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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째별의 정원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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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사랑방 정원일기

posted Feb 2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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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일곱째별
발행호수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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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사랑방 정원일기 

 

 

미역국 때문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종일 굶고 일한 후 늦은 오후에 첫 끼니로 맞이한 미역국. 연한 소고기와 부드러운 미역이 깊고 뿌연 바닷물에서 춤을 추다 뱃속으로 들어와 위로해 준 미역국. 맛은 예술이고 느낌은 감동인 미역국. 

 

그 국을 먹으며 정원일기를 다시 연재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유는 전과 같았다. 

정원을 빌려준 주인에게 은혜 갚는 방법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글을 쓰는 것이기 때문이니까. 

그렇게 진도 하얀집 정원일기 이후로 8개월간 쉬고 있던 정원일기를 담양 편부터 다시 시작했다.      

 

상상도 못 했었다. 왜가리 아파트 작은 방에 들어가리라고는. 

그런데 그 일이 벌어졌다.      

 

대전 왜가리 아파트 작은 방 

비밀번호를 알려주셨다. 

정읍댁과 청명과 관지에 이어 네 번째다. 자기 집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들어가라는 사람. 

그런 사람은 집에 숨겨둔 값비싼 물건이 없는 소박한 사람일 것이다. 그리고 남을 잘 믿는 순진한 사람일 것이다. 자신이 어떻게 사는지 남에게 이야기해도 상관없이 배포 있는 사람일 것이다.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크기의 마음이다.      

 

왜가리가 안 계신 왜가리 아파트에 처음 왔을 때 주인 없는 집에 나 혼자 들어왔다. 이후에도 계속 그랬다. 심지어는 주인이 들어왔을 때 피곤해서 자고 있던 적도 있었다. 어떤 날엔 일어나 보니 왜가리가 출근하고 없던 적도 있었다. 나는 긴장을 전혀 하지 않고 편하게 지냈다.      

 

이제는 누군가와 함께 살 수 없으리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내가 별로 친하지도 않은 남과 한집에서 살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2019년 2월 10일 겨울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 당시 삼례에서 처음 만났다. 

왜가리는 아침 8시대에 견과류 스낵과 약식과 한라봉을 가져온 대전 원도심레츠 일원이었다. 그리고 탈핵희망국토도보순례 두 번째 전단지를 디자인해 준 분이셨다. 

이후 벚꽃이 화려한 4월에 청명이 내게 좋은 사람들을 소개해주고 싶다며 진해로 초청하는 바람에 다시 만났다. 잘 모르는 사람들과의 동행이 힘겨웠던 내게 마지막 생태숲에서 왜가리가 들려준 인디언 수니의 <나무의 꿈>을 들으며 "이거 한 곡 들으려고 진해에 왔구나." 말했던 게 생생하다. 

정읍에 거주하던 2021년 5월, 탈석탄 탈송전탑 도보순례로 홍천 등지에서 만났을 때 왜가리는 막 캠핑용품을 장착하기 시작하셨다. 그때 새로 장만하신 인텐스 블루 아반떼 트렁크가 마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에 나오는 동굴처럼 열렸고, 왜가리는 거기서 나온 음식물로 도보순례에서는 대하기 쉽지 않은 근사한 밥상을 차려놓고도 "차린 게 변변치 않아서"란 겸양 표현으로 단원들을 뒤집어놓으셨다. 

지난해 4월 세월호 8주기 때 우리는 팽목항에서 청명 등과 함께 다시 만났고, '기억의 숲'을 들러, 왜가리가 예약해 놓으신 진도 휴양림에 갔었다. 그즈음 왜가리는 캠핑의 달인이 되어 있었다. 그이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풍성한 먹을거리가 끝도 없이 요리되어 차려졌다.

 

왜가리와 나는 그렇게 도보순례에서 가끔 만나는 여러 사람 중 한 명에 불과했다. 그런 나에게, 대전에 직장이 생기던 2022년 8월 말부터 왜가리는 아파트에 방이 한 칸 남으니 집을 구할 때까지 들어와 있으라고 하셨다. 

 

내 생각에 우리는 그럴만한 사이가 아니었다. 그리고 내 성격상 남과 함께, 그것도 아파트에서? 그때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오매불망 가고자 했던 생태마을 집 계약 직전에 계절학기 책임교수가 되었고, 매일 출퇴근 불가능한 거리가 즉흥적으로 다른 집을 알아보게 했으며, 인자한 집주인 노부부가 나를 보자마자 입주하기를 반겨했던 계룡집이 있었지만 결국 아무 집도 선택하지 못한 상태로 개강을 맞았다. 

 

단기임대나 숙박업소보다 나을 듯해 왜가리의 복도식 아파트 작은 방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예상을 뒤엎고 정말 편안했다. 그때 알았다. 빈집을 전전하던 나는 손때 묻은 가정 분위기와 사람의 온기가 그리웠음을. 

 

다섯 개의 방이 나란히 붙어있는 해남이나 한집에서 다섯 명이 살던 담양에서는 옆방에 사람이 있는 게 신경 쓰였다. 그런데 그 집은 방이 붙어있지 않았다. 화장실 한 칸의 사이 공간이 있으니 소리가 들릴까 염려하지 않아도 됐다.      

 

전라남도 나주시에 가면 목사내아라는 관가가 있다. 지금은 숙박업소로 사용되고 있다. 거실을 사이에 두고 방 한 칸씩 뚝뚝 떨어져 있는 남방형 가옥구조가 특이하다. 그런 구조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싶었다. 가운데 다실에서 차를 마시고 담소를 나누다가 각자 방으로 가서 자면 좋을 것 같았다. 

 

바로 옆에 붙어있는 두 집에서 각자 사는 것도 좋겠지만, 한 지붕 아래에서 숨소리를 느끼는 게 더 안심된다. 

 

지난 2년 동안 잘 해낸다고 여겼었다. 그런데 그동안 많이 약해져 있었다. 외로움과 두려움에 질려 혼자 살 자신감을 아예 상실했다. 낯선 시골에서 남의 집을 전전하며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면 방밖에 못 나가는 공포심이 생겨 버렸다.

 

그 당시 나는 매우 불안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마음대로 찾아올 수 없는 생태마을,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계룡 빈집에서 혼자 있다가 공황장애가 오면? 그게 정원 있는 어느 집도 결정하지 못한 이유였다.       

 

살고자 하는 본능은 자유와 독립을 부르짖던 자아를 잠재운다. 나는 돌봐야 하는 존재가 아닌 나를 돌봐 줄 존재가 필요하다. 그게 내 마음의 소리였다. 

 

2022 정태춘·박은옥

왜가리는 계절학기 시작 한 주 전인 2학기 종강 다음 날, <2022 정태춘·박은옥 초청 찬란하고 정의로웠던 우리들의 송년회> 콘서트를 보여주셨다. 

 

2022년 12월 10일 토요일 목원대학교 콘서트홀에서 나는 2018년 6월 말의 초저녁을 만났다. 

영광 핵발전소에서부터 걷기 시작해 함평군 월야면에서 걸음을 멈추고 자동차로 평택을 지나며 듣던 그 노래들. 

‘서해에서, 촛불, 회상, 북한강에서, 시인의 마을, 떠나가는 배, 92년 장마, 종로에서…….’

 

4년 반 전에 나는 이렇게 썼다.      

 

‘정태춘·박은옥 20년 골든음반의 첫 번째 CD가 좀 지겹다고 느껴질 즈음, 두 번째 CD를 플레이어에 넣었다. 처음 듣는 노래들이었다. 그러다 트랙 8번이 들려오면서부터 가슴이 핵분열처럼 뛰었다. 막 핏빛으로 물드는 태양이 서해를 향해 곤두박질치는 시간에 하필이면 평택 미군기지를 지나고 있었고 지난 5월에 광주에 다녀온 기억이 솟아나더니 눈물이 철철 흐르기 시작하면서 한 마디가 떠올랐다.

 

‘살육의 시대’ 

 

총칼로 짓밟히던 시절을 지나 핵무기와 핵발전소로 생명을 위협당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었다.’ 

 

음유시인가수 정태춘은 스스로 부적응자라고 했고 한 십 년은 음악 활동을 쉬기도 했다. 음악 하는 사람이 음악 없이 어떻게 그 긴 시간을 살아냈을까? 나는 그의 절망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그 “괴팍한 천재”(박은옥 표현)는 다시 일어섰고 대중 앞에 굳건히 서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고뇌하지도 않은 나는 황망히 과거 속으로 던져졌다. 불과 몇 년 전의 과거, 내 인생에 본격적인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하던 그 시절로.      

그때부터 나는 걷기 시작했고 2년 후 집을 나왔다. 그리고 정원을 찾아다녔다. 

 

기찻길 옆집 사랑방 손님

왜가리는 출판업자이면서 대전 지역품앗이 문화교육공동체인 원도심레츠에서 밥을 해서 많은 사람을 먹이신다. 매일 계절음식을 하시고도 보수는 지역화폐 '두루' 몇 푼이다. 거의 자원활동을 하시면서도 노후에 함께할 친구들이 있으니 그걸로 족하다고 하신다.

 

집에서 살림하지 않은 지 오래된 왜가리는 사무실과 원도심레츠에서 살림 도구를 가져오기 시작하셨다. 

 

압력밥솥과 전동 커피 그라인더, 스테인리스 드리퍼, 유리 서버, 목이 가늘고 긴 주전자와 고급 원두, 낮에 남겨둔 국과 반찬. 

 

집은 씻고 잠만 자는 곳이었던 왜가리가 나를 위해 집에서 살림하기 시작하셨다. 아침 일찍 지리산 쌀로 밥을 지어 식탁을 차려주셨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매일 아침 밥상을 차려준 게 얼마 만인가. 열네 살부터 스물여덟 살까지 할머니가 차려주신 아침 밥상이 떠올랐다. 그런데 상대는 티도 생색도 내지 않으신다. 무심한 듯 무뚝뚝한 듯 세심하게 나를 살피고 계심이 보인다. 꼬마 정읍댁의 정원일기 10화 ‘축생일'을 보니 내가 곁에 살고 싶은 사람 중 ‘건실하고 이해심 많고 말수 적은 여자친구’, 왜가리가 딱 그랬다.

 

밤새 리코타 치즈를 만들어 두시고, 샐러드용 채소와 김치를 썰어 놓으시고, 커피 원두를 채워 놓으시고, 점심과 저녁 먹을거리를 챙겨 두시고, 자동차로 학교까지 태워다 주시니 이보다 더 좋은 집이 어디 있을까.      

 

남서향 8층 베란다 밖 하늘이 홍시 색으로 물들고 저 멀리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검게 서면 나는 치매 노인들에게 빈번히 발생하는 석양증후군처럼 우울해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라디오를 벗 삼아 밥을 먹으면서 우울하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밤 열한 시가 넘으면 왜가리가 오시기 때문이었다. 집 옆에 철길이 있어 심심찮게 기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지만, 그조차도 거슬리지 않은 것으로 보아 나는 그 집에 있는 게 꽤 좋았다.      

 

2년 전과 최근에 두 번이나 읽은 배르벨 바르데츠키의 <사랑한다고 상처를 허락하지 마라>에서는 자유로운 삶을 위한 6가지 태도 중 새 인생을 준비하려면 정서적인 측면이나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독립적인 태도를 고수하고 새로 살 집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한다. 하지만 기찻길 옆집에 사랑방 손님으로 있으면서 알게 된 사실은 2년 반이나 투쟁했지만 내게는 아직 혼자 살 자신이 없다는 것이었다. 

 

곰곰이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나는 독립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기를 꿈꾸었다. 그러나 동거인을 찾기는 정말 쉽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그 사람과 함께 살기도 가뭄에 콩 나도록 어렵다. 

게다가 그런 모험을 하기에 나는 걱정이 지나치게 많고, 겉으론 제 생각만 하는 듯 보이지만 실은 주위 사람들 모두를 만족시키려고 한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자기 고문 게임’을 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그런 내게는 강력하게 권고해 주는 사람이 필요했다. 

 

“내 집에 들어와 마음 편히 있어요.”

 

왜가리가 그러셨다. 그 집에 있는 걸 마음대로 써도 되고 먹어도 되었다. 그러면서 아무것도 요구되지 않았다. 모든 게 풍요로웠다. 무엇보다 안심이 되었다. 왜가리의 안정된 파장이 내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도도히 흐르는 물과 같은 내가 든든한 흙을 찾는 명리(命理)와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불안한 나를 안정시켜 준 왜가리에게 무얼 해 줄 수 있을까? 왜가리가 집에 오면 맨발에 밟히는 게 없도록 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날마다 청소기를 돌렸다. 바쁜 왜가리가 미처 신경 쓰지 못하던 세면대 배수관을 고쳤고 싱크대 수납장을 정리하고 창틀을 닦았다. 그리고는 매일 밤 왜가리를 기다렸다. 그러면서 알았다. 내겐 주부가 어울린다는 사실을. 그런데 현모양처를 꿈꾸던 내가, 누군가가 나를 사랑한다면 그를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내가, 30년 후인 지금은 안락한 가정을 박차고 나와 떠돌고 있다. 

 

다른 삶을 살아보겠다고 집을 나왔지만 실은 나는 한 번도 독립을 해 본 적이 없던 미숙아였다. 자취 한 번 안 해 보고 가정이란 울타리 안에서 살았었다. 홀로 여행은 꿈도 못 꾸었었다. 그러던 내가 지금은 모르는 길을 걷고 이 집 저 집 전전하며 살고 있다. 아무 데서나 주는 밥 먹으며 머리만 닿으면 잔다. 이제는 처음 보는 사람과 노닥거릴 줄도 안다. 물론 내가 먼저 말 거는 경우는 드물지만. 

 

그래서 뭐가 남았을까? 어쭙잖게 발전했다 쳐도 아직도 턱도 없는 사회성? 선천적으로 결여된 줄 알았던 눈치? MBTI 성격검사 중 극도의 P인 내가 어느 날부터 시작한 정리정돈과 청소 기술? 아하~ 전국의 길. 적어도 내가 밟았던 길만큼은 알게 된 경험. 그래서? 국토부나 도로교통공단에서 일할 것도 아니고 지자체를 위한 행정 공무를 할 일도 없는데?      

 

원도심레츠와 고양이 

계절학기 중에 원도심레츠 송년회가 있었다. 

육개장과 굴전과 매생이전과 잡채와 찐 대하를 먹고, ‘산호여인숙’을 시작으로 2016년 전후에는 ‘대동작은집’을, 지금은 ‘구석으로부터’를 운영하는 작은언니 은드기의 아코디언과 나츠의 기타와 패트릭의 플루트 3중주를 들었다. 바우솔의 붓글씨를 샀고, 약간의 후원금을 냈다. 대납하려던 아파트 관리비를 왜가리가 받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신 왜가리가 사랑하는 공간인 원도심레츠의 겨울 난방비에 보탠 것이었다. 그래봤자 단기임대료 시가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참, 겸임교수의 한 과목 월급은 요양보호사 급여와 비슷하다. 하루 세 시간은 같지만 주 1회와 5회의 차이이다. 그러니 같은 시간을 일하고도 겸임교수는 요양보호사보다 다섯 배 더 받는다. 하지만 요양보호사는 준비 없이 가서 세 시간 육체노동만 하면 되지만 겸임교수는 일주일 내내 자료조사하고 PPT를 제작한다. 그러니 소요시간과 노동 대비 보수로 따진다면 교수라고 해서 더 낫다고 볼 수 없다. 대신 사회적 평가가 다를 것이다. 어디 가서 말하기도 좋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내내 주장하지만 작가나 요양보호사나 겸임교수나 모두 똑같은 나 자신이다. 내가 무슨 일을 하건 삶의 질이 다르다고 할 수 없다. 나는 그 일들 모두 애정을 갖고 성심성의껏 했기 때문이다. 

 

나는 두 과목을 담당하니 한 달 최저시급에 겨우 미치는 돈을 받고 일한다. 작가는 제대로 된 원고료 받기가 길가 감나무에서 성한 감 따기처럼 어렵다. 그렇게 따지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평가받지 못하는 직업은 전업주부이다. 그 일이야말로 생명을 양산하는 가장 소중한 일인데 정확하게 돈으로 환산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싱크대 앞에서 무기력감을 느끼던 나와 같은 여성들이 당하는 고통이다. 

티 나지 않는 청소와 세탁과 매일의 밥상. 이반 일리치가 말하는 ‘그림자 노동'.

거기에는 가족의 자세가 중요하다. 그것들에 대한 감사를 반드시 표현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돈 벌어온다는 사실만으로 아내를 집순이 취급하는 가부장적인 남성들은 반성해야 한다. 그 모든 가사노동에 도우미를 쓴다고 가정하면 어마어마한 지출을 해야 할 것이므로. 게다가 집안일을 하지 않더라고 가정에 아내가 자리함으로 느낄 수 있는 안정감에는 가격을 매길 수 없으므로.      

 

여하튼 왜가리 아파트 사랑방에서 나는 바깥양반을 기다리는 안사람처럼 지냈다. 함께 나가 일찍 들어왔지만 그래서 아주 좋았다. 나만의 일을 했고 혼자만의 시간이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바라던 삶이었다. 여유 있게 일하고 휴식이 있으며 하루 한 끼 식사를 함께하며 각자의 삶을 존중하는 생활. 

 

우리는 짧은 시간 별말 없이 지냈다. 왜가리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나는 참 편안했다. 그건 왜가리의 무덤덤한 듯 너른 품 덕분이었다. 그이는 요리를 잘했고 운전도 잘했다. 맛있는 밥을 해서 매일 아침 식탁을 차려주고 차로 직장까지 태워다 주는 그이는 내게 3주 동안 아내이자 남편, 더 정확히는 지금은 안 계신 엄마나 없는 언니 역할을 해 주었다.      

 

계절학기가 끝난 다음 날, 왜가리는 정시에 출근하시고 나는 발이 떨어지지 않아 오래도록 빈 집을 서성댔다. 왜가리가 끓여놓고 간 떡국을 먹고 청소기를 돌리고 재활용 쓰레기를 비우고 마지막 남은 드립백 커피에 뜨거운 물을 내리며 편지를 썼다. 왜가리가 그린, 나무 아래 검은 고양이가 앉아있는 커튼 자락에 어울리는 푸른빛 한지 편지지였다.      

 

나무가 중요하기에 고양이는 뒷모습을 그리셨다던 왜가리. 어쩌면 왜가리는 대학 때 하던 야학에서, 생명평화결사에서, 원도심레츠에서 다른 활동가들을 묵묵히 돕고 얼굴 보이지 않게 돌아 앉아있던 고양이가 아니었을까. 

 

몇 자 적은 푸른 한지를 삼 등분해 접어 콘서트장에서 산 정태춘 노래 에세이 <바다로 가는 버스>에 끼워 넣었다. 비움실천 중이니 책을 많이 갖고 다닐 수 없다. 또 내가 잘 읽었으니 다른 분도 읽고 그 시대를 잊지 마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원도심레츠에 기증했다.      

 

현관문을 닫기 전 마지막으로 거실을 바라보았다. 

맨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정면에 보이던 푸른 커튼 아래 작은 허브 화분 둘과 그 옆 고무나무가 내 정원이 될 수 있을까? 했던 생각은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그날 늦은 밤, 왜가리가 아파트 문을 열고 깜깜한 공간을 마주할 때 환하게 불 켜놓고 맞이하던 인기척을 그리워하지는 않으실까? 생각하며 문을 닫았다. 

 

일곱째별-프로필이미지20230227.jpg

 

 

 

 

 

 

 

 

*브런치에 게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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