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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終] 오늘의 농촌, 바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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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정부의 농정과 농촌 현실

posted Jan 1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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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이세우(들녘교회 목사)
발행호수 64

역대정부의 농정에서 살펴본 농촌의 현실과 앞으로의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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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그러면 쌀이 떠올랐고 사실상 쌀이 농사의 대표주자였다. 속담과 미담 등도 쌀과 관련된 것들이 많았다. 한자의 쌀 미(米) 자도 88번 손이 간다는 의미로, 쌀은 농부의 발자국을 듣고 자란다는 것부터 일상사랑 밀접한 이야기들이 많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시궁창에서 버리진 밥알까지도 다시 주워 와 채로 거르고 씻어 다시 먹기까지 하면서 밥알 하나라도 쌀 한 톨도 소중히 여겼다는 배고픈 시절의 이야기도 자주 들으며 자라왔다. 쌀은 마치 신처럼 여기며 제사나 고사를 지내거나 간절한 기원을 드릴 때는 정성을 다해 모시면서 귀하게 다뤄졌다. 지금은 시대가 변해 쌀 투쟁하면서 잘 익어 곧 추수를 기다리는 논을 갈아엎는다거나, 거리에서 화가 난다고 벼와 쌀을 거리에 뿌리며 시위용품으로 사용하는 세상이다. 선조들이 보면 기절할 노릇이다. 그런데 비단 쌀뿐만이 아니라 모든 농산물은 귀하게 여겨온 것은 우리의 전통이었다. 경제 규모도 논 마지기로, 천석지기, 만석지기 등 논의 규모를 가지고 평가했다. 수량, 수치 모두 농사 농어였다. 한 말 두말의 말, 가마, 포대 등 이런 말뿐이 아니라 모든 생활 용어는 익숙한 농사용어가 사용되었고 우리 삶의 용어였다. 농림부장관이라면 정권 실세 중의 실세로 쾌 비중 있는 자리였다. 적어도 1980년도 이전에는 그랬다. 지금 농림부장관 직책은 한직 중의 한직으로 아무런 존재가치가 없는 자리로 듣기에는 눈칫밥이나 먹는 천덕꾸러기 신세라고, 한다.

 

지금 농촌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다. 당장의 쌀값 폭락과 최근의 고령화, 공동화되면서 생긴 인력 부족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생긴 유가 상승으로 인한 농자재값 폭등과 기름값이 뛰어 이 추운 날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돈 타는 냄새로 들린다고 난방도 못 하고 춥게 지내야 하는 농가들의 딱한 처지부터 규모화와 전문화되면서 발생하는 각종 빈부격차와 농가 부채, 지가 문제, 지원제도 등 살펴볼 것이 너무나 많다.

 

이번 글에서는 하나하나의 그 전문적인 글보다는 현재의 농촌 실정에 대해서 먼저 살펴보려고 한다. 현실을 보고 그 원인을 찾아가는 방법을 따르려고 한다. 그 방법의 하나로 민간 진영보다는 비교적 역사적 자료와 통계가 나타나 있는 역대 정권의 농업정책을 살펴봄으로써 그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수천 년을 이어온 농업의 역사라 멀리는 조선시대나 일본 강점기, 그리고 남북전쟁 시기, 이승만 정권 등의 농업정책들을 살펴볼 수 있겠으나 너무 범위가 넓어져서 이는 생략하도록 하고 박정희 시대를 시작으로 해서 지난 정권인 문재인 정부까지만 살펴보도록 하겠다. 또한 보다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것은 피하고 대강의 농업 흐름을 알 수 있는 정도에서만 언급하는 것으로 이 글을 작성하고자 하니 앞으로 보다 깊은 내용을 만나기 전 개론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 각 분야의 전문적인 내용은 그 분야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전문가들이 있으니 그들을 활용하면 유익이 있을 듯하다.

 

■ 역대 정부의 주요 농정공약

 

1. 박정희 정부

 

배고픈 시절이었다. 모두가 가난하였다. 오로지 먹고살기 위한 방안으로 농업정책뿐만이 아니라 국가 정책 전체가 농산물을 많이 생산하는데 초점이 맞춰 있었다. 박정희정권하면 통일벼와 새마을운동이 먼저 떠오를 만큼 추진되었다. 이는 농업정책 면에서 독재 장기정권 이미지를 벗어날 정도로 획기적이었다. 그래서 농업에 있어서는 큰 변화와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 것은 어쨌든, 사실로 자리를 잡고 있다.

 

1960년대와 70년대 대한민국의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끌었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유신체제와 장기 집권, 독재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엇갈리는 박정희의 평가 논란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516 군사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잡은 그는 경제발전을 통해 가난을 벗어나게 한 성과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가 하면 박정희 군부 독재 만행의 실체 또한 뚜렷하게 기록된 것이 역사적 평가다.

 

박정희는 군사 쿠데타의 명분을 살리기 위해 전 정권의 정책을 이어받고 본격적으로 정부 주도의 경제개발계획 발표하고 실행하게 된다. 이를 통해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심각하게 피폐해진 나라를 매우 빠른 속도로 국가 경제와 인프라를 재건하게 된다. 그는 경부고속도로 건설, 중화학공업 육성 등을 강행해 경제성장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일정한 성과를 거두게 된다.

 

이처럼 경제적 성과가 있는 방면 그 이면에는 농업의 변화와 더불어 농업의 희생을 그 바탕으로 둔다. 한쪽의 성장은 반드시 어느 한쪽의 어두운 그림자를 짙게 내리게 한다. 그리고 그 상처는 매우 깊게 나타나게 되는 데 농업이 그 대상이 되게 된 것이 박정희 정권의 경제성장의 다른 모습이다.

 

박정희 정권의 농업정책의 두 가지 축은 새마을운동과 증산정책이다. 새마을운동은 낡은 초가집에 슬레이트를 덮는 것과 더불어 지금도 입에서 흥얼거릴 정도로 자주 듣고 부르던 '새벽종이 울렸네'로 시작되는 노래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펼쳤던 계몽운동이 먼저 떠오른다. 농촌을 잘 살게 해 주겠다고 펼친 새마을운동 정책은 오히려 농촌이 몰락하게 하는데 이바지하게 된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경제성장은 이뤄갔지만 도시와 농촌, 공업과 농업 간의 격차로 이어졌고, 농촌이 어려워지면서 농촌에서 도시로의 대량 이동, 탈출행렬을 만들게 되었다.

 

또 한편 박정희 정권의 업적으로 평가되는 '증산정책“은 절대빈곤과 식량부족을 극복하는데 성과를 이룬다. 특히 농산물 중에서도 주곡 증산을 위한 통일벼 등 쌀 다수확 신품종의 개발 및 보급에 의한 녹색혁명 같은 획기적인 농촌개발 사업이 추진됐다. 배고픔의 상징으로 표현되던 보릿고개라는 말도 추억으로 돌리게 될 정도로 획기적인 쌀 생산을 이루게 된다. 더불어 화학비료, 농약 등도 대량으로 개발되고 보급되는 시기도 이때쯤부터다. 그리고 부족한 농산물을 채우기 위해 농산물을 대거 수입하던 시기도 이때쯤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현실을 보면서 위기의식을 느낀 농민들은 이때부터 깨우침과 배움의 과정을 거쳐, 조직적으로 대응해 나간다. 농민들의 본격적인 저항운동이 시작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2. 전두환, 노태우 시절의 농업정책

 

70년대 박정희의 권력형 개발독재와 산업화로 농업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해 왔는데 이는 고스란히 군사 쿠데타 세력인 전두환과 노태우 정권에 물려주고 이어지게 된다. 수출주도형 산업화정책은 국내에서는 값싼 농산물 정책으로 몰아가고 국제적으로는 외국 농산물을 수입하는 구조를 갖게 되고 두 정권은 이를 일방적으로 시행하게 된다. 특히 전두환 정권은 농업과 공업을 비교하며 농업은 낙후된 산업으로, 공업은 우수한 산업임으로 공업은 키우고 농산물은 수입하는 것이 맞는 방법이라며 농산물 수입 자유화 조처하게 된다. (1985년) 농업 포기정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때이다. 특히 서슬이 퍼런 군사정권 시절에 일방적으로 취한 일이라 국가의 중대 운명이 걸린 사안이었지만 큰 저항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이후 전두환 정부는 '농어촌종합대책'(1986년)을, 노태우 정부는 농어촌발전종합대책(1989년)을 내세운다. 모두 수입농산물에 대한 대책으로 전두환은 농업만으로는 농민들의 소득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니 농촌도 공업화를 실시해 농업소득 이외의 소득을 마련한다는 취지였고, 노태우 역시 GATT와 UR(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등에 따른 방안으로 내세운 것들이다. 이는 농산물의 사실상 수입 자유화를 허용하고 진행하니 알아서 대비하든지 말든지 내 알 바 아니라는 사실상 농업을 포기하겠다는 내용과 다르지 않았다. 무책임하고 무방비적이며 무비판적인 결정으로 이때부터 농촌의 파괴와 몰락 속도는 더욱 빠르게 진행되었다.

 

3. 김영삼 정부(1993~1997년)

 

군부 출신이 아닌 민간인 출신의 대통령이라는 문민정부의 김영삼은 대통령취임 후 곧바로 1993년 UR 협상을 타결시켰다. 대통령 선거운동 과정에서 농민들과 대통령에 당선되면 쌀은 무슨 일이 있어도 개방하지 않고 지키겠다고 대선공약까지 발표했으나 이를 어기고 그는 쌀까지 포함한 농산물 수입 개방 승인까지 하기에 이른다. 한국농업을 풍전등화, 위기로 몰아 놓게 된 것이다. 쌀개방과 UR을 타결하며 대안으로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농업경쟁력 제고를 통해 농어촌발전대책을 세워 농촌을 지키겠다고 하면서 전업농 중심의 규모화 정책과 농기계 반값 공급을 펼치게 된다. 그 밖에도 성난 농민들을 달래려고 '신농정'이라는 이름의 정책을 들고 나와 다독거리게 된다. 특히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농지법을 개정하게 되는데 이는 오히려 농업을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농지에 대한 규제 완화로 이어지면서 도시민들에게 농지소유를 더욱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농지에다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각종 난개발, 투기 등 농촌이 파괴하는 결과로 이어지게 된다. 많은 농민이 문전옥답 애지중지 지켜오던 땅을 조금 오른 가격에 내놓게 되고 이것이 거래로 이어지면서 투기꾼들에게 팔리게 된 시기가 이때쯤이 된다. 사실상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에 눈 뜨고 코 베인 것과 같은 어처구니없고, 억울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UR 협상이 우리 농업에 미친 영향과 충격은 막대하기 그지없다. 농민들은 그저 농사만 지으면 되는 줄 알았지, 무역이나 시장개방 등 낯설기만 한 내용들이었다. 또한 농민들이 현실을 알건 모르건 어쨌든 농민들이 반대하고 외치면 강행하지 않고 막을 수 있다고 문민정부에 대한 기대가 존재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혔다고 하면서 배신감과 허탈감에 오랫동안 일손을 잡지 못했다. 결국 빗장 풀린 농산물시장을 눈앞에서 바라보며 직접 겪는 농심은 그야말로 새까맣게 타들어 갈 수밖에 없었다. 문민정부하에서 개방농정은 현실이 된 것이고 경제성장 쪽에선 선방했다 하고 잘 된 협정이라고 반겼으나 농업 쪽은 절망감을 느끼게 되었다.

 

"김영삼 정부의 농업정책의 특징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수입 자유화로 어려워질 농촌에 대해 이를 해결하고자 실시한 농가 지원 정책이다. 막강한 권력으로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었다. 쌀개방을 막지 못한 죄책감에 대한 면죄부를 받기 위해 그랬는지 돈을 쏟아부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엄청난 예산을 농촌에 투입하였다. 그러나 이는 농촌을 심각하게 병들게 하고 다시는 회복 불가능하게 농촌을 망하게 하는 자금이었다. 본격화한 농어촌 구조개선 사업은 농민들을 모두 범죄자로 만들어 놓았다. '못 먹은 사람이 바보'라거나 '먼저 보는 사람이 임자'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떠돌아다녔으며 '다방 농사'를 통해 불법과 탈법을 서로 알선, 묵인하고 정부 지원 농업예산을 빼먹기에 혈안들이 되기도 했다. 그 당시 역대 한국 농정사상 최대 규모의 상상을 초월하는 총 57억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을 쏟아부은 결과는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농촌 보호가 아니라 농촌파괴의 다름 아니다. 순진한 농민들을 모두 '도둑놈'으로 만들어 놓았다. 농민 간의 갈등과 다툼, 반목과 불신이 팽배하게 자리하면서 농촌공동체는 심각하게 훼손되었고 균열이 생기게 되었다. 김영삼 정부의 막대한 정부 지원 자금은 농촌이 무너지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게 하는 데 결정적인 이바지를 하게 되었다.

 

4. 김대중 정부

 

비로소 정부다운 정부, 국민의 정부라는 김대중 정부가 모든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며 제6공화국의 세 번째 정부로서 들어섬으로써 농민들의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았다. 기나긴 권위주의 통치에 짓눌리고 정당한 요구마저도 외면받고 소외당해 온 농민들로서는 당연한 기대였다. 특히 그 당시 농민들을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빚'문제였다. 값싼 농산물 가격 정책은 열심히 농사지으면 지을수록 망하는 농업구조로 빚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고, 가격보장 못 받는 농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하였다. 빚 문제로 야간도주를 하거나 심지어 목숨을 끊는 일도 자주 발생하였다. 빚 문제로 이혼 등 가정이 완전 파탄이 나는 농가도 늘어만 갔다. 이런 상황에서 김대중은 농가 부채 해결과 농가 부채 탕감을 대선 주요 공약으로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되게 되었다. 그러나 끝내 이 공약을 그는 지키지 못하고 임기를 마쳤다. 물론 의미 있는 농업정책들을 많이 실시한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해 생명농업으로의 관심과 지원, 전환과 정책을 편 점이다. 친환경농업과 유기농업의 발판을 마련하는 데도 이바지했다. 이전의 기계화, 규모화, 시설화를 목표로 농업경쟁력을 강화하는 농업정책을 펴오면서 외면받던 소농과 가족농을 보호하는 정책을 편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특히 관료가 아닌 재야인사인 김성훈 교수를 장관으로 임명해 농업정책에 힘을 실어 준 것은 이례적인 것으로 이후 역사에서 크게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김대중 정부의 농정기조를 잡아갔는데 농민 문제의 핵심을 푸는 데 도움을 실질적으로 줄 수 있는 '농가소득 안정'을 방향으로 제시한 것은 크게 평가받을 수 있겠다.

 

그의 살아온 배경과 활동만큼이나 그는 분단 문제 해결에도 큰 노력을 기울였는데 그 방법의 하나로 '밥은 하늘이다'라는 취지를 살려 농업을 가지고 통일문제에 접근하려고 하였다. 김대중 정부의 남다른 성과 중 하나인 쌀 대북 지원을 함으로써 남북 간 농업교류를 처음으로 실시한 점 또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겠다. 쌀과 밥이 평화임을 이때 국민이 깨닫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이를 많이 공감하며 호응을 보내기도 하였다.

 

5. 노무현 정부(2003~2007년)

 

농업정책과 관련해 만감이 교차하는 것이 노무현 정부다. 김대중 정부를 이어받아 농업정책을 계승, 발전할 것으로 여겼다. 그 역시 농민들의 지지를 받고 권력을 가졌으나 그 권력을 사용함에 있어서는 농민들의 뒤통수를 치거나 배신하는, 농민들의 요구와는 거리가 먼 정책을 폄으로써 농민들의 저항도 가장 많이 받은 정권으로 기록되어 있다. 정권의 덕을 보며 농민들이 웃으며 농사짓고 행복한 생활을 해야 할 정권하에서 오히려 농민들이 가장 많이 다치거나 가장 많이 사망한 것이 다름 아닌 노무현 정부 시절이다. 이 때문에 정부를 믿고 기다려 보자는 온건파와 농민들을 배신했으니 심판해야 한다는 강경파로 나눠지면서 농민들 간에도 많은 갈등과 다툼이 자주 발생했다.

 

노무현 정부는 한국농업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한·칠레 FTA 발효, 한·미 FTA 협상 개시 선언 등을 밀어붙였다. 농민 편이라고 여겼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진보 진영이라고 기대감도 컸었지만, 보수적인 정권보다도 더 잔인하게 농축산물 수입 개방의 빌미가 된 굵직한 농업 현안마저도 농민들의 엄청난 저항이 있었지만, 속전속결로 강행 처리했다. 반면에 농업정책의 기본 틀을 세우겠다고 하여 2004년 농업·농촌 종합대책을 내놓기도 하였고 농지법에도 손을 대고, 농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고 나름 몇 가지 특별법도 제정했지만, 오히려 농촌 해체를 앞당기는 미봉책에 불과했으며 농촌 회생과는 거리가 먼 역효과나 나는 정책들로 성난 민심에 불을 지피는 결과만 낳게 되었다.

 

그는 불합리하다고 농정의 바탕을 이루던 추곡수매제를 폐지했다. 대신 쌀 산업의 시장기능 강화를 이룬다는 목적으로 공공비축제와 쌀 소득 보전 직불제를 도입했다. 오늘날 기후 위기 시대의 쌀을 중심으로 한 식량안보 차원의 대책으로는 역행하는 제도다. 이를 통해 농가의 안정적인 소득 마련에는 불안감만 느끼게 되었다. 불안한 농가에 10년 동안 119조 원을 투입한다고 발표도 하였지만, 그 많은 돈이 어디로 갔는지는 농민 그 누구도 구경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직불금도 증액한다고 하였지만 생색내기에 불과했지, 농민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이 밖에도 쌀 관세화를 유예 연장하고 FTA 지원 특별법을 지정하고 여러 대책과 각종의 복지 지원책을 마련했다고 하나 값싼 농산물 정책과 외국 농산물 수입 자유화가 진행되는 속에서는 그 어떤 지원책도 속수무책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의 재임 시절은 농민들에게는 깊은 재앙을 안긴 정부로 기억되고 있다.

 

6. 이명박 정부(2008~2012년)

 

경제 대통령이라는 환상 속에 등장한 이명박 정부는 예상한 대로 농업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할뿐더러 농업 문제는 관심 밖이었다. 그는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사태 속에 우왕좌왕하며 임기를 시작하였다. 사실 그는 경쟁과 개방화만 살길이라고 여기면서 모든 정책은 그 바탕 위에서 나왔다. 그는 초기에 농업의 주요한 국가기관인 농진청을 해체하려고 했던 것만 보더라도 그의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겠다. 심각한 농촌을 회복시키려면 농업정책을 어떻게 펼 것인지를 설계하고 운영해야 하는지를 제시해야 한다. 농업정책은 농민의 처지에서 바라보고 농민들이 납득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필수적이고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상식이다. 그의 철학과 신념은 오로지 경제적 이익밖에 모르기에 농업의 가치에 기반한 정책을 기대하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 일 수밖에 없었다.

 

이명박 정부는 농정성과로 농협개혁과 식품산업 육성, 음식점 원산지 표시제 확대 등을 내세운다. 규제 대상이었던 식품산업을 고부가가치화·전략산업화 한 것도 최대 업적으로 뽑고 있다. 그 밖에도 총 54조 원 규모의 FTA 보완대책을 마련한 것, 밭 농업·수산 분야에 직불제를 새롭게 도입해 소득안정 장치도 확충했다고 하면서 이를 성과로 내세우고 있다. 이는 모두 시장개방 확대를 전제로 내세운 눈속임용 떡고물 정책들이다. 농민들의 문제 제기를 덮고자 별 실용성 없는 지원책들을 남발했을 뿐이다.

 

이명박 정부는 우리 농업의 중추적 역할을 감당하고 있고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해서는 꼭 필요하고 보호하고 육성해야 할 중소농과 가족농에 대한 정책에 대해선 철저하게 외면했다. 오로지 대농들을 위한 정책과 지원만이 있었다. 규모화된 소수의 대농에 경쟁력 강화, 수출농업, 규모화를 핵심 사업으로 손꼽고 대폭적인 지원을 한다.

 

각종의, 또 각 나라 간의 FTA 추진을 밀어붙이면서 실의에 빠진 농민들에게 그 충격완화 대책으로 다양한 농촌복지 대책과 농가 부채동결에 관한 법률도 제정했지만, 이 또한 급조된 것으로 도·농간의 격차는 더 벌어지고, 농가 내부의 소득불균형의 빈부격차도 심각하게 늘어만 간 것으로 나타난다. 다 함께 잘사는 행복한 농어촌을 건설하기 위해서 온 힘을 기울이겠다고 했지만 경제 대통령의 이명박 정부도 자기 개인 재산은 늘렸는지 모르지만, 농촌이 나아진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7. 박근혜 정부

 

박근혜 정부는 쌀시장을 완전히 개방했다. 다만 수입쌀에 대해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보호장치를 마련했다지만, 그리고 국제적 시장개방추세를 더 이상 늦추거나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였으나 농민들이 받은 충격은 매우 컸다. 농민들의 심리적 불안 상태를 해소하고 달래기 위해 창조농업이라는 것을 내걸고 나왔다. 그 내용은 첨단기술 도입, 6차 산업화, 수출농업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스마트팜이란 신기술 농법을 추진하고 확대해 나갔다. 스마트팜이란 농사에 정보통신기술을 도입한 것으로 일반적인 유리온실을 넘어서 최첨단 농업시설과 기술을 말하는 것으로 대규모 첨단시설이 곳곳에 설치되게 된다.

 

아버지 박정희 정권이 시작한 개방농정은 그의 딸 박근혜 정부에 와서 전면화되었고 이는 창조농업이란 이름으로 탈바꿈되었다. 그들이 말한 창조농업이란 희망찬 농업, 활기찬 농촌, 행복한 국민이라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구호만 그럴듯했지, 실체를 알 수 없는 뜬구름 잡는 구호에 불과했다. '2013~2017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발전계획'을 발표하면서도 소통을 강조하며 다양한 의견을 들었다고 하지만 농업관계자 누구와 대화했는지는 알 수 없다. 자기들만의 리그를 진행하고선 포장은 다양한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말하고 있다. 실질적인 농정문제는 해결됨이 없이 농촌공동체 해체는 멈춰지지 않았고 삶의 질을 비롯해 농민 문제는 나아짐이 없이 다음 정권으로 넘겨야 했다.

 

8. 문재인 정부

 

촛불 정부라는 열망을 안고 출발한 문재인 정부는 척폐청산이란 과제가 있었다. 농업계도 많은 요구를 담아 농업개혁안들을 제출하고 민관이 함께 이를 실현하자고 시도하였다. 결론은 혹시나 했는데 역시였다. 오히려 보수정권보다도 더 못한 결과를 낳게 되었다. 기업의 처지를 대변하는 경제성장과 강대국의 눈치를 너무 살폈다. 일을 전혀 안 하고 못 했다. 화려한 말 잔치와 공약은 넘쳐났다. 그대로만 되었다면 한국농업은 제자리를 찾고도 남음이 있었고 미래 선진국형의 농민이 안심하고 농사지을 수가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말만 앞섰지, 이렇다 할 성과 없이 임기를 마쳤다. 임기 동안 농업에 대한 홀대로 다양한 분야에서 불만과 실망이 쏟아져 나왔다.

 

신자유주의와 지방소멸로 위기를 맞고 있는 농업·농촌을 살리기 위해 반드시 그리고 즉시 필요했던 조치들이 이뤄지지 않았다. 기대했던 대통령 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농특위)도 설치만 했지, 아무런 관심과 힘도 실어주지 않아 유명무실한 자문기구에 그쳤을 뿐이다.

 

건강한 먹거리의 생산과 소비라는 먹거리 기본권을 보장하는 국가 먹거리 전략(푸드플랜) 수립도 지지부진한 가운데 막을 내렸다. 무엇보다도 산자부에서 유전자 가위 등을 활용한 신규 유전자변형생물체에 대한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법률을 입법 예고까지 한 상황으로 지금까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요구해 온 GMO 완전표시제 도입은 커녕 관련 분야의 헛발질과 후퇴만 거듭하다 종을 치고 말았다. 그런가 하면 기후 위기 시대 극복에 가장 핵심적인 농정이라 할 수 있는 친환경농업 확대를 위한 제5차 친환경농업 육성 5개년 계획 수립도 생산자와 소비자 단체의 의견을 무시하면서 농식품부의 독단적 파행으로 혼란만 가중한 채 막을 내렸다.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핵심 농정으로서 친환경·유기농업 중심으로 농정 추진체계의 개편이 절실하고 기후변화의 가장 큰 피해자인 농민이 기후 위기를 극복하는 주체로서 친환경농업을 실천하여 2050년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시대적 요구이고 이를 올곧게 실현하는 것이 촛불 정부를 세워 준 까닭과 열망임에도 이를 잊은 채 퇴장하고 말았다.

 

'농정 틀을 바꾸고 사람 중심, 환경 중심의 농정을 펼치겠다,' '농민을 식량안보를 책임지는 공직자로 예우하겠다.'라고 하면서 잔뜩 기대감만 부풀려 놓고 실제 이뤄진 것은 없다. 오히려 농민들에게 소외감과 절망감만 더 깊게 패게 했다. 공직자들이 농지투기 문제로 사회적 현안으로 떠올랐을 때 농지법을 개정해 투기꾼들이나 도시인들이 소유한 농지를 직접 농사짓는 농민에게 돌려주는 농지개혁을 기대했지만, 손도 못 대고 변죽만 울리다가 없던 이야기로 사라지고 말았다.

 

기후위기에 대비한 탄소중립 전환사회를 외치며 탄소중립 비전과 온실가스 감축 의지를 법제화한 그린뉴딜 정책은 훼손되고 버려진 농촌에서 답을 찾고 농촌 보호 정책이 핵심일진대 오히려 정책은 무분별하게 농지를 마음대로 훼손해도 되는 정책으로 자리를 잡게 했다. 그 결과 농촌은 지금 태양광, 풍력발전업자들만 활개를 치고 다니고 있으며 순진한 고령의 농민들만 현혹해 농촌 경관 훼손과 농지가 줄어들게 하면서 환경만 파괴하고 있다. 탄소중립을 실현한 고귀한 땅들이, 식량자급률의 소중한 기반이 되는 절대농지가 계속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그나마 의미 있는 공익형 직불제도 엉망이긴 마찬가지다. 중소농, 가족농 보호하자고 만든 제도가 오히려 그들은 혜택에서 제외가 되고 부재지주 등 대농들만 배부르게 해 투기꾼들은 신이 나고 농민 간에는 위화감을 조성하고 빈부격차를 더 심화시키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농정은 농촌에 짙은 그림자와 쓰디쓴 오물만 남기고 퇴장하고 만다.

 

9. 글을 마치며

 

지금까지 역대 정부들의 농정을 짧게나마 대충대충 살펴봤다. 농촌을 주제로 공부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쓰게 되었다. 글을 보면서 느꼈겠지만, 농촌문제 참 쉽지 않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역대 정권 중 어느 정권이고 농촌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노력하지 않은 정권은 없었다. 성과와 실적을 못 내서 그렇지, 정권의 사활을 걸고 시도들은 다 한 것 같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진입하면서 공업화, 산업화에 집중하면서 농촌사회의 미래를 예측하거나 준비하지 못하고 희생의 제물로만 여긴 결과다. 수출주도형 경제구조는 필연적으로 개방농정과 맞부딪치지 않을 수 없다. 수출경쟁력을 갖기 위해선 국내에서는 허리띠를 조를 수밖에 없는 구조와 맞닿아 있다. 박정희부터 문재인에 이르기까지 개방농정 50년 동안 이 기조를 유지해 왔다. 그 구조 속에 정권마다 내놓는 진단과 처방은 깨진 독 물 붓기에 불과했다. 아마 작금의 윤석열 정부에서는 이 기조를 더 유지하거나 강화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 사이 세상도 많이 변했다. 개방화를 넘어 세계화 시대는 분명하다. 우리 식으로, 우리만 잘 살면 된다는 고립주의나 폐쇄정책은 가능하지 않은 세상이다. 식량 무기화에 대비한 식량안보와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지속가능한 농업의 오래된 미래를 위해 지킬 건 지키되 열건 열어야 하는 농정정책을 실현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선 정권의 가치와 철학, 그리고 의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이다. 또 한편 농민적 역량을 강화하여 국민 농업과 지역농업의 발전을 일구어낼 농업 현장과 전문가가 결합한 구체적인 연구·교육·사업 등도 절실히 필요할 것이다

 

오늘날 농촌이 파괴되고 미래가 없는 것에 누구도 책임지는 자는 없다. 그러나 역사는 묻고 기록과 흔적들을 찾고 따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 또 다른 정권에게 미련을 두고 기대만 하면서 맡겨 두게 되면 우리의 미래세대에게는 참으로 가혹하고 참담할 뿐이다.

 

농촌은 쑥대밭이 된 지가 오래고 빈집은 늘어가고 남아 있는 사람은 없고 고요한 침묵만이 흐르고 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암담하기만 한 것도 사실이나 그럼에도 우리는 희망을 놓지 말아야 한다.

 

이세우 목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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