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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 주는 고통과 치유

posted Jul 0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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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내담자가 상담 공간을 찾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어떤 '고통' 때문이다. 주로 첫 회기 때, 내담자의 고통은 여러 형태로 진술되는데 가령, 심리적인 이상 증세, 신체적 증상, 가족 간의 갈등, 사회관계의 어려움 등이다. 내담자들은 상담을 통해서 이러한 고통이 신속히 제거되기를 바라고, 치료자에게 이것을 기대하는 것이 임상 공간에서 마주치게 되는 가장 흔한 장면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영국의 정신분석가였던 비온(Wilfred R. Bion, 1897~1979)이 말한 내담자의 고통에 대한 다음과 같은 진술은 매우 역설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신적 고통을 발견하지만, 고통이나 좌절을 잘 견디지 못하고 고통을 느끼지(feel)만 겪지는(suffer) 않고 따라서 정신적 고통을 발견했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사람들이 있다." (Bion, 2011. p. 25)

 

즉, 위의 진술은 단순히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과 고통을 겪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으로서, 내담자가 자신의 고통을 알지 못한 채 단순히 고통을 호소하기만 하는 것은 결국 고통을 회피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일찍이 프로이트는 유아가 젖을 빨기를 소망하면서 일차적인 지각 동일성을 추구하지만 때때로 현실에서 이러한 소망은 바로 충족되지 않는 좌절을 겪게 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에 따르면, 유아는 이러한 좌절의 고통을 견디기 위해서 이차과정으로서 '사고'를 하게 되며 이처럼 이차과정에서 출현한 사고는 일차적 욕구를 다룰 정도로 발전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비온은 프로이트의 이러한 관점을 발전시켜 유아가 좌절이나 고통을 견딘다는 것은, 정서적 경험에 머물게 되면서 사고를 하게 되는 것이고 곧 매우 중요한 작업임을 강조했다. 따라서 그는 유아가 고통 자체를 피한다면 정서적 경험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고 결국 사고 발달에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고통을 단번에 제거하기를 바라는 내담자들에게 바람직한 치료는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고통을 제거하는 것보다는 고통을 겪도록 돕는 것이다. 아마도 내담자들이 상담이 다름 아닌 고통을 겪어내는 것이라고 한다면 아무도 상담실 문을 두드리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고통을 겪어내지 않는 한 고통을 벗어날 길은 없다. 더욱이, 고통 속에는 우리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진실이 숨어있기 마련이고 우리는 그 진실을 마주해야만 성장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진실을 피하고 싶어서 고통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만큼 고통과 진실은 맞물려 있다. 진실을 마주하는 고통을 회피하고 제거하려고만 한다면 우리는 성장할 수 없고 결국 고통을 다룰 수 없게 된다.

 

요즘 소아부터 청, 장년에 이르기까지 정신과 약이 쉽게 대중화되어 가고 있다. 물론 반드시 약이 필요한 사례도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빨리 불편한 감정, 즉 고통을 없애 버리려고만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고통을 겪어내는 시간을 갖는 것은 필요하고 이러한 시간 속에서 우리의 정서와 사고는 성장한다. 심리치료는 바로 이러한 시간을 안전하고 진실하게 다루는 시간이자 공간이며 관계이다. 때때로 내담자들은 이러한 심리치료가 너무 견딜 수 없어서 중단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내담자들은 치료사와 함께 이 고통의 시간을 견디며 겪고 통과해 나간다. 이것은 내담자와 치료사 모두에게 지리멸렬하게 긴 시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길었던 시간은 어느덧 평안과 성장, 고요한 행복으로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시간처럼 내담자의 마음속에 자리 잡는다. 진실이 준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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