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일본 나라, 헤이조쿄 터
- 원래 모습을 상상하게 하는 유적
헤이조쿄 터. 역사를 좋아하거나 일어일문학과 등 일본과 관련된 학과를 졸업한 게 아니라면 많이들 알지 못하는 장소. 그러나 내가 이 장소를 안 것은 그렇게 학문적인 이유 때문은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 좋아했던 일본 연예인이 있었다. 그가 나라 출신이기도 했고 워낙 본인 고향을 좋아하는지라 나라로 촬영을 갈 때가 많았는데 그때마다 평소 좋아하는 장소로 헤이조쿄 터를 이야기하고 꼭 방문했었다. 그래서 나도 자연스럽게 이곳을 알게 됐고 그때부터 언젠가 한 번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나라 여행을 계획하면 동대사, 나라공원 등 유명한 곳을 먼저 가게 되기도 하고, 중심가도 아닌 뭐가 참 없는 헤이조쿄 터에 가자고 하는 것은 일행들에게 참 미안한 일이었다.
그런데 지난 8월 초, 나는 어쩌다 보니 오사카에 혼자 있게 되었고 '바로 지금이 내가 헤이조쿄 터를 갈 수 있는 기회다!'라는 생각에 나라로 출발했다.


헤이조쿄는 710년 일본의 수도가 지금의 나라 지역으로 옮겨오면서 만들어진 도시다. 비록 헤이안쿄(지금의 교토)로 옮기기 전까지 약 70년 정도만 수도였다지만 어쨌든 한때 일본의 정치와 문화가 집중되었던 곳! 하지만 지금 이곳에는 넓은 궁 터에 몇몇 건물들만 복원되어 있다. 그렇기에 헤이조쿄 터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생각보다 넓은 빈 공간이다. 궁궐이 있었던 자리에는 건물의 흔적과 기단 등이 남아있고 그 위에 일부 건물을 복원해 놓았다.
헤이안쿄로 수도를 옮긴 후 헤이조쿄는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농경지가 되었다. 그러던 중 19세기 중반 헤이조쿄의 위치에 대한 연구가 있었고, 1900년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건물의 위치와 규모, 문헌을 바탕으로 고대 건축에 대한 연구를 더해 현대의 기술로 헤이조쿄를 다시 만들어낸 것이다.

가장 먼저 복원된 건축물은 주작문이다. 주작문은 1998년에 복원됐고, 궁궐의 중심부였을 제1차 대극전은 2010년에 복원됐다. 이후 대극문, 대극전원, 동루 등을 계속해서 복원하고 있다.
사실 처음에는 이렇게 현대에 복원된 건물들이 멋이 없다? 참 감흥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헤이조쿄 터를 한참 걷다 보니 문득 1년 전 방문했던 경주 감은사지가 떠올랐다.


2025년 여름, 경주 감은사지에 방문했을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감은사 역시 지금은 절의 모습은 전혀 없고 동·서 삼층석탑만이 지금까지 남아있고 건물터와 기단 등이 감은사의 모습을 짐작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 공간이 주는 아쉬움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에는 남아있는 유적을 보는 경험보다는 남아있지 않은 것을 상상하는 경험을 해볼 수 있었다. 특히 기억에 남았던 것은 바닥에 남아있던 금당터! 문무왕은 죽은 뒤 동해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고 했고, 신문왕은 아버지가 감은사에 드나들 수 있도록 금당 아래에 특별한 공간을 만들었다. 예전에 다큐멘터리인가 어떤 영상에서 이 이야기를 봤던 기억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터를 보자마자 대왕암에서 용이 드나들었을 길을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차에 나를 도운 것은 헤이조쿄 터의 복원사업 정보관이었다. 헤이조쿄 터를 어떻게 복원하고 있는지 발굴조사와 문헌, 연구 등을 바탕으로 모형과 자료로 보여주고 있는 공간인데, 이 정보관 덕분에 상상력이 부족한 나도 텅 빈 궁터에서 1300년 전의 모습을 조금 더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요즘 여기저기 유적지를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재건'과 '보존'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예전에는 보존은 남아있는 것을 최대한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래된 돌은 오래된 돌 그대로, 무너진 건물터는 그 흔적 그대로 남겨두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헤이조쿄 터를 방문하고 나서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거의 재료와 흔적을 무조건 그대로 남겨두는 것뿐만 아니라 그 유적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의미를 이해하고, 현재의 기술을 이용해 사라진 모습을 다시 보여주는 것 역시 하나의 보존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무엇을 근거로 어떻게, 어디까지 복원할 것인가는 계속 고민해 봐야겠지만 말이다.


오사카 여행을 계획하면서 교토는 거의 이제 필수 코스이지만, 나라 역시 하루 정도 시간을 내어 둘러볼 만한 곳이 많다. 아까 언급한 동대사, 나라공원뿐만 아니라 카스가타이샤, 나라국립박물관도 꽤 좋은 곳이고, 조금 더 시간이 있다면 헤이조쿄 터를 꼭 추천하고 싶다.
다만 한 가지는 꼭 말하고 싶다. 여름은 절대 피할 것.
헤이조쿄 터에서 가장 가까운 역인 킨테츠 야마토사이다이지역에서 헤이조쿄 터는 걸어서 20분이고 헤이조쿄 터 자체도 꽤나 넓다. 그런데 그늘이 없다. 중간중간 건물에서 쉬면 되지 했지만 그래도 정말 너무 덥다. 여러분은 꼭 봄, 가을에 가시길 바란다.
그럼 이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