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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는 즐거움, 희망 충전 프로젝트 매니저 - 홍태영

posted Oct 3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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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는 즐거움, 희망 충전 프로젝트 매니저- 홍태영


일을 믿고 맡길 사람이 필요한데 누가 있을까? 이거 잘 모르겠는데 누구에게 물어보면 좋을까? 그럴 때 딱 1순위로 떠오르는 사람. 때로 자신이 모르는 분야라 할지라도 성심껏 조사해서 알려주는 사람. 길목협동조합과 향린교회에서 5년여 지켜본 홍태영 조합원은 주변 사람들에게 그런 존재다. 그리고 예의바르다, 반듯하다, 성실하다, 친절하다 등등 웬만한 좋은 수식어들이 잘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다.

인터뷰를 위해 홍태영 조합원을 만났다. 늘 그러하듯이 웃는 얼굴로 반갑게 인사한다. 그런데 그의 첫마디는 “인터뷰를 거절했어야 하는데... 특별한 이야기도 없고 아마 30분이면 끝날 텐데... 제가 잘하는 게 잘 들어주는 건데 말하는 자리에 나와서 되게 어색하네요.”였다. 그리고 주인 할머니의 고운 주름처럼 20대, 30대 청춘의 추억이 새겨져있다며 삼청동 단팥죽 집으로 안내했다. 그의 예상과 달리 인터뷰는 3시간 너머 이어졌다.


Q: 고민 상담하자는 분들이 많은가 봐요.
A: 저한테 와서 하소연하는 사람이 많아요. 일단 잘 들어주거든요. 이해해주고, 공감해주는 면도 있고 무엇보다 들은 이야기를 옆으로 흘리지 않기 때문에 제게 고민을 풀어놓는 것 같습니다.

Q: 예를 들면...
A: 얼마 전에 사무실 후배가 “책임님.(제가 직급이 책임이거든요) 저랑 이야기 좀 합시다” 했어요 그러면 저는 늘 묻습니다. “이야기가 몇 분짜리인데? 5분이냐 20분짜리냐, 그에 따라 산책할 행선지가 달라진다.” 지금 있는 사무실이 광화문인데요, 처음엔 얘기가 길지 않다고 해서 서울경찰청 앞을 도는데 함께 일하는 어떤 상황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하는 거였어요. 딱 듣는 순간 ‘이건 30분도 넘는 이야기다 저리로 가자’ 해서 긴 코스로 잡았어요. 남산이 보이는 시원한 공간에서 낮술이지만 맥주 500씩 마시면서 충분히 들어주었죠.

Q: 고민을 직접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네요.
A: 누구도 대신 해결해 줄 수 없지요. 하지만 누구에게나 감정을 배설할 창구가 필요하거든요. 다 쏟아낸다고 해서 고민이 다 해결되지는 않지만, 어떤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고 불리우는 절대적 신이 나타나서 ‘땅땅땅 판결 끝’ 해주는 것은 아니지만, 쌓인 울분이라든지 억울함이라든지 응어리는 풀어지는 거죠. 그 후배도 그랬고, 그렇게 감정을 쏟아내고 나면 실제로 많이 좋아지는 모습을 봐요.

 


30대, 일이 재미있어서 일에 파묻혀 살다

Q: 하는 일이 어떤 일이세요?
A: 지금 하는 일은 공공기관에서 진행하는 IT사업 공공프로젝트를 제안서 작성, 계약에서 최종 결과보고까지 전체적으로 관리하는 PMO 프로젝트 매니저 오피서입니다. 공공부문에 입찰하는 제안서를 쓰는 일이 제가 제일 좋아하는 일이고 가장 자신 있는 일입니다.

Q: 컴퓨터분야를 전공하셨어요?
A: 아니에요. 저는 문과 출신입니다. 대개 개발자분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말로는 표현해도 글로 써달라 하면 잘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술적으로 부족하더라도 제안서를 완벽히 쓸 수 있는 핵심은 잘 듣고, 글로 잘 정리하는 데 있죠. (1단계) 개발자들에게 제안서를 200장을 써야하니까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을 모두 설명해달라고 부탁합니다. (2단계) 설명을 듣고 제안서 장표 템플릿을 만들고 개발자들이 내용을 잘 풀어낼 수 있도록 질문의 틀을 짜줍니다. 그 칸에 채워 넣기만 하면 되게 하는 거죠. 마지막으로 (3단계) 기술자의 답변 내용을 토대로 제안서 구성, 디자인까지 다 잡아주는 거죠.


내심 놀랐다. 향린교회에서 길목협동조합에서 만난 평소 모습이 아니다. 홍태영 조합원이 자신을 내세우거나, 드러내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를 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자신의 일에 대해 말하는 그의 느낌이 다르다. 분명하고 거침이 없다.

Q: 일 자체를 즐기는 편인가 봐요?
A: 덤비는 일을 겁내지 않고요, 일이 재미있나, 없나를 고민하거든요. 남들은 뭘 바라고 일을 그렇게 하냐고 말하기도 하는데,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재미가 있다면 마냥 해요. 제가 가장 오래 다녔던 회사에선 주말도 없이 일했었는데.. 만일 지금처럼 주5일 52시간 근무로 포괄연봉제(야근비와 식대를 다 포함)가 아니라 야간근무수당을 다 챙겨 받았다고 계산하면 아파트 한 채를 사고도 남았을 거예요.

Q: 한번 직장에 들어가면 옮기지 않고 계속 다닐 것 같은데...
A: 저는 생각보다 모험심이 강해서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성향이 강하고요, 환경이 바뀌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입니다. 제가 5년 동안 주말도 없이 일할 수 있었던 것은 매출 20억, 20명 정도 소기업에서 매출 100억을 넘어 중견기업으로 성장해가는 과정 그 자체가 너무 재미있었던 거예요. 나름 비전을 갖고 있었고. 특히 제 또래 친구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재미있었어요. 함께 일하고, 끝나면 밤이 늦어도 스타크래프트 게임 한판하고 맥주 한 잔으로 피로를 풀고... 힘든 줄 모르고 즐겁게 일했는데 어느 시점에 벽을 만나 좌절감이 몰려왔어요.

Q: 좌절감이라면...어떤 것이었을까요?
A: ‘기업이라는 것 자체가 결국은 이해집단이구나. 다 함께 성장하고 다 함께 그 결과를 누리고 다 함께 같이 가는 공동체 같은 거라 낭만적인 생각을 했었는데 그렇지 않구나. 어떤 사람들은 선의를 갖고 함께 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 선의를 이기적으로 이용하는 사람도 있구나, 그 안에서 정치를 하는 이들도 있고, 함께 일했는데 과실을 독식하는 사람은 따로 있고...아... 그렇구나’ 하는 좌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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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시점에서 한 대기업과 컨소시엄을 이뤄 200억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를 준비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도전하고 싶었던 일이어서 무거운 감정은 일단 접어두고 프로젝트 제안서를 정말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제안서 수준도 높았고, 자신감도 충분했는데 결국 떨어졌습니다. 크게 실망했지요. 그래도 사업을 수주하던 실주하던 제안서를 쓰고 나면 회사에서 휴가를 줘요. 오랜만에 늦잠 자고 일어나서 라면을 끓여 한 젓가락 하면서 마침 텔레비전을 켰는데 후쿠시마에서 일어난 지진과 쓰나미 상황이 생중계 되고 있는 거예요. 집도 떠내려가고, 차도 떠내려가고....대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무기력하고 유한한 존재인지....어제까지 프로젝트를 한번해보겠다고 아등바등 대던 내가 사실 우물 안에서 허우적댄 것이지 별의미가 없었구나... 제 마음에도 큰 쓰나미가 일었던 것이죠. 대전환이 필요하다. 떠나자. 일단 떠나자!

Q: 회사에서 잡았을 것 같은데요?
A: 잡았지요. 대표이사님까지 찾아 오셔서 직접 얘기하고 했었는데...그런데 저는 한번 마음먹으면 끝까지 결심대로 가거든요.


홍태영 조합원은 그 길로 회사를 그만 두고 서울을 떠나 부산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2년 뒤 서울로 다시 올라와 현재 다니는 회사에서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요즘엔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매년 새로운 일로 낯선 사람들과 만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때문에 늘 새로운 마음으로 일할 수 있어 좋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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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린,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위해 함께 가는 큰 걸음

Q: 박근혜 정권 때 거리기도회에서 ‘청년예수’ 깃발을 들고 있는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향린과의 인연, 궁금합니다.
A: 저는 5살 때 루터교회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을 다니면서부터 15살 때까지 교회에 다녔다가 이후 20년 동안을 교회랑 담을 쌓았습니다. 그런데 도올 선생의 「기독교성서의 이해」나 「요한복음 강해」 등을 읽게 되면서 마음 한 자리에 역사적 예수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고, 자료를 찾다가 향린교회도 알게 되었는데 선뜻 출석하게 되지는 않더라고요. 그러다 ‘교회에 다시 나가야겠다’ 결심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셨다’는 뉴스를 듣고 하루 종일 펑펑 울었었죠. 어린 시절 5공 청문회를 보면서부터 제 워너비였거든요. 퇴근길 늦은 밤 대한문에 마련 된 빈소를 찾아 국화꽃을 들고 수많은 조문행렬 속에 서 있는데 그 때 불현 빌라도에게 희생당하신 역사적 예수와 이명박 정권에 의해 정치적 타살을 당한 노무현 대통령과 중첩되면서 향린교회가 생각났습니다. 가 봐야겠다고 결심했던 거죠.

그리고 개인적으로 특별한 울림이 있었거든요. 처음에는 주일예배에 조금 일찍 와서 묵상하고 본 예배만 드리고 회사로 곧장 가서 또 업무를 보고 그랬는데.. 2010년 1월에 췌장암으로 투병하시던 아버님이 돌아가셨어요. 아버님을 보내드린 그 주에 교회에 갔는데 주보에 실린 성경말씀 중에 공동번역 이사야서 61장에 ‘상복을 입었던 몸에 기쁨의 기름을 발라 주어라. 침울한 마음에서 찬양이 울려 퍼지게 하여라’ 그런 성구가 있어요. 그 말씀 자체로 큰 위로가 되었어요. 힘들 때 무언가에 기대는 마음으로 하늘이 힘든 내 마음을 아시듯, 향린교회가 뭔가 나와 교감이 이루는 어떤 것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Q: 직장생활 하면서 사회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았나 봐요?
A: 딱히 그렇지 않습니다. 철학부 동아리를 했던 고교시절 이후에는 사실 사회문제에 크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동아리 선생님이 1986년 건대 사태의 주역이었던 분이셔서 동녘에서 나온 「철학에세이」 같은 책으로 독서토론도 하고 전교조 집회에도 함께 참석하고 했었거든요. 대학에 가서는 오히려 그런 기회가 없었습니다. 형식적인 민주화가 어쨌든 이루어졌고, IMF를 맞이하기도 했고 또 당시에는 <리뷰>와 같은 대중문화비평 잡지를 통해 문화의 다양성, 다원화가 화두였습니다. 헌데 이명박 정부 때 합리적인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자행되고, 노무현을 정치적 타살로 몰고 가는 과정들을 보면서 이건 아니다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향린교회에 와서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고 함께 하는 길을 새롭게 배우고,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향린의 신앙과 그 일원으로 촛불정국까지 함께 했던 것이 좋았고요. 저 스스로는 제 입장이 그리 진보적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는 것은 단지 ‘상식이 통하는 사회, 정말 합리적인 생각이 통하는 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하는 점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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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이 통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 홍태영 조합원을 거리로 나서게 하는 명제다. 그리고 그가 끝임없이 공부하는 이유기도 하다. 아마 길목강좌의 최다 수강생을 꼽으라면 홍태영 조합원이 아닐까? 향린교회에서 하는 신학강좌, 철공소(철학을 공부하는 소모임), 한신대 강좌 등등 강의 듣고, 책 읽기 모임들에 참석하고... 공부하는 홍태영 조합원의 주요 일상이다.

Q: 옆에서 보면 정말 책도 많이 읽고 공부를 열심히 하세요.
A: 저는 15살 때부터 35세까지 20년 동안 교회를 떠나 있었어요. 다시 교회에 나오면서 마음속으로 ‘이제 30년은 다니겠구만’하고 속으로 생각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저의 정체성을 다시 세우려면 그에 대한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향린교회에서 하는 강좌, 철공소 모임, 길목강좌 ... 시간이 허락하는 한에서 찾아다니며 공부하고 있습니다.

Q: 아버님을 애도하면서 향린이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고 했는데... 어떤 분이셨어요.
A: 한마디로 호인이셨죠. 술 좋아하시고, 왁자지껄 웃음과 노래를 좋아하시고, 주위에 친구가 많으시고... 서예를 잘 하셨는데 초등학교 때 가훈을 써가는 숙제가 있어서 “아빠 우리 집 가훈이 뭐예요?” 물었더니 그때 잠시 고민 뒤에 써주셨던 글이 ‘仁者無敵인자무적 德不孤덕불고’ 일곱자였습니다. ‘어진 사람에게는 적이 없고,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다’ 그렇게 살아야한다고 따로 마음먹었던 것도 아닌데 어느새 따라서 비슷하게 살아가는 거 같아요.

Q: 어머니에게도 효자일 것 같아요?
A: (하하하) 아닙니다. 어머니가 가장 바라는 것을 안 해드렸기 때문에 불효자입니다. 엄마가 토요일 낮에 외출하실 때는 100% 힘든 날입니다. 왜냐하면 결혼식을 가시는 거거든요. 세월이 지나 요즘에는 그 빈도가 줄어들었는데 한창 때면 저와 동생이 잔뜩 긴장을 해요. 동생은 바깥으로 도망가는 편이고 저는 조용히 제 방으로 피하는 편인데.. 다녀오시면 어김없이 한탄과 짜증이 섞인 푸념을 시작하십니다.

Q: 결혼은 그렇다 하더라도 어머니 말씀을 잘 듣는 아들이었을 것 같은데요..
A: 그런가요. 약속 시간에 늦지 말라, 만나면 인사를 꼭 해라,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라 등등 어렸을 때 어머님이 제게 늘 가르치시던 말씀들인데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어머니는 교육열이 강하셔서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에 한글을 떼게 한 다음에 장난감은 안사주시고 책이라면 무슨 책이 되었든 다 사 주셨어요. 만화책이 될지언정. 그래서 저는 만화책을 엄청 봤어요. 그런데 억울한 게 제가 다닌 루터유치원에서 크리스마스가 되면 독일에서 오신 수사이신 원장님께서 산타클로스 분장을 하고 선물을 나눠주러 다니시는데,, 아마 선물을 준비해달라고 가정통신문을 보냈겠죠. 어머니가 제 손을 잡고 서점에 가서 위인전집을 고르셨어요. “이게 니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어린 마음에 바라는 장난감 대신 그 위인전집 책을 한아름 들고 온 산타클로스 그 아는 얼굴을 보며 7살 때 벌써 현실을 안거죠. 산타클로스라는 존재는 없다. (하하) 제가 한국어든 외국어든 문자라면 읽고 쓰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어머니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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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목-함께 재미있게 일하고 더불어 희망을 일구는 아름다운 도전

Q: 길목에서 실행위원으로 활동하고 계시죠.
A: 실행위원으로서는 간신히 이름만 올린 형편이고요, 한편으로 길목에서 가장 즐거웠던 일은 배기봉 선생님께서 이끌어 주셨던 2014년 ‘갑오농민전쟁 평화기행’이었습니다. 제가 고창군의 도로명 주소를 만드는 프로젝트를 2007년에 그 지역에서 했었거든요. 고창군의 길은 모두 돌아다니며 작업했던 터라 길목기행 중에 동학에 관련된 길이름 유래에 대해 약간 설명을 해 드리기도 했었는데.. 아무튼 기행의 전 과정이 너무나 기억에 남고 좋았습니다. 특히 백산. 죽창을 든 갑오농민군이 앉으면 죽산이 되고 서면 백산이 될 정도로 많이 모였다는 그 백산의 정상에 있는 정자에 둘러앉아서 함께 이야기 나누고, 노래 부르고 했던 것들...하나하나가 다 좋은 기억이었습니다. 그 감동이 계기가 되어서 길목협동조합 일에 열심히 해야겠다 생각했었고,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된 지금은 또 다른 기대와 함께 작지만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하는 마음입니다.  

Q: 협동조합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얘기 들었습니다. 대학원 진학도 생각하신다면서요...
A: 네. 작년부터 많이 고민했습니다. 제가 주로 IT분야의 공공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IT업계 근무조건이 열악합니다. 에밀레종에 그랬듯 엔지니어를 갈아 넣는다고 하죠. 얼마나 많은 인력과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입했는가에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는 비효율적인 구조입니다. 처음엔 “왜 이들은 열악한 조건인데 노조를 만들어 자신의 권익을 주장하지 않는가?”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결론은 ‘기존의 노동조합으로는 안 되겠다’였습니다. 첫째는 일의 성격이 자신의 PC와 1;1로 만나 자기 일만 잘하면 되는 구조라서, 둘째는 회사에서 대우가 좋지 않다보니 3년 정도 채우고 독립하면 대접받는 프리랜서로 일한다는 거죠. 그래서 노동조합이 아니라 프로젝트 협동조합이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프로젝트 협동조합으로 풀면 갑-을-병-정으로 내려오는 계약 구조의 말단에서 소모적으로 고생하지 않고, ‘함께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조직이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것인데요... 협동조합에 대해 체계 있게 공부해갈 계획입니다.

Q: 길목이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했습니다. 바람이 있다면 얘기 해주시죠.
A: 지금까지 길목은 선의를 가진 사람들이 열심히 해온 거죠. 선의로써 활동하니까 결과물과 무관하게 늘 고맙게 생각하죠. 그런데 이제는 달라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길목이 사회적협동조합으로 공공사업도 맡을 수 있는 자격이 되었고, 제가 길목에 제안하고 싶은 것은 먼저 기획팀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길목이 지향하는 사업을 기획하고, 수행할 수 있는 공공사업을 찾아 지원하고, 진행할 수 있도록 밑바탕을 만들어 가는 겁니다. 저는 공적 사업을 수주하고 관리하는 일을 10년 넘게 계속 해왔기 때문에 만일 길목에서 지원사업에 응모하거나, 새로운 사업을 필요한 곳에 제안하는 일을 기획한다면 함께 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Q: 프로젝트제안서 만드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건가요? 
A: 프로젝트 제안서 작성뿐만 아니라 매니지먼트까지도.

Q: 어떤 분야든, 어떤 주제든?
A: 네. 어떤 분야든 어떤 주제든 가능합니다. 그렇지만 저 혼자서는 다 못합니다. 같이 해야 하는 거죠. 기획팀이 만들어지고, 사업의 방향성을 세우고, 우리와 뜻을 같이 하는 동료를 모으고 조직하고... 길목에서 많은 일들이 가능하지 않을까요?


‘함께 재미있게, 보람 있게, 즐겁게 일하면서 더불어 희망을 일구어나가는 일! 함께 어떻게 만들어 갈까’- 프로젝트매니저 홍태영 조합원의 아름다운 야심과 그가 해온 크고 작은 도전들에 박수를 보낸다. 사회적협동조합 길목이 그의 바람처럼 더불어 재미있게 일하고 함께 하는 이웃에게 희망을 나누는 다양한 프로젝트들을 줄줄이 해갈 수 있길 기대한다.

“다 같이 재미있게! 저는 일반 기업과 협동조합이 가장 다른 점 아니 달라야 하는 점은 바로 이점 ‘참여하는 사람들이 함께 재미있게, 보람 있게 일하고 나누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Tip : 삼청동 단팥죽 집에 얽힌 청춘의 추억은 지면 상 담을 수 없었습니다. 그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은 또 다른 공간에서 찬찬히 풀어내면 좋겠습니다. 또 하나 홍태영 조합원은 누가 부탁하면 거의 ‘Yes’, 웬만해선 다 들어줍니다. 그가 머쓱하게 ‘No’ 반응을 할 때는 정말 바쁘거나 어려운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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