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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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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그 나무를 만나다 6 - 리즈 크리스티 정원의 돈 레드우드

posted May 1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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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그 나무를 만나다 6

리즈 크리스티 정원의 돈 레드우드

(Dawn Redwood in Liz Christy Ga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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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e Cho, "Dawn Redwood Forest Golden Sunlight" 2025, Digital Painting

 

 

3년 전 책방에서 우연히 사게 된 "Great Trees of New York Map"(뉴욕시의 위대한 나무 지도)가 이젠 나달나달 헤져가고 있다. 소호나 이스트 빌리지를 걸을 때 사람들의 옷차림, 가게나 음식점이 눈에 들어와야 정상일 텐데, 여전히 나무들이 눈에 보인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남방 큰고래, 대왕고래, 향고래…를 이야기하듯, 지금 피어있는 풍년화, 산수유, 살구나무… 를 눈치 없이 신나게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집 근처 나무들이 사계절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그 나무가 가장 돋보일 때가 있다. 대개는 꽃이 필 때나 잎이 무성할 때, 단풍이 들 때인데, 돈 레드우드(Dawn Redwood)는 희한하게도 잎을 다 떨구고 가지만 남았을 때 아름답다. 마치 은발이 되어도 기품 있고 우아한 노인을 만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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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wn Redwood @ 1/22/2025 & 5/22/2024

 

 

Great Tree(위대한 나무)

 

리즈 크리스티 가든(Liz Christy Garden) 안에 돈 레드우드는 나무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훨씬 전부터 내 눈에 들어왔다. 바워리(Bowery)와 2nd Ave 사이에 하우스턴(Houston) 길 북쪽에 있는 가늘고 긴 커뮤니티 가든이다. 장 보러 갈 때, 브로드웨이 길모퉁이를 돌아 하우스턴 길로 접어들면 키가 100피트나 되는 이 나무는 멀리서도 건물들 사이에 실루엣을 들어낸다. 겨우내 흩어짐이 없이 잔가지들로 아련하게 피라미드 모양을 이루며 살포시 서 있다 새순이 나기 시작한다. 돈 레드우드를 향해서 몇 블록을 걷다 보면 어는 새, 길 건너편 홀푸드 마켓에 와있다.

 

Dawn Redwood를 직역하면 "새벽 동트는 붉은 나무"인데 한국에서는 메타 세콰이어로 알려져 있다. 침엽수림(conifer) 중에 드물게, 가을엔 갈색으로 변하고 잎을 떨군다(deciduous). 높이 매달려 있는 잎을 자세히 보면 마주나 있다. 생김이 낙우송( Bald cypress)과 비슷해 혼동하기 쉬운데, 낙우송은 잎이 줄기에서 어긋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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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돈 레드우드를 정원 울타리 밖에서만 바라보다, 어는 화창한 3월 초 토요일, 굳게 닫혀 있던 정원의 문이 드디어 열려 있었다. 여러 번 울타리 밖에서 보았던 봉사자가 그날도 열심히 일을 하고 있어, 여기 심긴 돈 레드우드에 관해 물어보니 자신이 쓴 글이 NYC park에 위대한 나무, 돈 레드우드를 찾으면 자세하게 설명이 돼 있다고 읽어보라고 한다.

https://www.nycgovparks.org/facilities/great-trees?id=101

 

다른 곳에도 돈 레드우드를 보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피라미드 실루엣을 유지한 나무는 드물고, 더군다나 복잡한 대로변 척박한 상황에서 100피트 나무로 잘 자랄 수 있는지 놀랍다고 하니까 그래서 위대한 나무로 선정된 것이 아니겠냐고 한다. 이 나무야말로 소호, 노호, 이스트 빌리지가 만나는 이 동네에 살아있는 랜드마크이다.

 

바로 밑에 지하철 터널이 지나가는데 이렇게 거대한 나무의 뿌리가 깊이 내리 박는 뿌리(tap root)가 아니라 양옆으로 넓게 퍼지는 수종이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는 이야기도 했다. 나무를 심는 것은 쉬워도, 잘 가꾸기는 힘든데, 이렇게 열심히 가꾸는 봉사자들 덕이라는 생각이 든다.

 

Liz Christy Garden(리즈 크리스티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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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버려진 이곳의 땅을, 젊은 아티스트였던 Liz Christy(리즈 크리스티)가 시에 청원해, 한 달에 1불씩 세를 내고 커뮤니티 가든을 시작했다. 도심의 커뮤니티 가든 그룹인 "Green Guerilla"(그린 게릴라)를 결성해 동네도 살리고 마을 사람들도 활성화했던 운동의 시작점이 되었다. 후에 그녀의 이름을 따서 리즈 크리스티 가든이라고 명명했다. 안에 들어가면 이 정원을 어떻게 일구어냈는지 사진과 함께 자세한 설명이 전시돼 있다. 이 커뮤니티 가든의 역사를 파노라마처럼 볼 수 있다.

 

하우스톤 길의 소음과 매연 한복판에 이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아직 쌀쌀한 이른 봄날에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겐, 나무가 보호막이 되어 주고, 새로 솟아나는 꽃과 잎들로 더없이 따뜻하고 평화로운 쉼터가 된다.

 

The Arnold Arboretum of Harvard University(하바드대학 아놀드 수목원)

 

돈 레드우드는 하버드 대학 아놀드 수목원과 깊은 인연이 있다. 전에 한 번 가본 적이 있는 이 수목원을 3월 중순 보스턴에 갔을 때 다시 들렸다. 전에는 무심하게 지나친 키다리 돈 레드우드가 입구부터 눈에 보인다. 놀랍게도 문에 새긴 수목원의 로고가 돈 레드우드 아닌가!

 

공룡이 살던 시대에 화석으로만 기록에 남아 있고, 지구에서 사라졌다고 여겨진 이 나무가1940년대 중국에서 다시 발견되었다고 한다. 하버드대학 아놀드 수목원의 연구 자금으로 중국에서 씨앗을 표집하여 전 세계에 퍼지게 하였다. 그 당시 세기의 나무로 큰 화제가 되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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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레드우드에 대해 자상하게 적은 안내문을 읽고 있었더니, 수목원 직원이 저만치에 있는 나무를 가리키며(사진의 제일 우측), 1948 년에 가져온 씨앗으로 자란, 아직도 남아있는 몇 그루 원조 나무 중에 하나라고 가르쳐 주었다. 이 나무는 암수한그루라고 하는데 지금 봄 철에 꽃처럼 늘어진 수술이 방울같이 보이는 암컷에 수분(pollinate) 되면 늦가을이 지나 조그마한 솔방울 안에 날개 달린 씨앗을 가득 담게 된다고 한다. 아름답고, 크고, 빨리 자라서, 널리 심기고 있다고 한다.

 

돈 레드우드를 알기 전 이 나무와의 인연을 떠올려본다. 한국 방문했을 때 부모님과 오빠 부부와 함께 담양의 메타세쿼이아 길을 차를 타고 지나간 적이 있었다. 길 양쪽으로 시원하게 쭉 뻗은 나무들이 멋진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메타 세쿼이어"라는 단어가 "사색적"이라는 연상과 함께 기억에 남아 있었다. 리버사이드 공원을 걸을 때 솔방울은 아닌데 작고 귀여운 열매가 떨어져 있어 주워 와서 솔방울, 도토리, 은행, 호두 등과 함께 작은 그릇에 담아 놓았다. 손녀가 오면 이 열매들을 가지고 소꿉놀이를 하곤 한다. 인형의 집 선반에 열매를 조로록 늘어놓고 종이를 작게 잘라 가격표라고 하면서 상점을 차려놓곤 했다. 다음번에 왔을 때 그 작은 열매가 이렇게 큰 나무에서 왔다고 보여주면, 손녀의 눈이 둥그렇게 커질 것 같다.

 

많은 인연들이 스쳐 지나갔는데 이제야 알아차린다. 돈 레드우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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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e Cho, "Dawn Redwood Tree", 2025. Digital Painting

 

 

PS1. 3 월에 쓴 글을 마무리를 못하고 5월이 되었다. 이제 돈 레드우드 잎이 무성하다.

PS 2. 뉴욕시 커뮤니티 가든에 관해 쓴 글을 첨부한다. https://www.gilmokin.org/board_509/8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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