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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과 고전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들

posted Jun 15,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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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05-뚜벅 뚜벅-일요일 오후의 미술관2ss.jpg

 

군상-0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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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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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서도호의 '바닥'을 보았다. 투명한 PVC 판 아래 희끗한 줄기들이 촘촘히 서 있어서, 온실에서 키우는 느타리버섯 같다고 느꼈다. 쪼그리고 앉아서 옆을 보고서야 크게 착각했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 그 줄기들은 모두 사람들이었다. 수만 명의 사람들이 빼곡히 서서 투명한 천장을 떠받치고 있다. 자세히 보면 피부색이 다르고 키도 다르지만, 크게 보면 다 고만고만하다. 신의 눈에 인간이 이렇게 보일까? 이들은 모두 같은 운명에 처해 있다. 천장을 떠받쳐야 한다. 천벌 같은 운명을 동시에 똑같이 감당해야 한다. 인류가 동시에 똑같이 감당해야 할 일이 뭐가 있을까? 지구별의 멸망 위기?

 

미술 감상을 마치고 정독도서관에서 벚꽃 수만 송이를 보았다. 하늘에 가득했다. 그 아래에서, 팔을 들고 떠받치지 않아서 안심했다. 천국 같다. 바닥을 걷는 인간으로서 잠시 생각해본다. 두 손 들어 천장을 떠받치는 것, 자유롭게 봄꽃을 즐기는 것, 어느 쪽이 더 진실일까? (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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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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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초 벚꽃 만개한 시절, 야외의 봄기운을 만끽하며 [한국현대미술 하이라이트] 상설전시를 다녀오다.

90점이 넘는 작품들을 한 시간 남짓한 시간에 다 소화하기엔 불가능하기에, 김숙영 교수님(이끔이)이 추천하는 작품 위주로 감상하였다. 남관 <가을 축제>를 시작으로 최욱경 <미처 못 끝낸 이야기>, 이우환 <선으로부터>, 윤형근 <다색>, 이응노 <군상>까지 이끔이의 설명을 들었고, 이후 자유롭게 작품들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캔버스 위에 붓질을 반복했을 그 시간을 생각해보니,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넘어 수도사의 '자기 수양'처럼 경건하게 다가왔다.

 

나만의 원픽 작품을 꼽자면, 이응노 <군상>이다. 제목 그대로 화면 가득 떼를 지어 모여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바쁘게 움직이는 개미떼를 연상시켰다.

"거대한 조물주의 시선에서 바라본다면 우리 인간들 중 특별히 잘난 사람도, 특출난 존재도 없이 그저 모두가 미물에 불과하지 않을까?"

삶 속에서 겪는 시기와 질투, 그리고 누군가를 향한 혐오 등은 얼마나 부질없고 작은 것들인지 새삼 느끼게 되는 귀한 시간이었다. 감사하다!!!

 

죽음.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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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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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

죽음을 끝없이 들여다본다고 해서 그 불안을 완전히 넘어설 수 있을까? 인간은 죽음을 사유하고 상징화하며, 종교·철학·예술을 통해 그것을 이해하려 애쓰지만, 결국 죽음 자체를 제거하거나 피할 수는 없다.

다만 "죽음을 어디까지 들여다봐야 하는가"라는 물음은, 죽음을 직시하는 태도의 깊이를 묻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표면적인 공포를 넘어서,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순간에야 비로소 불안이 조금씩 희석된다. 허스트가 보여주는 잔혹한 이미지들은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뭘 이렇게까지 집착하며 애쓴단 말인가?

 

결국 드는 생각이 달려간 곳은, 죽음의 불안을 넘어서는 길은 "죽음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삶 속에 통합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쪽이었다. 불안을 없려 하기보다, 불안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태도로 보여졌다.

데미안 허스트가 작품을 통해 죽음을 "극복했다"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 않나? 오히려 그는 죽음을 피하거나 무력화하려는 대신, 정면으로 응시하고 예술 속에 끌어들임으로써 그 불안을 다루려 했다고 보는 게 더 적절해 보인다.

최근작으로 <벚꽃> 시리즈가 등장하던데, 기존의 충격적이고 불편한 작품들과 달리 이 신작은 편안함과 따뜻함을 주는 방향 전환이 느껴져 더욱 그렇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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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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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죽음이다.

데이미언 허스트 전시회를 관람하고 돌아와서 뇌리에 인이 박힌 것.

"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인간이 죽음을 안다는 것은 '자아'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수반되는 고통도 있겠지만, '자아'의 상실이라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주는 공포일 것이다. 눈은 모든 것을 보지만 자기 자신의 눈을 볼 수 없듯이, 자아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사유하지만 자아는 자신의 소멸을 시뮬레이션할 수 없다. 이것이 곧 '마음 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이라고 할 수가 있다.

 

나란히 놓인 허스트의 두 작품 <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과 <천 년>은 죽음을 우리 앞에 현존시켜 그 '불가능성'을 가능의 영역으로 끌어오려는 시도다. <살아있는...>은 '멈춤'으로, <천 년>은 '순환'으로 죽음을 현존시킨다.

우리가 죽음을 인지하는 것은 오롯이 타자의 죽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멈춤'은 자아의 상실이고 내적인 순환의 정지이다. 이 사태를 자아는 결코 이해할 수가 없다. 아니, 느낄 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느낌의 주체인 자아가 사라져야만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 불가능성을 넘어서기 위해 인간은 영혼이라는 개념을 발명했으나, 이는 '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허스트는 그 영혼의 자리에 살아있는 파리들을 내놓는다.

 

"왜 죽음을 그토록 많이 다루나?"라는 질문에 어느 영화감독은 "죽음이 삶의 가장 극적인 표현"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죽음을 이야기해야 삶을 제대로 이해하게 된다는 뜻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허스트는 이러한 접근을 하지 않는다. 죽음 그 자체를 민낯으로, 가장 실재적인 것으로 우리 앞에 내놓는다. 관념이 아니라 느낌으로 죽음을 경험하게 하려는 의도다. 그렇다면 그는 성공한 셈이다. 전시장 안의 그 서늘한 죽음의 사태가 여전히 나의 감각 안에 생생히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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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곤보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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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미술(영어: conceptual art)은 작품에 포함된 개념 또는 관념이 전통적인 미학적, 기술적, 물질적인 것보다 선행하는 미술이다. 설치 미술로 불리는 일부 개념 미술 작품은 이미 작성된 안내를 따라 누구라도 간단히 구축될 수 있다. 이러한 방법은 미국의 예술가인 솔 르윗(Sol LeWitt)의 개념 미술에 대한 정의에서 근본적인 것이었다.(이상 위키백과에서 발췌)

 

데이미언 허스트는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죽음이라는 주제를 아주 불편한 방법으로, 그러나 한편으론 아주 극적으로 전시하며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그 의도는 괘씸하고 방식도 정말 마음에 안 들지만서도... 그럼에도 눈이 자꾸 가는 건 꽤 매력적인 점이 있기 때문이다.

제목이 꽤 적절하며 신선한 작품도 있었고(사랑의 취약성), 해부학과 조각 기술의 솜씨가 빛나는 작품(성 바르톨로메오, 극심한 고통), 화려한 문양 아래 죽음의 사체가 그대로 전시되어 충격을 주는 작품(신의 사랑을 위하여)도 마음에 들어왔다.

물론 그의 이름이 사기와 쇼와 과장과 상업적인 홍보에 얼룩져 있다 하더라도, 그가 삶과 죽음에 천착하며 만들어낸 작품들 중에는 그의 이름과 상관없이 분명히 우리의 감정을 움직이는 요소가 있다.

 

양귀비.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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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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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요 고흐님, 친히 그린 작품을 보고 싶습니다.' 전시관에는 세 개의 고흐 작품이 있었다.

하나는 고흐가 동양풍에 영향을 받았다더라카는 <탕기 영감의 초상>의 상점 아저씨를 그린 프린트판이었다.

다음은 <감자 먹는 사람들>류의 어둑한 색조에서 색채의 생동감을 탐색한 전환기를 증언하는 <카네이션이 있는 꽃병> 습작이었다.

세 번째는 가세 박사의 보살핌을 받은 시기의 작품으로 오베르 마을에서 그린 <오베르의 우아즈 강가>였다. 고통을 씻어주는 생동하는 강가에서 전통식 옷을 차려입고 느긋이 보트에 앉아 책을 읽거나 유희하는 사람들이 그려져 있었다. 마치 고통이 없는 곳의 싱그러운 때에 고통이 없는 사람들처럼 보이는 순간이었다.

 

최대한 평온한 색조를 택해서 명상하듯 수련한 직조식 붓터치의 질서감이 느껴졌다. 물감이 매우 매끈거리게 보여서 모작이 아닐까 느끼기도 했다. 물감을 풍족히 쓸 수 있게 돕던 가세의 소풍을 그린 걸까?

전시작에는 없었지만, <화가가 일하러 가는 길>을 나는 좋아한다. 이 작품에는 <해바라기>의 따순 빛이 있다. <감자 먹는 사람들>의 묵묵함이 있다. <씨 뿌리는 사람>의 계절감 있는 터전이 있으며, <별이 빛나는 밤>의 신비로운 사이프러스가 있다. 성당이 방문 가능할 거리쯤에 보인다. 새가 날기 좋은 화창한 하늘과 제철을 정리하고 있는 나무를 배경으로 깊고 검고 푸른 그림자를 가진 우리 고흐가 길을 걷고 있다.

 

잘린 귀보다 더 아픈 관계의 기억을 지고, 아버지에 대한 애증만큼 묵직한 짐을 등에 지고, 옆구리에는 그리기를 꿈꾼 그림을 그릴 캔버스 하나를 낀 채, 양손에 목재 물감통과 지팡이를 움켜쥐고 어느 하나도 놓아줄 수 없는 소망의 짐들을 지고 딱딱하게 굳은 신발로 날마다 길에 서던 청년, 고흐.

동생 테오에게 '...요컨대 나는 씨앗이 되는 것을 고민하고 있어.'라고 편지했던 우리 고흐님. 농부가 밭에서 씨를 뿌리고 노동하듯이 캔버스에 영혼을 심는 노동에 몰입한 청년을 기억하며 함께 걷는 오늘 하루였다.

서양 미술의 흐름 중, 후기 인상파로 서 있는 그의 곁에서 광화문 세종에 전시된 그림들을 보았다. 이전 것을 깨고 인상 표현을 너머 탐구와 해체, 차별화로 흐르고 있는 '사람'의 예술 욕구들이 걸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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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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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어디에나 꽃이 피어 있다." — Henri Matisse

양귀비의 꽃말은 위로와 망각 그리고 평화로운 죽음 등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황폐해진 전장에서 가장 먼저 피어난 꽃이 바로 개양귀비(Field Poppy)였기에, 이 꽃은 전쟁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마티스가 이 그림을 그린 1919년은 인류가 1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악몽에서 벗어난 첫해로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전쟁으로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따뜻한 위로이자,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희망의 에너지를 전하려는 의도가 엿보였다.

 

지난 3월 미국과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이란 남부 미나브의 여자 초등학교에서 수업 중이던 어린 학생들과 교사들 170여 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은 비극이 있었다. 연이은 공습과 늘어가는 사망자, 그리고 좀처럼 타결되지 않는 종전 협상 소식은 마티스의 그림 앞에 선 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꽃을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어디에나 꽃이 피어 있다"던 그의 말처럼, 이토록 어두운 비극 속에서도 우리가 평화라는 꽃을 포기하지 않고 바라볼 때, 비로소 세상은 조금씩 치유될 수 있지 않을까.

마티스가 양귀비꽃으로 건넨 치유의 에너지가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반대편에서 고통받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닿아, 하루빨리 평화와 위로가 찾아오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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