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d1d9d2

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30 - New York Tough

posted Aug 01, 2020
Extra Form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20200628_225204_resize.jpg

 

 

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30 New York Tough

 

 

“And we're going to get through it because we are New York, and because we've dealt with a lot of things, and because we are smart. You have to be smart to make it in New York…. We are tough. You have to be tough. This place makes you tough. But it makes you tough in a good way. We're going to make it because I love New York, and I love New York because New York loves you.” – Andrew Cuomo

 

3개월의 피난 살림을 꾸려 집으로 오는 길에 ‘We Are New York Tough’라고 번쩍이는 도로 전광판을 보니 콧등이 시큰해진다. 뉴욕시에 정이 떨어져 교외로 이사 갈 것을 고려했는데, 이 반응은 뭐지? 고작 전광판 메세지에 넘어가다니…. 내 생각과는 달리 뉴욕에 일단 발을 들인 한, 뉴욕 사랑은 어쩔 수 없나 보다.

 

NewYorkTough_poster_resize.jpg

 

뉴욕 주지사 앤드류 쿠오모가 최근 시민 정신을 고취하는 아트시리즈의 일환으로 “New York Tough” 포스터를 선보였다. 아티스트가 실제 포스터를 그렸지만, 그 내용과 아이디어는 쿠오모 주지사가 대부분 생각해낸 것이라고 한다. 111일 동안 과학적인 데이터와 통계에 근거한 일일 브리핑은, 코로나와의 전쟁터에서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힌 뉴요커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듣는 전시사령관의 지시 같았다. 글머리의 인용은 그의 일일 브리핑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포스터의 이미지를 보면 코비드란 산을 넘으면서 그간 뉴욕에서 벌어진 일들을 떠올리게 된다. 커브를 내리는 밧줄을 당기고 있는 사람 중에 주지사의 세 딸과 애완견이 눈길을 끈다. 초승달에서 “이건 단지 독감일 뿐이야“ 하고 앉아 있는 트럼프도 보인다. 고공 행진하던 커브를 내려왔지만, 아직 뉴욕 확진자의 수는 수백 병에 머물고 있어 경계를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40개 주에 달하는 곳에서 코로나 확진자들의 폭증은 제2차 감염을 우려케 한다.

 

제멋대로 생긴 자유로운 영혼들이 빽빽하게 모여 사는 뉴욕이 하나로 단합한다는 것이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뉴욕시민들이 이만큼 커브를 내려온 것은 한편으론 놀랍다. 길에 보면 아직도 마스크 안 쓴 사람들이 많고, 그나마 턱에다 걸거나 코는 열어놓아 쓰나 마나 한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는데, 여기까지 온 것은 대부분의 뉴욕시민은 각자 위치에서 애써 주었으니 가능하지 않았을까? 

 

 

noname_resize.jpg

Photo by C. I . Lee

 

센트럴파크 근처에 사는 친구가 처음엔 사진을 찍으러 갔다가 블랙 라이브즈 매터 시위현장에서 시민들의 힘에 이끌려 세 시간을 “Black Lives Matter”, “Don’t Shoot”, “ I can’t Breathe”를 외치며 행진을 하고 왔다고 한다. 보내준 사진들 속에 각양각색의 시민들, 함께 따라나선 멍멍이들을 보다 내 시선이 멈춘 사진이 있다. 제일 끝에 뒤따라가는 나이 지긋한 분.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위험할 수 있는 이분이 거리를 나섰을 땐, 더 중요한 삶의 문제가 있구나 하고 어떤 메시지보다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 You are NY tough”

 

NYU 주변의 동네는 학생들이 많이 떠나서 상점들이 문을 못 열고 거리가 한산하다. 캠퍼스의 중심인 워싱톤 스퀘어파크는 지난 번 줌 반상회에서 북서쪽 Hangman’s Elm 근처에는 홈리스들이 더욱 붐비고 마약거래가 빈번해졌다고 들었다. 매일 아침 이곳을 산책하는 친구가 며칠 전에 멀리서 보니 나무 사이에 마치 그림들을 걸어 놓은 듯 보였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홈리스들이 줄을 매고 옷들을 걸어 말리고 있다고 한다. 현재 뉴욕시의 139 호텔(뉴욕 호텔의 20% 정도)이 임시 홈리스 쉘터로 전환하여 운영된다고 한다. 뉴욕시는 홈리스의 코로나 확산을 방지하고 호텔은 적자를 면하려 스마트하게 머리를 굴리는데 근처 주민들의 시선은 곱지만 않은 것 같다.

 

 

20200628_191603_resize.jpg

 

 

이스트 빌리지에는 시위를 틈탄 약탈자들이 파손한 유리창을 보드로 막고 아직 문을 열지 않은 가게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근처에는 내가 좋아하는 그리스 음식점 Pylos에 주문한 음식을 찾으러 들렸다. 생선요리가 좀처럼 맛있기 힘든데 피스타치오를 입힌 배스는 내가 좋아하는 메뉴다. 90끼를 줄곧 집밥을 먹다가 얼마 만에 하는 외식인가! 갑자기 소낙비가 한바탕 쏟아졌다. 실내 테이블은 허용이 안 돼 밖으로 나온 두 테이블만 손님을 받고, 주문 음식을 받는데 나의 비밀병기 Pylos가 부디 잘 버티어 주기를!

 

 

20200628_191250_resize.jpg

 

 

음식점들이 야외 공간을 넓히려고 도로 면까지 텐트를 치고 화분도 갖다 놓고 꾸미느라 돈 들이고 애썼을 텐데, 소낙비다, 90도가 넘는 불볕더위에 손님이 별로 없는 음식점들을 보면 마음이 짠하다. 문을 닫고 시야가 확보될 때를 기다리는 것 아니면 어떻게 서든지 영업을 꾸려나가려는 것

글쎄 어떤 게 정답일까?

 

도어맨이 돌아온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다. 그간 80% 정도 아파트 주민들이 이곳을 떠나갔다고 한다. 집에 들어서면서 내가 제일 두려워했던 것은 그간 방치하고 왔던 화초들과의 대면이었다. 그 화초들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통나무집 화초들에 정성을 다했는지도 모르겠다. 새엄마가 자식을 놔두고 와서 의붓자식에게 잘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심정으로. 그런데 고맙게도 이 화초들이 두 달간 물을 못 주었는데 다 살아있었다. 삐죽이 말라있는 화초를 보니 어찌나 미안하고 고마운지… 꽃기린 선인장은 가지가 휘어있고 가느다란 가지에는 가시도 자라지 않고 생명을 부지한 것 보면 너희들이야말로 NY Tough구나.

 

우리 아파트에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꼭대기 부분만 보인다. 보통 때는 하얀 불빛이지만 특별한 날에는 그날의 특징을 살려 불빛을 조명한다. 그간 새빨간 불빛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을 뉴스에서 보았는데 오늘 창문밖에는 무지갯빛 조명이 비친다. 6월 28일 프라이드 행진을 기념하는 무지갯빛일 텐데 뉴욕시로 돌아온 나를 뉴욕이 기쁘게 맞이하는 것이 아닐까? 다음날도 대낮에 소나기가 한바탕 쏟아지더니 창밖에 쌍무지개가 동쪽 하늘에 걸려있었다. 

 

 

20200629_183142_resize.jpg

 

PS. 필자는 뉴욕시를 석 달 떠나 있었다. 이곳에 남은 두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들이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되었다. 진정한 NY Tough 두 친구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홍영혜-프로필이미지.gif

 

 

 

 

 


  1. 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36 - 겨울 숲엔 새 길이 보인다

    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36 - 겨울 숲엔 새 길이 보인다 Sue Cho, “Midday after the Snow”, 2021, Digital Painting 코비드-19가 시작되고 한 달 남짓하여 “일상이 그립다”라는 글을 썼는데, 이젠 “옛 일상이 와도 새롭다”...
    Date2021.01.31 Views253 file
    Read More
  2. 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35 - 작은 기쁨

    Sue Cho, Children’s Story Book Series, 2018. Acrylic, 46 x 46 in. 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35 - 작은 기쁨 코로나 백신이 승인되고 이제 터널의 끝이 보이는 것 같은데, 12월이 되니 오랫동안 삭혀왔던 어둡고 침체한 마음을 끌어 올리기가 버겁다. ...
    Date2020.12.30 Views331 file
    Read More
  3. 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34 - 아메리카 원주민의 기도

    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34 - 아메리카 원주민의 기도 Sue Cho, ”Ceremony for the Lost Lands”, 2020, Digital Painting 연일 올라가고 있는 코비드 19 감염률로 2020 Thanksgiving Day는 가족들이 모이지 않고 각자 조용히 보내기로 했다. 터키 대...
    Date2020.11.30 Views360 file
    Read More
  4. 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33 - 다름의 미학, Sterling Forest, NY, 2020

    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33 - 다름의 미학, Sterling Forest, NY, 2020 Sue Cho, “Fall Escape”, 2020, Digital Painting 밤새 비가 지붕을 후드둑 후드둑, 캠핑와서 텐트 속에 있는 것 같다. 비가 온 다음 촉촉한 숲이 좋다. 수북이 쌓인 낙엽 위를...
    Date2020.11.01 Views260 file
    Read More
  5. 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32 - 가을은 참 예쁘다, 'Big Apple' 사과 따기

    Sue Cho, 'My father and I – you pick apple orchard farm', 2020, Digital Painting 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32 - 가을은 참 예쁘다, 'Big Apple' 사과 따기 가을은 참 예쁘다 가을은 참 예쁘다 하루하루가 코스모스 바람을 친구라고 ...
    Date2020.09.29 Views880 file
    Read More
  6. 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31 - 코로나 방구석 춤

    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30 - 코로나 방구석 춤 Sue Cho, Shake your Booty, 2020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주차장에 차를 찾으러 가는데 메렝게(Merengue) 음악이 흘러나온다. 나도 모르게 원투쓰리풔 파이브식스세븐에이트. 힙을 씰룩거리며 ...
    Date2020.08.31 Views422 file
    Read More
  7. 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30 - New York Tough

    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30 - New York Tough “And we're going to get through it because we are New York, and because we've dealt with a lot of things, and because we are smart. You have to be smart to make it in New York…. ...
    Date2020.08.01 Views435127 file
    Read More
  8. 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29 - 거미 숲속 넝마주이

    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29 - 거미 숲속 넝마주이 아침 녘의 숲속 길은 신선해서 좋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숲이 지루하지 않다. 걸어가면서 눈에 익은 튜울립나무, 사사프라스나무, 산월계수의 이름을 불러주고, 들풀들도 하나씩 이름을 떠올려 본다. 숲속에 있...
    Date2020.07.02 Views259 file
    Read More
  9. 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28 - 코로나 감빵면회

    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28 - 코로나 감빵면회 Rose B. Simpson, Pod IV & Pod III, 2011, Pottery, reed, cotton twine, pigments 하루 전날 내일은 거의 백일만에 손녀를 보러 간다. 외출금지령 이후 비상사태에 적응하느라, 또 서로 만나는 것을 조심하다...
    Date2020.06.01 Views343 file
    Read More
  10. 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27 - 나의 피난처 , 호숫가 통나무집

    홍영혜의 뉴욕 스토리 26 - 나의 피난처, 호숫가 통나무집 트렁크 두 개에 짐을 넣었다. 하나에는 쌀이나 미역 등 마른 음식과 간단한 주방 기구들을 싸고, 다른 하나에는 옷과 일용품을 챙기고 빈자리에 요가 매트와 3파운드 덤벨 2개, 성경책, 그간 읽고 싶...
    Date2020.05.02 Views366 file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Next
/ 7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