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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핵 이야기 6 - 길 위의 사람들 3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 성원기 교수>

posted Aug 2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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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별의 다큐이야기 :

 

탈핵 이야기 6 - 길 위의 사람들 3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 성원기 교수"


 

순례나눔하는-성원기-교수-1resize.jpg

순례 나눔하는 성원기 교수

 

 

성원기 교수는 흔히 말하는 미남형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처럼 맑은 눈을 여태 본 적이 없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저절로 시선이 눈에 맞춰지는데 말랑해 보이는 눈꺼풀에 성근 속눈썹과 그 아래 말간 눈동자는 마치 초원위에서 어미 소와 한가로이 놀고 있는 송아지처럼 평화롭다. 그의 목소리 또한 그러하다. 그는 언성을 높인 적이 없고 남을 비방하거나 험담한 적도 없다. 내가 표방하는 평화주의자는 딱 그런 모습이었다.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의 성원기 교수를 처음 만난 건 지난겨울, 그와 함께 걸으며 올 여름을 보낸 후 이제 겨우 나는 그에 대해 쓴다. 



탈핵은 생명운동이다!


2010년 12월, 삼척에서 핵발전소투쟁운동이 시작되었다.
그 때만해도 성원기 교수는 탈핵에 별 관심이 없었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났다.
후쿠시마 핵 사고는 그를 바꾸어 놓았다. 핵발전소 사고를 막아내지 못하면 우리나라도 일본처럼 되겠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삼척핵발전소유치반대투쟁으로 삼척시장주민소환운동(2012.2~10.31)투표가 있었는데 이때부터 반핵투쟁에 뛰어들었다. 주민소환투표는 억압된 분위기 속에서 투표율 저조로 실패했다. 2013년에 매일 성체조배를 하며 핵발전소에서 사고가 나지 않기를 기도했다. 핵발전소 안 가득 차 있는 어마 어마한 양의 방사능물질이 머리를 채웠다. 단순한 계산이었다. 발전소 한 기에서 일 년에 세계 제2차 대전 히로시마 핵폭탄의 1500발에 해당하는 방사능 물질이 만들어진다면, 30년이면 45000발이 핵발전소 안에 쌓여 있다. 폭발하면 우리나라는 끝장난다.
일단 기도하며 걷기 시작했다.
2011년에 제주도 올레길 한 바퀴 400km, 산티아고 순례길 800km, 해남~고성 국토종단 700km를 걸으며 기도하는 게 몸에 뱄다.
2013년 6월 6일, 핵 사고를 막기 위해 성당에서만 기도하지 않고 현장으로 가자고 결심하고 첫 탈핵  도보 순례를 했다. 심야버스 타고 고리 핵발전소에 가서 길천 성당에서 기도로 시작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처럼 성당을 기점으로 이동하게 되었는데 6월 10일 포항 구룡포 성당에서 마지막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잠시 직장인 강원대학교로 복귀했다가 학기를 마치고 다시 두 번째 걸음을 시작했다.
6월 28일~7월 9일 구룡포 성당에서 삼척까지 12일간이었다. 이 때 삼척핵발전소투쟁운동위원회 상임대표와 ‘핵없는사회를위한공동행동’ 공동대표를 역임한 박홍표 신부가 이 운동을 전국으로 확산시키라고 해서 단 번에 전국운동으로 확대되어 구룡포 성당부터는 여러 명이 모여 깃발 들고 몸 자보를 하고  걸었다.
우리나라는 2012년 10월 17일, 독일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천주교 종단 탈핵선언을 했다. 그래서 모든 숙소는 성당. 성당이 없는 읍면소재지에서는 지역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해마다 때마다 각 지역에서 다른 사람들이 매일 매 구간을 새롭게 채웠다. 그렇게 지금까지 여름과 겨울방학이면 전국을 걸어 2018년 여름에 12번째를 맞았다.

 

 

탈핵운동은-독립운동-1resize.jpg

탈핵운동은 독립운동

 


생명은 지켜져야 하며 생명이상의 가치는 없다


성원기의 세례명은 토마스 모어, 그는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의 ‘희망’을 하느님께 두고 있다.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는 기도학교 역할을 하고, 총선이나 대선국면에선 유권자 운동으로 확산해 각 정당사무실을 방문해서 요청서를 전달하고 후속 조치를 전화로 알려 달라고 해서 확인한다. 만나는 지역주민이나 활동가 대상으로 혹은 성당 강론시간 탈핵 강의를 해서 지역 탈핵운동단체 깨우고 연대한다. 그 결과로 매주말 지역탈핵순례가 진행되고 있다. 현재 부산, 울산, 서울, 대전, 광주, 인천, 경주 등에서 탈핵도보순례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는 걸으면서 변했다.
11번째 순례까지도 그는 305일 5400km를 다 걸었기에 무조건 걸어야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12번째 순례를 열흘 앞두고 오른쪽 새끼발가락 골절로 걸을 수 없게 되었다. 이 사건은 순례가 계속되는 게 중요하지 어느 누가 집중 조명 받은 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게 해주었다. 

“순례는 내가 하는 게 아니에요. 하느님의 일을 실천하는 것이지. 생명을 살리는 게 하느님 일이에요.  인간이 핵무기, 핵발전소 만드니까 생명을 살리는 일에 우리가 사용되는 것이죠. 사람의 일과 하느님의 일은 구분되어 있어요. 사람은 씨를 뿌리지만 싹 틔우는 건 하느님이 하시죠. 우리는 씨 뿌리는 사람이에요. ‘저희는 주님의 종입니다, 저희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라고 고백해야죠. 많은 경우에 넘어지고 다시 못 일어나는 이유는 자기를 내세우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알리고 외치고 기도하고 단지 걸을 뿐이에요.”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1만-5천-리(6000km)기념미사-1resize.jpg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 1만 5천 리(6000km)기념미사

 


모든 핵발전소와 핵무기를 폐기해야 핵사고 없다


성원기는 경기도 양평 사람이다.
양평군 양동면 양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전자공학과에서 10년 공부하고 박사학위를 받아 1986년 강원대학교 교수가 되었다.
핵발전소는 모든 학문, 특히 공학과 연결되어있다. 핵발전소는 제어시스템인데 그는 전자공학에서 제어시스템을 전공했기에 물성을 이해할 수 있었고 핵발전소의 본질이 뭔지 정확히 깨닫고 있었기에 설명이 가능했다. 
간단히 말하면 핵 발전이란 핵분열로 발생한 열로 물을 끓여 전기를 만드는 것인데 이 때 방사능 물질이 만들어진다. 방사능에 노출되면 모두 죽는다. 그런데 이 방사능을 핵발전소 안에 가둬둘 수 없다. 방사능은 핵 연료봉 안에 갇혀 있지 않는다. 핵 연료봉 피복관은 부식에 대한 저항이 강한 지르코늄으로 만든다. 하지만 핵분열로 발생한 핵 방사능 물질은 피복관을 뚫고 나와 냉각수를 오염시킨다. 일단 냉각수가 오염되면 공기와 해수를 통해 주변 지역으로 방사능 확산이 발생한다. 핵발전소 구조상 주변지역 방사능오염은 피할 수 없다. 그리고 물을 끓여 수증기로 터빈을 돌린 후 해수를 끌어들여 다시 수증기를 물로 환원시키는데 해수의 양이 초당 70톤이다. 이 때 해수 온도가 7도 상승한다. 수온이 상승하면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고 해양 동식물에 영향을 미치는 건 당연하다. 올해처럼 이상기온으로 수온이 계속 상승하면 냉각수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공기 중 방사능 측정은 방사능 세슘 농도를 잰다. 다른 방사능물질도 많지만 측정하기 쉬워서 세슘의 농도를 재는 것이다. 세슘의 반감기는 30년, 스트론튬은 29년, 요오드는 8일이다.
분자가 원자로 분해되는 데 5~7eV(일렉트론볼트)가 필요하다. 그 이상의 에너지를 주면 분자로 이루어진 세포가 끊어지거나 파괴된다.  그런데, 방사능세슘의 방사선 세기는 461,000 eV이다.
일단 방사능 세슘이 축적된 고등어 등 음식을 섭취하면 인체에서 칼륨으로 오인해서 근육, 생식기에 축적된다. 생체 반감기는 70일이며, 10배인 700일 동안 매 순간 내부피폭이 진행되어 주변 세포핵의 DNA를 손상시킨다. 암의 발병원인이 되는 것이다.
스트론튬은 체내에서 칼슘으로 오인해서 뼈로 간다. 반감기는 29년이다.
방사선 요오드는 해초류에 많이 축적되며 섭취 시 갑상샘에 저장된다. 핵발전소 인근 주민들에게 갑상선암이 많이 발생하고 있으며, 현재 고리, 월성 핵발전소 인근 주민들 600명 이상이 갑상선암에 걸려서 집단소송중이다.

핵사고 발생원인은 세 가지이다.
첫째, 핵발전소의 구조상 냉각수 오염을 피할 수 없으며, 이로 인한 핵발전소 주변지역의 공기, 토양, 해양의 핵 방사능 물질 오염
둘째, 히로시마, 나가사키처럼 핵폭탄 폭발
셋째, 핵발전소 폭발사고
첫째와 둘째는 인간의 의지로 어찌해 볼 수 있지만 셋째는 사고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일단 발생하면 속수무책이다. 


소박한 삶이 생명을 살린다!


건설공사와 불가분의 관계인 핵발전소는 소비산업과 직결돼 있다.
그 구조를 아는 사람은 소박한 삶을 지향한다.
성원기 교수는 자전거로 출퇴근 한다. 그가 순례 때 몰고 와서 짐차로 사용하는 자동차는 2002년 형이다. 순례 내내 두 벌 옷이었다. 학기 중에도 양복과 와이셔츠는 학생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기에 대학교 연구실에 두고 강의할 때만 입는다. 와이셔츠는 일주일에 한 번 세탁한다. 필요한 옷들이 점점 줄어들었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글자 수도 줄여야 하나 고민한다.)

둘 다 다리를 다쳐 차로 이동하던 한여름, 한 번은 함평의 한 식당에서 카드결제가 되지 않아 현금을 찾으려는 그를 태우고 농협은행에 간 적이 있다. 은행 앞에서 기다리는데 그가 한참을 나오지 않기에 돈이 없어서 융통하나 걱정을 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삼척핵발전소반대투쟁위원회 공동대표 명의로 된 통장에 수입과 지출을 일일이 기록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그 통장이 회계장부였던 셈이다. 인자하고 너그러운 성격 이면에 투명하고 철저한 돈 관리는 신뢰를 구축하기에 합당했다. 안양에서는 녹색당에서 점심식사비를 계산했는데 그걸 취소하고 전 날 숙소였던 군포성당에서 주신 후원금으로 일부를 계산했다. 쓸데없는 축적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지난 두 달간 지켜본 성원기 교수의 모습 중 가장 놀라웠던 건 수용성이었다.
사실 순례자들은 모두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들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멀고 험한 길을 걸어낼 강단이 없다. 매일매일 만나는 새로운 사람들은 때론 묵묵히 때론 격렬하게 자기 생각을 표현한다. 성원기 교수는 그들 모두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었다. 말하는 동안에 그들 스스로 치유가 된다고 믿고 있었다. 이 순례에 온 사람들은 ‘다른 길로 가지 않을 것’이라고. 그것은 순례에 참가한 사람들이 기대하는 성원기 교수의 모습과도 일치했다. 천주교 신자이자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의 아들인 토마스 모어 성원기 자신이 다른 길을 가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이제 성원기 교수가 대학에서 강의할 날이 5학기 남았다. 우리 순례자들은 그가 정년퇴직을 하면 일 년에 두 번이 아니라 분기별, 혹은 일 년 내내 탈핵순례를 하지 않을까 낄낄 웃으며 걱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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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건너는 성산대교/잠시 멈추고 가로지르는 횡단보도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 보여주는 순례


“걷는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내가 물었다. 
“깃발을 본 사람과 보지 않은 사람들은 달라요. 사람들이 고생하는 이유를 관심 갖고 보게 되죠. 전단지도 읽죠. 그리고 이게 지역 방송을 타고 알려지죠. 그리고 무엇보다 기도하잖아요. 같이 걷는 사람들 생각이 바뀌고 각 지역 활동가들을 만나고 나면 이들이 자기 지역에 가서 훨씬 헌신적으로 활동해요. 밑에서부터 흔들어 깨우죠.”

깃발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라고 시인 유치환이 노래했다. 깃발 들고 가는 것은 ‘우리를 살려 주세요’ 라는 외침이라고, 한 구간만 걸어도 자부심을 가질 수 있고 한 발자국, 기도만 같이 해도 순례자라고 그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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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산과 함께 선학천무를

 

 

2018년 8월 20일 월요일, 삼복더위 5주를 쉬고 하반기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를 시작했다.
용인성당에서 권선동성당으로 걷다가 성원기 교수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핵발전소를 재가동했다는 소리에 삼복폭염 속에서 에어컨 안 틀고 죽은 듯이 지냈다고 하자, 그것이 연중계획에 따라 예방정비 기간을 거쳐 정상적으로 재가동한 것이었는데 마치 폭염 때문에 쉬고 있던 핵발전소를 재가동한 것처럼 언론에서 보도했다는 것이었다.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검은 권력에 대해 잠시 방심하고 있었다. 그 거대한 권력은 그렇게 교묘하게 시민들을 속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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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인보성체수도회 수녀님들과

 

 

일주일을 걸었다.
굵직한 일들을 정리해 보면, 월요일에는 한 주 전에, 모 인터넷신문사에서 나의 <탈핵 이야기5>를 무단 도용, 전재, 배포한 사태가 있어 의욕도 없고 몸도 좋지 않아 아침부터 허둥대다 지갑을 빼놓고 갔다. 수원에서 다시 용인으로 차를 가지러 가야하는데 돈이 없었다. 그 때 청명이 자기 지갑을 주었다. 지갑을 주다니……. 가족이 아니고선 그러기 쉽지 않다. 처음 해 본 경험이었다. 내 돈이었으면 택시 타고 20분이면 갔을 거리를 남의 돈 아끼느라 버스로 50분간 갔다.
21일 화 오후, 전주인보성체수도원에서 일곱 분의 수녀님들이 오셔서 다음 날부터 토요일까지 함께 걸으셨다. 
22일 수, 안양시청에서 <탈핵 이야기 3>의 주인공 고이나 님과 아들 한울이를 만났다. 탈핵이라는 같은 마음 한 뜻으로 다른 장소에서 만나는 건 무척 반갑고도 든든하다.
23일 목, 드디어 들어온 서울의 첫 인상은 강감찬장군 동상이 있는 공원에서 관리소장의 박대로 좋지 않았다. 서울시민으로서 타 지역 분들에게 사과인사를 해야만 했다. 그 날 유성기업에 압수수색이 들어왔다는 연락을 받고 불안한 마음에 남부지법으로 가 창조컨설팅 선고를 지켜보았다. 그런데 다음 날, 수녀님 한 분이 전 날 별 일 없었냐고, 기도했다고 하셨다. 생면부지 나를 위해, 알지도 못하는 유성기업을 위해 전주에서 오신 수녀님이 기도를 하시다니……. 이렇게 기도로 하는 탈핵도보순례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하게 한다.  
24일 금, 밤새 걱정하던 태풍 솔릭이 비껴가서 성산대교를 걸어서 건널 수 있었다. 평화의 공원 난지연못가에서 비를 맞으며 스무 명 남짓의 순례자들이 깃발을 들고 춤을 추었다. 세상에서 동떨어진 다른 시공간 같았다. 신사동 성당에서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 6000km(1만 5천 리) 기념 미사를 드렸다.
2018년 8월 25일, 마침내 영광 핵발전소에서 시작한 여름 순례가 서울 광화문에서 끝났다.
원주에서 오신 이동훈 신부님이 미사 중에 말씀하셨다.

“가장 더운 여름에 가장 뜨거운 아스팔트 위를 걸은, 가장 바보 같은 짓을 한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있기를.”

이 순례는 핵발전소 모두 문 닫고 핵무기 모두 폐기하는 그날까지, 돌아오는 겨울과 그 다음 여름에도 이어질 것이다. 다만 순례자들은 계속 달라질 것이다. 그래서 매일매일 새로운 길을 펼쳐 나갈 것이다. 그 길의 시작에는 성원기 교수가 끔뻑끔뻑 송아지같은 맑은 눈으로 걷고 있을 것이다.  

 

 

기자회견하는-성원기-교수-1resize.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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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하는 성원기 교수/영광에서 광화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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