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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국의 걸으며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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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 도시의 한계와 미래를 위한 제언

posted Sep 1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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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에너지 소모가 적고 온실가스와 오염물질 배출이 적으며 인간적인 정주환경을 추구하는 '15분 도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보행과 자전거와 같은 비동력 교통수단을 이용해 15분 이내에 집과 직장, 쇼핑, 교육, 행정서비스 등 사회생활의 기본기능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15분 도시'의 개념이다. 이는 차량 중심 도시에서 벗어나 보행자와 자전거 중심의 친환경 도시를 만들고, 지역 커뮤니티를 활성화해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이 장밋빛 아이디어가 도시 기능의 장소 종속성이라는 현실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있다.

 

15분 도시의 핵심은 삶에 필요한 기능을 생활 근거지 주변에 배치하는 것이다. 하지만 도시가 형성되면서 지니게 되는 고유의 특성인 기능의 집적화와 분화는 15분 이내에 접근 가능한 공간배치 개념과 충돌한다. 대학병원 같은 전문 의료 시설, 첨단 연구소, 대형 공연장, 박물관 및 미술관과 같은 문화시설, 산업 단지 등은 그 특성상 한곳에 집적하거나 수용인원의 대규모가 전제되어야 기능이 원활하게 작동하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이러한 도시 기능을 생활권 반경 15분 내에 분산하여 배치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가능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막대한 비효율을 초래한다.

 

인간의 정주환경에 필요한 본질적인 기능들은 여전히 특정 장소에 존재해야 하고 기능의 성격에 따라 생활권에 분산하여 배치할 수 있는 종류와 그렇지 않은 것으로 구분할 수 있다. 장소 종속적인 도시 기능을 15분 이내에 모두 배치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기능의 효율성을 훼손하고, 경제적 비효율을 낳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15분 도시가 추구하는 이상은 실현 불가능한 꿈에 불과하지는 않다. 오히려 15분 도시가 성공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장소'에 기반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이동'에 기반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도입해야 한다. 즉 장소에 종속되어 있는 도시 기능을 이동형 서비스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가능하게 할 핵심 기술이 바로 PBV(Purpose-Built Vehicle), 즉 목적 기반 차량 또는 목적 기반 모빌리티 서비스로 도시 기능의 장소 제약을 극복하는 것이다.

 

기존의 자동차는 단순히 사람과 재화를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기는 수단에 불과했다. 그러나 PBV는 단순한 이동을 넘어 특정 목적에 최적화된 형태로 설계된 차량이다. PBV를 자율주행 기술과 결합하면 도시에 필요한 기능들을 '이동형 서비스'로 제공할 수 있다. 이동형 도서관, 이동형 진료소, 이동형 금융 서비스 센터가 그 예다. 단순히 도서관 건물, 병원 건물을 짓는 대신, 필요에 따라 특정 지역으로 찾아가는 이동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이는 15분 도시에 필요한 기능들을 굳이 모든 곳에 분산 배치하지 않고도, 필요한 장소와 시간을 고려하여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혁신적인 방법이다.

 

PBV를 활용한 이동형 서비스는 도시뿐만 아니라 소멸 위기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는 중요한 해법이 될 수 있다. 도시 외곽이나 교통서비스 취약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거리 제약으로 필수적인 도시 기능에 대한 접근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도로망을 확장하거나 대중교통 노선을 늘리는 것은 예산의 제약으로 실현가능한 대안이 될 수도 없고 친환경적 정주환경 구현과도 거리가 먼 정책이다. PBV를 활용한 이동형 서비스는 인구 감소 지역 주민들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직접 찾아가 제공함으로써, 지역 격차를 해소하고 모든 시민의 기본생활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다. 도시의 미래는 정적인 공간의 분산배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모빌리티 서비스가 만들어내는 역동적인 연결망에 있다. 이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진정한 15분 도시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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