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방향으로 한발 한발 내딛는
청년 운동가
강성윤 조합원

Q. 안녕하세요. 오늘 이렇게 일찍 일 끝내고 인터뷰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번역 일을 하신다고 들었어요.
제가 지금 교회 근처에 있는 피자집에서 일하고 있는데 여기가 근무시간대가 2개가 있어서 번갈아 일하고 있습니다. 오늘 같은 날은 앞 타임 일을 하고 2시 반에 퇴근을 하고 어떤 때는 뒷 타임 일을 하고 7시 반에 퇴근하는 일상이에요. 마침 오늘 저녁에 교회에서 세종호텔 관련한 지원이 있어서 일찍 퇴근을 하는 타임을 잡은 덕분에 가능했습니다.
번역은 지금 하고 있는 건 아니고 몇 년 전에 따로 일을 하지 않을 때 아는 지인이 자기가 일하는 출판사에서 번역서를 내보지 않겠냐고 해서 6~7권 정도 작업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 따로 전공을 한 건 아니고요. 주로 기독교 관련한 책이었습니다. (찾아보니 비아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이었다. '성서의 형성', '욥기와 만나다', '성서는 변혁이다', '전통을 옹호하다', '계시록과 만나다', '신경의 형성', '로완 윌리엄스와의 대화'. 읽어보고 싶은 책들이었다) 요즘은 방송대에 편입해서 농학을 공부하고 있어요. 생태나 이런 것들에 관심이 있어서 시작한 건데 오히려 경제학이나 사회복지학 전공과목이 재미있어서 그걸 더 듣다 보니 졸업을 4년 만에 할 수 있을까 싶긴 하지만요. (웃음) 농학은 지금 제가 당장 실습해 볼 땅이 있거나 한 건 아니지만 나중에 필요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관심을 가지고 배우는 중입니다.
Q. 농학을 전공하신다면 혹시 생태 쪽에 관심이 있으신 건가요?
저희 교회에 생태문화학교라는 프로그램이 있어요. 제가 4기인데 작년에 여기에 참여하면서 이 분야도 상당히 의미 있는 활동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2학기에 방송대학교에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하는 활동이니 기독교적인 메시지를 주입하는 내용이 위주가 아닐까 걱정하는 분들도 있는데 해보면 거의 그런 부분은 없고 오히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모시고 강의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요. 기후, 재활용, 농업, 공동체 등 다양해서 이 중 하나쯤은 꽂히는 게 있을 것 같은 프로그램이고요. 들은 분들 대부분이 이번 주차 강의는 정말 좋았다고, 하나 정도씩의 주제에 대해서 개인적인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저는 그 중에서 농업 쪽에 마음이 갔던 거죠.
세상의 많은 문제들이 극도의 효율을 추구하는 가운데에서 벌어지곤 합니다. 그 와중에 자연의 힘을 보존하고 지나치게 인위적인 손길을 많이 가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생존과 문명의 지속을 위한 충분한 자원을 얻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분들이 계시고 사실 이게 완전히 비현실적인 이야기도 아니라는 것을 꽤 설득력 있게 전달해 주셔서 앞으로 장기적으로 이런 분야의 운동에 헌신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저는 서울에서 나고 자라서 그저 관념적인 수준에 머무를 수도 있겠고 막상 부딪혀 보면 좌절할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하지만 교회에서 가는 농활에 참여해 보니 가능하겠다는 약간의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향린교회에서 전북 완주군에 있는 들녘교회와 도농 교류를 맺은 지가 벌써 30주년이 되었어요. 매년 여름에 희망자들이 모여서 주말을 이용해 농활을 가는데 정말 재미있습니다. 하루 이틀 해보고 이거 해볼 만하다 하는 건 좀 건방진 얘기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하고자 하는 일을 실현할 방법이 보였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방송대에서 공부하는 이론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Q. 아까 번역 얘기를 잠깐 했는데 원래 영어에 관심이 많으셨나 봐요. 요즘은 AI가 나와서 번역 일이 어려워졌다고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번역이란 게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반면에 비용적으로는 크게 보답이 없는 작업이긴 해서 AI가 나오면 지장을 많이 받을 것 같기는 합니다. 사실 문헌의 종류에 따라 다르고 최종 결과물에 대한 기대감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지만 일반 교양서 수준에서는 오히려 효율이 엄청나게 올라갈 수 있는 여지가 있어요. 저는 요즘엔 출판 번역은 하지 않고 필요한 외신 기사 번역을 해서 같이 활동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일을 하고 있는데 확실히 작업 속도가 두세 배는 올라가는 것 같습니다. 기사 번역은 제 문장 스타일을 관철시키는 것보다는 혼동의 여지 없이 의미를 전달하는 게 더 중요하니까요. 그런 부분에서는 효율이 상당히 좋기 때문에 저는 어느 정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번역에 대한 문제는, 책에 대해서 소비자라는 말을 썩 좋아하지 않긴 하지만, 굳이 말하자면 책 소비자들의 문제도 있다고 봅니다. 공들여서 번역한 걸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하는 것이죠. 안목을 가지고 좋은 번역가를 구별하고 그렇게 되면 그걸 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계속 번역을 하게 되는 선순환이 되어야 하는 거죠. 우리나라 세계문학 번역 시장은 꽤 큰 편이라 몇몇 유명한 작품들은 정말 많은 출판사에서 너도나도 번역물이 나오고 있습니다. 최근에 제가 구입한 책 중에 소세키의 '도련님'이라든가 카뮈의 작품이라든가 하는 것들은 인기가 많으니까 아주 많이 나오고 있긴 한데 아무래도 각 번역물마다 품질이 다를 게 분명한데도 그걸 알아봐 주지 않으니 문제인 거죠. 그냥 뭐 다 비슷하겠지 하면서 번역자나 출판사 상관없이 아무거나 고르니 그럴수록 시장은 축소되고 하향 평준화가 되고 결과적으로는 독자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하게 되는 건 아닌가 싶어요.
아까 제가 잠깐 보니까 지만지 책을 보고 계시던데 (기다리면서 지만지출판사에서 나온 막심 고리키의 '시의적절치 못한 생각들'을 읽고 있었다) 저도 이 출판사 책을 지금 읽고 있거든요. (이 우연에 서로 감탄) 와주디 무아와드의 '연안 지대'라는 책인데 이 출판사 경우가 정말 특이한 것 같아요. 전혀 팔릴 것 같지 않은 책을 어떻게 이리 꾸준히 내는 거지 싶은 거죠. 읽는 사람들이 안목과 호기심을 가지고 이렇게 다양한 작품들을 의식적으로 찾아 읽을 생각을 해야 하는데 책이라는 게 영화나 드라마처럼 가만히 앉아서 보여주는 게 아니라 주체적인 활동이다 보니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Q. 책 읽는 걸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어떤 책을 좋아하세요?
가리지 않고 읽긴 하는데 굳이 분야를 따지자면 역사책을 즐겨 읽어요. 중국사는 고대사 아니면 아예 현대사에 관심이 많고 유럽사는 혁명사나 로마사를 좋아합니다. 중국의 고대사나 남북조 시대 역사 등을 읽을 때면 그 시절에도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하고 살았네 라는 순수한 흥미가 생기는 것 같고요. 프랑스나 러시아 혁명사는 아무래도 제가 사회주의 운동에 관심이 있다 보니 현재 어떤 상황을 어떻게 바라볼까에 대한 교훈이랄까 이런 걸 얻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민중의 힘이 터져 나오는 시기에 어떻게 그 흐름이 흘러가고 또 어떤 바람직하지 않은 폭력이 발생하는가 이런 걸 보면서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 처하면 이렇게 행동하는구나 라는 걸 알게 됩니다.
사실 다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그때 그런 선택을 하지 말았어야지 말은 쉽지만 당장 지금 우리 현실을 봐도 미국이 베네수엘라를 침공했다거나 누군가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든가 혹은 어디 전쟁이 나려고 한다든가 할 때 우리가 어떤 입장을 취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 정말 까마득하게 확신이 없잖아요. 역사 속의 그들도 그 시점에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 지금의 시야를 더 넓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지금은 맞는 것처럼 보이는 많은 선택들이 그때의 그 사람들도 우리처럼 똑같이 생각하고 선택했을 텐데 돌이켜보면 그릇된 선택이었다는 역사의 사례가 수도 없이 많으니까요. 최근에는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1차 세계대전 직전의 유럽 역사에 대해서 조금 관심이 생기고 있습니다.
크리스토퍼 클라크가 지은 '몽유병자들'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책 제목이 시사하는 바가, 1차 세계대전 직전의 유럽 각국이 몽유병자처럼, 자신들이 전쟁이라는 구렁텅이로 걸어가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그냥 비틀거리면서 전쟁으로 향했었다라는 의미입니다. 당시 각 나라, 세르비아, 오스트리아,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각각이 나름 펼치는 주장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었고 그 행동 또한 자기들의 방어를 위해 한 것일 뿐이지만 결과는 참혹했던 거죠. 그렇다고 누구는 무고한가. 세르비아는 무고한가, 러시아나 영국이나 독일은 무고한가. 그렇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잘못한 나라만 있는 것도 아니라는 내용이라, 지금의 우리 현실을 보면 좀 무서워지는 거죠.

Q. 향린교회는 어떻게 들어오시게 되었나요? 활동도 많이 하시는 것 같아 보입니다.
작년 4월에 오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여자친구가 여길 다니게 되면서 따라오게 된 거예요. (웃음) 여자친구가 이전에 좀 보수적인 장로교회를 다녔었는데 계엄 내란 정국 때 교회에서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별 얘기 없이 지나가는 것에 실망해서 향린교회로 옮기게 되었고 저도 이전에 성공회 교회를 다니다가 같이 오게 되었어요. 원래 향린교회에 대해선 알고 있었고요.
향린교회 다닌 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정말 좋습니다. 무엇보다 사회 참여에 적극적인 면이 좋고 사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제가 여기저기 개입을 하고 활동을 해도 눈총을 준다거나 하는 건 전혀 없이 적극 지원해 주는 포용력이나 그 유연함이 마음에 너무 들어서 여기저기 소개도 하고 있어요. (웃음)
교회에서는 사회부와 성평등부에서 총무를 맡고 있습니다. 이런 부서들은 주로 사회 연대 활동을 하고 있고요. 교회 안에서는 봉사부에서 식당 밥하는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예전에 대학교 구내식당에서도 일했었고 군대에서는 취사병이었던지라 비교적 쉽게 적응하고 있어요. 잘 모르는 외부 분들은 남자도 이런 봉사를 하느냐 라고 하시지만 저희 봉사부 인원은 오히려 남자가 더 많아요. 조리원 분들은 전문적인 분을 고용하고 그분들이 계획 짠 대로 봉사부에서 세부 사항을 진행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니까 재료 씻고 썰고 넣고 하는 기본적인 준비는 같이 하고 조리원 분들은 간 맞추고 좀 어려운 칼질 같은 건 직접 하시고 그렇게 하고 있어요. 일주일에 한 번 180인분 정도 하고 있는데 군대에서는 850인분에서 1000인분 정도를 매번 했기 때문에 이 정도는 소소하게 소꿉장난하듯이 하고 있습니다. (웃음)
그리고 또 하나 하는 게 있어요. 정원지기 모임이라고 저희 교회 옥상이나 식당이나 1층이나 정원 등에 나무가 있는데 그걸 관리하는 모임입니다. 화분도 갈고 물도 주고 영양제도 주고 하는 일인데 제가 농학과에서 배운 것도 조금 도움이 돼요. 이런 일은 젊은 분들이 할 것 같지만 사실 이 모임에서 청년은 저밖에 없습니다. 정말 재밌어요. 처음에는 심어진 대로 잘 유지하는 정도로만 했지만 이젠 화분 분갈이도 하고 새로 만들기도 하거든요. 최근에 돌보던 동백꽃이 피었을 때 다들 너무 좋아하셔서 보람이 있었습니다.
Q. 성평등부는 어떤 일을 하나요? 그런 분야에 관심이 있으신 건지도 궁금합니다.
여자친구 얘길 안 할 수가 없네요. (웃음) 여자친구가 이 교회에 데리고 오기도 했지만 제게는 여러모로 많은 영향을 주는 친구입니다. 지금 방송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있고 작년에 가정폭력 상담 교육 100시간을 이수했어요. 올해 성폭력 상담 교육 이수하고 사회복지사를 따서 그쪽 분야로 일을 하고 싶어 합니다. 제가 그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고 원래 관심이 있었던 건 사실이고요.
올해 3월 8일이 여성의 날인데 딱 주일이거든요. 그래서 성평등부에서 이것저것 준비를 하기로 해서 지금 바쁜 시기입니다. 성평등부가 작년 5월에 생겼기 때문에 이런 행사를 해본 경험이 없거든요. 올해가 처음인 셈이라 여성 청년들에게 얘기도 들으면서 어떤 행사를 하면 좋겠는지에 대한 의견도 모으고 있어요. 2주 정도 청취하고 다음 2주 정도 본격적으로 준비를 할 생각입니다. 저도 나이가 30대 중반인지라 20대 초반의 여성 청년들과는 살아온 세계가 다를 수밖에 없고 인식도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의견을 개진해 주면 좋겠습니다.

Q. 교회 일 이외에 개인적인 취미는 없으세요?
저는 사실 운동이나 게임에는 취미가 별로 없고 딱히 취미랄 게 있지는 않은데 어릴 때 클라리넷을 5~6년 정도 배운 적이 있어서 성인 되고 나서도 사회인 오케스트라 같은 곳에서 활동을 했었어요. 요즘에는 바빠서 집에서 그냥 혼자 연습하고 있긴 하지만 음악 듣고 연주하는 걸 좋아합니다. 연주회도 틈나는 대로 가려고 하고요. 주로 바흐나 모차르트, 슈베르트 등의 종교 음악을 좋아하고 바로크 성악곡도 좋아해요. 다음 달 말에 통영 국제음악제에서 카운터 테너 공연이 있다고 해서 그걸 가려고 합니다. 여자친구한테 허락받고 혼자 다녀오기로 했어요. (웃음)
사실 여자친구랑은 연애를 10년 넘게 했어요. 4살 차이가 나는데 그 친구가 고3일 때 제가 영어 과외를 했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 다시 만나게 되었고 그게 지금까지 오게 된 거죠. 지금은 결혼이나 이런 것보다 각자 좋아하는 거 하면서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 상황에 만족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서, 제가 연애를 시작할 즈음에 채식을 시작했고 지금도 비건이거든요. 여자친구는 비건까지는 아니지만 의식적으로 고기 먹는 걸 줄이려고도 하고 홈 베이킹 배우면서 비건 쿠키 같은 레시피도 많이 알아보고 해요. 생태문화학교는 제가 권해서 같이 듣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그 친구가 더 재미있어하면서 관련 책도 많이 찾아보고 하게 되었고요. 성평등이나 젠더 문제에 대해서는 그 친구한테 제가 배우는 게 많아요. 서로 이렇게 배워나가는 관계라 만나면 할 말도 많고 교회도 같이 다니니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여자친구는 교회 풍물패 동아리에서 장구도 치고 있습니다.

Q. 앞으로 계획은 어떠세요?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바람이 있을까요?
제가 교회 활동을 열심히 하니까 여자친구는 한신대 대학원에서 학위를 해서 사회 선교사를 해보는 게 어떠냐고 권하더라고요. 그런 걸 하면 좋아하는 일 하면서 생계도 꾸릴 수 있지 않겠느냐 농담처럼 얘기하는데 저는 사실 개인적으로 그냥 보통의 사람으로 똑같이 노동하고 그 벌이로 생계를 유지하는 현실에 발을 좀 더 붙이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커요. 일을 하려면 정규직 일자리를 찾아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런 걱정들도 많이 하시는데 정규직에는 하루 20시간만 일할 수 있는 자리는 없잖아요. 주 40시간 일하는 곳에서는 제가 지금 하고 싶어 하는 활동을 할 수가 없으니 한동안은 이렇게 하루 4~5시간, 주 20~25시간 정도 일하면서 남는 시간에 연대 활동도 다니고 아까 말씀드렸던 외신 기사 번역물 공유하면서 여타 활동도 함께 하는 방향으로 지내야겠다 하고 있습니다.
외신 기사 같이 보는 분들은 주로 노조 운동 하는 분들이 많아요. 저는 원래 기후 환경이나 젠더 문제에 관심이 컸는데 언제부터인가 노동자 운동 등에 관심이 생겼어요. 몇 년 전부터 기후정의 행진을 한다든가 퀴어 퍼레이드를 한다든가 하면 민주노총 각 단위 분들도 많이 참여를 하셔서 자연스럽게 이들의 투쟁과 나름의 논리에 대해서 알게 되는 과정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주 노동자 문제에도 관심이 확장되기도 했고요. 우리나라도 이제는 제국 질서의 큰 축이 되었고 이주민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가 있는 나라이니 어떻게 책임을 다하면서 시의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는가에 대해 국제 연대 활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얘기들도 합니다. 너무 거창한 생각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요. 제가 예전에 다녔던 교회에 필리핀 이주민들이 계셨어요. 그래서 관련한 책이나 영상을 보면서 이런 문제가 있구나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노동운동 하는 분들과 조금씩 교류하다 보니 이제 목소리 낼 일이 있으면 그 의제를 교회 안으로 들고 와서 투쟁 기금도 전달하고 모금도 하고 서명도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돌아보면, 지금까지 흘러온 것도 사실 뭘 해야 한다 뭘 하고 싶다 이런 명확한 의지로 왔다기보다는 하다 보니 옆에 이런 분야도 있네 알아차리게 되고 좋은 모임이 있다고 들으면 한 번 가보기도 하면서 어찌어찌 좋은 곳에 오게 된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뭔가 장기적으로 거창한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현재의 자리에서 열심히 찾고 확장해 나가다 보면 스스로 노력하든 누군가가 이끌어주든 지금까지처럼 더 좋은 곳에 자리하게 되겠지 하고 있습니다.
Q. 마지막으로 길목인이나 향린교회에 바라는 바가 있으실까요?
향린교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지금처럼만 활동하고 다들 더 오래 건강하셨으면 좋겠다는 바람 정도가 있어요. 길목인은 작년 12월에 조합 가입하고 홈페이지를 정주행해 보긴 했습니다. 생각 외로 좋은 프로그램이 많더라고요. 여행이나 강좌도 그렇고 상담 프로그램도 그렇고 지금까지 쌓아 오신 게 상당히 많다고 느꼈습니다. 이렇게 좋은 내용은 더 많은 사람한테 다가가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홍보가 좀 더 되면 더 폭넓게 누릴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저는 이번에 백두산 가는 프로그램에 신청을 했습니다. 너무 좋다는 얘길 들어서요. (부러움) 앞으로 길목인에서 하는 활동들 주변에 많이 홍보하겠습니다. (만세)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