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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선이 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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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내 딸

posted Oct 0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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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호수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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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딸.png

 

여름이 갔다.

 

올여름은 유난히 무더웠고 사건도 많았다. 홍수와 태풍으로 이재민과 재산 피해, 소중한 생명들이 많이 희생되었다. 그중에서도 포항에서 어머니와 함께 주차장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열다섯 살 소년의 죽음은 모두를 가슴 아프게 했다. 그 소년이 그 절박한 절체절명의 순간에 엄마에게 보낸 마지막 글은 나를 먹먹하게 했고, 또 많이 울게 했다.

 

‘키워주어서 고마웠다’고.

 

그 어머니는 그렇게 보낸 아들의 존재를 가슴에 묻고 얼마나 많은 세월을 몸부림칠 것인가? 부모와 자식이라는 인간관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에 살고 있는 큰 딸이 3년 만에 한국에 왔다. 코로나로 그동안 나오지 못하다가 이번에 60대가 되어 직장을 퇴직하고 나온 것이다. 항상 방학 동안만 나왔다가 갔는데 이번에는 두 달 동안 한국에 머물렀다. 7월 7일부터 9월 5일까지의 일정으로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고 우리 가족은 딸이 오는 날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딸은 미국에 살지만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전화통화를 하기 때문에 근황을 자세히 알고 있었지만, 3년 만의 만남은 어쨌든 가슴 뛰는 일이었다. 딸은 두 달 동안 우리 집에 머물렀다.

 

딸은 나에게 일체의 잡다한 집안일은 자기가 다 맡을 테니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했다. 나 역시 딸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첫째로 나는 부엌에서 둘이서 함께 무엇을 한다는 것을 원치 않았다. 손하나 까닥하지 말라고 거듭거듭 말하는 딸에게 나는 꼼짝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무조건 복종(?) 하는 것은 아마도 나의 생애에서 처음인 것 같다. 나는 부엌에서 한 번도 앞치마는 입지 않았는 데 딸은 항상 앞치마를 입었고, 집안을 쓸고 닦는 데 온 정성을 쏟았다. 그리고 식사 스타일도 바뀌었다. 아침은 주로 미국식으로 먹었다. 아침은 빵과 우유가 주식이 되었다. 나는 주로 밥을 먹었는 데 딸이 해주는 미국식 아침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맛있게 먹었다. 딸은 미국에서 너무 오래 살았고 나는 한국에서만 살지 않았나?

 

어쩐지 딸이 머무는 동안은 딸이 원하는 대로 살아야만 할 것 같았다. 딸은 부지런히 집안을 자기 뜻대로 가꾸었고 자신이 사는 방식으로 살면서 나에게 최선을 다했다. 그런 덕택에 나의 몸무게가 1kg나 늘었다. 딸은 모든 것이 반듯하지 않으면 용납되지 않는 성격이다. 모든 물건들은 똑바로, 조금도 비뚤어지면 안 되었다. 그리고 보니 어렸을 때 딸이 생각난다. 딸이 두세 살 때였을까? 내가 깍두기를 담으려고 무를 칼로 썰었을 때였다. 썰어진 무가 세모이거나 비뚤어진 것이 있으면 모두 골라냈다. 누가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어린 아기가 스스로 그렇게 했다.

 

반듯하고 성실한 딸.

 

딸은 두 달 동안 그림도 배우고, 골프도 배우면서 시간을 알차게 보냈다. 정말 알뜰하게 모든 것을 완벽하게 처리하는 딸이 놀랍기만 했다. 그런 어느 날 외손녀가 자기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둘이서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딸이 내게 전화를 바꿔 주었다.

 

“사랑하는 할머니” 손녀는 미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말을 잊지 않고 있다. 손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손녀가 문득 나에게 물었다.

 

“할머니, 엄마 너무 깨끗하게 해서 지겹지 않았어?”

 

손녀의 그 말을 딸은 분명히 들었을 것이다.

 

“할머니는 엄마와 같이 있어서 좋아.”

 

그렇게 말하면서 나는 신나게 웃었다. 딸과의 두 달 동안이 웃음과 함께 스쳐 지나갔다. 9월 5일 딸은 미국으로 다시 떠났다. 내년 9월에 다시 온다고 약속하고. 나는 벌써부터 딸이 보고 싶다.

 최영선-프로필.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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