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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달걀귀신

posted Nov 3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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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귀신-김중백_resize.jpg

 

 

[포토에세이] 달걀귀신

 

 

어릴 적 무수한 괴담 속에서 가장 난해한 귀신은 얼굴 없는 달걀귀신일 것이다. 핏발선 눈도 피 묻은 살점이 잔뜩 낀 날카로운 이빨도 없어 한없이 연약해 보이는 여자 귀신을 우리는 무서워했다.

 

얼핏 보기에 아무런 해를 끼칠 것 같지도 않은 얼굴 아닌 머리는 얼굴이 없기에 누구인지 알 수 없고 누구인지 알 수 없기에 아무런 통제 없는 존재이다. 우리가 머리를 조아리고 보호받기를 바라는 권력도 어찌할 수 없기에 우리는 그 존재에 무방비 상태가 되어 무서움에 떨었다. 사람에게 먹이를 얻고 잠자리를 빌어 사는 개가 산에서 내려온 늑대무리의 하울링 소리에 꼬리를 감추고 개구멍으로 뛰어드는 그런 공포일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는 모두 얼굴을 잃어버렸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냄새도 없는 역병에 얼굴을 지우고 서로서로 외면한다. 권력은 얼굴을 버린 자들을 두려워한다. 권력을 인정하지 않고 체제를 부정하는 자들은 얼굴 없이 방황한다.

 

권력에 조아리고 체제에 순응하고 조직 속에서 편안함을 추구하던 자들은 얼굴 없는 자들을 경멸하고 그들 자신의 얼굴이 없어질까 봐 두려워한다. 그들은 권력의 얼굴을 살피며 살았고 얼굴을 보여주며 복종을 맹세한다. 목숨을 부지하려면 우리가 모두 얼굴을 버려야 한다고 했을 때 그들은 저항했다. 얼굴을 드러내고 깃발을 들고 총들 들고 거리로 나섰다. 얼굴 없는 그들은 죽은 존재와 다름없기 때문일 것이다.

 

얼굴을 보지 않는 카톡 문자와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유튜브 시청으로 충분한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은 복종을 드러내는 얼굴이 보이지 않기에 권력과 체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어쩔 수 없이 온라인으로 가르치고 일을 지시하는 권력과 체제의 바탕인 학교와 회사는 온라인에서도 얼굴을 확인한다. 권위의 엄숙한 얼굴을 보며 우리는 복종의 비굴스러운 얼굴을 보여주어야 한다. 권력의 눈치만 본 오프라인과 달리 온라인에서 우리는 다른 복종의 얼굴과 내 얼굴을 비교하며 충성심을 경쟁한다.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은 권력이 끼어들며 더 피곤한 것이 되었다.

 

프랑스의 한 철학자가 말했던 것 같은 얼굴을 통한 통제와 체제 유지가 새로운 모양을 찾고 있는 지금, 우리는 자기 입 냄새에 괴로워하며 달걀귀신으로 가득한 무서운 거리를 걷는다.

 

김중백-프로필이미지.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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