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과 일반
기상氣象에서는 추상적 개별적 자기의식에 반발하여 그 의식이 실물화됨 — 존재와 자연으로 된 일반성 — 이 눈에 띈다.
_『데모크리트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2부 5장

에피쿠로스
마르크스의 졸업 논문은 그리스어 원전을 읽고서 썼는데, 난해하다. 위 인용문도 그렇다. ‘기상’이 뭔가? 날씨를 말하는 게 아니다. 그리스어 메테오라meteora, 즉 ‘천체나 대기 현상’을 가리킨다.
요컨대, 개별 원자들이 모여서 눈에 보이는 자연 현상이 된다, 추상적이고 개별적인 것은 구체적이고 일반적인 것으로 바뀐다 등등. 왜 그의 이런 생각이 중요한가? 나중에『자본』에서 전개되는 가치론의 방법론적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그는 졸업 논문에서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비교한다. 둘 다 원자론자인데 차이가 있다.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들은 개체성이 없다 하고, 에피쿠로스는 원자들은 개체성이 있다고 한다. 마르크스는 에피쿠로스의 주장을 탐구해 나간다. 왜 마르크스는 데모크리토스가 아닌 에피쿠로스의 손을 들어 주었을까.
사회와 경제를 보자. 사람들을 똑같은 원자처럼 취급할 수 있는가? 없다. 경제 현상을 물리 방정식처럼 다루려고 하면 곤란하다. 이것이 포스트모던 경제학의 화두다. 마르크스는 이걸 20대에 이미 알았다. 개인의 자유와 사회 법칙 사이의 긴장 관계를 통계가 아닌 철학으로 풀어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비판자의 길
우리는 “여기에 진리가 있으니 무릎을 꿇어라” 하는 식으로, 교조적으로 세상에 새로운 원리를 들고 나서지 않는다.
_ 「아르놀트 루게에게 보낸 편지」

아르놀트 루게
마르크스는『라인신문』에서 일하다가 탄압을 받았다. 파리로 망명했다. 거기서 루게라는 사람이 창간한 잡지『독불연보』(도판 51쪽)의 편집자가 되었다. 위 인용문은 루게에게 보낸 편지에 나온다.
마르크스의 입장은 명확하다. “여기 진리가 있으니 무릎 꿇어라!”는 식으로 거만하게 새로운 교리를 들고 나서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럼 어쩌겠다는 것인가? 현존하는 국가를 완전히 무시하고 새로운 개념의 국가를 제시하는 형태의 투쟁과는 거리를 두겠다는 말이다. 즉 지금의 국가도 이성적인 면이 있음을 인식하고 현실의 정치 문제 자체를 철학의 탐구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잡지의 모토가 “이 시대의 투쟁과 바람에 관한 자기 이해”였다.
학계에서는 이런 태도를 별로 안 좋아한다. 순수 학문의 길에서 벗어났다고 깎아내린다. 상아탑에서 초연히 연구하는 게 학자의 본분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렇지만 마르크스는 현실과 동떨어진 관념적 진리를 제시하는 안온한 길로 가지 않고, 현실을 철저히 비판하면서 시대를 일깨우는 길을 찾고자 했다. 결국 그는 현실을 떠받치던 기존 학설에 대한 ‘비판’으로 세상을 바꾸는 데 기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