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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개구리

posted Jun 05,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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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아-청개구리.jpg

 

 

부정적 치료반응(Negative Therapeutic Reaction)이란 상담 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상으로 회기 내에서 상담자와 내담자가 의미있는 접촉을 한 후에 내담자의 상태가 다시 악화되는 현상을 말한다. 프로이트(1923)는 "조금이라도 문제가 해결되고 증상이 개선되거나 일시적으로 사라진 후에 한동안 증상이 다시 악화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부정적 치료반응을 좀 더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로 바꿔보면 "청개구리"라고 말해볼 수 있겠다. 청개구리 전래동화는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간단하게 이야기해보면 옛날 옛날에 청개구리가 살았다. 청개구리는 엄마가 하는 말과는 꼭 반대로 행동했다. 산에서 놀아라 하면 냇가에서 놀고 냇가에서 놀아라 하면 산에서 놀았다. 엄마가 개굴개굴 노래를 가르치면 굴개굴개 불렀다. 엄마는 죽기 전에 청개구리에게 산속에 묻어달라고 하면 반대로 냇가에다 묻을 게 뻔한 까닭에 "내가 죽으면 나를 냇가에 묻어다오." 유언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에 엄마의 유언은 꼭 지켜야겠다고 결심한 청개구리는 엄마를 냇가에 정성스레 묻고 돌아오는 길에 소나기가 갑자기 퍼부었다. 그 뒤로 청개구리는 엄마의 묘가 떠내려갈까봐 비만 오면 개굴개굴 슬피 운다는 내용이다.

 

단순히 엄마 말을 잘 듣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한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청개구리 동화를 가져온 것은 아니다. 엄마 말이 아니라 "우리는 자신 안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들어주고 있을까?"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우리 마음 안에는 청개구리 같은 면이 있다. 그리고 우리 안에는 참자기도 있다. 떼쓰고 고집피우는 아이도 있지만, 몇만 번을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걸음걸이를 배우던 아이도 있다. 우리는 어떤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까?

 

얼마 전 꾸었던 꿈이다. 나는 갓난아이를 길가에 버리고는 그 사실을 까맣게 잊었다. 다음날 같은 장소를 걸어가다가 문득 내가 아이를 버렸다는 사실이 생각나서 그 장소로 달려갔다. 아이가 길바닥에 누워있었다. 아이가 혹시 죽었나? 하고 두려움에 떨면서 그 아이에게 다가가 아이 가슴에 귀를 가만히 대어보았다. 아이 심장이 약하지만 뛰고 있었다. 나는 얼른 아이를 품에 안았다. 내가 아이를 안자 아이는 말했다. "왜 이제 왔어?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그 말을 듣고 아이를 꽉 껴안고는 "정말 미안해. 늦어서 정말 미안해."라고 말하면서 잠에서 깼다. 잠에서 깬 후에 침대에 앉아서 한참 동안 울었다.

 

그리고 며칠 뒤였다. 내 과거의 청개구리 모습을 마주하면서 내 삶의 진실을 보는 고통스러운 날들이었다. 나는 청개구리처럼 엉뚱한 선택을 하면서 그것이 마치 남들과 다른 나의 개성인 듯 착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청개구리 같은 선택으로 내 인생에 잃어버린 것들을 보았고, 결국 그 선택을 내가 했다는 것은 나를 통곡하게 했다. 그날도 하루를 시작하며 마음이 참 무겁다는 생각을 하던 중이었다. 내 안에 목소리가 말했다 '속상하면 울어도 돼.' 그 말이 나에게 위로가 되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이 목소리가 참자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제 이 목소리가 나와 같이 있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내 안의 목소리가 다시 말했다. '나는 원래 이 자리에 있었는데? 근데 네가 내 이야기를 안 들어주었잖아.' 순간 울컥하며 며칠 전 꾼 꿈이 생각났다. 내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것은 내가 내 아이를 버려두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이가 나를 오래 기다려준 만큼 이제는 내가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줄 차례다. 내가 말한다.

 

"기다려줘서 고마워."

김지아-프로필이미지.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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