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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별의 다큐 이야기] 탈핵 이야기 13 - 경주 나아리 · 울산 북구 주민들과 보낸 한여름

posted Aug 2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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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별의 다큐 이야기] 탈핵 이야기 13 - 경주 나아리 · 울산 북구 주민들과 보낸 한여름  

 

 

6월 울산시 북구 주민투표

 

망설이다 울산 북구 주민투표소에 간 건 순전히 청주에서 울산까지 내려가 선거관리관으로 수고하는 청명 때문이었다. 이런 나를 누군가는 사상이나 이념보다는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라고 한다. 진심의 순도는 충분히 알고도 남지만 중심의 깊이가 보이지 않는다고도 한다. 하지만 중요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내 이익을 포기하며 서너 시간 걸려 이동하는 데 고생하는 친구만한 이유가 더 있을까. 

그렇게 전국에서  탈핵을 지지하는 이들이 이러저러한 이유로 울산 북구에 모였다. 울산 북구의 일이 곧 경주의 일이자 전국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저장시설 추가건설 찬반 울산북구 주민투표>를 실시했던 2020년 6월 5일과 6일의 모습이었다. 지난 2월 10일에 참여했던, 그간의 울산북구 서명운동의 결실을 거두는 시간이었다.    

사전투표 · 온라인투표와 더불어,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체온측정, 비닐장갑 사용 등 불편함이 그득한 본투표까지 포함해 유권자 175,138명 중 50,479명이 투표에 참여해 28.82%의 투표율을 보였다. 투표자 중 94.8%인 47,829명이 ‘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 대용량 조밀건식저장시설(맥스터)’ 건설에 반대했다. 비록 목표했던 6만 명에는 못 미쳤지만 바이러스 정국을 감안할 때 투표 참여인원 수는 대단히 유의미했다. 그날 투표는 저녁 8시에 마감했고 투표용지를 개표소까지 나르고 나니 밤 9시였다. 월성핵발전소가 있는 나아리에 가보고 싶었지만 갈 수 없었다. 대신 다음 날 새벽 경주역 앞에 있는 ‘월성원전 핵쓰레기장 추가건설 반대 경주시민대책위’ 천막농성장에 들러보았다. 천막에는 몇몇이 한뎃잠을 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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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역 앞 월성원전 핵쓰레기장 추가건설반대 농성천막

 

 

6월 26일 금요일, 황분희 월성원전인접지역이주대책위원회 부위원장의 전화를 받았다. 나아리 비상대책위원장이 경주시청 앞에서 5일째 단식농성중인데 전날 몸싸움이 났다고 했다. 

경주시청에 갔을 때는 단식9일째였다. 오종태 나아리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2월 상여시위 때 함께했던 분이었다. 그 때만해도 맥스터에 대해선 불분명한 입장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런 비상대책위라니? 알고 보니 한수원의 지역 상생협력 지원금 66억 5천 만 원이 10년 이상 거주민들로 구성된 ‘마을회’라는 단체로 들어가고, 마을회에서는 그 자금으로 자체주민사업인 풀빌라(수영장이 있는 빌라형 숙박 시설)를 건설하면서 시범마을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그런데 한수원의 막대한 지원금에 부지담보 은행 대출 13억에 이어, 10억 원의 추가 대출 요청이 발생한 것이었다. 이에 마을회와 시범마을추진위원회에서 배제된 주민들이 나아리비상대책위원회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그제까지 진행된 사업자료 공개를 요청했으나 거부당하고 있었다. 나아리 비상대책위원장은 단식 15일째 병원에 실려 갔고, 17일째 단식을 접었다. 그 때까지 주요 언론 어디에서도 이 문제를 다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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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 양남면 읍천리 풀빌라 신축공사현장 

 

 

7월 서울 투쟁

 

7월 18일 토요일 <핵쓰레기장 저지 범국민 행동>이 경주에서 열렸고 청명과 니키가 그곳에 있었다. 

사흘간 있었던 전국공론화(500명)에 이어 이틀간 진행하는 지역시민단(150명) 공론화 저지 차 간 것이었다. 그런데 주최 측에서는 갑자기 예정된 장소를 바꾸어 각 가정에서 모니터를 통해 공론화를 진행했다고 한다. 졸속처리였다.    

 

7월 22일 수요일 국회 <월성 1호기 등 중수로 삼중수소 관련 기자회견>에서 황분희 월성원전인접지역이주대책위 부위원장과 신용화 사무국장을 만났다. 자료에 의하면 월성1호기 영구정지로 삼중수소 배출량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 전 세계에서 10% 정도밖에 없는 캐나다형 가압중수로인 월성1호기는 경수로에 비해 삼중수소 배출이 기체에서 4~5배 가까이 높다. 이미 수명이 다해 폐쇄 결정한 월성1호기를 재가동하자는 일부 주장은 인근 주민건강과 국민 안전을 무시하는 바이다.   

이날 나아리에서는 이장해임, 시범마을 공동사업 자료공개, 10억 추가대출 반대 등 안건을 놓고 시범마을 임시총회가 예정돼 있었으나 또 연기되었다. 결국 홍중표 이장은 기어이 추가대출을 받았고 지금까지 연임에 연임을 거듭하고 있다. 이제 마을에선 농사짓던 어르신들이 돈 얘기를 하고 있단다. 자본이 나아리 공동체 민심을 파괴하고 있었다. 

2019년 6월 여름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 때 그 풀빌라 건설 현장을 지나쳐 월성핵발전소에 갔었다.  방사능 가득한 바닷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 중 일부는 이주를 시켜달라고 애원하고 있고 또 다른 일부는 풀빌라를 지어 관광객을 유치하겠다고 한다.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핵발전소 아래 바닷가에서 이장폐천(以掌蔽天), 눈 가리고 아웅인 셈이었다.         

 

울산 경주 사람들이 서울에 올라왔다는 소식이 들렸다. 

2020년 7월 27일 월요일,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한반도 종전평화캠페인을 하고 난 후였다. 

월성핵쓰레기장 반대 주민투표 울산운동본부와 월성원전 핵쓰레기장 추가건설 반대 경주시민대책위 등 시민단체들이 오전 10시 경주 기자회견을 거쳐 오후 2시 서울 청와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다는 것이었다. 내용은 재검토위원회가 7월 24일에 발표한 경주 지역 공론 결과인 맥스터 찬성 81.4%에 조작 의혹이 있으니 민관 합동 진상조사와 공론조사 책임자 고발 등 요구였다. 

 

다음 날인 농성투쟁 2일차 7월 28일 화요일, 청와대 앞으로 갔다. 

월성핵쓰레기장반대 주민투표 울산운동본부 이은정 상임공동대표와 탈핵 울산시민 공동행동 임영상 공동대표가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영상과 은정은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와 울산북구주민투표로 안면이 있었기에 서울까지 온 이상 서울시민인 내가 맞아주는 게 당연했다. 

그들은 경주시 양남면 주민 39명 중 단 한 명인 2.9%가 반대를 했다는 사실과 145명의 시민참여단 중 한수원 협력업체 직원이나 가족이 포함돼 있다는 것만으로도 공론화의 신빙성을 의심했다. 왜냐하면 지난 6월 (주)한길리서치에서 경주 양남면 주민 891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한 결과는 맥스터 건설반대가 55.8%였기 때문이었다. 경주지역실행기구 용역업체인 한국능률협회가 경주지역 시민참여단 모집 시, 3000명의 사전 샘플링 조사에서 의도적으로 찬성 쪽 주민 위주로 145명을 선정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혹은 무리가 아니었고 증거자료도 있다고 했다.  

게다가 핵발전소에서 경주시청은 27km, 울산 북구청은 17km 거리로 울산 북구가 경주 시내보다 더 가깝다. 반경 30km안에 있는 울산이 단지 행정구역 상 경주가 아니라는 이유로 주민의견수렴에서 배제되었다는 사실을 울산 측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랬기에 자체 경비를 들여 주민투표까지 했고 그 결과를 95%의 반대로 보여주었지만 그럼에도 울산 북구 주민들이 원전인근주민으로 인정되지 않는 불합리함에 저항하고 있었다. 

울산 대표로 온 영상은 약국을 후배에게 맡기고 은정도 고3입시생 수업을 미루고 가족과 집을 떠나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새벽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광장에 서있는 무지막지한 투쟁이었다. 이들의 외로운 싸움에 녹색당 성미선 공동운영위원장과 건강한사회를위한약사회 이동근 사무국장과 울산에서 은정이 다니는 새생명교회 한기양 목사와 진보당 김재연 대표가 와서 지지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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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누이 같은 임영상과 이은정

 

 

7월 29일은 유성기업 손배소에 대한 제대로 된 판결을 촉구하는 대법원 앞 기자회견이 있었기에 청와대 앞에 갈 수 없었다. 

 

4일차-7월 30일 목요일 11시 지역·종교·시민사회·전문가·정당이 모여 <실패한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 공론화 무효 기자회견>이 있었다. 이 때 이상홍 월성원전핵쓰레기장 추가건설반대 경주시민대책위 집행위원장의 발언은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는 부안핵폐기장 때부터 월성원전핵쓰레기장까지 탈핵 역사 속에 있었지만 전 정권과 지금이 뭐가 다르냐고 울부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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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 공론화 무효 선언

 

 

14~17시에 <사용후핵연료 공론화, 무엇이 문제인가?> 시민사회 토론회가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 212호에서 있었다. 

안재홍 고준위핵폐기물 전국회의 공동집행위원장의 사용후핵연료 재검토 진행과정과 문제점 진단에 이어 이영희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의 사회로 이상홍 월성원전핵쓰레기장 추가건설반대 경주시민대책위 집행위원장, 이은정 월성핵쓰레기장건설반대 울산북구주민투표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 석광훈 녹색연합 정책위원, 이헌석 정의당 생태에너지본부장의 발제가 있었다. 

이중 이헌석 정의당 생태에너지본부장은 사용후핵연료 재검토 현 상황 진단 및 향후 과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맥스터는 선거공약 100대 국정과제에 의해서 추진되었습니다. 똑같은 일이 박근혜 정권 때도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더불어민주당과 함께 맥스터 반대했었죠. 그러니 지금 정확한 전선이 어디에 쳐 있는지 봐야한다는 겁니다. 산업부가 조직적으로 활동했고 결과적으로 맥스터 건설로 종결된 겁니다. 우려스러운 것은 맥스터로 끝날까요? 지금은 경주에서 시작했지만 다음은 어디일까요? 고리(부산), 영광, 울진, 울주 등 다른 지역 사용후핵연료 문제가 넘어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보수야당은 언급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정부를 움직여야 합니다.”   

토론 후 질문시간이었다. 신용화 월성원전이주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이 수용성에 대해 물었다. 

“현재 공청회장에 가면 한수원의 일방적인 발표만 있어요. 공청회 전에 주민들 수준을 만들어주어야 하는데, 이런 절차 없는 공청회가 한수원의 폭력으로 느껴지는데 수용성에 대한 방법에 대해 알려주셨으면 하고, 재검토가 산자부와 의견이 안 맞는다고 해서 조율된 내용이 한꺼번에 무시될 수 있는 건지요?”

이상홍 집행위원장이 형식적인 공청회에 대해선 얘기할 게 없고 핵쓰레기장은 건설단계만 경주단위이고 전체적으론 전국단위라는 답변을 했다. 질문자는 답답함을 토로했고 답변자는 뾰족한 대안 없는 현실을 말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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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후핵연료공론화, 무엇이 문제인가

 

 

5일차-7월 31일 금요일 이른 아침, 교통방송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경주환경운동연합 이상홍 사무국장과 울산 이은정 공동대표가 출연했다. 평소엔 듣지 않던 나 같은 청취자까지도 귀를 쫑긋 세우고 들은 천금같은 15분이었다.     

11시, 노동당 주최 기자회견에 탈핵신문 용석록 편집위원(울산탈핵공동행동 공동집행위원장)과 청주 청명도 왔다. 

은정은 “이번 공론화는 조작이고 사기입니다. 울산, 경주, 포항 주민에게 물어보고 다시 하십시오!”, 영상은 “문 대통령이 설마 모르겠지 했습니다. 그러나…….”라고 토로했다. 잠시 스쳤지만 내가 본 울산은 최첨단 산업도시로 시장 상인들도 탈핵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그런 울산시민의 현 정권에 대한 실망감은 분명 큰 강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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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공론화 무효

 

 

이 날 김영희·김석연 변호사가 점심식사를 대접해 주었다. 식사를 하면서 이 사안이 법에 어떻게 저촉이 되는지 지난 번 발표한 성명서 내용을 토대로 다시금 들었다. 몸과 정신에 양분이 공급되는 시간이었다.  

탈핵법률가모임 해바라기에서 7월 27일에 낸 주옥같은 성명서를 다 싣고 싶지만 지면상 일부만 채록한다. 

 

5. 방사성폐기물의 저장, 처리, 처분시설 및 그 부속시설(‘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을 건설, 운영하려는 자는 원자력안전위원회의 허가를 받아야 하고,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안전성분석보고서 등을 제출해야 하는데(원자력안전법 제63조 제1항, 제2항),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를 작성할 때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 초안을 공람하게 하거나 공청회 등을 개최하여 방사선비상계획구역 범위의 주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방사선환경영향평가서의 내용에 포함시켜야 한다(원자력안전법 제103조 제1항).

 

산업부가 재검토위원회의 설치 및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공론화의 근거로 삼고 있는 방사성폐기물관리법 제6조, 제6조의2가 모두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에 대한 공론화 내지 주민의견수렴임을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방사성폐기물 관리시설에 대한 공론화 내지 주민의견수렴은 결국 원자력안전법 제103조에 의하여 방사선비상계획구역 범위 내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여야만 적법한 것이다.

 

그런데도 산업부와 재검토위원회는 ‘원전 내 임시저장시설 추가 확충’에 대한 의견수렴 대상을 원전 소재 행정구역 주민들로 제한하고, ‘월성원전 지역주민 의견수렴’에서도 월성원전 반경 5km 이내 주민과 일부 인근 경주시민들만을 대상으로 주민의견을 수렴하였다. 이는 월성원전 방사선비상계획구역(원전 반경 30km 이내) 내 울산 주민 약 104만 명 등이 제외된 것으로서 원자력안전법 제103조에 명백히 위반된 것이다. 반면 산업부와 재검토위원회가 ‘원전 내 임시저장시설 추가확충’에 대한 주민의견수렴 대상 범위를 원전 소재 행정구역으로 반경 5km 이내 주민으로 제한할 수 있는 그 어떤 법적인 근거도 없는 것이다.

 

 

8월, 이어지는 투쟁

 

6일차-8월 1일 토, 류경민 진보당 북구지부 노동위원장과 건강한사회를위한약사회 김연희 연대사업부장이 다녀갔다. 

7일차-8월 2일 일, 앞이 보이지 않는 폭우가 몰아치는 청와대 앞에 양이원영 민주당 의원이 잠시 다녀갔고 이상범 울산환경운동연합사무처장이 은정과 함께 있었다. 

8일차-8월 3일 월, 경주에서 경주환경운동연합 주미와 ‘겨레하나’ 등이 올라왔고 11시 30분, 진보당 주최 기자회견을 했다. 그동안 경주에서 맥스터 공론화 저지 투쟁을 맹렬하게 해 온 주미는 열한 살짜리 아이가 그려준 핵쓰레기장 반대 티셔츠를 입고 왔다. 한 달 전기요금이 2천 원대라는 주미 네는 탈핵실천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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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11세 어린이가 그린 핵쓰레기장 싫어요! 무서워요!

 

 

9일차-8월 4일 화, 울산 임영상, 안승찬, 임수필, 박진영이 피케팅을 했고 녹색당 위원장은 나와 마찬가지로 매일 방문했다.  

10일차-8월 5일 수 9시 30분, 정의당 국회 기자회견이 있었다. 이후 정의당과 양남면 대책위에서 방문을 했다. 

11일차-8월 6일 목 11시, 핵폐기를 위한 전국네트워크에서 <히로시마 원폭투하 75주기 한일 동시 공동기자회견>을 했다. 이들이 주장하는 핵발전소 폐기의 이유는 기자회견문에 나와 있듯 명백하다.

 

첫째, 일상적인 사고 뿐 아니라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보듯 대규모 핵 참사가 가져올 재앙이 상존하고 있다. 

둘째, 100만 년 이상 보관해야 할 고준위핵폐기물 처리 문제는 인류가 직면한 최대 난제다. 

셋째, 플루토늄 추출을 위한 핵무기 제조에 대한 유혹이다. 

넷째, 금융자본과 핵 마피아(원전 마을)들에 의한 착취와 생태파괴의 자본주의 개발과 성장을 촉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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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원폭투하 75주기 한일 동시 기자회견

 

 

12일차-8월 7일 금 오전 11시에 임영상과 윤종오 전 울산 북구 국회의원 및 북구청장이 먼저 갔고, 고창주민들이 점심밥을 사준 후 살루스 수녀에 이어 오후 2시에 떠났다. 나와 은정만 남았다. 오후 3시가 되자 은정과 함께 배너와 피켓 등 물품을 정리했다.  

“기나긴 여정이 끝나는구나.” 

두 주간의 서울 투쟁을 마치는 은정의 혼잣말이었다. 집 떠나 2주면 가정주부에겐 기나긴 여정이다. 하지만 은정은 주부 이전에 울산시민연대 북구모임대표였고 2015년부터 매주 3년간 노란리본을 만들던 이였고 (이후 ‘더불어숲’에서 지금까지 매월 제작) 월성핵쓰레기장건설반대 울산북구주민투표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였다. 오랜 세월 아이들에게 학문으로써의 수학을 가르친 선생님으로서 마을 공동체를 꾸리는 게 꿈인 그에겐 지켜야 할 게 너무 많았다. 텃밭에서 상추와 방울토마토를 가꿔 먹고 사랑하는 이와 손잡고 뒷산을 산책하며 조용히 사는 게 꿈인 내가 아직도 서울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이유와 같을 것이다. 근 2주간 거의 매일 본 은정을 버스에 태워 보내며 우린 서로 애써 눈물을 감췄다. 그가 건네 준 노란 우산을 손에 꼭 쥐고 조만간 다시 만남을 마음으로 전했다. 가끔은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게 있다. 그건 친구 사이에 가능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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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인들의 연대 시위

 

 

이후 나도 은정도 없는 일주일간 청와대 앞을 종교인들이 지켰다. 물론 내가 매일 가던 날들 중에서도 미처 못 본 분들이 많이들 그 자리에 가서 응원과 지지를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주말인 8월 16일,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팀이 모였다. 삼척에서 석탄화력발전소 건설중단요구 피켓시위를 24일간 한 톰(성원기 교수)이 올라왔고 그와 함께하던 순례단원들이 왔다. 모두 아홉 명이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청와대 앞에서 거리두기에 맞춰 돌아가며 피케팅을 한 후, 오후 5시 반에는 연합통신사 앞 소산의 900회 평화의 학춤 공연에 함께했다. 천 일 동안 전국을 다니며 생명과 평화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춤을 추고 있는 소산의 날갯짓이 서울 한복판 가장 빠른 소식을 전하는 언론사 앞에서 너울댔다. 사랑과 평화도 통신망처럼 그렇게 온 세상에 전달되기를 모인 사람들 모두 기원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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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백 회 생명과 평화를 기원하는 날갯짓

 

 

며칠 후인 8월 20일, 정부는 월성원전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맥스터)을 증설하기로 발표했다. 울산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당장에 기자회견을 하고 다음 주부터 양남면 대책위와 함께 월성핵발전소 앞에서 저지 투쟁을 할 거라고 밝혔다. 경주공론화 진상규명 국회 조사위를 구성해 달라고 계속 요구할 거라고 했다. 기장 고리 1호기 해체싸움과 2호기 사용후핵연료 투쟁도 해나갈 거라고 했다. 그에 발맞추어 종교인들의 청와대 앞 피켓시위도 계속되었다.  

 

지난 몇 년간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월성원전이주대책위 주민들을 보면서 늘 안타까웠다. 힘없는 노인들의 호소를 권력계층 어디에서도 귀담아 듣지 않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번 울산 경주 투쟁을 보며 새로운 연대의 힘을 느꼈다. 월성핵발전소는 경주만의 문제가 아니다. 인접 지역인 울산의 문제이기도 하고, 동일 활성단층 위에 있는 경상도의 문제이기도 하고, 핵발전소에서 핵쓰레기가 배출되는 이상 모든 핵발전소의 문제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생산되는 전기를 쓰는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이기도 하다. 내 이웃의 문제는 곧 내 문제가 된다. 그것은 지구에 사는 이상 폭우와 폭염과 혹한과 지진을 누구라고 해서 피해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미 지구는 우리에게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다. 인간이 멈출 수 있는 재앙이라도 하루빨리 조치를 시도해야 한다. 전 세계 탈핵바람을 타고 젊고 패기 있는 울산탈핵운동의 기운이 전국으로 꽃씨처럼 퍼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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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발전소 없이 안전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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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곱째별의 다큐 이야기] 탈핵 이야기 15 - 2021년 겨울과 봄 사이 탈핵도보순례, 다시 화진(華津) 뿌옇게 뜨는 해를 응시하며 등원해서 감빛으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하원하는 생활을 한 달여쯤 한 어느 날 아침, 강의실에 자리 잡고 앉았는데 한국작가회의...
    Date2021.03.31 Views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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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일곱째별의 다큐 이야기] 눈꽃 2 - 김진숙 복직을 위한 단식 48일

    [일곱째별의 다큐 이야기] 눈꽃 2 - 김진숙 복직을 위한 단식 48일 단식 33일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 김진숙 복직을 위한 단식 33일 차인 2021년 1월 23일 다시 서울로 갔다. 전날 세월호 유족들 삭발에 이은 집회로 경찰이 효자동 사거리에서 통행을 제한했다...
    Date2021.03.01 Views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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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일곱째별의 다큐 이야기] 눈꽃 1 - 김진숙 복직을 위한 단식 30일차 기고

    [일곱째별의 다큐 이야기] 눈꽃 1 - 김진숙 복직을 위한 단식 30일차 기고 소금꽃나무 책 한 권을 빌리기 위해 정읍시립중앙도서관에서 신태인도서관까지 왕복 40km를 갔다 왔다. 한진중공업 김진숙(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그따위 걸 책으로 만...
    Date2021.02.03 Views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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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일곱째별의 다큐 이야기] 유성기업 이야기 16 - 이제는 안녕, 유성기업

    [일곱째별의 다큐 이야기] 유성기업 이야기 16 - 이제는 안녕, 유성기업 2020년 12월 21일은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동지였다. 그날은 목성과 토성이 만나는 그레이트 컨정션(great conjunction)이 일어난 날이었고 우주의 먼지에 불과한 내 인생에도 매우 중...
    Date2021.01.03 Views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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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일곱째별의 다큐 이야기] 탈핵 이야기 14 - 깊고 우아한 북파랑길

    [일곱째별의 다큐 이야기] 탈핵 이야기 14 - 깊고 우아한 북파랑길 월포~화진 7km + 송라까지 3.5km 기다림에는 기한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있다면 보통 하루, 일주일, 한 달, 일 년 단위로 넘어간다. 해를 넘길 수 없는 기다림은 연말에 더욱 반갑고 고...
    Date2020.11.30 Views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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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일곱째별의 다큐 이야기] 유성기업 이야기 15 - 가을의 상봉

    [일곱째별의 다큐 이야기] 유성기업 이야기 15 - 가을의 상봉 설익은 가을이 서성이는 9월 29일 화요일 오전 9시 40분. 안양 교도소 앞에는 여러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중 과반수 이상이 조재상 사무장을 기다리는 유성지회 사람들과 관계자들이었다. ...
    Date2020.10.04 Views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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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일곱째별의 다큐 이야기] 탈핵 이야기 13 - 경주 나아리 · 울산 북구 주민들과 보낸 한여름

    [일곱째별의 다큐 이야기] 탈핵 이야기 13 - 경주 나아리 · 울산 북구 주민들과 보낸 한여름 6월 울산시 북구 주민투표 망설이다 울산 북구 주민투표소에 간 건 순전히 청주에서 울산까지 내려가 선거관리관으로 수고하는 청명 때문이었다. 이런 나를 ...
    Date2020.08.26 Views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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