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옵건대, 이주
경주 양남면 나아리 월성원전인접지역이주대책위원회 12주년 12일
2026년 9월 5일 토요일, 오전부터 네 시간여 자동차로 고속도로를 달리니 저만치 한옥 지붕 진입문이 보였다. 오후 한 시 넘어 경주에 들어서자 아담한 배롱나무 가로수가 반겨주었다. 빗방울이 내리는 듯하더니 동쪽으로 갈수록 날이 맑았다. 왼쪽으로 감은사지 동서 삼층석탑을 지나 문무대왕릉까지 경주는 천년고도千年古都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해변 따라가는 길이 통제되어 오른쪽 봉길터널을 통과하면 평온한 바다 풍경은 사라지고 무시무시한 핵발전소가 보인다.
핵발전소에는 방사성 물질 누출 위험과 피폭으로 인한 생명이나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 때문에 주민을 보호하는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이 있다. 긴급보호조치를 준비하는 구역이 발전소에서 반경 20~30km. 방사능 누출 초기 예방 조치를 하는 구역이 3~5km. 그런데 월성핵발전소는 불과 1킬로미터 반경에 사람이 살고 있다. 그들은 갑상샘암에 걸려도 집이 팔리지 않아 이사하지 못한 채 12년째 이주를 요청하고 있다. 그곳 양남면 나아리 마을 천막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지난해인 2025년 한수원의 고소로 월성원자력홍보관 앞 초록색 천막 철거 후 8월 3일 마을 안에 회색 천막을 치던 날 그곳에 갔었다. 그때도 이날처럼 서울에서 사람들이 내려와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 열 배는 넘는 사람들이 빼곡했다. 이날은 월성원전인접지역이주대책위원회가 2014년 8월 25일부터 해 온 천막농성 12주년하고도 12일이 되는 날이자 천막농성과 월요 상여시위를 마무리하는 날이었다. 그럼에도 행사 이름은 변함없이 '바라옵건대, 이주'
우리의 전사 황분희 부위원장님은 천막 안에서 단호박 부침을 부치고 계셨다. 바깥 임시 천막에서도 울산 연대에서 준비한 떡을 나뭇잎에 싸서 먹을 수 있었고 차도 마실 수 있었다. 멀리서 오는 손님들 허기지지 않게 준비가 만반이었다. 서울, 부산, 울산, 밀양, 삼척 등 전국에서 반가운 얼굴들이 속속 모여들어 훌쩍 백여 명이 되었다. 모두 표정이 밝았다.
이주대책위원회 72가구 중 남은 다섯. 각 집의 대표 네 분이 맨 앞자리에 앉으셨다. 왼쪽부터 김해준 전前 위원장님, 월성원자력홍보관 앞 농성 천막 철거 후 자택 마당에 설치하게 해 준 성혜중 님, 부위원장님과 함께 늘 모든 일에 앞장섰던 김진선 총무님, 그리고 회장이 있을 때나 공석일 때나 한결같이 위원회의 중심인 황분희 부위원장님. 그런데 한 자리가 비어있었다. 그간 젊다는 이유로 여러 일을 도맡았던 신용화 사무국장은 모친 병환으로 병원에 있었다. 오십 대 용화 씨를 제외하면 평균 연령 80세. 이분들의 연세가 농성과 시위를 중단하는 가장 큰 이유였다.
맨 먼저 김진선 총무님이 인사 말씀하셨다.
"반갑습니다. 저 먼길에서 예까지, 무색무취라 핵 방사능이 이렇게 많은데 눈에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나지 않는 이런 자리에 좋다고 멀리 멀리에서 와주시니까 대단히 감사합니다. 우리가 오늘로써 1부를 마치고 앞으로 2부가 시작되는 거 아닙니까? 더 많이 후원해 주시고 영원히 건강을 유지하시면서 함께 가도록 합시다."
12주년을 맞아 이주대책위원회 어르신들께 기억 배지를 달아드리고 꽃을 드렸다. 그리고 그동안 이주대책위와 함께해 온 이상홍 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에게도 꽃이 전달되었다. 어르신들과 연대자 발언이 한 분씩 있었고, 사이사이에 경주 피터의 공연이 있었다.

월성원전인접지역이주대책위원회원들과 이상홍 경주환경연합 사무국장(왼쪽)
먼저 문정현 신부님의 음성이 들렸다. 멀리 군산에서 영상을 보내주셨는데 상영할 기기가 없어 소리만 틀었다.
"나아리 주민들 안녕하세요? 거기에 한 번 가본 일이 생각이 납니다. 아침 일찍 주민들이 나와서 상여를 메고 집회를 하는 거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핵발전소 하면 일본 후쿠시마 생각이 납니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남 일이 아니죠. 거기서도 일어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우리 주민들이 그 위험을 벗어나기 위해 12년 동안 활동하신 것 보통 일이 아닙니다. 큰일 하셨습니다. 핵발전소 문을 닫지 않는 한 위험은 존재하는데 언제까지나 싸움만 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어요. 얼마나 지쳤으면 그 상여 행진을 중단하시겠습니까? 십분 이해가 갑니다. 마음이 아픕니다. 참 마음으로는 거기에 가 있지만, 거리상 가지 못한 것은 너무 죄송합니다. 여러분 힘내십시오. 그 상여 행진은 중단하더라도 그 싸움만은 그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수고하실 것 같습니다. 수고하십시오. 그리고 고맙습니다."
첫 번째 연대사는 안재훈 환경운동연합 사무총장이 했다.
"오늘 오면서 날이 너무 좋아서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그리고 여기 도착하니까 이주대책위 우리 주민분들 표정이 지친 표정이 아니라 너무 밝으셔서 오히려 걱정했던 게 싹 사라지고 앞으로 어떻게 잘 싸워야겠다는 생각이 막 들었습니다. 12년이라는 시간, 참 쉬운 시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환경운동연합에서 12년을 탈핵운동을 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저는 그래도 직업이니까 이렇게 하고 있잖아요. 근데 이 월성원전 앞에 나아리 주민들이 12년을 이렇게 한결같이 싸웠다는 건 정말 우리 탈핵운동사, 환경운동사에 정말 기록으로 남아야 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박수 한번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동안 정말 12년을 그냥 하신 게 아닙니다. 농성도 하시고 상여시위도 하시고 서울로, 국회로, 청와대로 또 법원도 참 많이 드나드셨습니다. 또 어떻게 보면 대통령까지 이곳을 찾아오게 만들었던 우리 역사가 있지 않습니까?
또 어르신들은 탈핵운동을 하는 데 있어서의 어떻게 보면 학습의 장이기도 했습니다. 저희가 왜 탈핵운동을 해야 되는지 항상 이 월성원전 앞에 이주대책위 농성장을 찾게 되면 그 이유를 확인하고 어떤 일들을 해야 될지 마음을 다잡았던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 사회적으로도 이 원자력발전소가 어떠한 문제가 있는지에 대해서 가장 피부에 닿게 생생하게 알리는 일들을 해오셨습니다.
얻어낸 것도 많습니다. 여러분 오시면서 월성 원전 보셨죠? 월성 1호기 폐쇄는 나아리 이주대책위 주민들이 없었다면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실 이 상여시위가 끝나는 걸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상여시위는 끝나지만 우리는 앞으로 이 싸움을 끝내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을 거쳐서 이재명 대통령이 됐지만, 핵발전소를 멈추지 않고 더 확대하는 일들을 벌여나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정부가 핵발전소를 어떻게 더 확대할까 전기를 어떻게 잘 공급할까가 아니라, 지난 40년 이상 발전소를 가동하면서 이렇게 피해를 준 주민들에게 어떻게 대안을 마련하고 해결할지부터 생각해야 합니다. 대책도 없이 쌓여있는 핵폐기물을 어떻게 안전하게, 정말 사고 나지 않게 처리할지부터 주민들한테 이야기해야 될 것입니다.
환경운동연합은 주민분들께 약속드리겠습니다. 이 대책이 법으로 제대로 마련되어서 어르신들이 정말 이주를 할 수 있도록, 그런 제도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끝까지 함께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탈핵 운동 진영과 시민사회가 전국의 국민이 핵발전소를 멈추고 안전한 사회로 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열심히 투쟁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탈핵을 이루는 날 이렇게 함께 또 성대하게 파티를 좀 했으면 합니다. 고맙습니다."
울산 탈핵운동 시민연대에서 연대 발언 후 12년 전인 2014년 8월 24일 이주대책위가 언론에 보낸 성명서를 성혜중 님이 대신 낭독했다.
"본 대책위원회 위원들은 월성 원자력발전소에 가장 인접하여 살고 있는 주민들로 농업 어업 상업에 종사하는 다양한 직종의 직업을 갖고 있는 아주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보통 사람들인 저희들이 왜 이주대책이라는 단체를 결성하여 이 자리에 서게 되었는지 위원장인 저도 슬프기 짝이 없습니다. 가까운 나라 일본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사고 이후 월성 원자력발전소가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실감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는 월성 1호기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30년 수명이 다 된 노후 원전을 계속 운전이라는 명분 하에 10년이라는 수명을 연장시키려 하고 있습니다. 수명이 다 되면 폐기 처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선 1호기의 가동을 근본적으로 반대하고, 그 배경에는 월성원자력발전소의 신뢰가 땅에 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발전소의 높은 양반부터 말단 직원까지 뇌물 스캔들의 중심에 있으며 그 뇌물 속에는 우리의 재산과 생명을 앗아가는 안전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또 짝퉁 부품이 판을 치고 있는 이런 현실에 그 어떤 점검과 검증을 수행하더라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특히 중수로에서 내뿜는 삼중수소는 경주 시내보다 30배나 높게 나왔다는 조사 내용은 우리를 초조하고 불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30년 동안 배출된 삼중수소의 피해는 우리 주민이 보고 있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피해 여부에 대한 조사나 실사를 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 주민을 너무나 무시하고 멸시하는 태도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습니다. 또한 상권은 몰락되어 있고 점점 더 피폐화되어가고 있습니다. 원자력 돔이 보이는 지역의 토지나 건물은 매매도 안 되며 우리의 자력으로는 아무리 살아보려고 노력을 해도 살아갈 수 없는 실정입니다. 우리 이주대책위 회원들은 안전한 곳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월성원자력 가장 인접하여 살고 있는 회원들은 이주를 희망하고 있으니 강력히 이주를 요청합니다. 감사합니다."
모두는 외쳤다.
"이주만이 살길이다!"
"이주대책 마련하라!"
두 번째 피터의 노래는 나아리를 이야기했다.
'발길 따라서 걷다가 바닷가 마을 지날 때 착한 마음씨의 사람들과 밤새워 얘기하리라'
두 번째 연대자는 장영식 사진가였다.
"제가 나아리 오기 전에 그 당시에 고리 발전소 넘어가면 신고리 핵발전소가 있어요. 그때 신고리 핵발전소 5호기 6호기 짓는다고 골매 마을 사람들이 집단 이주를 하기 위해서 마지막 날 천도재를 드리던 날이었어요. 골매마을 사람들은 핵발전소 때문에 고리에서 쫓겨나고 골매 마을에서 쫓겨나서 물론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은 아니지만, 집단 이주를 하게 됩니다. 아마 핵발전소 때문에 두 번이나 고향을 떠나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담아냈습니다. 거기에서 이제 나아리로 왔는데 오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어요. 골매마을 사람들이 이제는 고향을 떠난다고 조상님들한테 신고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마음이 무겁고, 나아리 농성장을 봤더니만 농성장도 세월의 나이 때문에 많이 낡았고 깃발들도 많이 낡았었습니다. 농성장 안에 아주 문재인 씨가 대통령 후보 때 여기 방문을 해서 어르신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던 사진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양반이 대통령이 되고 나서 얼마나 희망에 부풀었겠어요. 이제 우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구나. 밀양에서는 송전탑 찬성했던 사람들이 비아냥거리면서 '이제 문재인이 대통령 됐으니 송전탑 뽑겠지, 뽑겠네.' 막 그랬답니다. 세상이 완전히 바뀔 줄 알았어요. 근데 세상이 참 바뀌는 게 힘들더라고요.
그때 황분희 어머니를 만났는데 낡은 깃발 두 개를 들고 나아리 바닷가로 갔습니다. 제가 사진을 찍었는데 그때 마침 해무가 가득 끼어서 핵발전소를 배경으로 찍고 싶었는데 핵발전소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사진 속에서 핵발전소는 은폐되어 있구나, 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황분희 어머니 손잡고 가서 사진을 찍을 때 딱 상상했던 그림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핵발전소는 숨어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 황분희 어머니가 깃발 두 개를 들고 찍은 사진 뒤에는 은폐된 진실이 담겨 있는 거예요. 그리고 아까 연대자들이 말씀하셨지만 여기 이사 오신 배경에는 유기농 농사지으면서 건강하게 먹이고 싶어서 농사지었고 먹이고 했는데, 당신이 갑상선암 수술을 했지만, 그 갑상선암이 어디로부터 비롯되었는지 몰랐던 거예요.
후쿠시마 핵사고 이후에 우리가 이때까지 속았구나. 핵발전소 지으면, 그때는 핵발전이라고 안 했어요. 전기공장이라고 했지. 고리에서는 전기공장 지으면 지역도 발전하고 국가도 발전하고 잘 산다고 했습니다. 여기도 마찬가지겠죠. 여기 핵발전소 지을 때 전기공장 지으면 다 잘살게 될 거라는 것만 믿고 그렇게 반대도 하지 않고 살았다는 거죠. 그래서 핵발전소는 은폐의 역사고 거짓말의 역사고 사기꾼들의 역사입니다.
그렇게 살아오셨던 우리 이주대책위 어르신들이 이주대책위 활동은 계속하시면서 이 농성장을 접기로 했습니다. 세월에 약이 없어요. 늙어가고 기력도 빠지고. 우리 밀양 어르신들도 동네 할머니도 오늘 와서 손을 잡는데 아이고 참 세월이 그렇게 흘러가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밀양 대책위 어르신들이나 월성이주대책위 어르신들이 바위처럼 꿈쩍하지 않고 핵발전소를 반대하는 그 마음으로 그 자리에 계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와서 바위처럼 온전하고 계시는 밀양 어르신들, 청도 어르신들 그리고 우리 나아리 어르신들에게 깊은 존경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어 울산 북구의 이은정이 앞으로 나왔다.
"2019년 7월부터 2024년 7월까지 매주 월요일마다 와서 울산 시민들한테 많이 알리려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왜냐면 울산 북구는 월성원전과 7킬로미터 인접이고요. 제가 사는 곳도 17킬로미터 이내입니다. 그래서 이게 남의 일이 아니었어요. 그리고 심지어 우리 울산 북구에서도 그 삼중수소가 주민들의 몸에도 나온 적이 있었어요. 그 이야기를 2019년에 와서야 처음 들었습니다."
신용화와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은 은정은 매주 월요일 상여시위에 오면 김진선 총무님이 '울산 아가씨'라고 반갑게 맞아주셨다고 했다. 올 때마다 단단함과 착함과 진솔함을 뵈면서 어르신처럼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는 은정은 이주하고 그때 같이 춤추는 그날까지 어르신들과 함께 연대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탈핵운동을 하면서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출산도 한 일을 어르신들로부터 칭찬받았다는 강언주 연대자도 있었다.
"아이는 하루하루 쑥쑥 자라고 변하는데 참 한국 사회는 변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변하지 않아서 좋은 것도 있고 변해서 좋은 것들도 있겠지만 그 가운데서 언제나 변함없이 있어주신 분들 덕분에 우리는 또 변화하는 어떤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김해준 님의 5년 전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현재의 말씀을 직접 들었다.
"한숨밖에 안 나옵니다. 언제 될런가, 오늘은 될런가, 내일이 될런가? 그렇게 속아 속아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한수원 뭐 본부장이나 뭐 이런 분들은 소주 한 잔 사가지고 와서 달래고 가고, 달래고 가고, 또 다른 데로 가버리고. 욕이 나옵니다. 제가 이제 83살입니다. 어떻게 내가 처리를 해놓고 죽어야 되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처리될 것 같지도 않고 여러분들이 좀 많이 도와주십시오. 우리는 힘이 그만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도와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시 낭송 후 울산 언양의 천도 스님이 박력 넘치게 '내생보다 이주가 더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황분희 언니를 보면서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는 걸 더 느끼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모인 이들을 합심 기도로 인도하셨다.
"월성 나아리 주민들이 근심과 걱정에서 벗어나, 외로움과 걱정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안전하고 행복하시기를, 원전을 반대하는 분들이 위험과 불안과 걱정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안전하고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마지막으로 황분희 부위원장님이 발언하셨다.
"지금은 제가 가슴이 너무 벅차요. 12년이 끝났고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았지만, 여러분이 계셨기에 나름 힘차게 이주대책위를 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내려놓고 다시 한번 비상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상여시위를 끝내기로 했습니다.
정말 12년 동안 많은 분들이 저희를 도와주셨어요. 받은 것이 너무 많아서 그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이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12년 했지만 시작했으니까 끝을 볼 겁니다. 제가 걸어 다닐 수 있고 우리 회원들이 얘기할 수 있다면 어디든 갈 겁니다. 제가 필요하다면, 월성에 사는 모습을 알려야 한다면 어디든 가서 얘기하겠습니다.
와서 보시면 이 동네는 죽은 도시라고 합니다. 이 동네는 특산물은 없지만, 영덕은 특산물이 있지 않습니까? ……이주도 해야겠지만, 핵발전소 더 못 짓게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밀양에서 와주신 분들 감사합니다.
일단 상여 행진은 끝났지만, 국회나 청와대나 어디로든 앞으로 더 연대합시다. 여러분들과 같이해야 합니다. 같이 해 주실 거죠? 감사합니다."


황분희 부위원장님
동병상련의 마음일까? 밀양 어르신들이 주머니 탈탈 털어 후원금을 주고 가셨다.
"이주대책위 고맙습니다!"

피터의 마지막 공연은 함께 부를 노래 <아침 이슬>이었다. 우리는 방사능 위험 없는 안전한 곳으로 이사할 수 있는 평범한 생활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함께 노래했다. 노래를 부르는 동안 의자를 싹 치운 모두는 울산에서 온 풍물패를 따라 행진을 했다.

월성원전인접지역이주대책위원회는 12년 동안 매주 월요일 아침 8시면 모여 한수원 앞으로 상여시위를 했다. 출근하는 핵발전소 직원들은 가뜩이나 스트레스 많은 월요일 아침에 주민들이 길을 막고 느릿느릿 상여를 끌고 시위하는 동안 경적을 울리지 않고 행렬 뒤에서 기다렸다. 그들은 토요일에 출근하지 않는다. 이주대책위 어르신들은 아무도 없는 한수원 앞 대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마을을 돌고 싶다고 하셨다. 그렇게 12년의 상여시위는 마지막으로 상여 없이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끝났다. 이제 월성원전인접지역이주대책위원회는 해체는 아니라도 공식적인 집회를 마무리했다. 12년이면 육십 대에서 칠십 거쳐 팔십 세가 된 분들이 할 만큼 하셨다. 그분들은 핵발전소로 인한 인근 주민의 피해를 전국에 알린 상징이었다. 그분들이 버티셨기에 전국의 탈핵 공동체가 힘을 얻었다.
2017년 8월, 나아리 월성원자력홍보관 앞 천막에서 황분희 부위원장님을 만났을 때는 고희였고 옆에 있던 손자는 일곱 살 미취학 아동이었다. 그 손자는 지금 열일곱 살 고등학생이 되었다. 함께 살던 큰딸네는 울산으로 나갔고, 황분희 부위원장님은 31번 국도에 토지가 포함돼 보상금을 받고 새집을 지으셨다. 깔끔하고 예쁜 새집은 이주만 시켜준다면 내일이라도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다고 하신다. 김진선 총무님은 경주에서 농사를 지으신다. 이주대책위에 천막 부지를 내어준 성혜중 님은 식당 건물이 팔리지 않고 있다. 가장 젊은 신용화 사무국장은 인근에서 사무직 일을 한다.
그동안 이주대책위 세 분과 경주 울산 등지에서 온 연대자들이 매주 월요일 오전 8시면 모여서 하던 상여시위는 이제 끝났다. 황분희 부위원장님은 그 시위를 위해 매달 경주경찰서까지 왕복 다섯 시간, 반나절 걸려 하고 오시던 집회 신고를 이젠 하지 않아도 된다. 항상 맨 앞에서 상여를 끌던 김진선 총무님이 이제 무얼 하실까?
두 분이 청와대 앞에서 일주일 꼬박 서 계시던 2018년 11월의 1인 시위를 기억한다. 그때 매일 뵈러 갔었으니까. 2019년 이주대책위 5주년에도, 2024년 10주년 행사 때도 비가 왔었다. 그런데 12주년에는 화창했다. 덕분에 나아리 주민들에게 월성원전인접지역이주대책위원회는 다섯 가구가 남은 게 아니라 전국에서 연대하는 수백 명의 친구가 있음을 흥겹게 보여주었다.

행진하고 돌아오니 천막 앞에는 식물식평화세상에서 준비한 비빔밥과 미역냉국이 차려졌다. 완전 채식으로 맛있고 든든했다. 모두 즐거운 표정으로 밥을 먹고 사진을 찍고 돌아갔다. 유일하게 남은 나만 부위원장님댁에 머물렀다.
다음 날인 일요일 아침, 부위원장님 내외와 아침밥을 먹었다. 작은 공기에 담긴 오분도미 밥에 검은콩을 간 따끈한 물 한 컵과 가지 부침과 깻잎나물과 튀긴 생선과 김치 등이 있었다. 8년 전 맨 처음 그 집 음식을 먹고는 입술이 퉁퉁 부풀어 올랐었는데 이제는 별일 없다. 그분들이 그곳에서 키운 채소와 쌀과 과일을 매일 드시는 것처럼.
식사 후 김진선 총무님이 오셨다. 단정한 옷을 입고 총무님 얼굴에 분칠해주시는 황분희 부위원장님 모습은 가족보다 더 친한 동지였다. 분홍색 집 허물고 지은 하얀 집 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2년 반 전에 부위원장님이 나중에 와서 사진 찍어달라고 했던 그 약속, 장수 사진 촬영이었다. 사진을 찍는 동안 번개 말고 새로 들어온 강아지 구름이가 발치에 왔다 갔다 했다. 9년 전 농성천막에서 보았던 일곱 살 아이는 지금 열일곱 살이 되었는데, 핵발전소 앞에서 손자 대신 어린 생명이 또 살아간다.
촬영 후 마지막 인터뷰를 했다.
김진선 총무님은 "12년 동안 해도 허무하죠. 결과 없이 투쟁의 반 이상 접어서 너무 허무하다. 집회는 못 해도 합심해서, 끝이 아니고 새로운 방법을 창출하겠다. 어제 참 많이 와줘서 고맙고 보답하고 싶다. 마음으로라도 이 사회에 봉사해야 하지 않나 싶다."라고 하셨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항상 맨 앞에서 상여를 끄신 것이라고 하셨다. 2020년 2월 22일 자 한겨레신문에 내가 찍은 그 사진이 남아있다.
황분희 부위원장님은 "후회는 안 한다. 내가 큰일 했다고 생각은 않고 잘했다. 12년 동안 전국에 사람들 만나고 다니며. 앞으로도 신규핵발전소는 짓지 않도록 우리가 필요한 곳은 어디든 가겠다."라고 하셨다.
부위원장님은 (월요 상여시위가 없어서) 사람들을 보지 않으면 멀어질 테니 앞으로 공식적인 모임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끝으로 하신 말씀은 다음과 같다.
"정부나 한수원은 주민이 방사능 없는 곳에서 살 수 있도록 해줬으면 좋겠다. 기준치 따지지 말고. 여기는 아프면 죽어야 된다. 전국에서 전기를 다 쓰고 있는데 어떤 희생을 치르고 있는지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인터뷰 후 부위원장님께 핵발전소 앞에 함께 가자고 청했다. 전날 행사로 피곤하실 부위원장님은 내 청에 응하셨다. 자동차에 올라 말씀드렸다.
"부위원장님, 저는 탈핵 운동을 떠나서 부위원장님을 알게 돼서 감사해요."
그렇게 우리는 핵발전소 앞으로 갔다. 거기서 내 첫 책 <일곱째별의 탈핵 순례> 표지처럼 바다 앞에 선 부위원장님을 맘껏 사진 찍었다. 전날 낚시하던 사람들은 없고 파도는 그 어느 때보다 하얗고 드셌다. 그러나 40년을 그곳에서 살아내신 부위원장님의 의연함을 꺾을 순 없었다.

월성핵발전소 앞에는 사람이 산다(위 - 2026년 9월 6일, 아래 - 2020년 6월 30일)
바다 물방울이 입술에 닿아 짭짤한 맛을 내도록 사진을 찍은 우리는 매주 월요일 아침 상여시위 길을 지나 처음 만났던 홍보관 앞 천막이 있던 자리로 갔다. 그곳은 화단과 울타리로 막혀 있었다. 핵에너지는 안전하고 깨끗하다는 거짓을 철옹성처럼 두른 채. 거기서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홍보관 앞으로 올라가자 갑자기 생각이 떠올랐다. 벌써 자동차에 앉으신 부위원장님께 마지막으로 청을 드렸다. 홍보관 바로 앞 천막에서 찢어진 현수막을 들고 계셨을 때처럼 양쪽으로 팔을 벌리고 서 계셔 달라고. 그 사진은 2017년 12월 최초로 한겨레신문 '한 장의 다큐'에 실었던, 그리고 같은 해 포토청 단체사진전 '흰'에 전시했던 사진이었다. 부위원장님은 피곤하신 중에도 내 모든 요청을 들어주셨다. 사진을 찍으면서 자연스레 알았다. 그 사진이 내 10년 르포르타주 작업의 마지막 작품이 되리라는 것을. 천막은 사라졌어도 내 첫 사진의 주인공은 마지막까지 그 자리에 굳건히 계셨다. 고희에서 여든 살을 바라보시며. 하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고 냄새도 나지 않는 핵 방사능에 맞서 강인하고 지혜롭게. 바라옵건대, 이주! 탈핵!


당신은 방사능 피폭 위험 지역에 들어오셨습니다(위 - 2026년 9월 6일, 아래 - 2017년 8월 23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