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국가를 선택하는 사람들
헤인 데 하스 저
세종, 2023
얼마 전만 해도 노동자를 타국으로 보내야 했던 우리나라가 그간 경제가 발전하고 노동력이 부족해짐에 따라 역으로 이주 노동자를 받아들이게 된 후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나는 이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 특히 대다수가 기피하는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의 건강과 안전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가져왔고 이는 결국 이주 자체에 대한 궁금증으로까지 이어졌다. 역사적인 맥락에서 '이주'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이주와 노동의 연결고리는 어떤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일부나마 해소하기 위해 찾은 것이 이 책, <이주, 국가를 선택하는 사람들(How Migration Really Works)>이었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국제 이주 패턴과 이주의 원인에 대해, 2부에서는 이주가 도착국과 출신국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그리고 3부에서는 정치인과 국제기구, 언론, 이익단체 등이 옹호하는 여러 통념이 진실을 왜곡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보여주고 있다.
저자인 헤인 데 하스는 저명한 사회학자이자 지리학자로 이주 문제에 관해 30년 넘는 세월 동안 다방면에 걸쳐 연구하고 고민한 사람이다. 그는 이 책에서 이주에 대한 숱한 편견과 잘못된 정보에 대해 구체적인 데이터와 명확한 논거를 가지고 비판적인 자세로 설명하면서 우리의 해묵은 무지와 오해를 깨우친다. 흔히 '이주'라는 용어는 국내 이주와 국제 이주를 통칭하고 누군가가 일정 기간 행정 경계 너머로 거주지를 변경한다면 주요한 이주 동기와 상관없이 '이주'라고 정의한다. 이 중에서도 국경을 넘어 이주하는 사람들이 대규모로, 불법적으로 유입되고 있다고 믿고 따라서 이들로 인해 우리가 사는 사회가 폭력과 억압과 인구 증가와 일자리 부족 등으로 어려워지리라는 막연한 공포가 저변에 깔리면서 '이주 위기(migration crisis)'를 말하게 되었다. 스위스 작가 막스 프리슈가 1967년 "우리는 노동자를 원했지만, 그 대신 우리가 얻은 것은 사람이다"라고 요약한 것처럼, 이주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으며 광범위한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변화 과정 속의 일부로 해석해야 함에도 우리는 일상적으로 이 사실을 잊은 채 그저 걱정하고 두려워하기만 하는지도 모르겠다.
이주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다. 인류는 늘 이동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주가 최근에야 엄청나게 일어나고 있다고, 원하지 않는데도 불법적인 루트를 통해 통제 불능의 상태로 몰려들고 있다고, 그래서 도착국의 사회가 망가지고 있다고 흔히들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최근의 구체적인 데이터를 통해 이주는 과거에 비해 오히려 줄어들고 있고 대다수는 합법적으로 들어오고 있으며 이들의 이입은 오히려 도착국에서 적극적으로 노동자를 불러들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이주자들이 도착국에 정착하여 산다고 해서 사회가 지나치게 다양화되고 있다고 보는 것은 주류의 관점에서 본 '타자'에 대한 두려움과 인종차별적인 편견에 근거한 것이며 오히려 정부와 사회가 이를 어떻게 대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얘기한다. "진짜 위험은 다양성 자체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다른 집단으로 구분하는 이념이다." (p119)
이주를 이끄는 주요 동기는 아이러니하게도 도착국의 경제상황에 따른 노동력 수요다. 정치인들은 저숙련 노동자보다 고숙련 노동자를 이입시키겠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공장, 청소, 식품 가공 등 육체노동이나 간호사, 간병인 등 돌봄노동에 종사하는 반숙련 일자리의 노동자라는 건 구태여 데이터를 들여다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내용이다. 교육 수준의 향상과 여성 활동의 증가, 출산율 급감 등의 이유로 토박이 노동자들이 원하지 않는 일을 채우는 역할을 하는 것이 주로 이주 노동자이므로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들어오는 노동자를 억지로 막을 수도, 막아서도 안 되는 게 현실이다.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잘 알기 때문에 정치인과 이익단체, 언론 등은 비록 대중의 공포를 무기로 자신들의 (혹은 기업이나 이주 산업체의) 이익을 위해 입으로는 강경한 통제 대책을 세우는 양 떠들어대지만 암묵적으로는 이주 노동자의 이입을 받아들이고 있는 게 또한 현재의 상황인 것이다.
합법적인 경로로 들어오는 이주자가 대다수임에도 불법이주자와 난민에 대해 극도의 공포심을 키우고 이주자 전체를 불쌍하고 자립하기 어려운 존재로 규정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범죄의 온상이라고 적대시하는 것 또한 경계해야 할 일이라고 얘기한다. 이주자는 출신국보다 도착국에서 더 잘 살 수 있으리라는 믿음과 동기로 이동한 사람이다. 따라서 더 성실하게 일해서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가족도 불러들여 경제적으로 독립적인 일가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근거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또한 범죄는 특정한 민족적, 인종적, 문화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에게 내재한 특징이 아니라 계급적인 문제로서, 이주자든 누구든 경제적인 소외에 따른 결과물로 봐야 한다고 반박한다 (p285). 어떤 대상을 콕 집어서 모든 문제의 원인을 갖다 붙이고 몰아세우는 것만큼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문제의 실체를 마주하려 하지 않고 손쉽게 대상을 악마화할 때 정책은 실패하고 여론은 그릇된 길로 호도된다. 세계적으로 이제까지의 이주 노동자 정책이 계속 악순환을 거듭하는 것도 역사와 경제, 사회, 문화의 맥락에서 벗어난 대응책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은 이주를 단순하고 양극화된 찬반 프레임에 가둬 다루기보다 전체론적으로 조망하면서 이주의 실제 추세와 패턴, 원인, 영향을 적극적으로 마주한다는 점에서 매우 균형 잡힌 시각을 보이고 있다. 이주로 인한 문제를 전부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출신국이든 도착국이든 그 경제 발전과 사회 변화에 미치는 이주의 역할을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토대로 향후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권유한다. 복잡하고 미묘한 이주 문제에 대해 섣불리 정책을 제안하기보다 대중의 불필요한 공포를 없애고 만연한 왜곡된 정보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학자로서의 깊은 성찰도 느껴지는 저작이다. 무엇보다 이주 문제에서 경제와 노동과 불평등과 복지, 교육, 돌봄 등에 관한 총체적인 논의를 빼놓을 수 없다는 것, 따라서 진정한 이주에 대한 논의는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사회의 형태에 대한 논의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저자의 관점에 매우 동감하면서 책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