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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진의 홀로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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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 마동석을 꿈꾸며 | 돼지목살과 한우스테이크

posted May 0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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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호수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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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를 다니기로 했다.

 

지인의 추천이기도 하다. 트레이너가 옆에서 지도를 해주는 코스, 즉 PT를 알아보기로 했다. 퍼스널 트레이닝 뭐 그런 건가 보다. 단, 돈이 든다는 것이다. 일단 동네 헬스장을 용기 내서 찾아갔다. 나는 곧 옥택연같이 생긴 몸 좋고 키 큰 헬스 관장과 상담을 시작했다.

 

첫 대면은 늘 나에게 큰 용기가 필요했다. 갑자기 내 인생에서 운동의 시작 날들이 떠올랐다. 

 

1년 320일 감기를 앓았던 나는 8살 때 처음 용기와 용기를 내어 보았다. 내성적인 내가 직접 태권도장을 찾아갔다. 그러나 태권도장은 하필 그날 문을 닫았다. 다음 달에 동네 형과 쿵후 18기를 배우기로 했다. 곧 이소룡이 될 것 같은 기대감으로 찾아갔다. 그 날도 쿵후 도장은 문을 닫았었다. 결국, 내 초등학교 운동 인생은 그렇게 끝났다. 

 

중학교 때 용기를 내어 간 테니스 교실도 쓸쓸했다. 구석에서 펜스를 쳐다보며 혼자 폼 연습만 한 달 해야 했다. 요새는 안 그렇게 하는 데 그때는 그랬다. 회사 다니고 나서 검도장에 갔다. 처음 갔는데, 벽만 보고 죽도를 잡고 내리치는 폼 연습만 했다. 운동의 시작은 늘 외롭고 구석에 있어야 했다. 그래서 쉽게 포기했고 그만두었다. 

 

다시 헬스장의 의자. 얇은 팔과 가느다란 다리, 볼록한 배를 가진 나는 트레이너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 배를 본 순간 걱정스러움 50%와 약간 놀리는 시선 50%를 섞으며 말했다. “운동이 필요합니다.”라고 말이다. 나 역시 내 체격이 형편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니라고 관장은 말했다. 몸과 골격은 좋은 편인데 “육체를 그동안 관리하지 않아서”였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니 내 몸에 미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충격은 “젊었을 때 운동을 뭐 하셨나요?”라는 관장의 질문이었다. “젊었을 때”라 함은 지금은 “늙었을 때”이기 때문이다. 아…. 머리에 염색하고 갈걸…. 아버지가 내게 염색 좀 하라고 하며 ‘양귀비표 염색’약을 준비하던 모습이 순간 선했다. 신문으로 가운을 만들고, 낡은 프라스틱바가지에 염색약을 만들어, 쓰다만 칫솔로 머리 염색하는 과정이 떠올랐다. 이마까지 까매지는 그런 광경이 보였다. 아니지 정신 차리고……. 관장의 질문에 답을 했다. 

 

“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안 한 것도 아니고.” 나는 우물쭈물 답을 했다. 운동을 시작하면 며칠 있다가 바로 몸살이 났다. 그래서 중간에 그만둔다. 알고 보니 몸에 근육이 없어서 금방 지치는 것이었다. 검도도 재미있었는데, 죽도 몇 번 휘두르면 행정직이었던 나는 컴퓨터를 칠 수 없을 정도로 팔을 못 들었다.

 

수영은 할머니들이 나보고 너무 늦게 나아간다며 “추월과 질주”를 하는 바람에 기가 죽어서 그만두었다. 요가도 좋았는데, 한창 재미를 붙일 때 코로나가 극심해서 그만두었다. 

 

그래도 내가 트레이너를 ‘고용’해서 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첫 번째로는 의지가 박약하기 때문이다. 

 

육체가 움직이려 하면 나의 뇌는 계속 우주로부터 교신을 받았다며 유혹한다. “힘들게 살지 마. 포기하면 편해”. 운동하는 법을 책으로도 보고 블로그에도 봤다. 유튜브를 보며 여러 운동을 시작할까? 그러나 나의 의지가 박약하다. 한두 번 해보다 말았다. 유튜브에 나온 데로 앉았다 일어났다를 어떻게 10번을 한단 말인가!! 힘들면 그만두는 게 인지상정 아닌가!!

 

두 번째로 최근 아무것도 안 하고 할 일이 별로 없다.

 

최근에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더욱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남들 출근하는 시간에도 가만히 집에 있다. 할 일이 없으니 헬스장을 다니기로 했다. 매일 나가도 되지만 일주일에 두 번 나간다고 나의 뇌에 조건을 말해 주었다. 그러면 괜찮지 않을까 하고 말이다. 나의 뇌는 계속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종용하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인간은 움직이게 만들어졌다. 주변에 있는 호랑이나 늑대가 나를 잡아먹을 수 있으므로 늘 움직일 수 있도록 근육이 필요하고 심장을 따뜻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이웃 부족이 내 마을과 집을 약탈하거나 가족을 살해할 수 있으므로 늘 싸우거나 도망갈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려면 근육이 필요하다. 움직이기 때문에 정신이 무겁거나 우울할 수가 없다. 빨리 도망가야 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DNA에서 골목마다 CCTV가 있고, 콘크리트 집에 산다는 생각은 아직 입력값에 없다. 인류의 역사에서 현대의 삶은 얼마 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대 인간은 움직이지 않고 있으며, 심장을 데우려는 호르몬은 스트레스로 변해서 내 마음과 뇌에 고여만 있다. 그러면 산해진미와 주지육림에 빠지려고 한다. 움직이기는 싫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너무 멀리 갔다. 그냥 할 일이 없어서 좀 움직이고자 헬스를 다닌다. 

 

세 번째로는 마음의 근육이다.

 

그런데 마음의 근육이 있나? 마음의 근육이 어딨어. 그냥 몸의 근육이지. 내 몸에 근육이 없다. 그래 마음의 근육이 있다고 치자. “나를 상처받지 않기” 뭐 이런 거 보면 나오는 말들이 마음의 근육이라고 한다. 물론 마음의 상처는 몸의 아픔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특히 몸에 근육이 없으면 마음의 상처에도 버티기 힘들다. 몸이 그렇지 않나? 무거운 거 갑자기 들고, 온도 차가 갑자기 나는 계절이면 몸에 몸살이 난다. 마찬가지로 마음도 갑자기 무거워지거나 낯선 싸늘함을 느끼면 몸살이 난다. 

 

그냥 내 몸에는 근육이 없다. 매년 받는 정기검진에 나는 마른 비만으로 나온다. 즉 배 나오고 지방질은 있는 데, 몸에 근육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살집이 없어도 이 체질은 비만인 것이다. 게다가 골다공증 염려가 있어 근육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네 번째로 이기기 위해서이다.

 

나는 늘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나 자신이 이겼다. 나보다 나 자신이 늘 이긴다. 나는 이겨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리고 이제는 “젊었을 때”라기 보다는 지금부터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제 다시 내 삶을 살려면 건강도 하고 근육도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다시 살기로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나 자신은 포기하라고 한다.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면 나 자신과 뇌는 포기를 종용한다. 어찌 될까? 그래도 운동을 끝내면 먹고 싶은 게 많아진다. 나도 마동석처럼 될 거야 하며 식사를 준비한다. 운동하면 단백질 그래…. 고기이다. 

 

이번 것은 너무 간단하다. 간단하니까 간단하게 만들어 식사할 수 있다. 요리라고 하기에는 부끄럽지만, 간단히 먹어야 하니까. 간단한 식사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제목을 홀로 요리가 아니라 한 끼 식사로 바꿔야 하나….

 

어쨌든 그냥 고기 굽고 접시에 올리고 김치랑만 먹으면 된다. 남은 상추나 김치찌개랑 곁들여도 된다. 이것을 권하는 이유는 굉장히 빠르기 때문이다. 5분이면 된다. 고기 구우면서 밥은 해동하고 김치 접시에 담으면 끝난다. 귀찮지 말아야 한다. 번거롭지 않아야 배달 식사의 유혹을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요리는 두 가지이다. 돼지 목살 구이와 스테이크이다. 

 

1. 목살 구이

 

정육점에서 목살을 세 덩이 산다. 두 개, 세 개 따로 판다. 핵심은 냉동실 보관이다. 고기들은 얼면 붙어서 구입한 고기들을 한번에 해동해서 다 먹어야 한다. 그러면 혼식하는 사람에게는 불편하다. 그래서 고기들을 사면 낱장으로 종이 호일로 싸 놓고, 비닐봉지에 담아 보관하는 것이 좋다. 목살은 삼겹살과 다르게 기름기가 적어서 식사용으로 딱이다. 삼겹살은 기름기가 있어 고소하지만 술을 부른다. 

 

돼지 목살 구이는 1인당 2장에서 3장 정도로 보관하면 된다. 2~3장 구워서 접시에 담고 상추를 곁들이고 김치를 준비하면 끝이다. 마구마구 먹을 때면 내 가느다란 팔뚝도 마동성의 팔뚝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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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우 스테이크

 

한우는 정답이다. 이걸 요리라고 하나…. 꼭 한우가 아니라도 값이 좀 싼 수입고기를 손바닥만 하게 준비해서 냉동실에 넣어두면 된다. 나는 동네 정육점이 고기가 좋고 싸서 평소 준비를 해둔다. 왜냐면 외롭고 지칠 때, 혼자 집에 들어오면 한우만큼 위로를 받은 적이 없다. 외로운 당신에게 권하고 싶다. 아니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 이 정도 사치를 못 부리나 하면 된다. 그리고 운동하고 피곤한데 빨리 밥 먹고 싶을 때는 얼른 구워서 먹으면 된다. 거실에 가득 찬 한우 고기의 냄새가 안 빠질 수 있다. 그러나 내버려 둬라. 고등어 구운 냄새와 달리 거실이 럭셔리해진다. 한우 구운 것 때문에….

 

한우는 프라이팬을 센 불에 달궈서 구우면 된다. 초반 센 불로 고기가 눌어붙기 때문에 나는 식용유를 한 두 방울 떨어뜨리고 굽는다. 수입고기는 고기가 절반쯤 익을 때 버터 한 덩어리 넣는다. 그러나 한우는 버터가 필요 없다. 그냥 소금만 있거나 없어도 된다. 때로는 양념장으로 달걀노른자, 횟집에서 남은 와사비 티스푼으로 반 스푼, 간장 티스푼으로 한 숟가락을 넣어 고기에 찍어 먹기도 한다. 접시에 담아 후딱 먹을 수 있다. 한우 스테이크 역시 밥과 마구마구 먹을 때면 내 가느다란 팔뚝도 마동성의 팔뚝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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