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12월의 첫날, '우리가 몰랐던 디자인의 역사'라는 주제로 겨울 인문학 강좌가 시작되었다. 산업혁명부터 포스트모더니즘까지 디자인의 150년 여정을 다루는 강의였는데, 포스터의 소제목들을 보며 걱정 반 기대 반, 대학 교양 수업을 듣는 기분으로 향우실을 들락거렸다. 문외한인 나에겐 익숙하지 않은 용어들과 과부하가 걸리게 쏟아지는 시각 자료들이 만만치 않았다. 시력이 좋지 않고 오른쪽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등 여러 사정으로 맨 앞자리에 앉아 모범생처럼(?) 집중하며 강의에 몰입했다.
이번 강좌를 통해 얻은 수확은 '일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 선물 받았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뚜렷한 목적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했으나, 산업혁명 시기부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디자인이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디자인은 당시 사람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그리고 기술의 발전을 어떻게 삶 속에 녹여내려 했는지를 보여주는 치열한 고민의 흔적이었다. 귀족만의 전유물이었던 예술을 모두를 위한 것으로 바꾸겠다는 의도, 즉 대중이 일상에서 미학적 경험을 구체적으로 누리게 하는 것에서 진정한 디자인이 시작되었고, 규격화된 대량 생산과 결부되어 대중의 일상을 보편화하고 나아가 근대적 평등 사회를 구축하는 기반이 되었다는 부분에서 뭉클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루이스 설리번(Louis Sullivan)의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는 선언이 인상 깊었다. 디자인에서 외형의 아름다운 장식보다는 사용 목적과 기능에 집중해서 형태가 결정되어야 한다는 기능주의 철학은 독일 바우하우스로 계승되었다. 나치의 탄압으로 14년 만에 바우하우스는 폐교되었으나, 그 정신은 전 세계로 뻗어나가 현대 디자인 교육과 생활양식의 뿌리가 되었고, 나아가 실용성과 보편성을 지향하는 '국제주의 양식'으로 발전하였다. 이처럼 소수 특권층을 넘어 모두를 위한 예술을 추구한 노력은 디자인의 문턱을 낮추어, 대중이 그 혜택을 고루 누릴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흔히 디자인이라고 하면 화려한 색채나 독특한 모양을 떠올리기 쉬운데, 5강에서 만난 디터 람스(Dieter Rams)의 디자인 미학은 나의 고정관념을 흔들어 놓았다. 그는 "Less is more"를 넘어 "Less, but better"를 지향했다. 단순히 장식을 삭제하기보다는 사용자가 제품의 본질적인 기능에 집중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요소를 걷어내자는 것이다. 이러한 '최소한의 디자인(As little design as possible)' 철학이 오늘날 애플, 브라운처럼 대중이 선호하는 브랜드에서 끊임없이 재현되고 있다는 사실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가 제시한 '좋은 디자인을 위한 10가지 원칙'은 디자인을 넘어 내 삶의 태도까지 돌아보게 했다. 유행을 좇아 쉽게 사고 버렸던 물건들을 떠올리며 반성도 했다. 아울러 오래 곁에 두고 써도 질리지 않는 디자인이야말로 진정한 '지속 가능성'의 실천과 이어짐을 재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기계'와 '장식'을 둘러싼 논쟁이 현대 디자인의 정체성을 형성해 온 역사는 어려우면서도 흥미로웠다.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는 기계에 의한 대량 생산이 제품의 질적 타락을 불러왔다고 비판하며, 수공예의 가치를 회복하려는 미술공예운동을 전개했다. 반면, 독일공작연맹과 바우하우스는 기계 생산 방식을 적극 수용하여 불필요한 장식을 배제한 모더니즘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후 등장한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절제미를 "Less is less", "Less is poor", "Less is bore"라 비판하며, 국제적 규격화에서 벗어나 문화적 다양성과 인간의 유희적 장식성을 회복하는 데 주력했다. "차갑고 효율적인 기계의 손을 잡을 것인가?" 아니면 "인간적이고 화려한 장식의 가치를 지킬 것인가?" 시대에 따라 이 두 가지 물음이 서로를 밀고 당기며 디자인을 풍성하게 만들어왔음을 알고 나니, 주변의 가구, 전자 기기 및 주방 도구 등 모두 새삼 다르게 보인다.
디자인의 역사가 결국 '인간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 온 과정'임을 배울 수 있어 뜻깊은 시간이었다. 각 시대 디자이너들이 치열하게 고민해 온 흔적과 그들의 개성을 배우고 나니, 평소 무심코 지나쳤던 주변의 물건과 건물, 간판의 글씨체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이번 강좌는 낯선 용어와 개념을 다룬 딱딱한 역사가 아니라, 내 일상과 함께하는 물건들이 왜 이런 모습으로 존재하는지 알려주는 흥미진진한 '생활 탐구 로그' 같은 시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