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희망이 있나니 찍힐지라도 다시 움이 나서 연한 가지가 끊이지 아니하며 그 뿌리가 땅에서 늙고 줄기가 흙에서 죽을지라도 물 기운에 움이 돋고 가지가 뻗어서 새로 심은 것과 같거니와 - 욥기 14:7-9

Sue Cho, "Miracle flowers in the desert 1", May 2026, Digital Painting
Death Valley는 세계에서 가장 뜨겁고 건조한 지역 중 하나이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10년에 한 번쯤 아주 특별한 자연의 기적이 일어나기도 한다. 사막의 야생화 씨앗들은 오랫동안 메마른 땅속에서 잠들어 있다가, 가을과 겨울에 충분한 비가 적절한 간격으로 내리고 봄 기온이 너무 높지 않으며 강한 건조 바람이 적을 때 비로소 깨어난다. 이렇게 여러 조건이 맞아떨어지면 씨앗들은 일제히 꽃을 피우고, 황량하던 사막은 순식간에 거대한 꽃밭으로 변한다. 이것이 바로 '슈퍼 블룸(Super Bloom)'이다. 마치 죽음의 계곡에 생명이 다시 찾아온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2주 정도 머물다 사라진다. 꽃들은 씨앗을 남기고 생을 마치며, 그 씨앗들은 다시 땅속에서 수년 동안 다음 기회를 기다린다.
2026년 봄, 데스밸리에 슈퍼 블룸이 찾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침 남편의 일이 LA에 예정되어 있어 그 길에 데스밸리까지 들를 생각이었지만, 예상치 못하게 일정이 취소되었다. 그래도 평생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자연의 선물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3월, 사막이 꽃으로 물든다는 그 경이로운 풍경을 보기 위해 Death Valley로 향했다.
라스베가스에서 비행기가 하강할 때 창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사막이 보였다. 그 위에는 마치 우리 몸속 핏줄처럼 물이 흘렀던 흔적들이 새겨져 있었다. '아, 물이 곧 생명이구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생명이라곤 없어 보이던 그 땅은, 이후 계곡을 걸으며 다르게 보였다. 물길의 흔적을 따라 보이지 않던 수많은 생명이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Badwater Basin(배드워터 분지)

먼저 Visitor Center에 들러 추천받은 코스 중 가장 가까운 배드워터 분지 쪽으로 이동했다. 데스밸리를 설명하는 수식어는 "가장 뜨겁고(Hottest), 가장 건조하며(Driest), 가장 낮은(Lowest) 곳"이다. 배드워터 분지는 북미 대륙에서 가장 낮은 지점으로, 해수면보다 282피트(약 86m) 아래에 위치해 있다. 바다에서 수백 마일 떨어진 이곳이 해수면보다 낮다는 사실은 놀랍다.
여름에는 그늘에 앉아 있어도 하루에 약 2갤런의 수분을 잃을 수 있다고 한다. 사막의 정의는 연간 강수량이 10인치 미만이거나, 증발량이 강수량을 크게 초과하는 곳인데, 이곳은 무려 강수량보다 증발이 약 75배 많다고 한다. 그만큼 생존 조건이 극단적일 수밖에 없다. 나도 친구가 말해준 대로 물 4갤런을 준비하고 기름을 가득 채워 이곳에 왔다.

배드워터 분지에 서서 높은 절벽 위의 'Sea Level' 표지판을 올려다보고 있으면, 잠수함을 타고 바닷속 깊이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북미 대륙의 가장 낮은 곳에 서 있다는 것이 묘하다. 평소에는 바짝 마른 땅이 갈라져 육각형 모양의 소금 평원을 이루지만, 올해는 비가 많이 내려 물이 얕게 고여 있었다. 나는 신발을 벗고 맨발로 그 얕은 물 위를 걸으며 해가 지는 노을을 바라보았다.
Zabriskie Point(자브리스키 포인트)

숙소 근처의 자브리스키 포인트는 일출 명소로 알려져 있어, 새벽 일찍 일어나 해가 뜨기 전 이곳으로 향했다. 해돋이라고 하면 붉은 해가 떠오르는 장면만 떠올렸는데, 실제로 더 인상적인 것은 해가 모습을 드러내기 전부터 빛이 퍼지며 주변 풍경의 색이 서서히 달라지는 과정이었다. 계곡과 산등성이가 점차 붉은빛을 띠기 시작하고, 물결처럼 굽이치는 황토빛 지형의 윤곽이 한층 또렷하게 드러났다.

조금 더 가까이에서 캐년과 그곳에 핀 야생화를 보기 위해 자브리스키 포인트에서 내려와 Gower Gulch Trail을 따라 걸었다. 뒤에서 우리가 한국말을 하는 것을 듣고 반가운 마음에 말을 건네온 외국인과 한국인 아내가 있었다. 그들을 돌아보다가 나는 미끄러졌다. 그 외국인 남편은 길이 미끄럽다며 아내의 손을 잡고 다시 올라갔다. 조금 더 내려가니 야생화가 훨씬 많이 피어 있었는데, 그들이 이 풍경을 보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손을 잡고 걷는 그들의 모습이 마음에 남았다. 낯선 땅에서의 삶도 조금은 덜 외롭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hotos from Death Valley, Top: Desert five-spot, Mojave desertstar Middle: Purplemat, ?, ?, Phacelia Bottom: Desert gold, Gravel ghost, Pebble pincushion, Velvet turtleback
길가에는 노란 데저트 골드(Desert Gold)와 보라색 파셀리아(Phacelia)가 주로 보였는데 캐년 안으로 들어가 자세히 살펴보면 다양한 야생화들이 눈에 띈다. 걸음을 멈추고 하나하나 사진에 담았다. 보라색 꽃은 만지면 포이즌 아이비처럼 피부에 자극을 줄 수 있다는 경고문을 Visitor Center에서 보아서 만지지는 않았다.
사실 이곳에 오기 전, 야생화 사진들을 보면서 꼭 보고 싶은 꽃이 있었다. 들판을 가득 채운 슈퍼 블룸 사진도 아름다웠지만, 다섯 개의 붉은 반점이 있는 연분홍빛 꽃, 데저트 파이브 스팟(Desert Five-spot)이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캐년과 들판을 유심히 살펴보았지만 이곳에선 찾지 못했다.
Golden Canyon Trail- Red Cathedral(골든 캐년 트레일 – 붉은 성당)

Gower Gulch Trail에서 Golden Canyon Trail로도 연결되는데, 너무 땡볕이라 결국 다음 날로 나누어 걸었다. Red Cathedral(붉은 성당)로 가는 길은 갈림길마다 작은 돌로 만든 커다란 화살표가 있었지만, 한눈에 알아보기는 쉽지 않았다. 협곡이 점점 좁아지면서 작은 바위턱을 손으로 짚고 올라가는 스크램블링 구간이 나타난다.
남편은 내려가자고 했지만, 예전에 딸과 함께 모홍크 마운틴에서 Labyrinth Trail을 걸으며 바위 스크램블을 했던 경험이 떠올라 조심스럽게 올라가 보기로 했다. 바위 틈(crevice)으로 들어가 보니 두어 번만 더 오르면 될 것 같았다. 내가 먼저 올라가 확인해 보겠다고 하며 끝까지 올라갔는데, 알고 보니 우리는 길을 잘못 들어 다른 험한 구간으로 올라온 것이었다. 남편이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어 다시 이 길로 내려오려니 순간 겁이 났지만, 딸이 알려준 대로 몸을 낮추고 앉아 앞을 보며 바위턱을 잡고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혼자 올라가던 젊은이를 만났다. 길을 묻기에 작은 돌들로 바닥에 만든 화살표를 따라가되, 헷갈리면 오른쪽으로 가라고 알려주었다. 길이 쉽지 않다고 하기에 "나 같은 노인네도 헤매면서 다녀왔으니 너는 당연히 괜찮을 거야"라고 말했더니, 그는 씩 웃었다.
그래도 부모 마음에 이런 곳은 혼자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혹은 그룹으로 오는 편이 더 안전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남 걱정할 때인가" 싶어, 나 자신이 우습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도 길을 헤맨 덕분에 자연이 만든 걸작품 하나를 발견했다. 내가 'Kiss'라고 이름 붙인, 생각지 못한 선물이었다.
Mesquite Flat Sand Dunes(메스키트 플랫 모래언덕)

모래언덕은 여명이 밝아오고 햇빛이 비스듬히 비치기 시작하면서 빛과 그림자가 능선을 따라 드러날 때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원래는 새벽에 떠나야 했는데, 아침에 충분히 자고 출발한 탓에 10시쯤 도착했다. 이미 해는 높이 떠 있었고, 모래언덕을 다녀온 사람들이 돌아오는 시간이었다. 한 커플이 우리보다 조금 젊어 보였는데, 오른쪽 가장 높은 봉우리까지 다녀왔다고 했다. 거기까지 갈 생각은 없었는데, 그 순간 나의 목표가 정해졌다.
언덕을 오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가 종아리를 붙잡아 끄는 듯, 모래는 발을 좀처럼 놓아주지 않았다. 잠시 능선에 앉아서 숨을 고르는데 내가 온 발자국을 뒤돌아보다 문득 오르텅스 블루(Hortense Blue)의 사막이란 시가 떠올랐다.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질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 Hortense Blue, 「사막」, 류시화 옮김

남편은 두 번째 능선쯤에서 돌아가자고 했지만, 나는 눈앞에 보이는 정상까지 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결국 신발을 벗고 맨발로 혼자 끝까지 올라가 두 팔을 번쩍 들고 만세를 불렀다. 그때의 나의 악착같음을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꼭 끝까지 가지 않고 중도에 멈추는 것도 용기라고.
뜨거운 땡볕 아래의 모래 언덕은 겉으로는 바짝 말라 보였지만, 그 아래에서는 스펀지처럼 물을 머금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척박한 땅에도 생명은 살아간다. 나는 그곳에서 작은 붉은 개미들과 이름 모를 벌레들을 보았다.
이곳에서 자라는 메스키트 나무는 더욱 신기하다. 깊고 넓게 뻗은 뿌리로 물을 찾아가며, 동시에 모래를 붙잡아 사막의 지형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뿌리가 사막을 지탱하듯,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생명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살아갈 길을 찾아간다.
Stargazing(별보기)
트레일을 많이 걸어 피곤했지만, 저녁에는 숙소 옥상에 올라가 사막의 밤하늘을 한참 바라보았다. 별이 잘 보이는 곳까지 다시 나갈 기운은 없었다. 라운지 체어에 몸을 기대고 누워 있으니 고개를 아프게 치켜들지 않아도 되어 한결 편했다. 오리온자리와 북두칠성, 그리고 북극성 정도가 내가 아는 별자리의 전부였는데, 작은곰자리와 쌍둥이자리까지 눈에 들어오면서 나의 별자리 지도가 조금 더 넓어졌다.
누군가 말해주기를, 오늘처럼 보름달에 가까워 달빛이 밝은 밤에는 하늘 전체가 환해져 별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별을 가장 잘 보려면 달이 뜨기 전이나 달빛이 약한 시간에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좋다고 한다.
Artist's Drive (화가의 드라이브길)
차로 이 길을 운전하다가 Artist's Palette라는 곳에 잠시 내렸다. 이곳은 다양한 광물의 산화로 인해 독특한 색을 띠고 있다. 연분홍과 보라, 민트, 황토색 등이 산비탈을 따라 부분적으로 이어져 있었다. 자연이 만들어낸 색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누군가 파스텔 물감으로 칠해 놓은 것처럼 보였다.


여기 입구에서 Desert Five-spot을 발견하고는 뛸 듯이 기뻤다. 척박한 사막에서 그리 크지 않은 바위의 그늘에 의지한 채 그렇게 고운 꽃을 피워내고 있는 모습에 눈물이 났다. 그 꽃 한 송이를 본 것만으로도 이번 여행의 작은 미션은 이루어진 것 같았다.
오전 내내 사막을 걸으며 기운을 많이 쓴 탓에, 더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멈추었다. 굽이진 흙길은 오르내림이 많아 미끄러워 보였다. 대신 입구에 서서 그 아름다운 풍경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Harmony Borax Works를 둘러본 뒤 차를 타고 가다가, 사진에서 본 슈퍼 블룸의 장관이 눈앞에 펼쳐지자 도로변에 차를 멈추었다. 캐년을 걸을 때도 야생화를 보았지만, 이렇게 노란 데저트 골드가 지천으로 피어 있는 곳은 처음이었다. 어제도 이 길을 지나쳤는데… 뭐가 달라진 걸까 아마도 빛 때문인 것 같았다. 해가 지기 약 1시간 전쯤, 낮게 기운 햇빛이 들판을 비스듬히 비추면서 꽃과 산의 윤곽이 또렷하게 드러났다. 그 안에 들어가서 보면, 노란색과 보라색으로 보이던 야생화 밭 속에서 각기 다른 야생화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자갈과 메마른 땅 사이에서 솟아나는 그 모습 하나하나가 더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렇게 꽃이 많아서 슈퍼 블룸이 아니라, 그 하나하나가 모두 슈퍼 블룸인 것이다.
여기서 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선셋이 아름답다는 Dante's View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높은 곳에서는 해가 생각보다 일찍 진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석양에 물드는 눈앞의 시원하게 펼쳐진 풍경을 충분히 보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을 남겼다.

여행에서 돌아와서 생각하게 된다. 왜 나는 좀 더 편안한 여행을 하지 못할까? 시원한 숲속에서 여유롭게 쉬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보내는 여행도 있을 텐데 말이다. 사막의 땡볕 아래를 걷고, 모래언덕과 캐년을 오르내리며, 새벽 해돋이부터 밤하늘 별 보기까지. 집에 와서는 한동안 몸이 고생을 한다. 생각하면 스스로도 고개가 갸웃해진다.
그런데도 데스밸리는 기회가 된다면 다시 가고 싶다. 굳이 슈퍼 블룸이 아니어도 좋다. 메마른 사막 한가운데, 크지도 않은 작은 바위의 그늘에 기대어 조용히 피어 있던 데저트 파이브스팟(Desert Five-spot)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 작은 꽃은 내게 하나의 마음속 풍경(mental picture)이 되었다. 살아가면서 힘든 일이나 고통을 마주할 때마다 떠올릴 수 있는 풍경이다. 아무것도 자랄 수 없을 것 같은 환경에서도 자신의 때를 기다리며 피어나는 그 꽃처럼, 삶의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생명은 포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없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생명과 죽음, 고통과 인내, 그리고 부활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나의 사고의 언어로는 다 이해할 수 없지만, 이 불모의 땅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자연의 신비를 조용히 전해준다.

Sue Cho, "Where the valley blooms", May 2026, Digital Paint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