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성

샹탈 애커만의 <알마이에르가의 광기>

벨기에의 샹탈 애커만 감독은 25세에 만든 3시간 22분짜리 영화 <잔느 딜망>(원제는 주인공이 사는 주소 Jeanne Dielman, 23 quai du Commerce, 1080 Bruxelles이다.)으로 대표된다. 이 영화는 영국의 권위 있는 영화 전문지 <사이트 앤 사운드(Sight & Sound)>가 10년마다 발표하는 ‘역대 최고의 영화’에서 철옹성 같았던 기존의 오손 웰즈의 <시민 케인>과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을 대치고 1위를 기록했다. 그러니까 세계의 영화 평론가, 감독, 영화제 프로그래머 등 전문가들이 선정한 역대 최고의 영화란 뜻이다. 

 

그리고 그녀는 61세에 마지막 드라마 영화 <알마이에르가의 광기>(La Folie Almayer, 2011)를 만들었다. 그후 아우슈비츠 생존자인 그녀의 어머니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노 홈 무비>(No Home Movie, 2015)를 만들고 어머니의 죽음 직후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영화 <알마이에르가의 광기>는 조셉 콘래드(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 원작자이기도 함)의 원작을 경유하되, 그 목적지는 전혀 다른 곳을 향하는 기묘하고도 아름다운 비극이다. 이 영화를 보고 나면 서사적 줄거리보다도 습한 정글의 공기, 해소되지 않는 바그너의 선율, 그리고 누군가를 꿰뚫는 듯한 니나(알마이에르와 말레이시아 원주민 부인 사이에 태어난 혼혈 딸)의 시선이 잔상처럼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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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된 시간과 문명의 광기

 

영화는 시작부터 관객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다인(주인공 니나의 연인으로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반란군 출신)의 립싱크 공연과 갑작스러운 살인, 그리고 이어지는 니나의 모차르트 합창곡은 이 영화가 재현의 리얼리티를 거부하고 있음을 선언한다. 주인공 알마이에르는 말레이시아의 정글 속에 유럽식 저택을 짓고 딸을 '문명인'으로 키우려 하지만, 그 저택은 이미 곰팡이와 습기에 잠식된 유령의 집일 뿐이다.

 

여기서 '광기'는 단순히 미친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불가능한 꿈(유럽식 부르주아 삶)을 불가능한 장소(식민지 정글)에서 실현하려는 서구 근대성의 집착 그 자체를 의미한다. 알마이에르가 딸 니나에게 쏟는 병적인 애정은 부성애라기보다는, 자신의 실패한 제국주의적 야망을 보상받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에 가깝다.   

 

'Sway'와 '바그너', 엇박자의 미학 

 

영화 곳곳에 배치된 음악은 이 영화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핵심 장치이다. 딘 마틴의 <Sway>가 흐를 때, 우리는 가장 세련된 서구 대중문화가 이질적인 공간에서 얼마나 공허하게 울리는지 목격한다. 반면, 극 전체를 관통하는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서곡의 기묘한 화성(이것은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멜랑콜리아>에서도 사용된다)은 영화에 신화적이고 비극적인 무게감을 더한다.

 

바그너의 음악이 가진 '영원히 해결되지 않는 긴장'은 알마이에르의 고독과 닮았다. 그는 딸을 붙잡아두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정신적으로 그를 떠났으며, 그 간극은 영화 내내 흐르는 강물의 소리와 음악 사이의 불협화음처럼 관객의 신경을 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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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하는 시선, 남겨진 고독

 

이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은 니나이다. 그녀는 아버지에 의해 유럽식 교육을 강요받으며 언어와 정체성을 난도질당한 '타자'이다. 하지만 애커만은 니나를 단순히 불쌍한 피해자로 그리지 않는다. 롱테이크 속에서 니나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할 때, 그 시선은 자신을 구경거리나 소유물로 취급하는 백인 남성적 시선(알마이에르와 관객)을 역으로 심판한다.

 

결국 니나가 정글의 연인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지는 결말은 하나의 해방이다. 그것은 아버지가 규정한 '문명'의 궤도에서 이탈하여, 비록 고독할지언정 자신의 근원적인 야생성으로 돌아가는 의식이다. 홀로 남겨진 알마이에르가 홀로 외롭게 읊조리는 모습은 제국주의라는 거대한 허상이 몰락하는 뒷모습과 겹쳐진다. 

 

피지배 식민지 민중의 복합성

 

이 영화에는 제국주의자 주변에 기생하거나 포획되거나 저항하는 여러 말레이인이 등장한다. 이들 한 명 한 명에 대해서 영화는 스쳐 지나가듯 다루면서도 치밀한 분석적 시선을 떼지 않는다. 니나의 어머니요 알마이에르의 부인인 자히라는 영화 앞부분에서는 몽매하며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다루지만 영화의 후반으로 흐르면서 점점 광기에 휩싸이는 알마이에르와는 반비례하여 자신과 딸의 삶을 단단히 붙잡으려는 강하고 슬기로운 인물로 묘사가 된다. 자히라는 알마이에르가 구축한 ‘가짜 유럽’ 안에서 가장 이질적이고 강력한 저항의 목소리를 내는 인물로 그려진다.

 

두 명의 하인이 또한 지속적으로 등장하는데 하인 알리는 시종일반 충직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는 비굴하기보다는 차라리 보편적 인간애를 가진 모습이다. 첸은 아주 간혹 비다이아제틱(Non-diegetic) 내레이션의 화자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그의 눈길은 영화의 첫 장면에서 강렬하게 부각된다. 환상 또는 상상인지 아니면 포스트 스토리인지 불분명한 영화의 첫 장면에서 첸은 다인을 살해하는데 그 이유는 불분명하다. 영화에서 묘사된 장면들을 통해 전달되는 느낌으로는 충직한 알리와는 달리 분명한 자기 시각과 정체성을 가진 인물로 부각된다.

 

애커만 감독은 이러한 주변 인물들을 통해 제국주의 서구 근대 문명과 그들의 실패한 지배가 남긴 상처의 흔적들을 면밀하게 들여다본다. 애커만 감독이 관객에게 강요하는 ‘응시의 고통’을 통해 식민지 민중의 복합성을 관찰하게 만든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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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탈 애커만의 유언 같은 흔적들

 

샹탈 애커만은 이 영화를 통해 자신이 평생 천착해온 '폐쇄 공포증적 공간'과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의 정서'를 극대화했다. 캄보디아의 울창한 숲을 배경으로 촬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이상하리만큼 답답하고 밀폐된 느낌을 준다. 이는 인물들이 처한 심리적 감옥을 물리적으로 구현해낸 애커만의 탁월한 연출력 덕분이다.

 

<알마이에르가의 광기>는 친절한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잉마르 베르만의 심리적 긴장감과 라스 폰 트리에의 파멸적 미학, 그리고 조셉 콘래드의 비판적 통찰이 애커만이라는 거대한 필터를 거쳐 정제된 고밀도의 예술 영화이다.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과연 누가 진정으로 미친 것인가? 길들여지지 않는 정글인가, 아니면 그 정글을 금을 그어 소유하려 했던 인간의 오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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