 다 거론하지 못하는 수많은 조합원들, 그들 모두인 유성과 나를 이어준 엄기한 아산지회부지회장은 이제 믿을 수 있는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영혼의 동생처럼 여기는 한광호 열사와 그의 어머니. 모두 잊지 못할 유성의 사람들이다.       

 

유성기업 투쟁 10년을 함께해 온 동료 노동자들, 변호사들, 시민사회단체들, 진보정당들이 있었기에 이 승리가 가능했다. 그리고 고통과 슬픔을 함께 겪은 그들의 가족과 노동조합을 목숨처럼 지켜온 그들 자신이 있었기에 이 싸움은 이길 수 있었다. 

 

2019년 9월 4일, 유시영 회장 외 2명에게 배임·횡령죄가 선고되던 날, 나는 이미 한 번의 이별을 연습했다. 가장 기쁠 때 떠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2020년의 마지막 날, 2018년부터 내내 신어 다 떨어진 운동화를 버렸다. 기어이 맞은 승리의 날이었기에.  

유성기업 노동조합의 10년 싸움 중 4년을 그들과 함께하게 했다. 끝까지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참으로 다행스럽다. 유성, 내 첫사랑. 이제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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