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이 '몸이 기억한다'라는 말을 종종 하는데, 이 말은 나 또한 자주 사용한다. 최근의 연구들도 이 말의 과학적 근거들을 자주 소개하는 것으로 안다. 가령, 머리로는 기억이 나지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옛길을 잘도 찾았던 경험들! 나에게 종종 있는 일이다. 뿐만 아니라 십 수년 만에 추는 춤이라며 자신의 춤을 제법 곧잘 해내는 TV속 왕년의 아이돌들도 그렇게 말한다- 몸이 기억했다고.
성서에서 사도바울은, "여러분의 몸은 성령의 전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으로부터 성령을 받아서 여러분 안에 모시고 있습니다."(고전 6:19) 라며 몸에 대해 말한다. 나는 이 말을 처음 접했을 때 "'몸'이 어떻게 하나님이 사시는 곳일까? '마음'이 하나님이 사시는 곳이 아니고? "라는 생각을 했었다(성서를 맥락 없이 읽기 이전의 이야기이다). 이런 나의 생각은 몸과 마음은 별개라는 데에서 온 생각일 것이다. 그런데 마찬가지로 불교에서도 몸과 마음은 분리된 실체가 아니라, 서로 의존하며 함께 존재한다고 말한다. 붓다는 몸과 마음을 구분하지 않고, 그 각각은 모두 개인 정체성을 담는 요소로 보았다. 이렇게 종교에서도 몸과 마음이 연결되어 있다고 말하는데 실상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내담자 중의 한 사람이 생각난다. 그분은 무슨 일만 있으면 배가 아프고 또 여기저기 몸이 아팠다. 매번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도 별 이상이 발견되지 않아 이는 심리적인 문제로 의심되어 상담에 의뢰되었다. 그분은 처음엔 자신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기억해 내는 것을 힘들어했다. 그도 그런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보였다. 그런데 상담이 진행되면서 점점 어린 시절의 일들이 하나둘 기억되었다. 게다가 처음엔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문제인 것 같던 것들이 점점 어머니와의 더 깊은 이야기들로 보고되었다. 그러면서 그간 자신을 괴롭혔던 몸의 통증에 관한 이야기는 점차 뒤로 물러나게 되었다. 이때 나는 과학자들은 '장'을 '제2의 뇌'라고 부른다고 한다는 것이 기억났다. 우리의 '장'과 '뇌'는 긴밀하게 연결이 되어 있어서, '장'이 조금만 불편해도 '뇌'는 스트레스를 받고, 반대로 '뇌'가 긴장하면 '장'이 바로 반응하여 문제가 생긴다는 말이다. 이 사례만 보아도 우리의 몸과 마음은 깊이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이 공부를 하면서 인상 깊게 내 안에 계속 남아있는 몇 가지 진리들이 있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내 마음을 모르면, 내 행동을 보아라"라는 말이다. 솔직히 그 말이 처음에는 정서적으로 잘 와닿지 않아 그저 외워버렸던 것 같다. 그런데 [몸이 나를 위로한다]라는 책을 읽었을 때 독특하고 의미 있는 단어를 나는 잊지 못한다. 그것은 바로 '몸의 모성'이라는 단어이다. 그 책에서는 우리가 마음먹는 대로 일이 되지 않을 때, 몸으로 다가가는 것이 묘책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힘이 들 때 정신은 몸을 떠나고, 그래서 그 떠난 마음을 만나고 회복하려면 몸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몸을 먼저 돌봐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서로 교류하고 대화하지만, 사실 비언어적인 언어가 더 많이 우리를 지배한다. 상담 세팅 안에서 우리는 내담자의 말보다는, 그의 표정, 눈짓, 손짓, 몸짓, 숨결, 냄새 등을 통해서 더 많은 자료를 얻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몸의 차원이 아닌가? 이는 상담 세팅에서만이 아니라, 우리가 겪는 일상생활에서도, 더 나아가 나 자신의 관계 안에서도 통하는 이야기 일 것 같다.
내 마음을 모를 때 우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들, 아니면 기억에 남아 있는 것들을 넘어서, 몸으로 돌아와 나의 '존재'에 머물러야 할 것 같다. 언어 이전의 '몸의 모성'을 가만히 내 안에 소환하여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정말로 앞으로 나는 내 마음을 모를 때 나의 행동을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