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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에세이] 장독

posted Sep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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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독_resize.jpg

 

 

[포토에세이] 장독

 

 

우리는 아파트를 짓고 땅에서 멀어졌다.

 

사람이 땅에 살기 시작하면서 땅은 사람을 포근히 감싸주었다. 땅을 파고 기둥을 세워 짚을 덮어 집을 만들면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했다. 다람쥐처럼 겨울을 나기 위해 먹을 것도 땅속에 저장했다.

 

사람이 점점 늘어 집도 커졌고 먹을거리도 다채로워졌지만 삶은 땅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김치는 땅에 묻었고 간장, 된장은 마당 한쪽 장독대에서 맛을 들였다. 사람은 황토로 지은 벽에 둘러싸여 황토 온돌에서 잠자고 마당 흙바닥 멍석 위에서 밥을 먹었다.

 

언제부턴가 황토벽은 시멘트벽이 대신했고 흙먼지 날리던 길에는 아스팔트가 깔렸다. 병균이 가득한 흙은 지저분한 것이 되었다. 아이들이 흙을 만질 수 있었던 학교 운동장과 동네 놀이터에는 인공 잔디를 덮고 우레탄 매트를 깔았다.

 

흙이 사라진 집은 여름에는 무덥고 겨울에는 춥다. 우리는 창문을 꼭 닫고 여름에는 에어컨을 틀고 겨울에는 보일러를 땐다. 베란다에 모셔 두었던 장독 속 간장, 된장은 냉장고 속으로 옮겨갔다. 땅속에 묻었던 김칫독은 사라지고 집집이 김치 냉장고들 들였다.

 

위생적인 현대인이 보기에 흙을 만지며 흙을 밟고 살던 조상은 미개인이었다. 문명인이라면 지저분한 병균과 멀어져야만 했다. 흙먼지 하나 없는 옷을 매일 빨고 흙 한 번 안 만진 몸을 매일 씻으며 우리는 문명인의 자부심을 느꼈다.

 

그토록 깨끗하게 사는 우리는 지금 병균의 두려움에 시멘트 집안에서 꼼짝 못 하고 아스팔트 길도 밟기를 꺼린다. 깔끔한 콘크리트 건물에 필터 달린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일회용 멸균 종이컵에 커피를 마시면서도 병균도 같이 들이마신다.

 

지저분한 것은 없애버려야 한다는 위생 관념은 그 지저분한 것은 없애지 못했다. 우리는 생명의 근본인 땅에서 격리되었을 뿐이다.

 

김중백-프로필이미지.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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