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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 팽나무 그늘과 원평 집강소 인문학

posted Jul 13,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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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27일 토요일 오후 3~6시 제66회 팽팽문화제

 

한 시간 일찍 군산 하제마을 팽나무에게 갔다. 신록이 우거진 팽나무 아래는 토끼풀이 지천이고 팽나무 앞에선 팽수가 풍물을 하고 있고 팽나무 그늘에는 사람들이 누워서 쉬고 있었다. 울타리에 달린 출입금지 팻말에 쉽게 걸음을 못 떼는 사람은 멀리서 그 평화로운 모습을 감상만 하고 있었다.

 

CKC04088 600년 팽나무 그늘 아래.JPG

 

 

흑미의 흥겨운 반김에 팽팽문화제 60분 전 책 모임 <팽팽 60분>에 참가해 보았다. 토끼풀이 지천이어서일까? 이날의 책은 <토끼전>이었다. 인디, 다래, 흑미 등과 돌아가며 읽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시작은 수궁 영덕전 기공식 잔치에 네 바다 용왕이 모여 술판을 벌이다 남해 용왕 광리왕이 앓아눕게 되면서다. '미인의 시중을 받으며' 실컷 놀다가 업무과로도 아니고 술병으로 토끼 간을? 수궁의 회의는 산속으로까지 확장되는데 호랑이, 너구리, 여우, 다람쥐, 쥐, 멧돼지, 곰이 나온다. 지금 세상에서 권력에 빌붙어 서민의 고혈을 착취하는 여우 같은 인간은 누구일까? 곰 같은 인간이 되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나중에 자라가 토끼를 속여 데려왔을 때 용왕은 속으로 '저것이 나 때문에 죄 없이 죽게 됐지'라고 정신을 차린다. 하지만 감정에 그칠 뿐 여전히 토끼 간을 빼먹으려는 심보는 그대로다. 지략으로 자력구생한 토끼는 뒤로 '남의 허튼소리에 속지 않고, 허튼 욕심 품지 않는 신중하고 점잖은 토끼가 됐다고' 묘사되지만 신중하지 못하다고 해서 목숨까지 뺏길 일인가? 어린 시절엔 꾀돌이 토끼 대신 우직한 자라 걱정을 했었다. 용왕은 저절로 병이 나아 우직한 자라도 별일이 없었다고 한다.

 

결국 권력층끼리 먹고 놀다 생긴 병에 아랫사람들만 죽도록 충성을 다하다 제 풀에 낫고 말았다는 토끼전은 예전엔 토끼와 자라의 단순한 에피소드였지만 이제 와 보니 불합리한 권력 구조에 희생되는 민초 이야기였다. 권력자들은 제 몸이 대단한 보물이나 되는 양 자타 애지중지하지만 그러다 보면 탈이 나는 법. 비대해진 자아상에 타인의 희생과 봉사를 당연히 여기는 중병에 걸리게 마련이다. 나락 가기 전엔 약도 없는 병.

 

글을 다 읽고 팽나무로 가보았다. 600년 된 그늘에 누워서 평화롭게 낮잠을 자는 이들 중에 팔레스타인 평화를 위해 바다에서 목숨을 걸었던 해초와 참새가 있었다. 평화란 무엇인가. 나무 그늘에서 세상 근심 없이 한숨 잘 수 있는 게 아닐까?

 

CKC04094 팽나무 뒷모습.JPG

 

오후 세 시, 더덕의 여는 말로 제66회 팽팽문화제 전북작가회의 주최 <지난 600년 나아갈 600년 팽나무 아래, 하늘에 고하다>를 시작했다.

 

전은희 작가의 사회로 전북작가회의 회장인 정동철 시인이 고천문을 낭독하고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인 강형철 시인이 고천제를 올렸다.

 

하늘에서 내린 이 귀한 팽나무를, 600년이나 스스로 세월을 견딘 이 거룩한 생명을, 우리는 자칫 미련하여 지키지 못할 뻔하였습니다. 하여, 우리는 팽나무의 단단한 뿌리 아래 모여, 이 땅의 눈물겨운 역사를 하늘에 고하나이다.

 

만경강 하류와 서해가 맞닿던 바닷가 마을, 하제!

(중략)

하늘이시여! 지난 2020년, 이 평화로운 땅마저 미군에게 공여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을 때, 우리는 이 거룩한 생명과 터전을 지키기 위해 2020년 10월, 이곳 팽나무 아래서 '팽팽문화제'의 첫 발걸음을 뗐나이다. 어르신이 포기하지 않았기에, 우리 또한 결코 포기하지 않겠나이다!

(중략)

하늘이시여, 팽나무 어르신이 살아오신 600년 세월을 돌아보며 앞으로의 600년은 우리가, 우리 후손들이 대대로 지켜낼 것임을 소리 높여 아뢰면서 다시금 서로의 손을 맞잡겠습니다.

 

2026년 6월 27일

제66회 팽팽문화제에 모인 전북의 문인들과 깨어있는 중생들 일동 고함

 

CKC04099_ 지난 600년과 나아갈 600년.JPG

 

 

이어 박태건·전재복·장현우·김수예 시인이 시 낭송을 했다.

박태건 시인의 <소금나무-문정현 신부께> 중 일부를 소개한다.

 

(상략)

연대라는 말

가만히 제 몸을 흔들어

옆에 있는 이파리를 조용히 깨우는 일

자유라는 말

붉은 열매 쪼아 먹고

날아가는 새의 보드라운 깃털보다

기어이 꺾인 가지로 돌아와

가만히 내려앉는 저녁 바람 같은 것

 

나무가 나무일 수 있는 것은

누군가의 든든한 그늘이어서가 아니라

그늘마저 없는 이들의

시린 등을 데워주기 위해

제 몸을 장작으로 내어놓기 때문입니다

 

나무는

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추위를 견디는 것입니다.

눈물이 다른 눈물을 만나

소금길을 만들 듯

김 오르는 무쇠솥 안에서

바다는 조금씩 소금이 되고,

나무는 흰 재가 되어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갑니다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세상에서 가장 작은

기도가 됩니다

 

이어 정동철 시인의 거문고 연주와 양정례 명창의 가야금 연주와 창이 있었다.

 

김성숙 작가와 정숙인 소설가의 하제마을 이야기에 이어 자유 발언이 있었다. 김춘기 시인에 이은 김형균 시민생태조사단 공동대표의 발언은 다소 뜨거웠다. 3~40년 전에 외치던 구호 "양키 고 홈 Yankee Go home!" 미제와 일제의 첨탑 둘에서 수라(繡羅) 갯벌을 보존해야겠다는 그는 수라의 비단에서 아침 일찍 엄마가 갯벌에 나가 아이를 위한 먹을거리를 찾는 발걸음도 수(繡)고 그 옆을 따라가는 괭이갈매기의 발걸음도 수(繡)라고 했다.

 

CKC04104 솟대.JPG

 

 

지난달에 심은 큰뒷부리도요 솟대 옆에서 성가소비녀회 수녀님들의 플루트와 건반 연주와 함께 노래를 들은 후 앙코르를 외쳤을 때였다. 전북작가회의 회원 중 미색 광목 블라우스를 입고 같은 색 모자를 쓴 분이 내 목소리를 듣고 다가왔다. 담양 집필실에서 함께 머물렀던 작가였다. 친하게 지내던 세 작가 중 마지막에 떠나면서 블라우스를 선물하고 간 윤. 순식간에 4년 전으로 돌아간 내 눈에선 눈물이 터져 나왔다. 5년 동안 매달 했던 연재도 끊고 쓰레기를 주우며 외길을 걷다 돌아오고, 홀로 멀리 나가 담양 속속들이 보며 걷던, 모든 걸 다 잃은 듯했지만 그럼에도 침대와 책상뿐인 한두 평 남짓한 집필실에서 밤낮없이 무언가를 쓰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전북도청 앞 월요 미사 때 만나려다 못 만나며 서서히 지워지는 듯했으나 만날 사람은 어딘가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가. 그렇게 제66회 팽팽문화제는 인연을 다시 이으며, 오늘 전북작가회의의 문장들을 '외울 마음으로 읽고 또 읽어 더 풍부하고 깊고 넓게 팽나무에 대해 전달할 수 있겠다'는 문정현 신부님의 말씀과 산청 간디학교 학생들의 흥겨운 춤과 함께 막을 내렸다.

 

CKC04151_ 문정현 신부님.JPG

 

CKC04198 제66회팽팽문화제.JPG

 

 

 

그런데 이날 찰밥에 돼지수육과 전과 김치, 번데기와 과일과 물 등 풍성한 음식을 준비해 준 (사)김제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에서 식탁에 둔 원평집강소 뒤란의 인문학-길 위의 평화바람 안내문을 보았다. 요리와 배식하던 인자하게 생긴 분이 그랬다.

 

"아마 신부님 마지막 강연일 거예요."

 

왜 그런 말은 귓가에서 떠나지 않을까? 일주일 후 나는 결국 김제를 향해 갔다. 원평집강소 뒤란에서 여전히 쩌렁쩌렁한 문정현 신부님의 말씀을 들었다. 그리고 그 50여 분을 녹음해 와 이틀 동안 듣고 또 들으며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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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평 집강소 뒤란의 인문학 – 길 위의 평화바람

2026년 7월 4일 11시

문정현 신부님

 

CKD04258_ 원평집강소.JPG

 

 

제가 이런 자리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길거리에서 악이나 썼지. 제가요, 원평, 살아보진 않았지만, 고향 같은 느낌이 드는 덴데 왜냐면 외가하고 친가하고 수류성당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리고서 1935년도 전주 전동성당에서 아버지 어머니가 결혼하시고 익산으로 가셔서 저희 7남매를 낳으셨습니다. 제가 둘째입니다. 아버지께서 매년 추석이면 수류에 가시는데 왜냐면 할아버지 묘소가 있었어요. 그래서 영문도 모르고 아버지 따라가는 재미로 수류에 매년 다녔는데 그때는 원평성당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기 아무도 몰라요. 수류는 천주교 신부니까 자주 왔다 갔다 한 것이고.

 

제가 1976년도 3월 2일에 잡혀 와서 서대문구치소에 있는데 거기서 뭐 하겠어요? 1.75평 좁은 방에서 하루 세끼 밥은 줍니다. 뭐 하겠어요? (종일) 보는 게 책밖에 없거든요. 제가 책 보는 게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맨날 싸움하고 길바닥에 지내다가 꼼짝없이 책을 읽는데 동학을 거기서 알았습니다. (고려대 문화사에서 나온) 열네 권짜리를 다 읽는데 거기에 동학의 역사가 나오는데, 저 천주교 집안으로 태어나고 자라서 동학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천주교는 서학이라고 하고 동학은 동학이라고 하는데 이게 무엇인가 연관이 되는데 조직적으로는 연관이 없어요. (하지만) 일반 우리 같은 사람들 마음엔 뭔가 통하는 게 있었어요. 여기 집강소가 있습니다만 최근에서야 알았어요. 1976년 감옥에서 읽은 것이 그대로 여기서 살아났더라고요. 감옥에서 공부했던 게 얼마 전에 집강소도 이 집도 다녀갔는데, 사실은 아마 이런 강연 아마 오늘이 마지막일 거예요. 어디 가서 말하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

 

CKD04221_ 2026-07-04_원평집강소 뒤란의 인문학_길 위의 평화바람_문정현 신부님.JPG

 

 

지금 저는, 군산 시내를 벗어나서 옥서면 옥봉리인데 거기에 미 공군기지가 있잖아요. 미 공군기지 안 가보신 분들 꽤 많으실 걸. 그게 1933년도 일본 놈들이 후쿠오카 비행훈련소를 말하자면 새만금 땅에 간척해서 비행훈련소를 만들었던 건데 그러고 해방이 됐잖아요. 1945년. 그리고 (1950년) 6.25 전쟁 터졌죠. 전쟁 후에 미군이 들어와서 미 공군기지를 오늘날까지도 동쪽으로 서쪽으로 계속 확장하고 지금도 확장을 하고 있어요.

 

제가 거기에서 살면서, 미국 공군기지 지명이 상제, 중제, 하제인데 상제, 중제는 일본 놈들이 비행훈련장으로 만들었고 하제는 고기 잡아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있는 아주 부촌이었어요. 동네 말로는 개도 돈을 입에다 물고 다녔다고 말할 정도로. 왜냐면 생선, 조개 이런 걸 건져서 돈들이 많아 아주 부촌이었는데, 미군기지가 확장되면서 하제마을 근처에다가 탄약고를 짓더라고요. 탄약고를 지어놓으면 안전거리라는 게 있어요. 그게 4km, 4킬로미터 안에는 살면 안 돼요. 그래서 (주민들) 다 쫓겨나고 국방부 땅이 돼버려서 철조망을 다 쳤는데 그 안에 팽나무가 서 있어. 그 팽나무가 600년 (됐어요). 둘레가 7미터 50센티미터, 높이가 몇십 미터야. 있는지도 몰랐는데 마을이 없어지고 집을 다 때려 부수니까 팽나무가 딱 드러나는데. 저는 그것도 몰랐는데 저 경상도 안동에 사는 젊은 친구가 거기까지 와서 하제마을이 무너지는 장면을 전부 촬영을 했는데 그 사진에 팽나무가 있었어. 나 그때 처음 알았어. 잠을 자고 새벽에 거길 갔는데 그 팽나무가 나한테 뭐라고 그랬는지 알아요?

 

"야 너 너희 동네 놔두고 어디 갔다 이제 오냐?"

 

그래서 팽나무를 안고 펑펑 울었습니다. 팽나무보다도 하제마을 없어지는 그 과정에 내가 거의 몸담고 싸워 왔기 때문에 그 서러움에 막 눈물이 터지더라고요. 그래서 매월 셋째 주일을 맞는 토요일 오후 3시에 팽팽문화제를 금년 이번 달에 66회 했습니다. 5년이 훨씬 넘죠. (박수) 66회 하고 있는데 그 문화제는 내용이 참 깊습니다. 미 공군기지가 생기고 점점 확장되고 또 상제, 중제, 하제 마을이 없어지고 그런 역사를 다 담은 상징적인 팽나무거든요. 그래서 (팽팽문화제를) 앞으로도 계속할 것입니다.

 

이제 관심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 뭡니까? 갯벌을 막아서 방조제, 1991년부터 공사 시작했는데 여러분 관심이 있으십니까? 여기서 몇 발짝 가면 김제 넘어서 서해안이잖아요. 그 일대 그 갯벌에 대해서 제가 잘 압니다. 저 부안에 핵폐기장 들어선다고 해서 그거를 막느라고 전 국민이 다 몰려가서 그걸 막아냈잖아요. 그래서 익산에서부터 부안까지 왔다 갔다 하면서 그 옛골 서해안 갯벌. 근데 지금 33.9km 방조제를 쌓아서 그 안의 갯벌 다 죽었잖아요. 그 안에서 살던 물고기는 어디로 갔으며, 그 안에서 나오는 조개들은 어디로 갔으며, 그 마을 주민들은 어디로 갔습니까? 황량한 썩어가는 갯벌밖에 없잖아요. 썩으니까 도에서는 하루에 한 번 수문을 열더니 그것도 안 되니까 두 번 열더니, 그거 방조제 없애버려야 해요. 안 그래요?

 

그때 이걸 반대하느라고 내 동생이 문규현 신부인데 삼보일배라고 들어보셨어요? 해창갯벌에서 청와대까지 세 발짝 걷고 엎어져서 절하고. 그리고 오체투지 세 발 걷고 땅에 딱 엎드려서 일어나서 또 걷고 또 걷고 저 지리산 노고단에서부터 저 판문점까지. 그렇게 했을 때 욕은 바가지로 먹었습니다. 전라북도 발전을 방해하는 악질이라고. 매도당했잖아요.

 

1991년도에 방조제 쌓아놓고 나오는 거 뭐 있어요? 뭐 있어? 아무것도 없어요. 아이고 거기서 윤석열이 세계 잼버리 한다고 했다가 개망신만 당했습니다. 기억 안 나요? 하는 거 뭐 있어?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조력발전소를 한다, 뭐 한다. 이렇게 전라북도 도민 전체가 잘못 알고 해야 된다, 해야 된다 해놓고 아무 소리도 안 하고 눈만 껌뻑껌뻑.

 

설상가상 미군기지 있는 방조제 안에 수라갯벌이 있어요. 아직도 살아있어요. 왜냐면 해수유통을 하루 두 번씩 하니까. 근데 거기를 메꿔서 활주로를 만든다. 그리고서 한국 정부는 전라북도에 공항이 없다, 전라북도 국제공항을 만든다. 노무현도 문재인도 이재명까지 국민을 속이고 있어요. 미군기지 확장이야. 그 갯벌을 연결시키고 관제탑도 옮기고 그래서 미군이 쓸라고. 그것을 국제공항? 에라 규모가 국제공항이 될 수가 없어요. 군산에서 제주, 제주에서 서울 비행기 떴었죠. 근데 손님이 없어. 서울 가면 전주에서 군산 공항까지 버스 타고 가서 비행기 타고 인천공항에 내려서 거기서 전철 타고 서울로 들어가고 미친 짓이지. 왜냐면 전주에서 기차 타면 용산역까지 가는데 누가 비행기 타고 서울 가요? 손님이 없어서 없어졌어. (지금은) 제주나 가는 거 두 대 떠요. 이렇게 미군하고 한국 정부도 국민 속이고 철저하게 얘기하지 않아요. 그러고 또 지금 거기에다가 신공항을 짓는다는데 미군기지 확장이라니까요.

 

그래서 얘기가 자꾸 딴 데로 나가는데요. 매달 한 번씩 팽팽문화제를 하고 목요일마다 군산 시내에 가서 수라갯벌 살리자고 캠페인을 벌여요. 관심도 안 써, 사람들이. 공군기지에서 수없이 전투기가 날아와도 성내는 사람이 없어. 이렇게 얘기를 하다가 비행기 지나가면 얘기가 끊어지잖아요. 텔레비전보다 삐 하면 텔레비전 내용은 잊어버리잖아. 그런 불편을 불평하는 자가 없어. 미국이면 다인가? 야 이놈들아, 그래 비행기 운영을 해도 좋은데 동네 지붕 피해 갈 순 있잖아요. 얼마나 무시하면…….

 

내가 얘기를 하다가 딴 데로 흘러갔는데 제가 세례를 받고 익산에서 중학교 졸업하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신학교 들어가서 군대도 가고 대학이 7년이나 돼요. 정동성당에서 첫 시무하고 금년이 60년이요. 이토록 사는데 동학이라고는 생각을 안 했는데 원평은 뭡니까? 동학이죠.

 

우리 조선 땅에 1835년 중국에서 천주교 서적이 들어왔어요. 마테오 리치라는 이탈리아 신부를 만나서 천주실의 등 학자들이 서로 연구를 해서 천주교를 알게 됐는데 그것을 서학이라고 했어요. 서쪽에서 왔다고 해서. 그래서 자체로 주교도 만들고 신부도 만들고 회장도 만들고 해서, 북경에 있는 천주교 허락을 받으려고 했는데 아마도 교회에서 인정하고 예식을 통해서 교회야 되는 것이요, 너희들이 맘대로 그렇게 되는 게 아니다. 그래서 땡. 진짜 그때부터 중국 사람 주문모 신부가 처음에 왔고 그다음에 파리외방전교회 프랑스 사람들이 밀입국해서 천주교를 전파하고 가르치고 그랬는데 아마 수교도 그 신부님들이 왔다 갔다 해서예요. 박해를 네 번 받았어요. 수천 명이 죽었어요.

 

왜 그러냐? 제사 방법이 다르잖아요. 조선 사람이 제사를 마다하면 안 되죠. 천주교가 제사를 안 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에요. 음식 떠놓고 그 방식이 달랐던 거예요. 그것이 죄목.

 

그다음에 양반 쌍놈이 형제자매라고 하고. 그게 사회에서 용납이 되냐는 거예요. 젊은 어린 새끼가 노인에게 야야 하고 그 보통 있었던 일 아닙니까? 그런데 서학이 들어와서 종놈 보고 형제라 하고 종년 보고 자매라 부르고 이거 눈이 뒤집힐 일이죠. 이렇게 해서 탄압을 받지 않았습니까? 엄청난 탄압. 네 번에 걸쳐. 김대건 신부님도 프랑스 신부님도 수천 명이 학살을 당했는데 느닷없이 동학이라는 게 나오네요.

 

최제우 1836년. 서학·동학. 서로 간의 교류는 없었지만, 사람을 보는 눈은 같았던 거야. 양반 쌍놈 없다, 다 형제들이다, 여자 남자도 남자라고 우월하냐, 자매다. 동학도 그렇고 서학도 그러네. 교류는 없지만 내용은 같아. 여기가 동학. 백산도 가보고 죽산도 가보고. 백산은 왜 백산이냐면 사람이 조선 옷을 입고 서 있으면 백산. 죽산은 조선인 하얀 옷을 입는 사람들이 주저앉아 있고 대나무만 보이면 죽산. 이런 기가 막힌 지명이 생겼다면 그 역사가 얼마나 얼마나…… 그랬(대단했)겠어요.

 

그런데 (동학혁명군이) 부안으로 장흥으로 해남으로 밀려났는데 왕실이 일본 놈들하고 같이 제 백성을 학살했잖아요. 지금은요, 저기 박정희부터 지금까지 역대 대통령이 미국 눈치만 보고 살아요. 안 그래요? 미국 물러나라고 데모하면 한국 정부는 잡아다가 감옥에 집어넣고. 미국군들 앞에서는 한국 대통령들이 덜덜덜덜. 지금도 그래. 우리 독립국가 아니에요. 아니 남북문제에 있어서 위의 정상과 아래 정상을 서로 만나는 게 그게 그렇게 뜻대로 되는 줄 알아요? 문재인 대통령 판문점까지 가서 기립박수 받고, (그때) 우리는 (곧) 남북통일 되는 줄 알았어. 내려와서는 아무 소리 못 하고.

 

동학하고 서학하고 똑같애. 동록개가 (백정이라) 내가 사람 취급 못 받는데 이렇게 양반 쌍놈 똑같다고 남녀 서로 평등하다고 (하니) 얼마나 감동을 받아서 그렇게 (집을 헌납)했겠어요. 이거 내 체험이에요. 학자들이 이런 걸 썼는지 어쩐지 모르지만 내 체험이요. 그래서 나는 동학을 알고 싶어요.

 

어려선 동학난이라고 했거든. 혁명이지. 동학혁명이 있었기에 3.1운동이 가능했습니다. 틀림없습니다. 4.19, 그 엄혹한 독재정치를 쓰러뜨리는 그 4.19, 동학혁명이 없었으면 없습니다. 5.18 광주 그분들이 그렇게 죽음을 무릅쓰고 들불처럼 일어난 것도 동학혁명이 있었기에. 6.10항쟁도. 우리는 역사의 혁명 주체로, 여기서부터 시작된 거예요.

 

천주교는 로마교황청에서부터 한국 주교회, 성직자회 제도로 되어 있지만 제도가 움직이지 않더라고, 제도가 움직이지 않아. 거기에 온갖 보이는 신자들이 제재를 받지만 그 제재를 극복하고 남녀노소 평등하다, 노동자라고 함부로 할 수 있냐, 사람을 그렇게 학살할 수 있냐? 지방과 지방이 차별이 있어서야 되겠냐? 지도자 있어요? 그 정신이 내려와서 개별적인 느낌으로 그것이 조직화 되어서. 제도 밖에서 구성 멤버들이 의식화되어서 서로 관련된 그게 동학과 서학이에요. 책에서 배웠던 사람들이 서로 만나서 새로운 혁명 일으키고. 동학과 서학이 만나서 인간 존중 세상, 남녀 차별이 없는 세상, 노동자들을 대하는 세상, 탄압받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는 세상. 이 일을 해오는 우리 역사, 박수받아야 되지 않아요? (박수)

 

제가 천주교 신부로 60년을 살았지만, 교회로부터 제재를 받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못마땅한 건 있더라고, 그건 제도를 지키는데 세금도 내야 되고 우선 행정적인 것 그런 게 있는가 봐. 하지만 '너 하지 마' 그러진 않더라고.

보안대에 끌려가서도 제가 뺨 한 대 안 맞아 봤지. 여태까지 수없이 끌려갔어도 귀싸대기 한 번 안 맞아봤네요. 그런데 세 명이 교대로 와서 지키면서 잠을 못 자게 해요. 잠을 이길 수가 있어요?

 

저는 천주교 신부가 되기를 잘했다고 부모님께 감사를 드리는데. 1974년도 5월 26일 원주에서 기도회가 있었는데 원주 지학순 주교님이 박정희 욕을 했어요. 유신독재 안 된다. 박정희가 뭣도 모르고 천주교 주교님을 구속했어요. 그랬더니 전국의 신부 그중에 내가 들고일어났어요. 김수환 추기경이 청와대 가더니 데리고 나오더라고. 그때 유신독재 반대 성명서를 써냈어. 그래서 징역 15년 받았어. 전국의 신부님들이 '지학순 주교 석방하라'고 들고일어났어. 그래서 만들어진 게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그게 조직된 것이 1974년 9월 26일이에요. 난 그걸 잊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 사제단이 지금까지 민주화운동에 있어서 그래도 제 길을 걸어왔고 이 사회에도 영향을 크게 주었지 않습니까? 저도 그 한가운데서 자랐고 지금 이 나이까지 살았습니다. 지금도 천주교 신부보다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라는 게 더 자랑스럽습니다.

 

한국 전쟁 끝나고 바로 만들어진 이 상호방위조약이 미국 편에 들어서 효순이 미선이 장갑차 압사 사건, 범죄잖아요? 한국 중학생 여학생 어린애 둘을 죽였는데 한국 정부가 아무것도 못 하는 거야. 한국 법 아래에서 재판받게 해라. (2002년도에는 살인 미군 회개 촉구를 위한 생명 평화 단식기도회를 열어 억울하게 희생당한 미선이 효순이의 넋을 기리고, 불평등한 소파 개정 운동에 적극 참여했습니다.-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소개 글 중)

 

미 공군기지가 자꾸 확산이 되는데 서쪽으로는 갯벌, 동쪽으로는 하제. 이 하제마을 뺏으려고 그 옆에 탄약고 지어서 4km 안에는 '사람이 살 수 없다.' 그런데 팽나무가 있어. 그게 자연유산이에요. 국보여. 국보를 어떻게 손대냐고? 우리는 어림도 없다 이거야. 고려 말부터 살아온 이 팽나무가 군사기지 안에 들어가면 되겠냐? 그러면 우리가 보호를 어떻게 해야 되냐? 한국 정부는 그편이야. 미군 비위 맞추면서. 그러니 우리가 들고일어서야죠. 그런데 팽나무 여기서 한 시간 안 걸리는데 원평 분들이 아나? 군산 옥봉, 저는 연고도 없는 데입니다. 미 공군기지 때문에 그 동네로 기어들어간 거예요. (2003년에는 새만금 갯벌과 생명평화를 염원하는 삼보일배의 65일간의 기나긴 여정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동참했으며, 2004년에는 사제단 30주년을 맞아 500여 명의 사제, 수도자, 평신도와 금강산에서 통일기원 미사를 봉헌했으며, 국가보안법 완전 폐지를 위해 참회하는 마음으로 14일간 단식기도와 미사를 봉헌하기도 했습니다.-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소개 글 중)

 

기억납니까?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그게 어떻게 된 줄 알아요? 이부영 국회의원이 교도소에 갇혀 있었어요. 그런데 박종철이 안가에 끌려가서 조사 과정에서 물고문으로 죽었어요. 근데 보안대에서 뭐라고 말하냐면 아이고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했잖아요. 그러고선 공표되니까 책임을 물어야 할 거 아니야. 그래서 경찰 몇 명을 영등포 구치소에 넣었는데 이부영 의원이 이 사실을 알고서 정의구현사제단을 통해 명동성당에서 (고문 조작 은폐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발표해 버렸어요.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은 조작되었다」는 제하의 성명서 발표는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되었습니다.-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소개 중)

 

이곳에서 우리가 우리만 보지 말고 눈을 넓혀서 세상을 보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입니다. 고맙습니다.

 

CKD04251_ 원평집강소 뒤란의 인문학.JPG

 

일곱째별-프로필이미지_202302.jpg
글과 사진 녹취 정리 : 일곱째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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