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포토에세이] 5G와 계백장군

posted Oct 01, 2019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계백장군_resize.jpg

 

 

[포토에세이] 5G와 계백장군
 


갈림길에 다다랐을 때 들이닥치는 두려움은 수천 년 수만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누구도 가본 적 없어 이정표도 없는, 길 아닌 길은 언제나 깊은 숲으로 이어져 아무리 발돋움을 해보아도 멀리 볼 수 없다. 인적이 드물어 물어볼 수 없을 듯 하지만 불가사의하게도 가까운 나무 밑에는 천년은 살았을 듯한 노인이 바라보고 있을 때가 많다. 하지만 노인은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명쾌하게 알려주는 법은 없다. 무언가 철학적인 무언가 예언적인 말을 들려주며 어느 길을 택하던 책임은 나그네에게 있다고 무서운 얼굴을 한다. 약간의 사례를 하면 목숨을 걸 가치가 있는 방향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래도 아무것도 모를 적 느꼈던 두려움은 사라진다. 이제는 약간은 용기를 낼 수 있게 된다. 영웅은 길을 뚫어 앞으로 나아간다.

사람들이 모여 살며 마을마다 장승이 서고 미지의 길이 사라지고 어디로 통할 길인지 모를 리 없게 되었을 때, 그래도 사람들은 가야 할 길을 묻고 싶었다. 모르는 길 끝에 있는 괴물을 향해 나아가는 영웅이 아닌 사람들은 그저 선택이라는 것, 그것을 두려워했다. 그런 갈림길에는 옛날에 사라진 영웅을 모시는 ‘현자’가 있어 어떤 길을 택해야 할지 알려주었다. 현자를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주사위를 굴리고 동전을 던지고 별을 바라보고 동물의 피를 뿌려 가르침을 갈구했다.

가로등 밝은 길을 인공위성 사진을 스마트폰으로 보면서 가는 우리도 갈림길에 다다르면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현자’들은 죽었고 미신으로 멸시받아도 가르침은 아직도 필요했다. 이제 구름 속 어딘가 있는 지식의 덩어리가 최적의 선택을 뽑아주고 우리는 두려움을 덜어낸다. 소위 전문가라는 부실한 인간들의 가르침은 필요 없다. 사람의 실수는 기계의 정확함에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5G 스마트폰 화면에 뜨는 지시에 우리는 선택하는 두려움을 덜 수 있게 되었다. 따라가기만 하면 누군가 갔던 길은 누군가 도달했던 목적지에는 갈 수 있다는 믿음을 얻었다.

하지만 이정표가 서고 장승이 마을을 지키고 가로등이 길을 밝히고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이 길을 알려주어도 그 길은 누군가 걸었던 길. 프로스트가 가지 않았던 길도 누군가 벌써 갔던 길이지만, 언젠가 누군가는 옛 영웅처럼 우거진 수풀을 뚫고 길을 만들어야 했을 터이고 지금도 너무 똑바르고 너무 밝고 너무 지루한 길에서 벗어나려는 사람이 없지 않다. 그런 평범한 길에서도 헤매는 평범하기를 바라는 평범한 우리는 알기 힘든 옛 영웅을 따르려는 사람들. 천년을 살았을 노인이 죽어버린 지금, 계백장군을 모시는 ‘현자’도 5G를 통해 알려주는 인공지능도 상상할 수 없는 그런 길은 두려움을 스스로 떨쳐버릴 수 있는 그런 사람들만이 갈 수 있는 길일지도 모른다.

 

김중백-프로필이미지.gif

 


  1. [포토에세이] 5G와 계백장군

    [포토에세이] 5G와 계백장군 갈림길에 다다랐을 때 들이닥치는 두려움은 수천 년 수만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누구도 가본 적 없어 이정표도 없는, 길 아닌 길은 언제나 깊은 숲으로 이어져 아무리 발돋움을 해보아도 멀리 볼 수 없다. 인적이 드물...
    Date2019.10.01 Views47
    Read More
  2. [포토에세이] 함께 맞는 비

    [포토에세이] 함께 맞는 비 19세기 일본 지방분 중심의 막부 체제. 1870년대 메이지유신을 통해 천황 중심의 중앙집권체제로 통일국가 완성. 권력다툼에서 밀려난 다이묘와 사무라이들은 변방인 사쓰마번과 조슈번으로 모여 정한론 주장. 초대 총리 이토 히로...
    Date2019.08.28 Views54
    Read More
  3. 이웃 종교, 천도교에게 말을 걸다

    이웃 종교, 천도교에게 말을 걸다 이웃이라는 단어는 친근하고 좋은 말이다. 그래서 어떤 대상에 대하여 긍정적인 느낌이 들 때는 이웃이라는 표현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데 종교, 특히 기독교의 경우에는 이웃에 대한 얘기를 자주 접하지만 다른 종교나 자...
    Date2019.07.31 Views38
    Read More
  4. [포토에세이] 김밥

    [포토에세이] 김밥 구운 빵 사이에 반찬을 끼우면 샌드위치가 되고, 찐빵 사이에 반찬을 넣으면 만두가 되고, 밥 사이에 반찬을 넣어 말면 김밥이 된다. 입속에 들어가자마자 비빔밥이 될 터이지만 우선 보기에 좋다. 정갈하게 차려진 비빔밥이 입에 들어가기...
    Date2019.07.28 Views38
    Read More
  5. 슈퍼우먼콤플렉스의 종언

    슈퍼우먼콤플렉스의 종언 슈퍼우먼콤플렉스의 종언- 제목은 조금 거창한 느낌이 있습니다만 사실은 최근에 제가 고민했던 불편함에 대해 이야기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젊은 세대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조심조심 하게 되고 뭔가 마음이 ...
    Date2019.06.27 Views121
    Read More
  6. [포토에세이] 기생충

    [포토에세이] 기생충 곱등이 vs 돈벌레 빨래 삶는 냄새 vs 곰팡이 냄새 골목이 보이는 반쯤 가려진 창문 vs 벽이 막고 있는 창문 명문대 준비 중인 4수생 vs 아무 생각 없는 재수생 백수 vs 가난한 노동자 영화 기생충이 어릴 적 냄새들과 교차되면서 새로운 ...
    Date2019.06.27 Views83
    Read More
  7. [포토에세이] 말

    [포토에세이] 말 나는 달리는 말입니다. 다리가 셋인 말입니다. 이렇게 태어났는지 나를 채찍질하는 사람이 잘라 먹었는지, 나는 알지 못합니다. 그저 언제부터인지, 언제까지라도 나는 뒤뚱거리며 달립니다. 나에게 먹이를 주고 나를 때리는 주인은 나에게 ...
    Date2019.05.28 Views92
    Read More
  8. [포토에세이] 천년객산

    천년객산 가루베 지온 오쿠라 다케노스키 다나까 마쓰야끼 ​데라우찌 이토 히로부미 그리고, 수많은 제국주의 망령들.... ​교사, 학자로 위장한 악질 도굴꾼 사업가로 개인이 문화재 1000여점을 무단 반출한 사기범 ​경천사10층 석탑을 분해해 일본으로 반출 ...
    Date2019.04.28 Views136
    Read More
  9. [포토에세이] 신당동

    [포토에세이] 신당동 조선은 1395년 서울에 성벽을 세우고 한성부를 두어 다스렸다. 도성을 둘러싼 ‘성저’도 십 리 밖까지 한성부가 관리했다. 성안 사람은 죽어서 광희문을 나와 청구에 묻혔다. 문밖에는 죽은 이를 달래고 신을 모시는 당집이 ...
    Date2019.02.26 Views124
    Read More
  10. [포토에세이] 고목(枯木)

    고목枯木 살갗은 말라 비틀어 찢어지고 팔은 끔찍한 쇳소리에 잘려나갔다. 베어진 벌판, 절규로 저항하고 작은 불씨로 희망을 가진다. 잊혀져간 밤이 되면 무자비한 폭력과 차디찬 권력의 힘에 벼랑 끝에 몰린다. 오늘밤도 뼛속마저 긁어 버리는 칼바람 맞으...
    Date2019.01.28 Views88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Next
/ 5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