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심심엔]

ddaeed

인간의 수동성, 그 안에 있는 능동성

posted Apr 27, 2020
Extra Form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IMG_8570-1_resize.jpg

 

 

인간의 수동성, 그 안에 있는 능동성


살다보면 원하던 원하지 않던간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바라고 원하는 일이라면 기쁘게 받아들이면 되는데, 원하지 않는 일이라고 해서 거부할 수는 없다. 거부할 수 있는 아무런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일은 내게 너무 가혹하니 다른 것으로 바꿔달라고 할 수도 없고,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냐고 따져 물을 수도 없다. 이미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도 없다. 그저 지극히 수동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수 밖에는 아무런 다른 도리가 없다.

무능하다. 수동성을 마주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 중 하나이다. 일어난 일 앞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은 무능감과 무력감을 느끼게 한다. 무능감을 느끼는 것은 인간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내가 그 때 이러이러하게 했다면 이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텐데.” 라는 말도 마치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있다고 믿고 싶고 , 자신의 무능을 방어하고 싶은 마음에서 나오는 말일 것이다.

인간의 가장 수동적이고 무능한 상태는 아기이다. 아기는 자기에게 일어나는 일을 온전히 수동적으로 받아들여야한다. 아기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아무 것도 없다. 어른들은 아기를 돌볼 수도 있고, 걸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하기도 한다. 아기는 그 어느 것하나도 할 수 없다. 아기는 누군가 돌봐주지 않으면 살 수 없다. 돌봄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한다. 어쩌면 가만히 누워있기만 하면 보살펴주니 얼마나 편하고 좋으냐고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것은 어른의 관점이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아기의 관점은 다를 것이다. 어른의 경우에도 자신은 할 수 없는 것을 다른 사람이 능숙히 하는 모습을 바라보기만 해야할 때 과연 좋고 편하기만 할까?

처음 상담실에 왔을 때 영수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부정하거나 부인 했고 되돌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음에 매우 고통스러워했다. 자신의 잘못으로 그 일이 일어난 것처럼 자책했고,  그 날 자신이 조금만 일찍 혹은 늦게 그 곳에 도착했다면 그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꺼라고 괴로워했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차차 영수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었다. 어떤 회기에서, 영수는 “그 일은 이미 일어났고, 저는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네요.”라고 말하고는 아주 슬프고 서럽게 한참을 울었다. ”그러네요. 받아들일 수 밖에 없네요.”라고 말하고는 아무 것도 해줄 수 없는 무능한 상담자가 된 나도 같이 눈물이 났다. 잠시 침묵이 흐른 후에, “선생님. 그런데, 생각해보니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어요. 그건 바로 우는 거예요.”라고 영수가 말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서럽게 울던 영수가 울 수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이 참 놀라웠고 반가웠다. 아마도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나니, 작더라도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보게 된 것 같다. 수동성을 받아들이고 나니 능동성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고보면 아기도 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도 바로 우는 것이다. 작고 약한 아기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우는 것이다. 처음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우는 것 뿐이지만, 아기는 차츰 스스로 먹고, 걷고, 말하고 더 많은 것을 하게 될 것이다. 영수도 지금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 앞에서 주저앉아 울고 있지만, 차차 그것을 더 많이 받아들일수록 영수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수동성을 받아들이고나면 그 안에 있던 능동성도 같이 맞이하게 된다.

 

김지아-프로필이미지.gif

 


  1. 코로나 일상에서 의지하기

    코로나 일상에서 의지하기 출근길 아침은 늘 바쁘고 종종댄다. 코로나가 우리 삶의 일부로 들어오면서부터는 챙길 게 한 가지 더 늘어났다. 바로 마스크다. 지난 몇 달간 마스크를 두고 집을 나섰다 낭패를 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언제쯤 마스크가 내 몸...
    Date2020.06.29 Views241
    Read More
  2. 코로나 19를 대하는 나의 마음

    코로나 19를 대하는 나의 마음 어릴 적 나는 어른들이 베트남 전쟁에 참여한 이모부가 상이용사가 된 후에 성격이 많이 바뀌어서 이모와 부부싸움이 잦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내 어머니는 또한 6.25 전쟁 시 한강 다리가 끊겨 그해 겨울 두껍게 언 한...
    Date2020.05.30 Views279
    Read More
  3. 인간의 수동성, 그 안에 있는 능동성

    인간의 수동성, 그 안에 있는 능동성 살다보면 원하던 원하지 않던간에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바라고 원하는 일이라면 기쁘게 받아들이면 되는데, 원하지 않는 일이라고 해서 거부할 수는 없다. 거부할 수 있는 아무런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
    Date2020.04.27 Views431
    Read More
  4. 아기가 만나는 새로운 세상

    아기가 만나는 새로운 세상 지난 늦가을, 둘째를 본 조카가 다급하게 전화를 했다. 4살 첫째가 동생이 태어난 난 후 이상한 행동을 한다며 걱정과 불안을 털어놓았다. 큰 아이 출산했을 때 한두 가지 조언을 했는데 듣지 않아 내심 서운한 마음이 있었던 터라...
    Date2020.03.29 Views283
    Read More
  5. There is no such thing as an infant, 혹은 상담자?

    “There is no such thing as an infant, 혹은 상담자?” 영국의 소아정신과 의사이자, 소아과 의사, 정신분석가였던 위니캇(Donald Winnicott, 1896-1971)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위니캇은 사회적 의제와 일반 대중에도 관심이 많아서, 1948년 영국...
    Date2020.03.01 Views314
    Read More
  6. 사회정의상담과 심심(心心)

    사회정의상담과 심심(心心) 사회적협동조합'길목'의 심리치유프로그램'심심(心心)'은 사회활동가와 노동자 심리치유네트워크인 통통톡에 참여단체로 가입되어 있습니다. '2020 노동자 건강권 포럼'(3월 13~14일)에서 통통톡이 사회정...
    Date2020.02.02 Views379
    Read More
  7. 문제는 우리다

    문제는 우리다 연극심리상담과 병행하여 노동조합에서 상근자로 활동하면서 청년조합원들의 인식이 기성세대와 너무 다르다는 것을 실감한다. 이들은 신입사원임에도 불구하고 선배들에게 쫄지 않고, 자신들의 권리를 당당히 주장하며, 이전에는 당연시 해왔...
    Date2019.12.29 Views194
    Read More
  8. 지금, 여기에 있는 당신을 사랑하는 법

    지금, 여기에 있는 당신을 사랑하는 법 언제부터인가 이 업계에서는 마음챙김(mindfulness)이 대세이다. 존 카밧진이라는 의사에 의해 소개되고 있는 MBSR(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이라는 것이 미국에 소개된 지는 근 40년이 지난 것 같지만 한국...
    Date2019.11.30 Views258
    Read More
  9. 10월 월례강좌 : 상실의 고통과 절망 그리고 우울 – 이은경

    10월 월례강좌 : 상실의 고통과 절망 그리고 우울 –이은경 상실의 고통, 절망, 우울 ... 특별히 마음이 아픈 사람들의 특별한 이야기일까요? 그 무게와 색깔, 무늬를 달리하지만 상실, 고통, 절망, 우울 ... 누구의 마음에나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
    Date2019.10.31 Views243
    Read More
  10. 흔들리며 피는 꽃

    (사진 : 편집자 스토리북작업 자료) 아주 귀한 글을 받았습니다. 심심 개인상담을 받으신 내담자께서 보내주신 글입니다. 조용히 담담하게 풀어내는 이야기에 큰 울림이 전해집니다. 우리 모두에게 치유의 힘을 전해주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 편집자 주 ...
    Date2019.10.31 Views228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Next
/ 8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