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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국의 걸으며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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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국의 걸으며 생각하며 5 - 꽃, 벌 그리고 나비

posted May 3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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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벌_집 앞 공원에서-1.jpg

 

 

걸으며 생각하며 - 꽃, 벌 그리고 나비

 

파리살이를 시작하며 어느 교회로 출석할 것인가는 또 다른 고민의 출발점이었다. 정착하는 동안 몇몇 교회를 순례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음악 전공자들이 많이 출석하는 교회는 매주일 예배가 콘서트 장을 온듯하기도 하고, 시내를 누비며 한인교회를 찾는 즐거움이 있기도 하였다. 하지만 결국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으로 결정하게 되었다. 식구들 모두 낯을 가리는 편이라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 왠지 모르게 불편하기도 했고, 또 주일아침 분주히 서두는 것이 마뜩치 않음도 집 가까운 교회로 정하는데 한몫 했을 것이다. 프랑스 개신교회 교육관을 빌려 드리는 주일 예배는 소박하고 단출하다. 어른 출석인원이 몇 명되지 않아 어린이를 제외하고는 중학생부터 모두 함께 예배당에 모인다.

출석한지 6개월이 지났을 무렵 목사님으로부터 예배 시간에 회중기도를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몇 명되지 않는 교인들이 돌아가며 예배 준비하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뭔가 역할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던 참이라 안사람과 상의하여 선선히 요청을 수락하기로 하였다. 향린교회에서 분가하여 섬돌향린교회를 평신도 목회를 지향하는 교회로 세워가는 과정에 어린이를 위한 하늘뜻 펴기와 어른을 위한 하늘뜻 펴기는 목회자와 평신도가 나누어 맡아 하고 있으며 기도 또한 모든 교인이 돌아가며 해왔던 경험이 있어 회중기도는 마땅히 해야 할 교우들의 의무라 여겨졌다. 하지만 몇 명 되지 않는 교우들로 5주에 한 번씩 돌아오는 기도 담당은 늘 고난의 시간이며 도전과 깨달음을 연속으로 주는 기회가 되었다. 특히 십대 중반의 아들들이 함께 듣는 기도라 생각하니 내용에 여간 신경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올 봄에는 산책을 나간 짬짬이 꽃이 활짝 핀 나무 아래에 벌들이 윙윙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하염없이 서 있었던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일하는 곳 사무실 정원에서도, 집 앞에 있는 공원에서도, 좀 멀리 걸어 나간 숲에서도 만개한 꽃잔치 속에 벌과 나비가 만들어 내는 소리와 향기와 미장센은 넋을 놓기에 충분하였다. 만물의 조화는 올해만 그런 것이 아니라 늘 때가 될 때마다 그러하였을진대 유독 올해 그 조화로움이 내 마음에 들어왔나 보다. 3주전 예배를 위한 기도문은 올 초의 다짐대로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쓰고자 하였다. 기도문을 쓰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올해 봄이 내게 준 선물인 꽃과 벌 그리고 나비가 등장하게 되었다. 내가 받은 그 조화로움을 혼자만 간직하기엔 너무 아쉬웠나 보다.

 

          *         *          *


햇살이 맑은 주님의 날에 교우들이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기회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이 5월 12일이니 이미 늦봄에 해당하는 절기이지만 요즘 파리의 날씨는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어 봄이 봄 같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낮의 길이가 길어지고 비바람 사이로 비치는 따뜻한 햇살에 온갖 꽃들이 피어나고 벌들은 부지런히 꿀을 따고 꽃가루를 옮기며 가을의 풍요를 위해 지은바대로의 섭리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음을 저희는 알고 있습니다.

만물이 순조롭게 작동하는 듯이 보이지만 세밀히 들여다보면 각기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나무가 봄기운이 돌면 뿌리에서 수분을 흡수하여 가지 끝까지 온 힘을 다해 밀어 올리어 꽃과 잎을 피워냅니다. 그리고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벌과 나비의 수고를 필요로 합니다. 꽃들은 벌과 나비의 먹거리로 꿀을 제공하고 벌과 나비들은 꽃가루를 전해주는 사랑의 전도자가 되어 나무와 식물들이 결실을 맺고 후손을 대대로 이어갈 수 있도록 합니다. 물론 그 결실의 일부를 우리 사람들과 동물들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양식으로 삼습니다.

하느님 지으신 세상의 아름다움은 인류가 발전시켜온 자연과학의 지식을 통해 그 오묘함이 더욱 빛나고 누적된 인문학의 성취로 그 감동의 깊이를 더하고 있습니다. 질량이 없는 미립자와 양자세계부터 질량을 가늠할 수 없는 블랙홀을 포함한 광대한 우주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탐구와 도전이 인식의 지평을 넓히고 하느님 지으신 천지만물의 아름다움을 느끼는데 한발자국 더 다가갈 수 있도록 저희를 이끄시옵소서.

이 봄에 平和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 지난 평창에서 열린 겨울올림픽을 기점으로 한반도에 불어오던 평화의 물결이 잠시 주춤하고 있습니다. 남북 간, 북미 간, 한미 간 정상회담이 수차례 열렸으며 급물살을 타는 듯 평화의 물결이 전진해가다 요즈음 각 자의 입장에서 셈법이 공유지점을 찾지 못하여 탐색전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발사체다 미사일이다 하는 논란이 언론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과 냉전의 과거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무력충돌이 다시 발생할 경우 한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절실히 우리 스스로가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다만 희망적인 것은 한미 지도자 모두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으며 대화의 끈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꽃과 벌이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주고받으며 공존하고 있는 지혜를 우리가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평화는 전생이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또한 평화는 모두가 함께 공존하는 상태이기도 합니다. 평화라는 글자를 살펴보면 和자는 벼화(禾)자에 입구(口)자가 합쳐져 있습니다. 평화는 모두가 쌀을 고루 나누어 먹는 것이며, 이러한 상태가 평화의 본질이라 생각합니다. 우리 주변에 굶주린 이웃이 있다면 평화는 애당초 성립 불가능할 것입니다. 자연재해가 원인이다 경제제재가 원인이다 말들이 많지만 연유가 어떠하던 그간의 사정은 제쳐두고 북쪽에 있는 우리 동포가 굶주림에 직면해 있다면 우선 그들의 배고픔을 슬퍼하고 공감하며 행동을 취하는 것이 마땅히 우리가 해야 할 일일 것입니다.

평화를 이루어 나아가는 데에는 지도자의 역할 뿐 아니라 시민 개개인의 참여와 의지도 중요합니다. 우리가 일상을 살면서 평화를 이루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우리의 심성을 늘 깨어 있도록 인도하옵소서.

우리와 함께 먹고 마시며 또 늘 깨어 기도하라 가르침 주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꽃과 벌_회사 정원에서-1.jpg

 

김영국-프로필이미지.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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