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김영국의 걸으며 생각하며]

cac8d6

달리기와 다정함

posted Apr 11, 2023
Extra Form
발행호수 67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며칠 전부터 마음에 들어와 앉은 문장이 있습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진화인류학자이자 신경과학자인 브라이언 헤어가 쓴 이 책을 아직 펼치지는 못했지만 겉표지에 나열된 김영하, 최재천 이런 이름 때문에 이 구절에 매혹당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은 얼마나 많은 적을 정복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친구를 만들었느냐로 평가해야 한다"

백수십 명의 영정 사진이 아직도 거리에서 외로운 시절입니다. 책에 언급되었다는 이 구절보다 우리의 정신 상태를 적확하게 감별해 낼 수 있는 문장이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은 이런 시가 제 앞으로 왔네요.

조이 하조는 아메리카대륙의 원주민 피를 받고 세상에 나온 분입니다.

"How We Became Human?", "어떻게 우리는 인간이 되었나?"로 번역되는 이 구절은 시인이 선택한 자신의 시집 제목입니다.

 

비는 우리를 열어주네, 꽃잎처럼, 아님

한 계절 이상 갈증을 느껴왔던 이 대지처럼.

우리는 하던 말을 멈추네, 생각도 멈추고,

혹은 이 신비를 마시려고 색소폰을 부네.

우리는 우리 숨결 아래 숨소리를 듣네.

바로 이렇게 비는 비가 되었고 우리는 그렇게 인간이 되었지.

- 조이 하조 <호놀룰루에 비가 내리고> 중에서1)

 

처음엔 10km를 쉬지 않고 달리기만 해도 좋겠다던 친구들이 오늘 풀코스를 3시간 안에, 10km는 50분 이내, 그리고 달리기 시작한 지 몇 달 안 되는 주자들이 모두 완주하는 신박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모두 러너스가 존재하였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걸으며-image15.png

대회에 출전한 러너들의 다리와 신발

 

멀리 캐나다에서 원격으로 멤버 한 명 한 명 애정으로 인도해 준 러너스 초대 회장이 든든한 초석이 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오늘 달리고 뒤풀이 하며 이제야 왜 달려야 하는지, 달리면 어떻게 사람이 다정하게 되는지 조금 확신이 드네요.

 

기록을 정확하게 적지 않았습니다. 그건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숫자입니다. 우린 만나서 달리면 즐겁고 몸과 마음에 서서히 새겨지는 잔근육과 온화함이 더없이 좋을 따름입니다.

 

우리는 달리며 친구가 되었고

달리며 다정하게 되었고

또 달리며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1) 공감편지 길목의 3월 17일 자 정은귀의 금요인문학 '인간이 되어가는 길'에서 참고했습니다.

 

김영국.png


  1. 공정하고 상식적인 대중교통 요금제

    대중교통은 통근 및 통학 그리고 여러 목적 통행 즉, 쇼핑, 여가, 친교 등 우리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행위들을 뒷받침하는데 필수적인 수단입니다. 더불어 대중교통의 활성화는 교통체증 완화와 환경 보호 등 다양한 이점을 제공합니다. 현재 적용되고 있...
    Date2023.08.04 By관리자 Views53
    Read More
  2. 한열이 형과 오르내리던 길

    6월이면 생각이 많아집니다. 6월 시작하는 날 신촌사회과학대학 연합학생회에서 주관하는 토크콘서트에 패널로 섭외되어 연희관 강의실에 32년 만에 갔습니다. 1991년 봄에는 강의를 듣기 위해 연희관을 올랐는데 이날은 말하기 위해 교단에 섰습니다. 6월의 ...
    Date2023.07.12 By관리자 Views121
    Read More
  3. 두 번의 달리기와 한 번의 음악회

    사이렌이 울리고 재난 문자가 요란하여 새벽에 깨버린 탓에 일찌감치 나선 출근길에 왠지 봄철 치정살인극이 떠올라 마스카니가 작곡한 오페라 까발레리아 루스띠까나를 하루 종일 오며 가며 들었다. 봄이 가고 여름 오니 아쉽다고 해야 하나 좋다고 해야 하나...
    Date2023.06.09 By관리자 Views95
    Read More
  4. 4월에 일어난 일들

    친구들과 강원도 정선을 나드리 삼아 다녀왔다. 마침 정선 오일장이다. 참두릅 개두릅 좌판에 그득하다. 끓는 물에 데친다. 참두릅 20초 개두릅 10초 찬물에 헹군다. 예쁘게 담는다 아차차 초고추장이 없군. 스윗칠리소스를 대타로 봄을 입안 가득~ 의미 있는 ...
    Date2023.05.11 By관리자 Views109
    Read More
  5. 달리기와 다정함

    며칠 전부터 마음에 들어와 앉은 문장이 있습니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진화인류학자이자 신경과학자인 브라이언 헤어가 쓴 이 책을 아직 펼치지는 못했지만 겉표지에 나열된 김영하, 최재천 이런 이름 때문에 이 구절에 매혹당했던 것은 아닙니다. "우...
    Date2023.04.11 By관리자 Views107
    Read More
  6. 박새와 무등

    허리통증과 호르몬 작용에 관한 소고 몸과 마음은 독립된 개체인가 아니면 몸은 마음은 분리불가한 합일체인가 이도저도 아니면 불가근불가원의 관계체인가? 허리가 말썽이다. 지난 12월에 아프기 시작한 허리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잔잔한 또는 격한 통증이 번...
    Date2023.03.09 By관리자 Views89
    Read More
  7. 계룡에서 자유를 생각하다

    장엄한 계룡의 겨울은 눈발을 날리다 햇살을 비추다 변화무쌍하다. 정월 보름으로 가는 낮달이 하늘에서 빛난다. 높은 하늘, 계룡의 산세보다 유려한 곡선으로 낮달 주변을 선회하는 독수리는 찰나의 순간만 허락하였다. 그 사이 고개를 들지 않았다면 이런 상...
    Date2023.02.08 By관리자 Views79
    Read More
  8. 한양도성을 걸으며

    한양도성을 계절별로 걸어보자고 말하였다. 입에서 발화(發話)한 소리가 공허하지 않으려면 두 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12월은 홀로 있는 시간이 많았다. 눈길을 걸으며 생각한다. 나는 누구고 내가 있음은 무얼 의미하는가? 이내 고개를 흔들며 다시 생각한...
    Date2023.01.05 By관리자 Views109
    Read More
  9. 이심전심의 화룡점정

    손기정평화마라톤대회 배번과 같이 온 가이드북을 보고 깜짝 놀랐다. 1947년 51회 보스턴 마라톤 감독으로 참가하여 서윤복 우승(세계신기록) 1950년 54회 보스턴 마라톤 감독으로 참가하여 1위 함기용, 2위 송길윤, 3위 최윤칠로 전관왕 석권 우리가 배달의 ...
    Date2022.12.04 By관리자 Views130
    Read More
  10. 공룡능선: 파우스트적 거래

    이는 실로 파우스트적 거래라 부를만하다. 설악은 깊고도 그윽한 가을의 속살을 다 주었다. 하지만 그 대가로 요구한 것은 극심한 통증과 온몸을 두들겨 맞은듯한 피곤함이다. 스물여섯인가 일곱인가 되던 해에 설악을 알게 해 준 이를 따라 몇 번 다녔던 시절...
    Date2022.11.02 By관리자 Views192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Next
/ 7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